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템보다는 캐릭터의 호감도가 더 큰 문제

지금 '일밤'이 처한 위기 상황은 한때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처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새로운 코너를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형식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좀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장수 버라이어티쇼가 왜 갑자기 이런 문제에 봉착한 걸까.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일밤'을 대표할만한 MC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밤'에는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김구라, 신정환, 이혁재가 '퀴즈 프린스'에 투입되었고,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에는 소녀시대, 유세윤, 조혜련, 김신영이, 또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황정음과 김용준 커플을 중심으로 신영일, 오영실, 김태현, 유채영이 포진해 있다.

'공포영화제작소'는 애초부터 소녀시대라는 아이콘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MC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결혼했어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퀴즈 프린스' 같은 코너는 말 그대로 MC들이 나서줘야 되는 코너다. 이 코너의 MC들은 물론 한 때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스타성이 예전 같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경규가 KBS '남자의 자격'으로 들어가면서 '일밤'은 대표 MC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착각하는 것이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어떤 성공을 가져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작금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리얼한 반응을 보여주고 이끌어내는 대표 MC가 없으면 성공은 요원해진다.

여기서 대표 MC의 중요성은 그 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매력도다. 신동엽이나 김용만, 이혁재, 신정환, 김구라 같은 MC들이 가진 능력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것이다. 능력으로만 따진다면야 '패밀리가 떴다'의 이천희나 박예진 같은 출연자는 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감도로 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특별한 형식보다 거기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일밤'의 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호감가는 인물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제작소'의 소녀시대는 어떨까. 이것은 거꾸로 코너 자체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깎아내는 경향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여전히 시청자들은 소녀시대를 보기 위해 이 코너에 눈길을 주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소녀시대 때문이지 이 코너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코너의 형식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깨는 데서 나온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대표 MC의 부재를 출연자들의 호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알렉스-신애, 서인영-크라운제이가 있던 초창기 커플들에서부터 최근 강인-이윤지, 태연-정형돈에 이르기까지 풋풋한 캐릭터들의 가상결혼이 주는 설정의 판타지는 그 자체로 강한 호감을 이끌어내 주었다. 하지만 판타지가 주는 한계는 곧 드러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꺼낸 카드가 황정음-김용준이라는 실제 커플이었다.

아마도 판타지의 한계를 뛰어넘고 리얼이 주는 화제성과 자극적인 부분들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 역시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상결혼의 커플이 리얼이냐 판타지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도 결국은 호감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황정음과 김용준이 실제 커플인 것은 맞지만 과거 네 커플이 해나가던 다채로운 결혼의 판타지 이야기를 대신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판타지라면 적절한 캐릭터 설정이라도 하겠지만 리얼을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약간의 설정조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에 처해버렸다. 반면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 오히려 해답은 보인다. 대본 공개와 함께 리얼 논란이 나왔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유는 리얼이냐 판타지냐에 상관없이 캐릭터들이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패밀리가 떴다' 역시 약간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래도 그 형태 자체를 깨지는 않았다.

'패밀리가 떴다'는 정체된 캐릭터를 매력적인 게스트의 힘으로 끌고 나갔다. 여러 사정으로 박예진과 이천희가 나가고(여기에는 물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박해진, 박시연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특유의 판타지적 설정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새 멤버들 속에서도 어떤 매력을 끄집어낼 공산이 크다. 그만큼 형식 자체가 인물들의 호감을 끌어내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이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이다.

작금의 '일밤'이 처한 위기에는 물론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나 기획을 하지 못한 문제가 크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그걸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캐릭터의 부재 혹은 캐릭터들의 떨어진 호감도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일밤'의 꼬여버린 위기 상황은 바로 이 캐릭터의 문제에서부터 풀어나가야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0분 다큐', 일일 다큐 시대를 열다

