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의 충격·분노, 김희애가 첫 회만에 만들어낸 몰입감

 

역시 김희애다. 그의 섬세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첫 회부터 이런 다양한 감정의 파고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JTBC 새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첫 회부터 파격적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만 보였던 지선우(김희애)의 세계는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불륜으로 인해 조금씩 흔들리다 금이 가더니 결국 무너져 내렸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무너지는 그를 부축해줄 이들조차 모두 그 배신의 공모자들이라는 걸 그가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완벽해 보였던 부부의 세계에 생겨난 균열은 아주 작은 틈새로부터 시작했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온 립글로즈는 어딘지 남자들이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아침에 출근할 때 남편이 매어준 그의 목도리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근처로 이사 왔다는 남편의 후배는 자신도 모르게 1년 전부터 남편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고, 매일 5시면 퇴근한다는 이야기로 지선우의 의심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일찍 귀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우는 태우의 뒤를 밟고 다행스럽게도 남편이 시어머니가 있는 요양병원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지만, 간호사와의 대화 속에서 거의 매일 병원을 왔었다는 남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 드러난다. 선우는 자신의 환자로 우연히 알게 된 민현서(심은우)에게 남편 뒤를 미행해달라고 제안하고 결국 남편의 불륜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다.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가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민현서의 조언을 듣고 남편의 차 트렁크를 살피던 중 거기서 나온 가방에 든 스마트폰을 통해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남편의 불륜상대는 자신의 환자로 친해진 엄효정(김선경)의 딸 여다경(한소희)이었고, 그 사실을 남편의 동창인 손제혁(김영민)과 그 아내 고예림(박선영)은 물론이고 그의 절친인 같은 병원 동료 설명숙(채국희) 또한 알고 심지어 은폐를 돕고 있었던 것.

 

완벽해 보인 선우의 세계가 깨져나가는 그 과정이 단 한 회 만에 폭풍 전개되며 보여졌지만 시청자들이 별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 빠져든 건 섬세한 심리 묘사 덕분이다. 시작부터 정돈된 집안에 빗물에 젖은 채 발자국을 남기며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이태오의 모습은 그 캐릭터가 앞으로 이 집안에 일으킬 파국을 예감하게 만들었다. 그 정돈된 집은 거의 결벽증에 가깝게 깔끔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선우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고, 그 집을 어지럽히는 이태오는 그와 상반된 캐릭터를 말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부딪치는 대목은 저녁에 선우가 준비한 갈비찜을 그냥 손으로 꺼내 국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지저분하게 뜯는 이태오와 그걸 애써 닦아내는 선우의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이런 자잘한 일상의 부딪침은 향후 이 불안한 부부의 갈등을 예고한다. 특히 첫 회에 불안함과 궁금증으로 신경과민 상태를 보여주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지는 그 감정의 파고를 시청자들도 온전히 느끼게 된 건 김희애의 섬세한 연기 덕분이다.

 

벌써부터 처절한 응징과 복수가 이어져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가 그렇게 단순한 분노와 복수로 끝날 수는 없을 게다. 그것은 원수지간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가족으로 꾸려진 부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물론이고 거기에 동조한 친구들까지 선우의 복수가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가 궁금하지만, 그것이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도 궁금한 이유다. 그리고 이런 파격을 통해 이 드라마가 들여다보려는 부부의 세계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도.(사진:JTBC)

‘맛남의 광장’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음의 거리 좁히기

 

코로나19로 방송가가 모두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SBS <맛남의 광장> 같은 프로그램이 받는 영향을 더더욱 커 보인다. 그 영향은 이 프로그램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제목에 담긴 ‘만남’, ‘광장’ 같은 의미들은 소외된 농가들을 돕겠다는 좋은 취지를 담은 것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프로그램이 애초의 연출방식을 추구할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진도편을 보면 안타깝게도 파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로 농민들의 어려움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파 가격이 폭락한 데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경기까지 좋지 않은 상황. 그래서 이런 시기에 오히려 <맛남의 광장> 같은 프로그램이 더더욱 필요하다는 게 느껴졌다.

