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게 더 많았던 ‘윤식당2’, 우리도 이들처럼 살려면

저들의 아름답고 여유 넘치는 삶을 바라보다 보면 자꾸만 우리네 삶이 눈에 밟힌다. 우리는 어째서 저들처럼 살지 못할까. tvN 예능 <윤식당2>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는 건 바로 이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만 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볼 뽀뽀를 나누는 모습에서는 이들이 남이 아니라 마치 가족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서로 잘 알고 있는 이웃이라서가 아니다. 그건 타인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달라서다. ‘윤식당’이라는 음식점이나 거기서 일하는 출연자들은 모두 그들에게는 완전한 타인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식당’을 찾아온 그들에게서 배타적인 시선은 거의 느낄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반가운 얼굴들이고, 타국의 새로운 음식을 맛본다는 것에 설레는 모습들이다.

떠나는 길에 꽃집 아주머니가 말했듯, 어느새 ‘윤식당’ 사람들은 가라치코의 이웃이 되어 있었다. 걸어서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에 있는 식당 사람들은 ‘윤식당’에서 회식을 한 후 친구처럼 스스럼없어졌고, 헤어질 때는 한국에 꼭 놀러가겠다는 말을 건넸다. 동네 카페 주인분도, 정육점 사장님도 모두가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들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따뜻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아이를 살뜰하게도 챙기고 아내에게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가정의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돈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마지막 날 윤식당을 찾은 한 손님의 이야기에서 그 이유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손님은 한국이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손님은 “말도 안돼. 완전 끔찍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대기업에 다들 들어가고 싶어 하고 그 곳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거든”이라는 그의 말에서 새삼 느껴지는 건 우리가 얼마나 경쟁적인 삶에 내몰려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는 가라치코 사람들의 행복이 가능한 건 우리와는 달리 ‘경쟁적이지 않은 삶’을 그들이 살아가고 있어서다. 당장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삶의 환경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여유 있는 삶을 꿈꿀 수 있을까. 그리고 다름 아닌 그러한 경쟁적인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이미 충분하다고 해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박차에 박차를 가하는 이른바 글로벌 기업들이다. 일이 그걸 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 하지 않으면 더 불행해질 것 같은 경쟁적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서 가라치코 같은 삶을 어떻게 꿈꿀 수 있을까.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분노와 갈등들이 어떤 해결점이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분노와 갈등이 더 첨예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경쟁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윤식당2>는 물론 가라치코 마을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그들이 한식을 즐기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행복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저런 삶을 현실이 아닌 하나의 판타지로서만 봐야할까.(사진:tvN)

‘마더’ 엄마는 아이를, 아이는 엄마를 탄생시킨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엄마도 태어나는 것 같아요.” tvN 수목드라마 <마더>의 수진(이보영)은 그렇게 말했다. 본인은 한 번도 엄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던 수진이었다. 그러던 수진은 결국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진짜 엄마가.

결국 진짜 모녀지간이 된 수진에게 윤복(허율)은 묻는다. “엄마 나 처음 봤을 때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수진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난 나 같은 애가 또 있네 그렇게 생각했어.” 즉 수진이 윤복을 데리고 멀리 도망치려 했던 건 아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되려 윤복은 수진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애들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긴 여정의 마지막 장면에 들어간 이 대사는 <마더>가 하려던 이야기가 그저 아동학대를 받는 한 아이를 구원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아이를 구해내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엄마를, 세상을 구해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이 윤복이라는 아이가 그 많은 상처를 겪어내면서 주변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수진이 말하듯 윤복을 통해 엄마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건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었다. 

수진의 엄마 영신(이혜영)은 진짜 엄마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에게 자기를 다 내어줄 때”라고. 하지만 그건 모성애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게 되는 건 엄마가 태어나듯이 타자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인간애를 드러낼 때가 아닌가.

