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사극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덕여왕’

“생(生)을 고르면 살고 사(死)를 고르면 모두 죽는다.” 금지시킨 차 교역을 한 죄로 끌려온 덕만(남지현)은, 자신과 일행들의 목숨을 건 제후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미 어느 돌이든 모두 사(死)임을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수수께끼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 덕만이 자신이 선택한 돌을 꿀꺽 삼켜버리고 제후의 나머지 돌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으로 미션을 해결한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어떤 문제를 풀었을 때 갖게 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이로써 덕만의 레벨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은 기본적인 '선덕여왕'의 '미션제시-해결'의 이야기 구조. 이 미션사극을 움직이는 강력한 주동력이다.

이중으로 겹쳐져 있는 위기의 미션
일종의 미션을 제시하는 것이 '선덕여왕'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미션 속에 제시되는 주인공의 위기는 여타의 사극보다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특징을 가진다. 사막까지 쫓아온 자객을 피해 달아나는 미션에서도, 또 우여곡절 끝에 만난 덕만과 천명(신세경)이 설지(정호근)와 그 무리들에게 붙잡혀 팔려갈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션에서도, 또 겨우 도망쳐 나와 절벽에서 천명의 손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살아나오는 미션에서도 이러한 위기는 또 다른 위기와 겹쳐진다.

발을 잘못 디뎌 유사(모래수렁)에 빠져버린 양어머니 소화(서영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덕만은 마침 나타난 자객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비를 내려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설지의 마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게 될 즈음, 미실이 파견한 토벌군에게 쫓기게 된다. 절벽에서 덕만과 천명이 서로의 생명줄을 잡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도 토벌군의 추격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늘 해법은 제시된다. 때 아닌 모래폭풍이 덮치고, 안오던 비가 내리고, 늘 도움만 받아왔던 천명이 오히려 덕만을 구해낸다.

해결책은 의외로 싱겁지만, 그것은 하늘의 기운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위기가 이중삼중으로 겹쳐 있다는 것, 그것이 사극의 힘을 만드는 진짜 힘이 된다. 이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미션사극의 핵심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사극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결말이 뻔한 사극에 빠져드느냐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결과에 이르는가, 그것이 미션사극이 제시하는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이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할 기본 전제
'선덕여왕'의 초반부를 끌어가는 힘을 미실(고현정)이라는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악역에 둔 것 역시 이 사극의 다분히 의도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은 도달해야할 지점이 현재 주인공이 있는 지점에서 멀면 멀수록 더 힘을 발하기 마련이다. 도달해야할 지점인 권력의 정점에 미실을 세워두고 신라도 아닌 중국 이역 땅에 덕만을 배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먼 곳에서부터 점점 중심으로 다가가는 덕만이 해나가는 미션들은 그 거리만큼 더 폭발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덕만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미션들이 가진 단순함이다. 미션사극은 우리식 사극에 저 미드가 가진 스토리 전개를 접목한 것. 하지만 50부작에 이르는 우리네 사극이 저 미드만큼 꽉 짜여진 미션들을 갖고 있다면 이처럼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션들은 물론 뒤따르는 미션과의 연결고리를 갖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만큼 얼개를 느슨하게 가져감으로써 시청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 '돌 뽑기 미션'이나 '사막 추격 탈출 미션'은 연결점 없이 각각의 것으로 존재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미션들을 해결함으로써 어떤 성장의 과정을 그려내는 덕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좀 더 편안하게 각각의 미션을 즐기는 것으로 사극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것은 '대장금'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김영현 작가표 사극의 파괴력이다.

‘선덕여왕’, 미션사극의 새로운 정점
미션사극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병훈 PD의 필모그래피에서 미션사극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조망해볼 수 있다. 99년도에 방영되었던 ‘허준’과 2001년도 방영된 ‘상도’는 미션사극이 가진 가능성을 촉발시켰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최완규 작가일 것이다. 최완규 작가가 이병훈 PD와 함께 ‘허준’, ‘상도’를 통해 우리식 사극에 미드 식 전개를 붙여 미션사극의 바탕을 만들었다면, ‘대장금’에 이르러 그 바톤을 이어받은 후배 작가 김영현은 여기에 여성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사극의 시청층 자체를 넓혀놓았다.

