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신이 떴다2', 오디션이라기보다는 무대 설 기회의 장

 

"정말 잘하는 친구야." SBS <트롯신이 떴다2-라스트 찬스(이하 트롯신이 떴다2)>에서는 무대에 참가자가 오르기 전 이런 트롯신들의 멘트가 여지없이 들어간다. 그런 멘트를 굳이 그 순간에 집어넣는 이유는 이어질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 또 여지없이 붙는 영상이 첫 소절에 깜짝 놀라는 트롯신들의 반응이다. 목소리가 너무 좋다. 표현이 좋다. 비슷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목소리를 가진 건 가수로서는 무기다 등등 트롯신들의 칭찬이 쏟아진다.

 

눈물도 빠지지 않는다. 참가자들 중 첫 회에 가장 주목받았던 박군이 '가지 마'를 불렀을 때 그가 들었던 팀을 맡았던 장윤정은 그가 아픈 홀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특전사에 들어갔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군을 나와 트로트가수로 전향한 사연을 전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감회를 가진 진성은 눈물을 흘리며 박군의 노래를 칭찬했다.

 

작곡가 김정호의 아들인 김태욱은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인정을 랜선 심사위원들이 93%라는 최고수치로 대신 해준 것에 대해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16년 동안 트로트가수로 활동했지만 아이들 앞에 가수라고 이야기하지 못할 정도로 무명으로 살았다는 정일송 역시 랜선 심사위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눈물을 흘렸다.

 

랜선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트롯신이 떴다2>는 오디션이라기보다는 지금껏 활동을 해왔지만 알려지지 않은 무명 트로트가수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물론 겉으로 보면 심사위원처럼 보이는 트롯신들이 여섯 명이나 앉아있고 노래가 끝나고 나면 거기에 대한 저마다의 감상평을 더해주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랜선으로 연결된 심사위원들(사실상 관객)의 투표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오디션의 형태를 분명히 갖고 있다.

 

하지만 트롯신들은 심사를 하기 보다는 여기 나온 가수들을 응원하고 있고, 랜선 심사위원들도 정교한 평가를 한다기보다는 그 무대에 마음이 얼마나 움직였고 그래서 그 참가자의 다음 무대가 보고 싶으면 버튼을 눌러주는 또 다른 형태의 응원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노래 실력에 버튼을 누르는 경우도 많지만, 참가자의 남다른 사연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냉정한 심사나 작은 실력 차이에 의해 갈라지는 당락 같은 오디션의 긴장감은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김연자의 팀 참가자들에서 한여름과 배아현 같은 이제 겨우 25살이지만 남다른 실력을 가진 이들이나, 최예진, 김태욱, 정일송까지 모두 랜선 심사위원들의 80% 이상의 선택을 받아 룰대로 김연자가 한 사람을 탈락시켜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도 생각보다 긴장감이 높지는 않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당연히 와일드카드가 나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정일송이 탈락자로 지목되긴 했지만 김연자가 내놓은 와일드카드로 팀 전원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됐다. 이 지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트롯신이 떴다2>는 누군가를 탈락시키고 누군가를 우승자로 뽑느냐에 집중하기보다는 기회가 없던 무대에 오른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무게가 더해진 노래를 듣는 순간에 더 집중하고 있다.

 

트롯신들의 평가가 칭찬일색인 이유는 그 무명가수들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식은 오디션이지만 내용은 이들이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물론 누군가는 오르고 누군가는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한 번이라도 선 무대가 남기는 강한 여운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작지 않은 위로와 도움이 되지 않을까.

 

TV조선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등 트로트 오디션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거기서 발굴된 트로트 가수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열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도록 무명으로 활동해온 트로트 가수들은 더더욱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졌다. 이들에게는 현실 그 자체가 오디션인 셈이다. <트롯신이 떴다2>의 칭찬 일색 무대가 다소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는 건 그래서일 게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눈물 흘리는 저들을 응원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건.(사진:SBS)

가진 게 없다고 꿈도? '브람스'가 멜로에 담은 진짜 메시지

 

"저 언니 계속 꼴찌래. 서령대에서 바이올린 한다고 다 바이올리니스트인가?" 같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하지만 유명 변호사 딸 조수안(박시은)은 채송아(박은빈)를 그렇게 낮게 바라보며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내놓는다. 구두를 가져오지 않아 채송아가 자신의 구두를 빌려주고 슬리퍼를 신고 무대 뒤에서 서 있는 동안, 조수안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 장면은 가진 것과 꿈 사이에 놓인 엄청난 현실적 격차를 그 자체로 보여준다.