 

<맛남의 광장>은 휴게소 같은 광장에서 일반 손님들을 통해 보여주던 먹방 대신 지역 농어민분들을 초대해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요리들을 선보이는 조촐한 ‘시식회’로 연출 방향을 틀었다. 그것은 시식회의 성격도 있지만, 고생하시는 지역 농어민분들을 위한 한끼 대접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반 손님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고, 휴게소 같은 광장에서 북적대며 백종원과 출연자들이 고안해낸 신 메뉴를 먹어보고 보여주는 리액션은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중요한 재미요소 중 하나였을 게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면서 오히려 더 집중되는 건 신 메뉴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대파 소비를 늘리기 위해 아낌없이 대파를 써서 만든 음식들은 백종원 특유의 레시피가 그러하듯이 집에서 해먹고 싶을 만큼 손쉬우면서도 맛있어 보였다. 특히 파 한 단을 거의 다 넣고 끓여낸 파개장은 고추양념을 따로 만들어 놓아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 맑은 국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기가 들어가긴 하지만 고기보다 파가 주가 되는 파개장이었다. 그 파개장에 출연자들은 ‘진도 대파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게스트로 출연한 송가인이 즉석에서 쓱쓱 비벼 만들어낸 봄동 겉절이는 대파국과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반찬이 됐고, 파를 얹어 구워낸 대파 파이 파스츄리가 애피타이저로 그리고 양세형이 개발한 파를 얹은 파게트 빵이 후식으로 갖춰지면서 시식회는 제대로 된 코스 정찬이 될 수 있었다.

 

<맛남의 광장>은 아마도 앞으로 한 동안 애초 기획했던 휴게소 같은 광장에서의 대규모 인파들과의 만남은 피할 수밖에 없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농어민들을 위한 방송을 통한 ‘만남’은 더더욱 가치가 있어질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만남은 어렵겠지만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농가의 식재료들을 이용한 신 메뉴를 방송을 통해 보급하는 일은 요즘처럼 집밥 요리가 늘 수밖에 없는 시국에는 더 유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슬의생’, 조정석과 정경호 같은 슬기로운 의사들이 있어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그래요. 이 분 아들이 다섯 살인데 이름은 원준이고, 오늘 어린이날이라 아빠랑 짜장면 먹기로 했거든요... 근데 원준이 앞으로 평생 못하게 됐어요 그거. 우리 딱 10분만 기다려요. 10분만 있다가 시작해요. 애가 매년 어린이날마다 돌아가신 아빠 때문에 울면서 보낼 수는 없잖아요.”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익준(조정석)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뇌사한 장기기증자의 수술을 10분만 있다가 하자고 말한다. 전날 퇴원한 환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이 마침 어린이날이었고 10분만 지나면 5월 6일이었다. 그래서 10분을 기다리자고 한 건 어린이날을 원준이에게 기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익준의 배려였다.

 

사실 보통의 경우 10분은 그리 대단한 시간이 아닐 수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도 안되는 그런 시간이 아닌가.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 소소한 10분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가를 익준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아마도 이건 이 드라마가 포착하고 있는 새로운 지점일 게다.

 

물론 병원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극적인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는 거대한 극적 사건들을 그리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에 한 걸음 다가가 누군가에는 자잘해 보일 수 있는 일들이 가진 의외로 큰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이런 사례는 의사들에게나 환자들에게나 까칠하기 그지없는 준완(정경호)의 이야기에서도 등장한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 때문에 일주일만 수술을 미뤄달라는 아버지에게 냉정하게 안된다고 선을 긋고 심지어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준완. 그건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후배 의사들이나 환자가족들에게 모두 매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매정함이란 의사로서의 본분일 뿐, 그는 따뜻한 배려가 넘치는 진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재학(정문성)에게 양복을 빌려 입고 아무도 모르게 그 환자의 결혼식을 찾아가 나름의 축하를 해줬던 것. 이 드라마는 준완을 그려내는 것처럼 겉보기에 냉정해보여도 사람은 저마다 따뜻한 내면을 갖고 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심장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기의 젊은 부부가 너무나 쿨하고 세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재학이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자, 준완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재학을 나무라는 대목이 그렇다. 결국 아기 엄마는 준완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부러 센 척했다고 토로했고, 준완은 아기 엄마에게 평소와 달리 “수술이 잘 될 것”이라며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건 거대한 사건들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병원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자잘한 사건들 속에서 여기 등장하는 의사들이 어떤 ‘슬기로운’ 선택을 하고 있느냐에 집중한다. 그저 까불이처럼 보였던 익준의 ‘10분’이나, 매정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던 준완의 ‘배려’, 후배들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소 혹독하게 질문 세례를 하는 송화(전미도)의 진심이나 병원의 후계자 자리 대신 VIP 병동의 수익을 통해 남모르는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하는 정원(유연석)의 마음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흉부외과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가 누군 줄 아냐고 묻는 재학에게 이제 새내기들은 “지성(드라마 <뉴하트>에 나오는)”과 “낭만닥터 김사부”를 말한다. 그러자 재학은 말한다. “그런 훌륭한 의사들은 이 병원에는 없어” 그리고 이 대사는 이우정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그리려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해준다. 소박하고 소소해보이지만 슬기로운 의사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그 일련의 소박해도 슬기로운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나름의 행복감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시청자들이 매료되는 이유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이유가 그런 ‘슬기로운 이들’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코로나19 같은 거대한 재난 속에서도 우리가 이를 이겨내고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건 그런 분들이 있기 때문일 테니.(사진:tvN)