‘선덕여왕’은 김영현 작가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능수능란한 여성이 주인공인 미션사극이다. 따라서 현재 미션사극의 정점으로서 ‘선덕여왕’이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사극의 성공에 작가의 공만이 있을까. 미션 사극에 있어서는 그것을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의 몫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양 극점에 선 인물들이다. 미션을 제시하는 자와 그 미션을 수행하는 자가 균형 잡힌 대립각을 이룰 때, 미션사극의 힘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과 덕만을 연기해온 남지현의 호연은 바로 그 대본이 가진 힘을 배가시켰다.

올해 사극이 새롭게 꺼낸 ‘여걸’이라는 카드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나 ‘자명고’가 거둔 성과가 미미한 반면, ‘선덕여왕’이 단 몇 회만에 폭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미션사극이라는 흥미로운 대본의 공이 크다. 이제 막 초반을 달리고 있는 ‘선덕여왕’은 아직도 그 파괴력의 끝을 알기가 어렵다. ‘주몽’은 한때 월화의 밤을 장악한 이래, 한동안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드라마들이 맥을 추지 못하게 했다. 탄력을 받은 사극을 현대극으로 맞받아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산’이 등장했을 때 SBS는 ‘왕과 나’로 맞불을 놓았었다. 하지만 ‘자명고’가 사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선덕여왕’의 독주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선덕여왕’의 폭발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뜨는 드라마에는 꼭 있다, 판타지남

구준표(이민호)는 엄청난 대부호의 아들로 뭐든 못할 게 없는 인물. 그런 남자가 한 여자, 잔디(구혜선)만을 사랑한다. 이것이 '꽃보다 남자'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의 핵심이다.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 역시 퀸즈푸드라는 대기업의 사장으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 그런 그가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천지애(김남주)를 좋아한다. '시티홀'의 조국(차승원)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능력 있는 정치인. 하지만 그는 시골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에게 빠져 '안하던 짓', 사랑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는 능력에 성품까지 겸비한 남자. 그는 어느 날 만나게 된 집도 절도 없는 고은성(한효주)을 사랑하게 된다.

구준표에서 태봉씨, 조국, 박준세까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잘 생겼고, 둘째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셋째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넷째는 현실적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판타지 속의 완벽한 남자들이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가 모두 성공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판타지남들이 있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여성 주인공을 만남으로 해서 신데렐라 혹은 캔디적인 판타지의 바탕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과거처럼 왕자님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현대적인 신데렐라 혹은 캔디의 이야기는 그 왕자님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돕는 것이다. 즉 외모나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 전제되는 판타지로 그 이야기는 바뀌고 있다.

태봉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천지애 모르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그녀가 처한 위기를 돌봐주고, 조국은 이제 막 정치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신미래를 걱정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법을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고은성을 위해서 박준세는 헌신적이라 할 만큼 그녀를 도와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도움이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닮았다.

이 이른바 뜨는 드라마 속에 꼭 존재하는 판타지남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여성들의 로맨스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큼 커진 성공 욕구일 것이다. 이제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남자는 그저 잘생기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저 부자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들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성공의 길로 이끄는 판타지남들이 완성되게 된다.

이들 판타지남들에 대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점에서 정반대되는 현실을 말해준다. 불황의 여파로 사회는 더 각박해졌고, 기득권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버텨내기 힘든 경쟁시대로 돌입했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죽할까. 점점 완벽해져가는 판타지남들과 그들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트랜스포머'와 거북이의 대결, 누가 이길까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의 졸속으로 치러진 월드 프리미어 행사가 가져온 파장이 만만치가 않다. 80분이나 늦게 도착해 별다른 사과도 없이 대충대충 치러진 행사에 취재진이 보이콧하는 이례적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졸속 행사와는 달리 화려하게 지극히 정상적으로 치러진 일본의 행사와 비교되면서, 국가적인 무시로 비화돼, 극장 보이콧을 하자는 네티즌들의 의견마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논란 자체가 관심을 만들어 국내의 '트랜스포머' 흥행에 오히려 불을 지를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사건은 때 아닌 한일 감정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이다. 이 우리의 반응에 대한 기사가 나가자 일본 네티즌들은 노골적으로 한국의 태도를 유치하고 치졸한 대응이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나섰고, 이것은 다시 우리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트랜스포머'의 원작이 일본 것이라는 의식은 그 한일 감정의 바탕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대중문화에 있어서까지 애국주의라든가, 한일 감정 같은 양상으로 비화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의 행사가 보여준 태도는 어쩌면 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견지하는 태도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강자의 논리 혹은 경제의 논리 그것은 또한 블록버스터의 논리이자 미국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오락영화 속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물론 이것은 일본 원작이지만 영화 속에는 이 미국적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다)이 저 졸속 행사에서의 단면처럼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돈의 위력이 만들어내는 현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가 던져주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블록버스터의 롤러코스터 타기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는 건, 어쩌면 농구가 미국선수들의 체형에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전략으로 우리네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할리우드의 그것과는 조금씩 다른 체형과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이 게임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거북이 달린다'는 할리우드 액션에 맞서는 우리 식의 대안처럼 보인다. 전 지구적인 배경 대신에 충청도의 한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엄청난 힘을 보유한 로봇들 대신에 탈주범에게 매번 깨지고 터지는 시골 형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영화는 바로 그 토속적인 선택들 때문에 오히려 할리우드 액션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폼생폼사 하는 도시의 형사들이 보여주었던 외형을 벗어내자, 그 안에는 때론 배꼽 잡게 웃기고 때론 눈물 나게 먹먹한 한 인간으로서의 형사의 모습이 고개를 들고, 그것은 불황 정서와 맞닥뜨리며 서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거북이 달린다'는 바로 이 작은 몸체의 느리기만 해보이는 거북이도 달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고, 그 달리는 것이 꽤나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이며, 때론 그 거북이 걸음이 토끼 걸음을 앞지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영화다. '트랜스포머'의 졸속 행사로 인해 우리가 보게 된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블록버스터의 실체를 목도한 현재, 거북이와 트랜스포머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해졌다. 거북이는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곧 트랜스포머도 경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순정만화 판타지, 피겨스케이팅, 승부의 세계

