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법무법인 한바다에 입사해 갖가지 변호를 맡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다. 자폐라고 하면 과연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그것이 어려울 수는 있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우영우는 자폐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선이나 접근방식으로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물론 우영우라는 인물이 모든 자폐 장애를 가진 이들을 대표한다고 보긴 어렵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이들 중 극히 일부인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인물이고 그래서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굿닥터> 같은 드라마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영화가 그렇듯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인물들을 주로 주인공으로 삼는 콘텐츠들이 자폐를 너무 그런 이미지로만 그려내는 건 우려되는 지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래도 작품 안에 자폐인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어 전하는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같은 대사가 그 사례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졸업에 변호사 시험 성적 천오백 점 이상을 받은 인재지만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는 이유로 로펌들로부터 입사를 거부당한다. 이것이 실제 현실일 터였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로서의 판타지를 통한 어떤 새로운 비전을 선택한다. 모두가 받아주지 않은 우영우를 법무법인 한바다가 받아준 것. 아마도 한바다가 아니었으면 자폐를 갖고는 있지만 그 잠재력은 거의 고래만큼 거대한 우영우라는 변호사는 작은 수족관에서 ‘보호’라는 미명하에 갇혀 아무도 모르는 생애를 버텨내야 했을 게다. 드라마는 이러한 자폐를 가진 우영우가 가진 꿈과 희망을 거대한 대양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로 은유해 그려낸다. 그러고 보면 고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포유류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다. 한바다로 대변되는 세상은 과연 우영우라는 고래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해줄까. 

 

장애는 불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집이나 요양원 같은 세상과 유리된 곳에서 그들끼리 버텨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산성의 관점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세상에서 밀어내며 마치 그런 존재는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회는 어떨까. 그런 사회 자체가 장애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돌봄 노동의 관점으로 보면 우영우의 부모에게서는 우리 사회가 장애 같은 돌봄의 대상을 바라보는 양극단의 관점이 엿보인다. 즉 우영우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게 해준 건 늘 옆에서 든든하게 챙겨주고 세상에도 나갈 수 있게 해준 아버지 우광호(전배수)의 돌봄이 존재했다. 하짐나 다른 한편으로 우영우의 엄마는 우영우를 버렸다. 아마도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일 것으로 추정되는 우영우의 엄마는 왜 그를 버렸을까. 거기에는 마치 그런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치부하고픈 우리 사회의 장애나 돌봄을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이들이 세상과 유리된 곳이 아닌 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편견 없는 시선이다. 장애가 함께 생활하는데 있어 불편한 일들을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능력하다거나 함께 지낼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시선이 그것이다. 우영우를 법무법인 한바다로 받아들인 한선영(백지원) 대표가 그 편견을 버리고 우영우의 길을 열어줬다면, 그와 동고동락해야 하는 정명석(강기영) 같은 상사는 갖고 있던 편견을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바꿔 나간다. 그는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이야기했다가 “하,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시례인 거 같다”고 사과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우영우 옆에는 늘 곁을 챙겨주는 우광호 같은 아버지도 있고 둘도 없는 절친 동그라미(주현영) 같은 친구도 있다. 물론 같은 신입 변호사로서 사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권민우(주종혁) 같은 인물도 있지만, 최수연(하윤경)처럼 로스쿨 때부터 따뜻하게 우영우를 배려해주고 도왔던 인물도 있다. 장애를 가졌지만 우영우가 세상 밖으로 나와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편견 없는(적어도 편견을 깨닫고 바꾸려는) 시선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과연 진짜 장애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군가의 ‘돌봄’으로 시작해 ‘돌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장애요소를 갖고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마치 그건 남의 일이며 내게는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활동하고 경제생활을 하는 이들(혹은 시기)만을 정상으로 바라보고 그 바깥을 비정상 혹은 아예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회야말로 장애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한때 시선 안에 두는 것조차 불편해하며 시선 바깥으로 밀려났던 장애를 포함한 모든 ‘돌봄의 대상’들이 이제 우리의 시선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그렇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리고 있는 우영우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가 그렇다. 이들과 눈을 맞추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며 마음도 나눌 수 있는 장애 없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물론 쉬운 현실은 아니지만, 장애란 결국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함일 뿐,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이데일리, 사진: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의 부모가 그려낼 장애에 대한 두 시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고래사냥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야.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져 새끼가 고통스러워하며 주위를 맴돌면 어미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대. 아파하는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거야. 그 때 최종 표적인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지는 거지.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는 함께 탈북자의 폭행상해 사건을 맡은 동료 변호사 최수연(하윤경)에게 엄마 고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남다른 고래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그래서 업무 중에도 불쑥 고래 이야기가 튀어나오곤 하는 우영우. 이 드라마에서 고래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된다. 바다에서 살지만 포유류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사회에 나와 살아가는 우영우를 상징하기도 하고,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사회에서의 편견에 갇혀 있는 우영우를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영우가 엄마 고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고래는 ‘위대한 엄마’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새끼를 버리지 않는 엄마. 하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그런 엄마. 우영우가 맡은 폭행 상해 사건의 가해자인 탈북여성은 또 다른 엄마 고래 같은 존재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어쩌다 사건에 휘말리게 됐지만, 이 엄마는 아이 때문에 5년 간이나 도망자 생활을 한다. 아이가 너무 어려 엄마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렇게 5년 간 지낸 후, 죗값을 받기 위해 자수한다. 처벌을 받는 두려움보다 아이를 잃을까 싶은 두려움이 더 큰 모성이다. 