<마더>라는 드라마가 놀라운 건, 마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엄마의 사랑이 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는 걸 얘기하려 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두려워하던 수진은 윤복을 만나(그건 어쩌면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이 엄마로서의(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니 아이는 ‘키워줘야 될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부모를 ‘탄생시키는 존재’가 된다. 그건 다름 아닌 세상이 살만한 건 사람들이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존재로서 아이가 거기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더>에서 윤복은 수진을 구원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구원해내는 존재가 된다. 이 드라마에서 어떤 숭고한 종교적인 느낌 같은 걸 갖게 되는 건 이런 아이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이 윤복이라는 아이가 있어 우리는 울고 웃었다. 수진은 이 아이를 통해 부정했던 자신의 구원을 얻었고, 먼저 간 영신은 큰 위로를 받았으며, 뒤늦게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진(전혜진)과 현진(고보결) 역시 자신들이 분명한 영신의 딸이라는 걸 확인하게 해줬다. 또한 수진의 친모인 홍희의 과거 아이에게 잠금줄을 맸을 때 갇혀졌던 삶 역시 윤복이 열어준 열쇠로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그룹 홈에서 윤복을 돌봐주고 그 아픈 상처를 끝까지 보듬어주려 했던 그룹홈 엄마(오지혜)는 끝내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윤복을 수진에게 돌려보내는 그 순간에 엄마로 태어난다. 무엇이 윤복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는가를 알게 되고 결국 보내주는 마음은 저 영신이 말했듯 “다른 작은 존재에게 자기를 다 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 아이는 다가와 그룹홈 엄마에게 말한다. “고맙습니다. 엄마.”

도대체 우리는 아이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었을까. 육아의 현실은 물론 힘겨운 일이고 그래서 그만한 제도적 마련이 절실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라는 존재마저 ‘키워내야만 하는 버거운 짐’처럼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더>는 그런 점에서 아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가 있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축복받고 있는가를. 세상에 많은 엄마들을, 또 진정한 인간애를 태어나게 하는 존재로서.(사진:tvN)

‘마더’ 이혜영이 그려낸 진정한 엄마, 배우의 초상

어째서 이혜영이 하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할까. tvN 수목드라마 <마더>에서 영신(이혜영)은 결국 모든 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떠났다. 스스로 얘기했듯 엄마란 낯선 작은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사람이라는 걸 온 몸으로 증명하듯 살아왔고, 또 그렇게 떠났다. 

누가 진정한 엄마인가라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마더>에서 영신이 보여준 면면들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그는 보육원에 버려진 수진(이보영)을 거둬 자신의 딸로 평생을 돌봤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과 그래서 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그 상처 때문에 수진은 영신으로부터 계속 도망치곤 했지만, 그 때마다 다시 그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영신이 항상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그를 기다려줬기 때문이었다. 

수진이 윤복(허율)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영신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커다란 위험이 되는 걸 감수하면서 수진을 끝까지 보듬었다. 그는 윤복을 낳은 자영은 엄마가 아니며 진짜 엄마는 수진이었다는 걸 증언했다. 수진이 윤복을 자신이라고 느꼈듯, 영신은 수진을 또한 자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수진의 동생들인 이진(전혜진)과 현진(고보결) 역시 영신이 낳은 딸들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지만 그들 모두 영신이 자신의 진정한 엄마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영신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나 넘쳐났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혈연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랑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영신만큼 명쾌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있을까.

진정한 엄마가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내는 장면은 마치 솔로몬의 선택의 진짜 엄마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영신과 수진의 친모 홍희(남기애)가 만나는 대목에서였다. 영신은 자신이 죽으면 수진의 엄마가 되 달라고 부탁했고, 홍희는 그걸 차마 수락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영신이 자신이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수진이 낳은 사람”이라고 말했고, 홍희는 그래도 진정한 엄마는 당신이라는 듯 수진의 배냇저고리와 아기 때 사진을 영신에게 주었다. 서로 자기 자식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애틋하게 수진을 생각해왔을 서로를 알고 있기에 상대방의 자식이라는 걸 말하는 두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엄마들이었다. 

