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월’, 퓨전과 짬뽕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

영화 <그레이트 월>은 예고편만 보면 정말 엄청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제목에서 묻어나듯 이 영화는 중국의 미스터리로까지 남겨진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감독은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예모인데다, 주인공은 맷데이먼이다. 그러니 예고편에서 맷데이먼이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아처의 형상으로 만리장성 위에서 활을 쏘아대는 모습만으로도 기대가 될밖에.

사진출처:영화<그레이트 월>

<그레이트 월>은 그러나 그 기대감 안에 담겨져 있는 불안요소들을 좀체 넘지 못한다. 즉 영화적 배경은 중국의 만리장성이고 감독은 장예모인데, 그 주인공은 서양인인 맷데이먼이고 그가 중국인 배우 경첨과 유덕화와 함께 싸우는 적은 외계에서 온 알 수 없는 ‘진격의 괴수들’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동서양의 퓨전이고 중국 무협과 서구의 판타지의 만남이며 만리장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고 여기에 외계 생명체와의 대결이라는 에일리언적 요소들까지 가미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들 요소들은 너무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겹쳐져 있어 그것이 하나로 융합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 더 강하다. 무엇보다 장예모 감독의 거대한 화면에 채워지는 미술적인 연출에 대한 기대를 하는 관객이라면 그저 상업적인 틀에 머무는 영화에 실망할 수 있고, 맷데이먼의 눈으로 보여주는 액션이 아닌 내적인 응어리 같은 걸로 더 강한 폭발력을 내는 액션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볼거리 위주의 액션에 실망할 수 있다. 

판타지와 무협의 퓨전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그 합이 더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기보다는 판타지로서도 또 무협으로서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러한 퓨전은 상업영화로서의 마케팅적인 결합처럼 보인다. 즉 맷데이먼이 중국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은 중국 관객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여기에 만리장성이 일종의 지구를 지키는 최종방어선처럼 그려지는 것 역시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건드리는 마케팅적 장치로 보인다. 

물론 영화가 이러한 황당해 보이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 통해서 담으려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그것은 서역에서 검은 가루(화약)을 찾아 이 동양에까지 다다른 윌리엄(맷데이먼)과 외계의 적과 맞서고 있는 린 사령관(경첨)이 “우리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후에는 “우리 생각이 틀렸다. 우리는 비슷하다”는 결론으로 바뀌는 그 과정이다. 거기서 지구를 구하는 두 패권이 손을 잡는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서구의 힘이다. 물론 거기서도 실질적으로 과시되는 건 제목에 등장하듯 ‘만리장성’의 위용이지만. 

그래서 영화는 여러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엄청난 적들과 대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이건 저들에게 설득되는 이야기들일 뿐, 우리처럼 그들의 세력다툼에 휘둘려오며 변방을 치부되어온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줄 수 없다.

그래서 그저 남는 건 스펙터클이다. 하지만 이 스펙터클 역시 ‘대륙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고 말할 때 갖게 되는 조금은 비하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기상천외한 상상력들이 스펙터클로 보여지지만 그것이 너무 나가있어 관객이 몰입되기보다는 헛웃음이 나오는 그런 느낌. 장예모에 맷데이먼, 유덕화 그리고 만리장성까지 만나는 그 이질적인 조합은 그래서 시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공감 가는 퓨전보다 이질적인 것들이 마구 뒤섞인 짬뽕에 가까운 결과물이 되었다.

‘사임당’, 썩어빠진 교육 그 때나 지금이나

“사부학당 학동들 새벽부터 밤까지 사서삼경만 주구장창 외워댄다. 여기 아이들 모두 난다긴다하는 명문가 자손들이야. 바깥물정 백성들 고초 따윈 본 적도 관심도 없는 녀석들이야. 이 아이들이 그대로 지들 아버지 자리 물려받아서 또 관원이 되고 그 자식들이 또 관원이 되고 이래 갖고 나라꼴이 어찌 되겠느냐?”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중부학당 교수 백인관이 의성군(송승헌)에게 던지는 이 대사는 <사임당>이 건드리고 있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묻어난다. 중부학당에 들어가는 것으로 다음은 성균관, 그 다음은 출사의 길이 보장되는 명문가 자손들. 그리고 학당의 교수들을 쥐고 흔드는 자모회. 물론 이런 설정들은 <사임당>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적 관점에서 교육의 문제를 사극에 빗대 의도적으로 꺼내놓은 것일 게다. 

공부 깨나 한다고 아무나 들일 수 없는 교육기관의 이야기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능력은 못 미쳐도 집안이 좋거나 부자이거나 하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도 들린다. 그래서 <사임당>이 꺼낸 전라도 부잣집 아들 대룡과 사임당(이영애)의 아들이자 훗날 율곡 이이가 되는 현룡(정준원)이 중부학당에 들어가기 위해 벌이는 경연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룡을 중부학당에 집어넣기 위해 자모회의 수장인 휘음당(오윤아)이 독선생(지금의 가정교사)까지 붙이고 출제문제를 사전에 유출해 달달 외우게 만드는 대목은 지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부정입학 비리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대룡은 공부에 아무런 뜻이 없다. 어찌 보면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조예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대룡의 의향 따위는 그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출사하기 위해 정해진 길을 걷게 하려는 것일 뿐.

