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과 이효리 빈자리 채워주는 든든한 윤아·보검

며칠 째 끝이 없을 것처럼 쏟아지던 폭설은 박보검이 도착한 후 거짓말처럼 멈추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그리고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제주로 바뀌었다. 이효리가 “너와 함께 햇살이 왔어”라고 한 말이 그저 농담처럼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박보검이 특유의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을 땐 ‘설레게 그렇게 웃지 말라’는 이효리의 말처럼 눈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니.

JTBC <효리네 민박>에 박보검이 잠깐 서울로 일하러 간 이상순의 빈자리에 들어오자 먼저 왔던 임윤아도 새롭게 보인다. 사실 이 정도로 잘 할까 싶었지만 요리면 요리, 청소면 청소, 대충 이야기해도 척척 알아듣고, 손님들을 위한 마음 씀씀이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이상순이 비운 자리에서 임윤아는 더더욱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상순도 쉽지 않았던 이층 화장실 막힌 변기를 인터넷에서 그 해결방법을 본 적 있다며 의외의 과학적인(?) 방식으로 쉽게 뚫어버린다. 감기 기운이 있어 밀크티를 해먹으려다 넘쳐버리는 바람에 인덕션에 묻은 음식 흔적을 꼼꼼하게도 세제를 써가며 지워내고, 노래를 틀고 싶지만 와이파이 스피커 연결을 몰라 하는 박보검과 이효리 대신 문제를 해결해 노래를 틀게 해준다. 

임윤아는 효리네 민박집의 선임 직원(?)답게 새로 도착해 낯선 박보검에게 청소하는 법, 세탁기 돌리는 법을 세심하게 알려주고, 박보검은 임윤아가 시키는 것이면 뭐든 ‘오케이’를 외치며 열성적으로 일한다. 서울에 일하러 가는 이상순을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마트에서 저녁에 먹을 월남쌈 재료를 사와 임윤아와 나란히 서서 재료를 다듬는 모습은 그래서 훈훈하고 또한 든든하다. 

엄청난 식성을 자랑하는 박보검이 끝없이 월남쌈을 싸서 맛있는 먹는 모습도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음식을 두고 잘 먹는 것만큼 보기 좋은 일이 있을까. 곱상해 보이는 외모지만 먹성은 야성미가 넘쳐나는 이 소년은 그래서 함께 둘러 먹는 저녁 시간을 포만감 있게 만들어준다. 외출에서 돌아온 손님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며 쌈 하나씩 싸서 건네는 건 그래서 기분 좋은 특급 서비스가 된다. 

사실 효리네 민박집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척척 해결해주는 인물은 바로 이상순이었다. 그러니 서울로 일하러 간 그 빈자리가 없을 수 없다. 그 빈자리를 특히 크게 느끼는 듯, 이효리는 감기가 들었다. 폭설이 쏟아질 때 고립된 손님들을 위해 잘 먹이고 또 재밌게 해주려 노력했던 끝에 온 몸살이었다. 그가 혼자 작업실에서 누워 있을 때 유난히 이상순의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효리가 쉬는 동안 그 자리를 척척박사 임윤아가 채워주고, 이상순이 서울 가 있는 그 시간 박보검이 함께 하는 효리네는 어딘지 든든하고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야외활동을 하고 온 손님들을 위해 온천물을 채우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노는 박보검과, 손님들과의 카드게임에서 의외의 승부욕을 보임으로써 분위기를 한층 띄워주는 임윤아가 있어 효리네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날씨가 제아무리 화창하게 풀려도 유쾌한 사람만큼 밝음을 줄 수 있을까. 폭설이 쏟아져 고립됐을 때도 이효리가 주는 그 밝음으로 효리네는 늘 명랑할 수 있었다. 이제 이상순과 이효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밝음을 주는 임윤아와 박보검의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효리네가 밝아진 건 그저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겨울을 깨치고 나온 봄 같은 청춘들 덕분이다.(사진:JTBC)

‘골목식당’이 음식점에도 백종원에도 솔루션이 되는 방법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은 <백종원의 푸드트럭>의 골목 상권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죽어가는 골목 상권의 음식점들에 일련의 솔루션을 제공해 각각의 음식점은 물론이고 골목을 살린다는 것이 그 취지다. 