 

그런데 우영우의 엄마 고래 이야기는 탈북여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꺼내진 것이지만, 실상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우영우는 버려졌다. 그런데 그는 왜 엄마로부터 버려졌을까. 이 부분은 드라마가 차후에 조금씩 사연을 풀어놓을 것이지만,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장애에 대한 시선과 이를 갖고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를 도외시하고 있는 사회의 엇나간 편견 같은 것들을 담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단서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전배수)를 통해 찾아진다. 엄마는 버렸지만 아버지는 많은 걸 희생해가며 우영우를 끝까지 지키고 키웠다. 재혼을 한다거나 하는, 자신을 위한 삶보다 딸을 위한 삶을 선택하고 그의 재능을 알아내고 관심 있어 하는 법 공부를 시켜 변호사가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한 사람의 희생이 장애를 가진 이의 가능성을 살려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버렸을까. 아직 그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구조로 봤을 때 우영우의 엄마는 법무법인 한바다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태산의 대표 태수미(진경)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건 아직까지 추정이지만 이런 추론은 라이벌 관계를 가진 두 회사의 이름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된다. 우영우라는 고래를 받아준 건 ‘한바다’다. 태수미가 대표로 있는 회사 ‘태산’은 고래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위로만 올라가려 해서 더 이상 고래를 받아줄 수 없는 곳. 

 

만일 태수미가 우영우의 엄마이고, 남다른 야망으로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렸다면 그 상황은 장애에 대해 사회가 갖는 편견이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사회는 장애를 가진 소수자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하지 않던가. 

 

모성으로 표현됐지만 사실 이건 좀 더 확장해서 장애를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고 끌어안는가에 대한 화두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보면 장애가 있어도 끝까지 옆에서 지켜준 우광호와 끝내 버린 엄마를 대척점으로 세워 어떤 선택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길로 갈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바다의 정명석(강기영), 한선영(백지원), 이준호(강태오), 최수연(하윤경)처럼 장애가 있어도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버리고 떠나버린 우영우의 엄마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우영우가 꺼낸 엄마 고래 이야기가 특히 슬픈 건 그래서다. 그는 그래도 몇 프로 안 되는 서번트 증후군이고, 그래서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잘 살아내고 있는 인물이며 나아가 이건 드라마로서 어느 정도 판타지가 더해진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존재’라는 상처가 거기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이 인물을 보듬고 싶고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오게 하고픈 마음이 일었을 게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온 그 삶이 “저는 우영우입니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라고 당당히 소개될 수 있게.(사진:ENA)

부끄럽습니다... 박은빈의 한 마디 그 어떤 일침보다 아프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친 상승세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5회 시청률이 9.1%(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첫 회 0.9%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5회 만에 9%대라니. 이런 흐름이라면 10%도 돌파도 시간문제다. 현실과 판타지를 잘 엮어 장애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과 희망 섞인 비전을 전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래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는 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지만, 이 정도면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무엇이 대중들의 정서를 건드린 걸까. 

