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무대를 내려오자 완성된 그들의 음악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한 때 '재도전'이라는 말은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금기어(?)였다. 그만큼 엄정한 청중평가단의 결과에 대한 수용이 이 예능 프로그램에 요구하는 대중들의 정서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결과에 의해,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하차한 '나가수'의 가수들이 더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너무 빨리 '나가수' 무대를 내려와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그들의 음악이 각종 음원차트를 통해 더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게다.

정엽이, 김연우가 첫 탈락자가 됐을 때, 또 JK 김동욱이 공연 도중 좀더 '완벽한 노래'를 선보이기 위해 다시 노래를 불러 자진 하차를 결정했을 때, 음원차트는 어김없이 이들의 노래를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정엽이 부른 '잊을게'는 특유의 맺돌 창법을 대중들의 잔상 속에 남겨놓았고, 김연우가 부른 '나와 같다면'은 감성을 자극하던 미성과 절정의 테크니션을 환기시키며 그의 옛 앨범들까지 찾아듣게 만들었다. 한편 '조율'이란 곡을 재발견시킨 JK 김동욱의 울림 있는 목소리는 새삼 귀에 착착 감기는 그의 노래를 자꾸만 듣게 했다.

물론 '나가수'의 무대가 어떤 지르는 창법을 추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 이 무대가 대중들에게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먼저 귀에 들어온 것이 성량과 고역대의 음폭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차츰 '나가수'의 무대가 전해주는 음악의 다양한 즐거움이 인식되기 시작하는 현재, 초창기 성량과 음폭만이 아닌 다른 음악이 주는 매력을 전해주던 하차한 가수들의 노래는 더더욱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하차했지만 그들의 노래들이 '나가수'라는 무대를 다채롭게 해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정엽의 감미로운 목소리, 김건모의 감칠맛 나는 창법, 온 몸으로 흐느끼는 듯한 백지영의 호소력,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김연우의 단단한 미성, 마성의 카리스마로 노래가 아닌 하나의 진심을 덩어리째 보여준 임재범, 깊은 울림의 목소리로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게 해준 JK 김동욱, 그리고 마치 바람처럼 섬세하게 때론 거칠게 노래가 주는 감성을 전해주었던 이소라. 이제는 경연의 무대를 내려와 편안해진(?) 이들의 음악이 더더욱 새롭게 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이것은 '나가수'라는 무대가 가진, 아니 어쩌면 모든 무대가 가진 본질일 것이다. 노래는 어쩌면 무대 위에서 불러지지만 가수가 무대를 내려왔을 때 그 빈 자리가 전해주는 깊은 여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라고 외치는 이 프로그램은 가수의 등장에서부터 흥겨운 무대와 더불어, 무대를 내려온 후까지 그 '가수'라는 정체성이 대중들에게 전해주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니 하차한 만큼 그리워지는 존재를 그려내는 '나가수'라는 무대를 지나치게 서바이벌의 살벌한 눈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 무대의 '서바이벌'이란 좀 더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해 가수들의 최고치를 끌어내기 위한 말 그대로의 장치일 뿐이니. 결과에 의해,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이미 하차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리워지는 정엽, 김건모, 백지영, 김연우, 임재범, JK 김동욱, 그리고 이소라. 어쩌면 그들은 무대를 내려옴으로써 드디어 그들의 음악을 완성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들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김성주, 신동엽, 이덕화, 오디션에서 보니 달라 보이네

'키스앤크라이'(사진출처:SBS)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요구하는 MC의 자질은 그 리얼한 상황 속에서의 대처능력이다. 순간 지나치는 상황을 재조명해주는 능력이나, 그 상황을 확장시키는 리액션 능력이 그런 것들이다. 전자에 강한 인물이 유재석이라면 후자에 강한 인물이 강호동이다. 이것은 리얼화된 토크쇼에서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예능 MC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은 물론 그들의 성실성과 재능이 주효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리얼 예능이라는 형식이 대세가 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여전히 인기가 있지만, 최근 들어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또 하나의 새로운 예능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 환경 속에서 다시 주목되는 MC들이 있다. '슈퍼스타K'로 주목받는 김성주가 그렇고, 최근 '키스 앤 크라이', '불후의 명곡2' 등 신상 오디션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신동엽이 그렇다. 또 '댄싱 위드 더 스타'로 오랜만에 MC로 돌아온 "부탁해요"의 이덕화도 명불허전의 진행능력을 선보이고 있고, '코리아 갓 탤런트'의 신영일 MC나 노홍철도 주목된다. 이들의 어떤 능력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들을 더 빛나게 만드는 걸까.