 

뒤늦게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갖게 되어 다니던 경영대를 포기하고 4수 끝에 음대에 들어온 채송아(박은빈)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아해서"라는 것. 너무 좋아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라는 채송아는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그래서 평생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그의 절친이자 바이올린 스승(?)이었던 윤동윤(이유진)은 자신이 바이올린을 접고 악기를 만드는 쪽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 더 이상 연주가 설레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에 들어간 '브람스'라는 단어에 담긴 것처럼 서로 엇갈린 남녀들이 겪는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그 멜로 속에 담겨진 또 하나의 메시지는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다. 채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한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설레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가 좋아해 더 나아지려 노력하려는 바이올린 연주를 평가하고 때론 모욕적인 말로 그 꿈이 현실성이 없다고 짓밟는다. 그는 가난해 가진 것도 없고 재능이 특별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도 가난해야할까.

 

학생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박준영(김민재)은 안타깝게도 음악은 재능이 중요하지만 꿈을 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에서 채송아는 그것이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인 양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 중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는 박준영의 말에 채송아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말한다. 좋아하고 노력해도 재능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 재능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박준영이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고 말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재단의 후원을 받아 왔지만, 그것은 그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처지 때문에 또 사업에 보증을 잘못 서 끝없이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 때문에 그는 하고 싶어서 연주를 한 게 아니었다. 후원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연주를 했던 거였다. 그는 재능은 있지만 좋아서 연주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재단을 찾아와 자신의 아이가 오디션에 왜 떨어졌느냐고 따지는 지원 엄마가 그 날 그 현장에 있었던 채송아에게 자신의 아이의 연주가 어땠냐고 묻자 채송아는 이렇게 말해준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원이는요.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어머니. 지금 오디션에서 붙느냐 떨어지느냐는 지원이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콩쿨과 오디션 중요하죠. 그렇지만 저는 지원이가 등수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지원이를 묵묵히 믿고 지켜봐주신다면 반드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채송아는 "그렇게 재능이 있고 잘하는 걸 좋아하지 못하게 되면 안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채송아는 알고 있다. 바이올린을 하는 데 있어 재능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재능이 있어도 '좋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힘겨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박준영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디션, 합격, 성적 같은 것들로 누군가의 삶을 무례하게 재단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좋은 것을 하고 싶어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걸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어디 꿈에 있어서만 그러할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세상은 그가 가진 것들로 재단한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저 혼자 포기하려던 채송아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된 박준영에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각별히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어쩌다 우리는 꿈도 사랑도 가진 것에 의해 재단되는 세상에 살게 된 걸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래서 단순한 청춘 멜로로만 볼 드라마는 아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꿈과 사랑을 제 멋대로 가로막고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잔잔한 클래식 선율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울컥 눈물이 터지게 되는 건 그 음악 언저리에 어른거리는 냉정한 세상에 이토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신산한 삶이 느껴져서다.(사진:SBS)

습관, 일방적 메시지, 악플.. 이젠 SNS의 일상이 된 풍경들

 

'이제 인스타그램을 그만하려고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구요(물론 아주 영향이 없진 않지만) 활동이 많이 없어 늘 소식 목말라하는 팬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공간인데 이거 은근히 신경도 많이 쓰이고 쉽지 않네요. 우리 팬들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 생각해볼게요.'

 

가수 이효리가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기고 계정을 결국 삭제했다는 소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SNS에 올라간 사진만으로도 늘 화제가 되곤 했던 이효리였다. 과거 결혼해 제주도에 내려가 살게 되면서 이효리의 근황을 전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던 게 바로 SNS였으니 그걸 삭제한다는 의미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최근 MBC 예능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를 시작하면서 그 부캐 이름을 정하다 우연찮게 나오게 된 '마오'라는 이름 때문에 쏟아졌던 '악플 테러'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이효리 스스로가 밝혔다.

 

실제 이유는 이효리가 카카오TV에서 하고 있는 <페이스아이디>라는 웹예능을 통해서 드러났다. 요가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하고 그 중 괜찮은 사진을 골라내며, 차를 한 잔 마시면서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 위해 발가락으로 찍는 이효리의 모습은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SNS에 목매여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화보를 찍으러 가서도 사진을 찍어 올리고, 화장을 고치면서도 연실 SNS를 확인하던 이효리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겠다고 마음먹은 진짜 이유로 너무 습관적으로 하루 1-2시간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건 고양이 순이였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 순이를 깨닫게 된 순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 SNS에 집중하다 정작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을 도외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이유로 이효리는 "돈 빌려달라는 부탁"이 DM으로 너무 많이 온다는 사실을 들었다. 사실 다 해줄 수도 없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라 무시하면 되지만 이효리는 쉽게 지나치지 못하곤 했다는 거였다. SNS의 손쉬운 연결이 소통을 쉽게 해주긴 하지만, 그래서 생겨나는 잘 모르는 이들의 일방적인 메시지가 주는 부담감은 이제 SNS를 하는 누구나 느끼는 일이 아닐까.