 

그 단서는 5회에서 다뤄진 ‘법의 딜레마’라는 소재에서 찾아진다. 이화와 금강 두 ATM 회사가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벌이는 상황. 이화는 자신들의 ATM 기술을 독자 개발한 것으로 금강이 이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이화를 변호를 맡게 된 우영우(박은빈)는 이 사건을 함께 맡은 권민우(주종혁)의 도발로 점점 경쟁심을 갖게 되고 어떻게든 이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급기야 이화가 그 기술을 독자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아 차렸지만 승소를 위해 참고인을 연습까지 시켜 법정에 세운다. 

 

결국 가처분 소송에서 이화가 이기고 이로써 금강은 은행 거래처 계약이 대거 이화로 넘어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금강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증거로 인해, 소송은 뒤집어진다. 이화의 기술이 독자적인 게 아니라, 미국에서 소개된 오픈 소스를 가져와 만든 거라는 진실이 밝혀진다. 결국 진실은 밝혀졌고 소송도 뒤집어졌지만 이화의 대표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득의만만한 표정이다. 그 사이 이미 계약을 다 했다는 것. 우영우는 자신이 한 짓이 승소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한 회사를 나락에 빠뜨렸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결국 저는 이화 ATM이 법을 이용하도록 도와준 셈입니다. 실용신안권 출원도 가처분 신청도 모두 계약을 독접하기 위한 거짓된 행동이었는데 저는 그 행동을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도왔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영우는 이화 ATM을 함께 방문했던 이준호(강태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그에게도 묻는다. “이화 ATM에 방문했을 때 이준호씨는 황두용 부장님과 배성철 팀장님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습니까?” 

 

그 질문에 이준호도 선뜻 답을 못한다. 실제로 당시 팀장은 잔뜩 긴장해 있었고 손으로 허벅지를 쓸어내리면서 코끝을 긁는 등 드러나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었다. 우영우는 아프지만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다. “결국 저는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저 자신을 속였던 겁니다. 이기고 싶어서요.” 그러면서 울먹이며 말한다. “부끄럽습니다.”

 

이 장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리고 있는 세계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즉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는 것. 이화 ATM이 한바다 로펌의 의뢰인이고 그래서 직업인으로서 의뢰인이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치부하는 권민우는 자신이 한 행동들을 합리화한다. “사실이라고 생각했든 안 했든 의뢰인을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요. 그게 변호사가 의뢰인한테 지켜야 되는 예의잖아요.”

 

이건 직업인의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합리화로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로펌의 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순간 ‘이상하게’ 느껴진다. 법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믿고 있지만, 로펌이 의뢰인을 통해 하게 되는 법 활용은 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우영우의 질문과 자성은 그래서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을 만든다. 누가 이상한가? 저들이 이상한가 아니면 잘못한 일을 깨닫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우영우가 이상한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이고 그래서 자폐라는 장애에 대한 결코 얕지 않은 무게감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목하고 있는 건 그래서 오히려 장애에 빠져버린 세상이다. 진실이 통하지 않고 권모술수가 통하기도 하며 진실이 밝혀져도 거짓을 말한 자들이 이익을 보는 우리 사회의 장애. 게다가 가장 큰 장애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럽게 조차’ 느끼지 않는 사회의 불감증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건드린 부분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우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잘못이 되는가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그걸 최소한 부끄럽게 여기고 그래서 반성함으로써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 그것만이 이상한 사회를 되돌릴 수 있는 길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첫 회에 우영우가 한바다 로펌에 처음 왔을 때 상사인 정명석(강기영) 변호사가 툭 던져 놓은 대사에 이미 이 작품이 가진 이러한 시각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저기 그, 병원 가야 되지? 직원 붙여 줄 테니까 같이 갔다 와. 외부에서 피고인 피해자 만나는 거 어려워.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 그래도 우영우를 생각해준답시고 이렇게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정명석은 금세 그게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한다. “하,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거 같다.” 누구나 저도 모르는 사이 잘못을 할 수 있다. 그걸 바꿔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사진:ENA)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가 담은 리플리 증후군의 변주