‘그 남자의 기억법’, 이렇게 진중한데 발랄한 드라마가 가능하다니

 

“하진씨 좋은 사람이에요.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에요” 까칠하게 굴던 이정훈(김동욱)이 하는 그 말에 여하진(문가영)은 고마워하면서도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을 받는다. 마치 마지막으로 볼 사람처럼 얘기한다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은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정훈은 하진에게 선을 긋는다. “앞으로 이렇게 연락하고 만나는 일 다신 없었으면 좋겠어요.”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에서 정훈의 이런 말은 그 부분만 떼어놓고 들으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좋은 사람이라며 행복을 빈다더니 다신 만나지 말자니. 하지만 정훈이 처한 앞뒤 사정을 놓고 보면 그 말이 너무나 공감된다. 그것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결코 지워내지 못하는 첫사랑 서연(이주빈)과 하진이 둘도 없던 절친 사이였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서연이 죽은 후 하진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깨어난 하진은 서연을 기억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뇌가 그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하진의 주치의인 태은(윤종훈)에게서 들은 정훈은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하진이 겪을 고통을 알게 되었다.

 

그 고통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정훈으로서는 하진의 상황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안 됐고. 어떤 기분인지 상상도 안 가. 소중한 기억을 잊고 살아야 한다는 거. 어느 쪽이 더 가여운 걸까? 영원히 잊지 못하는 내가, 아니면 살기 위해 잊어야 했던 여하진씨가.”

 

그가 하진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한 건, 서연의 죽음을 그토록 아프게 겪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듯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선 긋기는 다른 말로 하면 하진이 다시 그 아픈 기억 속으로 들여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정훈의 말에 우리가 깊게 공감하게 되는 건, 갑작스레 떠나버린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자신이 겪은 고통과 그것을 똑같이 겪었을 하진에 대한 배려가 그 속에서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건 사실은 그걸 겪어본 이들만이 공유하는 어떤 것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만큼 우리 시대에 화두가 있을까. 그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남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인 것처럼 아파하지 않았던가. <그 남자의 기억법>은 그런 고통 앞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정훈과 하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아파도 잊지 않고 기억한 채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너무 아파서 기억을 봉인해버리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물론 너무나 큰 고통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영원히 잊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삶이나, 그렇다고 아예 회피하듯 지워버린 채 살아가는 삶 모두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게다. 여기서 이 드라마는 이 양자가 서로를 들여다보며 고통을 함께 껴안아가는 과정을 통해 어떤 해법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정훈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무거운 짐을 등에 이고 살아가는 캐릭터라면, 하진은 기억을 지워버려 너무나 가볍게 살아가는 캐릭터다. 이 무거움과 가벼움의 균형은 드라마가 너무 침잠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날아가지도 않는 중심 추를 잡아주는 이유가 된다. 기억이나 상처 같은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어딘지 상큼발랄한 경쾌함을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어쩌면 이 무거움과 가벼움의 적절한 조화에 이들이 처한 문제의 해법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건 결국 두 사람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그 과정을 통해 그려질 것이지만.(사진:M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