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 곤지암에 사는 화가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작업실로 쓰시는 집이었는데 넓은 마당과 집 구석구석 
선생님의 손때가 묻은 작품들이 투박하게 놓여져 있었죠.
TV가 없어서 우리는 서로 얼굴보고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죠.
선생님이 집 뒤켠에서 따온 호박을 듬성듬성 자르고
햄 하나를 통째로 꺼내서 역시 대충 썰어 넣고는
볶아서 안주로 내놓으셨습니다.
글쎄요... 맛으로 치면 식당처럼 맛깔나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여긴 농약도 없어. 그냥 먹어도 되지."
그 말 한 마디에 왠지 더 맛이 나더군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노래도 듣고
그러다 녹차도 마셨습니다.
차와 술은 함께 하면 안된다고들 했지만
그 때는 녹차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도 했죠.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곤지암 소머리 국밥집에서 해장을 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곤 했죠.
사실 뭐 특별한 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저는 늘 그 집을 떠올립니다.
선생님...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내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일 것입니다.
그 집은 아주 아름다운 집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곳. 힘들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
뭔가 늘 얻어갔던 곳. 마음 하나 편하게 놓고 사색에 잠길 수도 있었던 곳.

블로그를 하면서, 나는 늘 이 곳이 내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촌스럽게도 '홈페이지' 세대였던 나는 그 홈페이지도 집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가끔씩 누군가 허락도 받지 않고 저벅저벅 들어와 침을 뱉거나
심지어 용변(?)을 보고 가면 정말 화가 났습니다.
이 곳, 사적인 공간이 아니었던가요?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 않더군요.
이제 블로그가 마치 공적인 공간이나 되는 것처럼
당연스럽게 마구 글을 달기도 하니까요.

어떤 한 블로거가 자기 집에서 장사를 한 모양입니다.
뭐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처음부터 상업화되진 않았을 겁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자본이 찾아오고,
그 때부터 그 사람 많은 곳은 사람살기 어려운 곳이 되버리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인 듯 합니다.

덕지 덕지 상품들의 흔적이 묻어난 곳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금 그 때 그 아름다운 집이 떠오릅니다.
선생님도 떠오르고요..


드라마에 포만감을 주는 연기자, 정보석

'내 마음이 들리니'(사진출처:MBC)

끼니 때마다 그는 아들 봉마루(남궁민)를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그릇에 담는다. 물론 아들이 언제 집으로 돌아올 지 그는 모른다. 그래도 그는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퍼 잘 싸놓는다. 무려 16년째. 그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며 밥을 싸는 봉영규(정보석)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봉영규는 봉마루가 집을 나간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같은 바보가 아버지라는 게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봉영규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게 따뜻한 밥을 해서 준비해놓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만난 아들은 자신을 부인한다. 그것은 "당신이 바보라서 (아들이라고) 거짓말 한 것"이라고 한다.

순간 봉영규의 얼굴은 흔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말한다. "마루야. 그런데 딱 한 번만 집에 와라. 집은 안 창피하잖아. 꼭 한 번만 와. 내가 밥 맛있게 해줄게. 나 이제 밥 맛있게 잘한다. 그럼 진짜 다시는 아는 척 안하고 기다릴게." 그 얘기를 듣던 봉마루의 애써 차갑게 굳은 얼굴이 흔들린다. 봉영규는 그 와중에도 젖은 눈을 숨기려는 듯 봉마루를 위해 바보 같은 미소를 애써 짓는다.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정보석이 연기하는 봉영규라는 캐릭터는 그 '밥 한 끼'로 상징되는 뜨거운 진심이다. 모두가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상처줄 때, 봉영규는 이 드라마의 한 구석에서 묵묵히 밥을 짓는다. 그 따뜻한 밥 한 공기의 온기가 없었다면 이 얽히고설킨 드라마는 자칫 자극만 난무하는 막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사위가 장인의 죽음을 방조하며,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그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 키워 그 원수에게 복수하게 하는 이 극한의 상황을 모두 덮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밥 한 공기의 온기다. 이 드라마는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친자식을 버리고, 또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자식을 다시 찾으려는 똑똑한 친부모들과, 친부모는 아니지만 집나간 아들을 위해 바보처럼 16년 간 밥 한 공기를 준비해 놓는 봉영규를 대결시킴으로서 비로소 주제의식을 지켜낸다.