'트리플'이 기대되는 것은 이윤정 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이름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새롭게 들고 온 '트리플'에서도 '커피 프린스'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멋진 남성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온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겪는 달콤한 로맨스를 다루었다. '트리플' 역시 멋진 세 남자들, 즉 신활(이정재), 조혜윤(이선균), 장현태(윤계상)가 함께 사는 공간에 이하루(민효린)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커피 프린스 2호점'에 해당하는 판타지 공간 속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꿈을 키워나가는 이하루는 멋진 세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로맨스를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저 마다의 매력을 보여주는 세 남자와 또 등장할 젊은 미소년 지풍호(송중기)는 이 드라마의 멜로 구조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장선으로 보게 해준다.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남성들이 얼마나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인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트리플'은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을 뜻하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이 세 커플(신활-조혜윤-장현태와 이하루-최수인(이하나)-강상희(김희))의 로맨스를 뜻하기도 한다.

'트리플'의 두 번째 기대감은 커피라는 문화적 코드에서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좀 더 동적인 예술적 코드로 바뀌면서 좀 더 다이나믹해질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정아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적 문화적 감수성을 이야기의 향기로 피워낼 줄 아는 작가이며, 이윤정 PD는 마치 트렌디한 잡지를 구성하듯 경쾌하게 그 감수성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커피 자체가 드라마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아름다움과 힘이 절묘하게 예술적으로 엮어진 새로운 문화코드는 '트리플'에 어떤 아우라를 형성한다.

피겨 스케이팅은 운동과 예술의 접목이 그 정점에 서 있는 스포츠다. 거기에는 기예를 방불케 하는 기술이 있고, 파괴력이 넘치는 힘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힘과 기술을 예술로 만드는 음악과 율동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가 현재 각광을 받는 것은 물론 김연아 선수 같은 세계적 스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로마저 승화되어 있는 이 스포츠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미 '태능선수촌'으로 스포츠를 다룬 전적이 있는 이윤정 PD가 이 미적인 운동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도 이 드라마에 걸게 되는 기대의 하나다.

세 번째 기대감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트리플'만의 승부의 세계에 대한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경쟁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의 판타지를 마음껏 그려냈다면, '트리플'은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경쟁 속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성장 과정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된다. 남자 주인공들은 광고의 세계에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이하루(물론 코치역을 하게 되는 최수인을 포함하여)는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승부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가진 조금은 자폐적인 판타지(경쟁이 배제된 공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를 '트리플'이 좀 더 열려진 세계 속에서의 판타지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경쟁 관계 속에서의 판타지란 때론 진정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콩달콩한 로맨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현실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것. 이것이 '트리플'에서 느껴지는 세 번째 기대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기대감은 말 그대로 기대감일 뿐, 아직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가 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연출했던 판타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리플을 하기위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결국엔 해내는 이하루처럼, 과연 드라마도 이 세 가지 기대감을 동시에 넘는 트리플을 성공해낼 수 있을까.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사각거림처럼 그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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