 

악플이 주원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 역시 원인의 하나일 수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았다. 연예인으로서 감당해야할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이것 역시 SNS 같은 다소 사적인 공간이 때때로 공적인 공간처럼 변모해 악플로 도배되기도 하는 디지털 현실을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페이스아이디>를 통해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겠지만 이효리가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는 과정을 담아낸 건 그래서 의외로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면들이 있었다. 너무 빠져들어 실제 일상의 소중한 시간들을 빼앗기고, 연결되어 있는 통로로 일방적인 메시지들이 날아와 부담을 주며, 때론 악플로 상처를 입는 현실. SNS 시대에 이제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이 거기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사진:카카오TV)

'청춘기록' 불공평한 세상, 박보검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요즘은 부모가 자식한테 온 평생이야."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원해효(변우석)의 엄마 김이영(신애라)은 사혜준(박보검)의 엄마 한애숙(하희라)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들들은 친구지만, 한애숙은 김이영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처지다. 입던 옷을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김이영이 내주면 한애숙은 속도 좋게 잘도 받아 집으로 가져온다. 사실 자신의 사는 모양이 김이영과 비교되는 건 그러려니 하는 한애숙이다. 하지만 자식의 인생을 비교하고 나서자 한애숙도 참기가 어렵다.

 

"그런 세상은 죽은 세상이죠. 부모가 온전히 커버해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렇게 대거리를 하지만 속으로는 그게 현실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자식이 자신처럼 살 거라는 말에 발끈하고는 있지만. 한애숙은 아들에게 친구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아들이 그 일로 기죽어 산다면 자신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혜준 역시 어찌 고민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착한 아들은 엄마에게 엄마 인생이니 엄마 마음대로 하라며 이렇게 말해준다. "생각해보니까 엄마 인생하고 내 인생하고 다른 데 내가 왜 엄마 인생 선택해줘야 돼? 내 인생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부모의 인생과 자식의 인생은 다른 것이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맞장구 쳐줬던 한애숙이지만 그건 과연 사실이었을까. 세월이 흐르고 한애숙은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며 혼잣말로 넋두리를 한다. "거짓말. 어떻게 부모가 자식한테 사기를 치냐? 어떻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형편은 나아지지도 않니? 우리 아버지가 부자였음 내가 이렇게 까진 안됐어... 나쁜 년. 엄마 아버지 원망하는 거야?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은데.. 살아있음 내가 진짜 잘해줄 건데. 아휴 진짜 주책이다. 왜 혼잣말을 해. 왜 살수록 엄마를 닮아가냐."

 

<청춘기록>의 현실인식은 냉정하다.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섣부른 판타지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사혜준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 그는 친구 원해효의 진심어린 배려를 고마워하지만 그가 성취하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가 가진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남동에 산다고 하면 그저 다 잘 사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은 그 곳에 살아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친구 도움으로 화보 동반 촬영에 나서고, 엄마는 그 친구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의 매니저가 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이민재(신동미)는 영화 캐스팅에서 원해효가 되고 사혜준이 떨어진 게 실력 때문이 아니라 인지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모든 걸 잠시 포기하고 군대에 가겠다는 사혜준을 만류한다. 행복이 별거냐며 오늘이 즐거우면 된다 말하는 사혜준에게 이민재는 뼈 때리는 충고를 던진다.

 

"갖고 태어난 거 없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돼. 나아지지 않아. 보통 그걸 서른이 넘어서 깨달아. 20대는 꿈꿀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환상도 갖거든? 똑똑한 애들은 20대에도 깨달아. 이룰 수 없는 꿈보단 돈을 벌자. 근데 넌 그 꿈에서 아직도 못 헤어 나오고 있어. 왜 니 인생의 기준이 최세훈 감독이야? 아 그 감독님 훌륭해. 그치만 그 감독님도 틀려. 네가 맞을 수 있어. 남은 시간 1초까지 다 쓰고 수건 던져."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이 드라마는 냉정하게 알려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보다 절박하게 남은 1초까지 다 써야 겨우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현실. 이런 현실 앞에 놓여 있어서인지 사혜준과 안정하(박소담)가 만나 서로에게 건네는 자그마한 호의나 위로는 그 무게감이 달라진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우산을 사가지고 온 사혜준은 그 우산을 안정하에게 가져가라며 자기 동네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안정하는 같은 서울인데도 어디는 비가 오고 어디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한다. 그건 마치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는 곳에 따라서도 비를 맞는 청춘들과 그렇지 않은 청춘들이 나눠지는 현실. 안정하는 홀로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같이 쓰고 연인들이 떠나간 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사혜준이 건네준 우산은 안정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헤어져 혼자 집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느껴진다.

 

<청춘기록>이 담고 있는 건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청춘들 앞에 놓인 냉정한 현실이다. 그들은 꿈을 꾸지만 그것은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보다 현실적인 삶을 살라고 하고 심지어 막장드라마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식의 꿈을 가로막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기에 자식이 상처받는 게 싫어서다.

 

과연 이 냉정한 현실 속에서 사혜준과 안정하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갈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시작부터 불공평한 출발선에 서 있는 이들이 그걸 해내길 응원하게 된다.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한 바탕 그 현실을 뒤집어 놓기를 바라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며 버텨내기를 바라게 된다.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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