이대 앞에서 첫 시도된 <골목식당>은 시작점에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며 자못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때 잘 나가던 상권에 임대료가 올라, 가게의 원주인들이 이주를 해나가고 결국 골목에 새로 들어오긴 했지만 상권 자체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게 됐다는 것.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상황을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해결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방송을 통해 상권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 후의 상황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골목식당>은 그래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있었다. 그건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백종원이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통해 음식점에 어떤 솔루션을 제공하고, 그것이 통했을 때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 때문이었다. 

여기서 촉매제 역할을 해준 건 백종원의 솔루션에 대해 저항하기도 하는 가게 주인들이었다. 이대 앞에서는 백반집 아주머니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결국 솔루션을 받아들였고 음식 맛도 좋아졌으며 당연히 손님들도 늘어나는 모습은 갈등의 해소와 함께 좋은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이어진 필동에서는 백반집 아주머니보다 더 한 고집불통 국숫집 아주머니가 등장했다. 육수대결에서 백종원이 이기면 그가 알려주는 대로 하겠다던 약속을 꺾고 솔루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극으로 치닫던 갈등도 결국은 백종원이 먼저 내민 손으로 해결됐다. 그는 국숫집을 찾아가 아주머니가 적어준 재료 원가 가격표대로 육수를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그 원가 계산이 얼마나 틀려 있는가를 확인시켜 줬고, 돈이 남지 않는 이유는 생각만큼 많이 팔지 못한 반면 육수는 손님이 먹는 것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해줬다. 

굳이 상권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백종원이 자신의 음식장사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들을 실전에 활용하고 거기에 방송이라는 특유의 홍보효과를 더해 어려운 음식점들을 돕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백종원의 솔루션에 담긴 진정성을 얼마나 시청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음식점 주인들이 저마다의 고집을 갖고 있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솔루션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한 바 있다. 대신 그 분들이 하는 장사를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 약간의 방향성이나 아이디어를 더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도 했다. 

바로 이 점은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힘이라고 보인다. 너무 거창할 것 없이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는 영세한 음식점을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돕는다는 그 마음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경쟁력이라는 것. 

백종원은 방송 중에 “비법은 나누라고 있는 것”이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이건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비법이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져 온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떡볶이집 주인에게 말했듯 성공해서 또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진심이라면, 그래서 그 진심이 방송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골목식당>은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을 게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성공한 사업가와 대중적인 방송인 사이에 서 있는 백종원이 향후에도 대중들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사진:SBS)

배우는 게 더 많았던 ‘윤식당2’, 우리도 이들처럼 살려면

저들의 아름답고 여유 넘치는 삶을 바라보다 보면 자꾸만 우리네 삶이 눈에 밟힌다. 우리는 어째서 저들처럼 살지 못할까. tvN 예능 <윤식당2>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는 건 바로 이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만 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볼 뽀뽀를 나누는 모습에서는 이들이 남이 아니라 마치 가족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서로 잘 알고 있는 이웃이라서가 아니다. 그건 타인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달라서다. ‘윤식당’이라는 음식점이나 거기서 일하는 출연자들은 모두 그들에게는 완전한 타인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식당’을 찾아온 그들에게서 배타적인 시선은 거의 느낄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반가운 얼굴들이고, 타국의 새로운 음식을 맛본다는 것에 설레는 모습들이다.