다큐멘터리를 음식으로 치면 어떤 것에 가까울까. 무언가 판타지를 제공하는 눈이 즐거운 화려한 색감의 음식이나, 톡 쏘는 향신료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어딘지 밋밋해도 재료 맛에 정직한 음식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30분 다큐'는 그 맛에 가장 근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지나친 자극도 없고 지나친 눈요깃거리도 없다. 하지만 이 지나치게 담담하게 우리 생활 주변을 낮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30분 다큐'를 쳐다보고 있으면 바로 거기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를 장식한 아이템은 '배PD가 108배를 하게 된 까닭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코너는 제목처럼 배용화 PD가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108배가 좋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 효과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직접 프로그램의 관찰자이자 주인공 역할을 한다는 점은 그만큼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쉽게 만든다. PD의 관심사와 궁금증이 고스란히 시청자의 그것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108배의 운동효과가 궁금하다고 해서 전문 무술인이나 한의사를 찾아가 소견을 묻고, 심지어 108배가 숙취해소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하지는 않는다. 즉 처음 시작은 일반인과 같은 눈높이에서 관심사항을 만들었지만 차츰 그 관심은 PD로서의 좀 더 전문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되어 간다. 이 서민적인 눈높이에서 전문가의 눈높이까지 이행하는 친절한 전개는 '30분 다큐'가 가진 미덕이다. 이 코너 이외에도 '30분 다큐'에는 방송에 나간 맛집을 찾아가는 PD, 고래를 보기 위해 바다로 떠나는 PD, 시내버스로만 전국을 여행해보는 PD 같은 안내자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형식은 어찌 보면 느슨한 느낌마저 준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일반인들이 찍는 UCC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흔히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어딘지 엄밀함이나 진지함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것은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주로 대작들이기 때문이다. '북극의 눈물'이나 '누들로드', 혹은 '한반도의 공룡' 같은 것들. 아니면 자연 다큐멘터리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연상되는 그림들. 그것도 아니면 역사 다큐 같은 철저한 고증을 전제로 하는 엄격한 잣대들. 우리에게 그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이상할 정도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만을 다큐멘터리의 본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지금 시대를 포착해주는 한 단면을 거기서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훌륭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단면이 학문적인 영역이 아닌 생활의 영역 속에서라면 그 기록은 박제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함까지 가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30분 다큐'가 가진 일상의 기록으로서의 다큐가 가진 가능성은 그저 만만히 볼 성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30분 다큐'는 그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다큐의 특성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1시간이라면 어딘지 부담이 되는 그 다큐의 시간은 30분으로 줄어들면서(실제 영상의 시간은 25분 정도가 된다) 어깨에 힘을 빼게 된다. 일상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한 편의 다큐가 될 수 있는 이 축소된 시간은 따라서 바로 그 일상을 잘 포착할 수 있는 형식이 된다. 게다가 이 여유(?)는 엉뚱한 시선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될 때 모든 카메라의 시선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가 있었지만, '30분 다큐'는 엉뚱하게도 그 대통령을 좇는 카메라들의 취재경쟁에 가 있었다.

'30분 다큐'는 그 짧은 시간제약을 통해 일상에 천착하게 함으로써 일일 다큐멘터리 시대를 열었다. 물론 '인간극장' 같은 일일 다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0분 다큐'가 갖는 시사성 있는 소재의 다양성이 갖게 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그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번뜩이게 만드는 상상력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일 다큐멘터리로서의 묘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0분 다큐'라는 거품을 뺀 다큐의 맛이 거창하지 않아도 입에 물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효주, '찬란한 유산'에서 빛을 발하는 이유

'찬란한 유산'에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공존한다. 그 하나는 철부지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착한 환(이승기)의 가족 속에서 은성(한효주)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빛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뒤로는 엄청난 비밀과 죄로 얼룩져 있는 승미(문채원)네 가족으로 인해 숨겨진 진실이 은성을 고통 속으로 빠뜨리는 어둠의 세계다.

이 두 세계의 교차는 이 드라마를 승승장구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빛의 세계가 긍정의 힘으로 대중들의 공감을 서서히 끌어올린다면, 어둠의 세계는 이 조금은 밋밋해질 수 있는 극에 계속해서 자극을 준다. 드라마가 일일드라마와 미니시리즈가 적절히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은성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하려는 장숙자(반효정)여사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일일 가족드라마의 속성을 가지지만, 은성에게 살아있는 아버지와 버려진 동생의 진실을 숨기려는 계모 백성희(김미숙)의 이야기는 미니시리즈를 속성을 가진다.

은성의 밝은 생활이 묻어나는 일일드라마 같은 편안한 느낌에 젖어 있다가, 갑자기 죽었다 믿었던 아버지가 백성희의 집을 찾아 얼굴을 들이미는 장면에서는 스릴러적인 긴박감이 넘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연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두 가지 세계에 걸쳐 있다. 즉 한 쪽에서는 웃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울어야 하며, 때론 그 두 감정이 한 상황 속에서 보여지기도 해야 한다.

한효주의 연기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 두 세계의 교차점에 그녀가 연기하는 은성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은성은 밝고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면서도 그 속에는 깊은 아픔을 품고 있어야 한다. 동그랗게 뜬 눈은 명랑함을 연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드러난 진실로 인한 충격을 표현해야 하고, 아련한 눈빛은 어떤 고마움과 사랑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숨겨왔지만 내면에 자리한 깊은 슬픔을 담아내야 한다.