이혜영이 연기한 영신이라는 인물은 엄마이면서 동시에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지닌 존재였다. 물론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예사롭지 않은 대사들이 만나 만들어낸 힘이 분명하지만, 다름 아닌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우라가 가능했을까 싶다. 그는 품위와 위엄과 우아함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엄마로서의 절절한 마음을 동시에 드러내주는 쉽지 않은 이 인물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무엇보다 영신이 극중에서 연기자라는 사실은 이혜영에게는 남다른 공감대로 다가왔던 면이 있다. 과거 윤복의 존재를 알고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아픈 이야기를 꺼내야 했을 때, 그가 마치 연극을 준비하듯 거울 앞에서 분장을 하는 모습이 그랬고, 마지막 떠나는 순간 윤복이 읽어주는 <우리읍내>의 에밀리 대사를 속으로 읊조리는 모습이 그랬다.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안녕”하고 마지막까지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내 “엄마”라고 외쳤던 누군가의 엄마였지만 자신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그 모습.

<마더>는 대본과 연출 같은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났지만 이를 연기해낸 배우들, 이보영, 이혜영, 남기애, 허율 같은 배우들의 놀라운 몰입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줬다. 그 중에서도 엄마이면서 배우로서의 멋진 초상을 만들어준 이혜영의 아우라 넘치는 연기는 작품 전체를 그 따뜻함과 품위로 품어주었다고 보인다.(사진:tvN)

‘지만갑’, 소지섭·손예진의 아련한 동화 같은 판타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린 아이에게 읽어주는 ‘구름나라’ 동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죽은 엄마가 장마가 시작되자 돌아와 아이를 만난다는 동화. 우진(소지섭)의 어린 아들 지호(김지환)는 세상을 떠난 엄마 수아(손예진) 역시 장마가 시작되면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런 아들이 못내 안타깝지만 어느 장마가 막 시작하던 날 우진과 지호 앞에 진짜 수아가 나타난다. 

설정부터가 동화 같은 판타지지만, 관객들은 의외로 이 이야기에 몰입한다. 돌아온 수아는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렸고, 우진으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하고 함께 살게 되었는가를 하나하나 듣게 된다. 판타지 설정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관객들은 그런 판타지는 어느 순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건 우진과 지호가 얼마나 절절하게 수아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는가가 충분히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어느새 이들의 바람에 몰입하게 된 관객은 죽은 이가 돌아온다는 설정을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담으려는 건 단지 죽은 인물이 돌아와서 다시 이어지는 사랑이야기 정도가 아니다. 기억을 잃은 수아가 우진으로부터 다시 듣게 되는 그들의 첫 만남부터 이별과 재회 그리고 결혼까지 해 아이를 갖게 되는 그 과정의 이야기들은 새삼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들이라면 그렇게 살다보니 마치 기억을 잃은 것처럼 지워버린 젊은 날의 설렘과 절절했던 사랑이 이 영화를 통해 새록새록 떠오를 수 있다. 

과거와는 기억이 단절되어 살아가던 수아는 우진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그 사랑을 다시금 느끼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사랑을 재확인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 그건 이제는 무뎌진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단지 추억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옆에 그 사람이 있었다는 걸 수아와 우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첫 사랑의 이야기는 아련한 동화 같은 판타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바로 그 이야기가 가진 동화 같은 마력적인 힘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시작과 함께 읽어주는 ‘구름나라’ 동화가 가진 힘이 그렇고, 후반부에 이르러 수아가 써내려간 일기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그 이야기들은 현실이 맞나 싶은 아련함으로 다가와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힘겨운 삶을 지금껏 지탱해주고 있는 숨은 힘들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이야기를 마치 진짜인 것처럼 시침 뚝 떼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며 서로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주었던 그것들이 있어 결국은 누구나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굳건히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Be with you’다. 지금 옆에 없어도 항상 당신 옆에 있다는 것. 그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이자 이야기가 가진 마력 같은 힘을 말하는 것일 게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한 겨울 같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몸도 마음도 식어버린 삶이라면, 그들에게도 찬란했던 한 여름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고 때론 촉촉하게 쏟아져 내리던 장마 같은 감정들이 폭발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끄집어내주는 영화다.(사진:영화'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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