'슈퍼스타K'의 김성주 아나운서는 스포츠MC로서의 경험이 대결국면을 갖기 마련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장 필요한 자질이 되었다.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진행능력이 일품이다. '슈퍼스타K'에서 순위를 발표하는 순간에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끄는 건 자칫 잘못하면 비판받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김성주의 진행은 비판보다는 호평을 받을 정도로 이 긴장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심지어 "1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는 광고 고지로서 어쩌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공산이 있었지만 상황을 편안하게 이끄는 김성주의 위트로 오히려 유행어가 되었다.

'키스 앤 크라이'와 '불후의 명곡2'로 주목받는 신동엽은 특유의 밀당(?) 능력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자질이 되었다. 때론 깐죽대고 때론 부드럽게 농담으로 이어가는 그의 능력은 참여자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경쟁구도의 오디션을 예능으로 되돌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불후의 명곡2'의 대결에서 효린이 승자가 되자 아이유에게 달려가 껴안아주자, "방송이 사람들을 참 친하게 한다"고 농담을 하고는 "그런데 저 두 사람은 진짜로 친하다"고 다시 훈훈하게 분위기를 바꾸는 능력은 타인들이 하기 어려운 신동엽만의 자질이다.

'댄싱 위드 더 스타'로 돌아온 이덕화는 특유의 털털한 진행능력이 돋보인다. '댄싱 위드 더 스타'가 다루는 댄스 스포츠는 과거 '무한도전'의 미션으로 한 번 소개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서구적인 느낌이 나는 게 사실이다. 이덕화는 자칫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의 댄스 스포츠를 된장 냄새나는 정감으로 바꾸는 능력을 보인다. 최하점수를 받은 김장훈에게 "오늘 최하 점수가 나왔네요"라고 말할 때조차 편안함이 느껴지게 만드는 건 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밖에도 '코리아 갓 탤런트'의 신영일 아나운서와 노홍철 역시 주목되는 MC들이다. 신영일 아나운서가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간다면 노홍철은 참가자들의 입장에서 때론 기운을 북돋우고 때론 공감하는 역할을 해준다. 최성봉씨가 불우했던 과거사를 얘기하고 '넬라 판타지아'로 관객들을 감동하게 했을 때, 노홍철이 보여준 깊은 공감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리얼 예능이 새로운 스타 MC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면, 이제 대세로 자리한 오디션 예능은 거기에 맞는 스타 MC를 요구하고 있다. 김성주, 신동엽, 이덕화는 그 가능성들이다. 그들의 밀고 당기는 능력과 긴장감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진행능력은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되게 만드는 매력이다. 스타는 물론 그들의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처럼 시대를 만나야 빛을 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주산성 밑 국수집에서 국수 한 사발 먹고 서성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다.
달칵이는 경쾌한 얼음소리를 들으며 그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아내의 메시지가 왔다.
점심을 먹고 있단다.
모두가 나간 빈 사무실에 앉아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까먹는단다.

때론 한없이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여겨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이럴 때는 그간 수없이 원고 수정을 요구했던 편집자나
말 지겹게 듣지 않는 회사 후배나
어딘지 일상에 지쳐 대화가 멀어진 배우자에게나
전화를 걸 일이다.

한껏 여유로워진 그 마음 속으로는
뭐든 들어오지 않을 것이 없다.

며칠 전 부모님을 베트남 가는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한 달 간의 여행이었다.
마음에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
한 번 심하게 다퉜던 것이다.
고부 간의 갈등 사이에서 바보스럽게도
아내 편을 노골적으로 들었더니
어머니는 깊은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며칠을 울고 잠을 못잔다고 아버님이 알려주셨다.
바로 내려가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다 들킨 후였다.

서먹하게 부모님을 베트남 가는 비행기에 태우고
돌아오면서 나중에 내 자식이 나처럼 굴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햇살 좋은 초여름. 행주산성 밑 국수집 근처 야외 커피숍 그늘에서
아내의 메시지를 읽었다.