봉영규가 한쪽에서 묵묵히 밥 한 끼를 준비하는 모습은 정보석이라는 연기자의 묵직한 존재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한 없이 망가지며 이 시트콤에 웃음의 바탕을 만들어내던 그는 '자이언트'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 조필연으로 열연하며 드라마의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들리니'의 지적장애를 가진 봉영규를 통해 그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정보석이라는 중견연기자의 아우라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드라마의 중심에 서지 않지만 그 묵직한 존재감으로 드라마의 든든한 포만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는 드라마의 따뜻한 밥 같은 존재다. 매 끼니 때마다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반찬일 지 모르지만, 우리를 든든하게 해주는 것은 밥인 것처럼. 정보석은 그렇게 우리가 바라보지 않는 구석에서도 열심히 밥 한 끼를 준비해놓는, 그럼으로써 그것이 결국 그 드라마의 결이 되게 만드는 그런 연기자다.


'1박2일', 외풍에 버틸 수 있는 길

'1박2일'(사진출처:KBS)

여배우 특집에 이은 명품조연 남자 배우 특집까지 두 차례에 걸친 빅 이벤트는 지금까지 못보던 '1박2일'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1박2일'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아날로그 여행'을 콘셉트로 간 관매도에서의 '1박2일'은 그 가능성을 다시금 되새겨주었다.

지금껏 '1박2일'을 견인했던 것은 특별 게스트들이었을까. 물론 시청자 투어나 외국인 근로자, 혹은 박찬호 같은 명사나 여배우들과 명품조연들의 출연은 이 프로그램의 특별메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1박2일'이 제 맛을 냈던 것은 그들만의 소박한 여행과 그 속에서의 작은 발견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흥미로운 게임들이 잘 어우러졌을 때였다.

특히 '1박2일'이 섬에 강하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딘지 도시에서 소외된 섬에 들어가 그 고립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1박2일' 특유의 건전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의 관심 바깥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그 곳을 카메라가 비추고, 그 위에서 멤버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 이것이 '1박2일'이 대리경험해주는 주말여행의 미덕인 셈이다.

찬찬히 섬을 걸어서 둘러보며 거기 자라난 작은 풀과 돌에 일일이 관심을 던지는 장면들이 푸근하게 다가오고, 소나무 숲길을 걷는 그들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설레게 하며, 저녁 밥상에 올라온 깻잎 하나에도 군침이 돌게 하는 힘. 그 힘은 특별 게스트들의 출연으로 얻어내기 힘든 것이다. 아무래도 게스트가 들어오게 되면 여행은 게스트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삶과 발견 못했던 특별한 모습들을 카메라가 촘촘히 포착하다보면 정작, 여행지의 설렘을 담아내기 어려워진다.

물론 그것도 또 하나의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결국 전국 각지에 숨겨진 여행지가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소재인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출연자들이 여행지에서 너무 돌출되지 않고, 오히려 그 여행지에 푹 파묻힐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가보지 못했던 곳을 대신 가게 해주고, 거기서 낯설지만 친근한 우리네 이웃들을 만나게 해줄 때, '1박2일' 특유의 구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런 기본적으로 여행지에 충실한 흐름 위에 적절한 자극으로서의 복불복이 얹어지면 의미 있는 밥에 재미있는 반찬이 올려지는 격이 된다.

물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꽤 오랫동안 방영되어 오면서 시청자들은 이제 대충 이 여행 버라이어티의 패턴을 읽게 되었다. 오프닝하고 떠나면서 게임하고 도착해서 여행지를 둘러보다가 또 복불복 게임하고 자고 아침 미션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고정된 패턴. 여행도 비슷한 패턴으로 자주 하면 지루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해야 될 것은 여행지 자체의 매력을 부각시키거나(같은 패턴이라도 지루함을 없앨 수 있다), 아니면 일련의 비슷해진 여행 패턴을 기획을 통해 흔들어놓음으로써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의외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선택적인 게 아니라 동시에 이뤄질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1박2일'은 '나는 가수다' 같은 신상 예능 프로그램에 의해 어떤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틀을 벗어나 외부 게스트들이 들어오는 그런 식의 변화는 자칫 '1박2일' 본연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화려함에 화려함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박함을 찾는 일이며, 여행 이외의 것을 통한 자극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의 매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지금 예능의 세계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같이 변화에 휩쓸리기보다는 오히려 '1박2일'만의 단단함을 더욱 굳건히 지키는 일이다.