이제 스물 두 살의 연기자, 한효주가 연기하는 은성이 가진 감정의 스펙트럼은 이처럼 넓다. 하지만 이 복합적인 스펙트럼을 가진 '찬란한 유산'이 어쩌면 한효주에게는 '제 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윤석호 PD의 계절 연작 마지막 편인 '봄의 왈츠'를 통해 얼굴을 알렸지만 그 작품 속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그다지 살아나지 않았다. '봄의 왈츠'의 박은영은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처럼 역시 내면에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가진 생활력 강한 여성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윤재하(서도영)에 이끌리는 면이 많았다.

한편 '일지매'에서의 은채는 캐릭터가 너무 단선적이었다. 한효주가 가진 또 한 면인 내면적 아픔은 이 드라마에서는 드러나지 않았고 오로지 쾌활하고 밝은 모습만 비춰졌다. 오히려 그녀의 연기를 담아내주었던 것은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였다. '여자 정혜'와 '러브토크'로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를 포착해내기로 유명한 이윤기 감독의 이 영화에서 한효주는 그 슬픔과 쾌활이 뒤섞인 아련한 눈빛을 선보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요구하는 '찬란한 유산'은 그러나 한효주에게는 자기 옷 같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장숙자 여사 앞에서는 일일드라마가 보여주는 며느리감의 면모를 보여주고, 철부지 환이 앞에서는 그 마음을 뒤흔드는 멜로의 여성상을 그려낸다. 악녀인 계모 백성희 앞에서는 복수를 외치는 분노의 얼굴을 끄집어냈다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준세(배수빈) 앞에서는 싱그러운 미소를 피워낸다. '찬란한 유산'은 나이는 젊지만 연기는 이미 물이 오른 한효주라는 배우를 발견해냈다.

 '다큐 3일', 'MBC스페셜'이 담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주 행복합니다." 그 3일이 어쩌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행복하시냐고 묻는 PD의 질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5월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에서 그는 여전히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 행복한 웃음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영상물이 역사가 되는 시대,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가 평소 꿈꾸었던 평범한 촌부가 되어 살겠다던 한 대통령의 3일을 기록한 ‘다큐 3일’. 이 평범한 일상이 청와대에서 집무를 보던 시절보다 더 진짜 역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늘 서민들의 눈높이에서 털털하게 웃고 있던 그 모습 때문일 것이다.

"손 흔들면 같이 손 흔들어주고 그러시더라구요." 마을로 가는 버스기사의 한 마디나, “산책하시다가 오셔서 장사 잘 돼요? 라고 불쑥 물어 깜짝 놀랐다”는 가게 아주머니, 동네 주민들과 형 동생 하며 지내는 그 모습은 ‘다큐 3일’이 잡아낸 그의 진정성이었다. 얼굴 한 번 보려고 손 한 번 잡으려고, 한 번 안아보려고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 앞에 왜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나와 인사를 하냐고 묻자, 그는 “손님이잖아요. 손님이 왔는데 안 내다 본다는 게... 백수잖아요. 그거라도 해야지”하고 말했다.

이 말은 ‘MBC스페셜’에서 2부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말을 조명했던 ‘대한민국 대통령’편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그는 청와대 나가면 맨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여행이라며,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데 못가는 것이 못내 답답했던 것. “5년 내내 격리돼서 살았는데. 나가서도 여전히 격리될 것 같은 불안감 이런 게 있죠. 여러 사람이 구경하고 악수 청하고 그러면 그게 격리죠. 사람들 속의 격리.” 이렇게 말했던 그는 ‘다큐 3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MBC스페셜’과 ‘다큐 3일’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그 두 영상 속에 담겨진 이질적인 세계와 그 다른 세계 속에서도 늘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때문이다. ‘MBC스페셜’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모습은 ‘다큐 3일’의 촌부의 모습과, 화려한 청와대는 작고 아담한 봉하마을과, 끝없이 관리되던 음식들은 김치 한 조각에 마시는 막걸리 한 잔과, 펑크가 나도 시속 백 킬로로 달린다던 전용차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전거와 끝없이 대비되며 어떤 울림을 만든다.

대비되는 건 그런 외적인 배경뿐만이 아니다. 한 때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으나 봉하마을로 내려와 동네 주민이 다 되어버린 비서관, 양복을 벗어던지고 구두대신 등산화를 챙겨 신은 게 오히려 편하다던 자칭 머슴 전직 청와대 행정관, 문구 하나를 고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던 그 손에 이제는 삽을 들고 있는 전직 홍보 수석실 대변인. 그들은 두 다큐멘터리 속에서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자신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관된 그 모습들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민을 향한 마음이 정책으로서나 생활로서나 다 한 가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MBC스페셜’에서 대통령 집무실 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희망돼지 저금통은 청와대와 봉하마을 만큼의 거리를 이어주는 힘이었다.

다큐로 남은 대통령. 그는 여전히 그 특유의 서민적인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좀체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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