'어머님이 반찬을 주셔서 내가 이렇게 호젓한 도시락타임을 갖는다'

문득 베트남 가는 날에도 챙겨먹으라고
어머님이 차에 챙겨두신 반찬이 떠올랐다.

때론 한없이 모든 게 감사해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음악만 들어가면 주목되는 예능 프로그램 왜?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지금 불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광풍은 서바이벌 오디션의 성공인가, 아니면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의 성공인가. 혹자는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장치가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바로 이 팽팽한 긴장감이 서바이벌이라는 장치를 통해 조성되지 않았다면 그 무대는 밋밋해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서바이벌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소재가 그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맞는 얘기다. 현재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음악이라는 소재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오디션과는 상관없이 음악을 소재로 끌어들인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도대체 무엇일까. 서바이벌이 갖는 경쟁일까, 아니면 음악이 주는 감성일까.

'나는 가수다'가 이토록 모든 이슈를 먹어치우는 예능의 핵이 된 것은 이 두 요소가 폭발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표 기성 가수들이(혹자들은 신이라고까지 칭하는!) 경연을 벌이고 그 중 한 명이 탈락하는 이 시스템은 이 무대의 기대치를 200% 높여놓았다. 백전노장 가수들마저 떨게 만들고 자신의 한계치를 넘나드는 무대를 도전하게 하는 시스템이 주는 힘은 고스란히 대중들의 전율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전율을 감동으로 연결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라는 감성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이 무대는 그저 피만 철철 흐르는 검투사의 무대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이 경쟁을 감성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재도전으로 서바이벌의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갔을 때, 그것을 순식간에 내려준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감동적인 무대는 서바이벌 이상의 가치를 이 무대에 부여했다.

'위대한 탄생'은 서바이벌보다는 음악이 주효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즉 서바이벌 형식에 덧붙인 멘토제는 공정한 경쟁을 상당부분 상쇄시켜버린 느낌이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을 봤던 것은 거기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예능에 발휘하는 힘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작년 '남자의 자격'을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에 놓은 것은 다름 아닌 '하모니'라는 합창이었다. 그 음악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내는 감동이 이 예능에 깊은 감성을 부여한 것. '놀러와'에서 시도된 '세시봉'이 신드롬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크쇼에 음악을 덧붙이자 스토리화된 음악은 더 감성적으로 대중들의 귀에 꽂혀버렸다. 이것은 지금도 '놀러와'에서 가수들이 등장할 때 좀 더 큰 화제가 되고 시청률이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음악이 다뤄지는 예능이 주목받는 현상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이 어쩌면 음악 예능의 열풍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무릎팍 도사'보다 '라디오 스타'가 더 주목되는 것도 그 한 예일 것이다.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백두산의 김도균과 트랙스의 정모 씨앤블루의 용화 종현이 즉석에서 벌인 잼이 큰 화제가 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 '무한도전'의 서해안 가요제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감흥을 주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제는 웬만한 토크쇼에 가수가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렸다. '승승장구'에 나온 남진은 춤을 추며 옛 노래를 열창하고, '놀러와'에 출연한 얼굴 없던(?) 가수들 김범수, 박완규, 조관우 역시 잔잔한 토크 위에 전율의 음악을 얹어 놓았다.

반면 음악이 아닌 소재를 가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의 성공이 오디션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심증을 더 굳게 만든다. '신입사원'처럼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이 주목도가 낮고, 또 '키스 앤 크라이'처럼 김연아를 투입하면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음악이 예능에 얼마나 큰 힘을 보태주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비교적 서바이벌과 음악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장단점을 분석해보면 이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가 어디에 더 핵심을 두고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즉 서바이벌 과잉이 만들어낸 이상 열기는 오히려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음악 외적인 것들이 각종 이슈들로 쏟아져 나올 때 이 프로그램은 힘겨워 진다. 반면 그 힘겨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건 바로 가수들의 음악이다. 논란 속에서도 김건모의 열창은 그 모든 논란을 넘어서게 만드는 힘이 있고, 김범수의 도발은 유쾌하게 피곤한 무대를 날려버린다. 물론 무대를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장치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성을 열어주는 음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오디션 전성시대가 아니라 음악 예능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모든 방송사들이 뛰어들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러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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