장근석 신드롬, 신 한류 드라마의 조건

'미남이시네요'(사진출처:SBS)

일본에서 불고 있는 장근석 신드롬은 여러모로 배용준 신드롬을 닮았다. '겨울연가'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배용준으로 대변되는 1세대 한류의 시작이었다. 장근석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미남이시네요'나 '매리는 외박중'은 화제는 낳았지만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이미 일본의 언론은 장근석으로 세대 교체된 한류를 얘기하고 있을 정도다.

'겨울연가'는 돌발적인 사건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후 가능성을 발견한 우리네 드라마가 10여 년 동안 한류를 겨냥해왔던 것은 분명하다. 한 때는 퓨전사극이 그 뒤를 이었고, 심지어 블록버스터 드라마까지 제작되었다. 해외를 의식하면서 미드 같은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도 다수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과연 그런 이른바 한류를 겨냥한 드라마들은 성공을 거뒀을까. 물론 몇몇은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류를 염두에 두었다고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남이시네요'나 '매리는 외박중'의 장근석이 과거 '겨울연가'로 갑자기 등장한 배용준처럼 갑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조준하고 있는 한류 드라마라는 것이 어쩌면 엉뚱한 방향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지도 모른다. 또 국내에서의 성공이 해외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때론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성공이라는 기준으로서의 시청률 산정이 사실은 그다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 제 아무리 시청률 40%를 넘긴 가족드라마라고 해서 해외에 신드롬을 일으키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어떤 부분에서 벌어지는 왜곡이 이런 국내와 해외의 온도차를 만드는 것일까. 먼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K팝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외의 콘텐츠들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것을 잘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K팝은 말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한때 박진영이 미국 진출을 선언하면서 미국시장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철저한 '미국화'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의 K팝의 성공은 외국인들의 눈과 귀에 맞출 일이 아니라, 그들의 눈과 귀가 K팝에 번쩍 뜨이게 하는 것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한류 한류 하지만 우리 드라마가 미드를 흉내 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그렇게 블록버스터들은 우리가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미드를 따라가기 어렵다. 반면, 우리 정서나 문화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는 로맨틱 코미디류나 멜로는 그런 점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가진다. 여기에는 일본을 포함해 미국, 유럽 같은 서양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우리 만의 끈끈한 정서가 숨겨져 있다. 이 사랑과는 또 다른 가족적이며 정(情)적인 감성은 같은 멜로를 그려도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신드롬을 만들었던 것에는 바로 전후세대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그 따뜻함(배용준의 미소로 대변되는)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미남이시네요'와 '메리는 외박중'으로 일본에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것은 장근석의 그 아기 같은 미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미소에 '미남이시네요'나 '메리는 외박중'이 다루고 있는 K팝적인 소재들이 어떤 상승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류 드라마의 양상 역시 마찬가지다. '시크릿 가든'이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작품들이 파란 눈에 금발의 아주머니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쿨한 사회일수록 더더욱 그리워지고 희구하게 되는 그 정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하루의 피곤한 일상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딘지 위안 받고 싶은 마음으로 TV를 켜면 온통 쏟아져 나오는 게 '캅 콘텐츠(cop contents)' 같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미국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왜 거기 우리네 로맨틱 코미디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 그 이유를 쉬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거꾸로 우리나라에서의 드라마판을 되돌아봐야 한다. 과연 최근 쏟아져 나오는 우리네 드라마들은 우리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시청률에 목맨 드라마들은 이른바 되는 코드들을 적당히 엮어서 비슷비슷한 드라마들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어떤 드라마는 한류를 겨냥한답시고 엄청난 제작비만 끌어 모아 말 그대로 돈 잔치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 TV로만 산정되는 시청률은 세대적인 고려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미 콘텐츠는 TV는 물론이고 인터넷이나 IPTV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시청률은 중장년층의 시청률이나 거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이 시청률 잣대가 광고비와 연계해서 제작을 압박한다면 나올 수 있는 콘텐츠는 불을 보듯 뻔한 것들이 아닐까.

이미 시대는 글로벌해졌고, 콘텐츠는 넘쳐난다. 우리는 여기 앉아서 미국의 콘텐츠든 일본의 콘텐츠든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굳이 그들을 따라 하거나 혹은 우리 안에만 매몰돼서는 이 글로벌한 시대의 콘텐츠로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곡된 시장의 흐름을 바로잡는 일은 그래서 한류가 주목될 때마다 국가가 나서서 어떠한 지원책을 내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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