떠나는 길에 꽃집 아주머니가 말했듯, 어느새 ‘윤식당’ 사람들은 가라치코의 이웃이 되어 있었다. 걸어서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에 있는 식당 사람들은 ‘윤식당’에서 회식을 한 후 친구처럼 스스럼없어졌고, 헤어질 때는 한국에 꼭 놀러가겠다는 말을 건넸다. 동네 카페 주인분도, 정육점 사장님도 모두가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들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따뜻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아이를 살뜰하게도 챙기고 아내에게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가정의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돈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마지막 날 윤식당을 찾은 한 손님의 이야기에서 그 이유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손님은 한국이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손님은 “말도 안돼. 완전 끔찍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대기업에 다들 들어가고 싶어 하고 그 곳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거든”이라는 그의 말에서 새삼 느껴지는 건 우리가 얼마나 경쟁적인 삶에 내몰려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는 가라치코 사람들의 행복이 가능한 건 우리와는 달리 ‘경쟁적이지 않은 삶’을 그들이 살아가고 있어서다. 당장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삶의 환경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여유 있는 삶을 꿈꿀 수 있을까. 그리고 다름 아닌 그러한 경쟁적인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이미 충분하다고 해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박차에 박차를 가하는 이른바 글로벌 기업들이다. 일이 그걸 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 하지 않으면 더 불행해질 것 같은 경쟁적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서 가라치코 같은 삶을 어떻게 꿈꿀 수 있을까.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분노와 갈등들이 어떤 해결점이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분노와 갈등이 더 첨예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경쟁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윤식당2>는 물론 가라치코 마을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그들이 한식을 즐기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행복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저런 삶을 현실이 아닌 하나의 판타지로서만 봐야할까.(사진:tvN)

‘마더’ 엄마는 아이를, 아이는 엄마를 탄생시킨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엄마도 태어나는 것 같아요.” tvN 수목드라마 <마더>의 수진(이보영)은 그렇게 말했다. 본인은 한 번도 엄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던 수진이었다. 그러던 수진은 결국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진짜 엄마가.

결국 진짜 모녀지간이 된 수진에게 윤복(허율)은 묻는다. “엄마 나 처음 봤을 때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수진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난 나 같은 애가 또 있네 그렇게 생각했어.” 즉 수진이 윤복을 데리고 멀리 도망치려 했던 건 아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되려 윤복은 수진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애들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긴 여정의 마지막 장면에 들어간 이 대사는 <마더>가 하려던 이야기가 그저 아동학대를 받는 한 아이를 구원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아이를 구해내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엄마를, 세상을 구해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이 윤복이라는 아이가 그 많은 상처를 겪어내면서 주변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수진이 말하듯 윤복을 통해 엄마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건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었다. 

수진의 엄마 영신(이혜영)은 진짜 엄마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에게 자기를 다 내어줄 때”라고. 하지만 그건 모성애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게 되는 건 엄마가 태어나듯이 타자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인간애를 드러낼 때가 아닌가.

<마더>라는 드라마가 놀라운 건, 마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엄마의 사랑이 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는 걸 얘기하려 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두려워하던 수진은 윤복을 만나(그건 어쩌면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이 엄마로서의(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니 아이는 ‘키워줘야 될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부모를 ‘탄생시키는 존재’가 된다. 그건 다름 아닌 세상이 살만한 건 사람들이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존재로서 아이가 거기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더>에서 윤복은 수진을 구원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구원해내는 존재가 된다. 이 드라마에서 어떤 숭고한 종교적인 느낌 같은 걸 갖게 되는 건 이런 아이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이 윤복이라는 아이가 있어 우리는 울고 웃었다. 수진은 이 아이를 통해 부정했던 자신의 구원을 얻었고, 먼저 간 영신은 큰 위로를 받았으며, 뒤늦게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진(전혜진)과 현진(고보결) 역시 자신들이 분명한 영신의 딸이라는 걸 확인하게 해줬다. 또한 수진의 친모인 홍희의 과거 아이에게 잠금줄을 맸을 때 갇혀졌던 삶 역시 윤복이 열어준 열쇠로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그룹 홈에서 윤복을 돌봐주고 그 아픈 상처를 끝까지 보듬어주려 했던 그룹홈 엄마(오지혜)는 끝내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윤복을 수진에게 돌려보내는 그 순간에 엄마로 태어난다. 무엇이 윤복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는가를 알게 되고 결국 보내주는 마음은 저 영신이 말했듯 “다른 작은 존재에게 자기를 다 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 아이는 다가와 그룹홈 엄마에게 말한다. “고맙습니다. 엄마.”

도대체 우리는 아이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었을까. 육아의 현실은 물론 힘겨운 일이고 그래서 그만한 제도적 마련이 절실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라는 존재마저 ‘키워내야만 하는 버거운 짐’처럼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더>는 그런 점에서 아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가 있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축복받고 있는가를. 세상에 많은 엄마들을, 또 진정한 인간애를 태어나게 하는 존재로서.(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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