안나

유미(수지)는 맨발로 23층까지 비상계단을 걸어 오른다. 처음에는 하이힐을 신고 올랐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23층을 오르는 건 힘든 일이다. 결국 하이힐을 벗었고 맨발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럭셔리한 최고급 아파트에서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굳이 비상계단을 걸어 오르게 된 건 그 곳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현주(정은채) 때문이다. 

 

과거 마레 컬렉션에서 일할 때 그는 현주의 개인 수행비서나 다름없었다. 현주는 자신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어떤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고 자신은 그들이 주는 갖은 모욕과 수모 속에서도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 말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꾹꾹 눌러 참고 또 참던 유미는 결국 폭발했고, 현주의 학위와 그의 영어 이름 ‘안나’를 훔쳐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스펙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거짓 학위는 힘을 발휘했고 그렇게 거짓에 거짓으로 자신을 새로이 쌓아올린 안나는 젊은 사업가이자 유력 정치인이 된 최지훈(김준한)마저 속이고 결혼해 과거 도저히 오를 수 없다 여겼던 현주의 삶을 자신도 살게 됐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이자 대학교수에 최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 하지만 그 거짓으로 쌓아 올린 삶이 진짜 안나인 현주를 만나게 됨으로써 한 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고, 그래서 유미는 그를 애써 피하기 위해 맨발로 23층까지 계단을 오르고 오르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가 보여주는 이 비상계단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단지 리플리 증후군의 서사만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 알랭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로 기억되는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다음백과)’를 말한다. 1999년에는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고, 우리네 드라마도 <미스 리플리(2011)>로 변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나>는 끝없이 거짓으로 쌓아올린 정체성이 무너지는 비극을 담았던 리플리 증후군 소재에 사회적인 함의를 더해 넣었다. 그건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뭐든 척척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투영이다. 안나가 된 유미가 그렇게 23층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실제로는 맨발로 23층을 계속 오르는 장면은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들이 저 높은 곳의 삶에 도달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면 밑에서 발을 동동 저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안나>는 자신의 삶 자체를 바꾸는 사기를 친 유미의 범죄를 그리고 있지만, 한참을 보다보면 이 인물에 공감하고 그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 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게다가 <안나>가 보여주는 유미를 둘러싼 저들 세상의 ‘거짓들’은 유미가 하고 있는 거짓 삶이 저들과 비교해 무에 그리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만든다. 남편 최지훈은 바로 그 거짓 가면을 뒤집어쓴 인물이다. 대외적으로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이고, 약자들을 위한 기부에 앞장서는 의식 있는 인물처럼 미디어에 의해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운전기사가 단 10분 늦게 도착한 일로 폭행과 폭언을 하고는 해고시키는 비정한 인물이다. 또 정치인으로서 그는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거짓말과 행동도 일상적으로 하는 인물이다. 유미의 거짓과 최지훈의 거짓 어느 쪽이 더 나쁜가. 

 

하지만 거짓은 가진 자들만 하는 게 아니라 유미의 유일한 선배인 지원(박예영)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더 큰 신문사의 스카웃 제의로 정치부 기자가 된 지원은 그것이 유미의 부탁으로 최지훈이 힘을 써 생긴 일이라는 걸 알고는 분노하고 또 유미의 삶이 거짓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지만 바로 그 실체를 폭로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낙하산 인사의 수혜자가 됐기 때문이다. 즉 <안나>는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가져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양극화와 스펙사회 그리고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 무엇보다 겉과 속이 다른 거짓 가면의 사회 같은 현실들을 투영시킨다. 거짓으로라도 버텨내기 위해 맨발로 오르고 또 오르는 그 고단한 유미의 현실이 더 절절한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글:PD저널, 사진:쿠팡플레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