중부학당에 들어가면 자신은 죽을 지도 모른다며 어머니가 밥도 간식도 안 주겠다 하셨다고 말하는 대룡에게 현룡은 정반대 입장인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우리 어머닌 조르고 졸라도 안 된다고 하셨어. 밥 안 먹어도 좋으니 제발 중부학당만 보내달라고 했는데도.” 현룡은 책을 읽는 것이 좋아 밥 먹는 것도 깜박 잊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성향과 꿈이 다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고 문제가 사전 유출된 걸 알게 된 의성군은 그래서 두 아이를 위한 새로운 경연 문제를 내놓는다. 그것은 일종의 ‘솔로몬의 선택’을 재해석한 문제다. 상자 하나를 놓고 향이 다 탈 때까지 서랍을 먼저 잡아 여는 이가 입학을 하게 될 거라는 문제. 그러나 어찌 보면 쉬워 보이는 이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둘 다 눈물을 흘리며 서랍을 열지 못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현룡은 대룡이 밥도 못 먹게 될 거라는 말 때문에, 대룡은 현룡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공부가 좋다는 말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배려한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결국 의성군은 두 아이들을 모두 중부학당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한다. 그가 입학의 조건으로 본 것은 아이들의 능력이 아니라 인성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그것이 없다면 배움은 오히려 백성들을 속이고 핍박하는데 사용될 흉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중부학당 교수 백인관이 한탄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 모든 작금의 어려워진 현실들은 그 시원이 깨나 오래됐는지도 모른다. “바깥물정 백성들 고초 따윈 본 적도 관심도 없는” 이들이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거나 돈을 써서 관원이 되고 또 그 자식들이 관원이 되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굳어져 버린 오랜 적폐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교육에서부터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서 정의를 농단해온 현실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유아인의 성장기를 보면 군 입대 의지가 읽힌다

유아인은 현역을 고집한다. 벌써 세 차례에 걸친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병역기피’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박사모 카페에서는 그가 촛불을 들었던 사실을 적시하며 그런 그가 ‘병역기피’를 하기 위해 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의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과 사실은 정반대다. 유아인이 세 차례나 계속 재검을 받았던 건 기피가 아니라 현역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유아인(사진출처:UAA)'

유아인이 재심을 받게 된 건 지난 2013년 <깡철이> 촬영 중 오른쪽 어깨 근육이 파열되면서 갖게 된 골종양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015년 12월 1차 신체검사에서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고, 2016년 5월에 2차 보류, 지난해 12월에 3차 보류 판정을 받았다. 유아인은 오는 3월 4차 판정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유아인은 현역 복무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낭종이 양성이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유아인은 의지가 확고하지만 병무청은 정상적으로 엄밀하게 검사와 판정을 해야 한다. 만일 그의 의지에만 기대 이를 허용했다가 입대 후 문제라도 생기면 그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배우이고 특히나 지금은 세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병무청의 등급 판정은 공평해야 한다. 

사실 어찌 보면 유아인의 현역 입대 고집은 일반인들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일반인이 이런 몸의 이상을 분명히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는 진단서를 첨부해 거기에 합당한 판정을 받으려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몸을 위해서도 상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연예인들의 군 입대는 어느새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다. 군대를 갔다 왔는가 아닌가가 중요했던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군대를 다녀와도 현역을 다녀왔는가 아닌가가 중요해졌다. 겉으로 보기에(연예인들은 직업상 여러 이미지를 실체처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건강해 보이는데 현역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그것이 영원히 그 연예인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러니 유아인이 아니라 어떤 전도 창창한 배우들이라고 해도 현역을 다녀오려 안간힘을 쓴다. 현빈부터 송중기, 유승호처럼 현역 복무가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결국 이렇게 재검에 재검을 거치는 시간은 유아인에게는 그 자체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언제 판정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덜컥 작품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로서는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로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는 시간인데, 그래서 빨리 결정이 나서 군 복무를 마치고 싶은 마음인데, 이것이 오히려 와전되어 엉뚱한 악플이 달리는 건 더더욱 힘겨운 일일 게다. 

유아인은 지금껏 매번 작품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온 배우다. 물론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럴 것이다. 작품 경험이란 그 성공도 실패도 모두 배우를 성숙시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유아인이 해왔던 일련의 선택들을 보면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건 그와 함께 대결하듯 연기한 상대역들을 열거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영화 <완득이>의 김윤석, <베테랑>의 황정민, <사도>의 송강호,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 <육룡이 나르샤>의 김명민... 기라성 같은 대선배 연기자들과 연기하며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왔다는 것. 

아마도 유아인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을 만들어낸 가장 큰 동인은 바로 이 상처를 입더라도, 또 깨지더라도 부딪쳐 자신을 성장시키겠다는 배우로서의 의지가 느껴졌던 점이 아닐까. 유아인에게 있어서 군 복무 역시 그 연장선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부딪쳐서 자신을 또 한 차례 성장시키고픈.

‘김과장’, 묵직한 메시지도 남궁민이 하면 발랄해지는 까닭

“22년을 이 회사를 위해서 또 내 가족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한텐 견딜 수 없는 치욕과 내 가족에 대한 미안함밖에 없습니다.” 오부장에게 대기실 발령은 왜 회사 옥상 난간 끝에 설 정도로 큰 치욕이었을까. 그건 그가 그만큼 자신이 다녔던 회사를 각별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다. 그는 회사가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 그런 회사가 그에게 주는 치욕은 말 그대로 “삶이 무너지는 기분”을 주었을 게다. 

'김과장(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회사의 일방적인 폭력을 꼬집었다. “회사가 회사지. 이 빌어먹을 회사”라고 김과장(남궁민)은 말하지만, 오부장은 그 모든 것을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겁니다. 내가 마무리를 잘 못한 겁니다.” 대기실 발령이라는 폭력이 만들어내는 건 그 치욕감 속에 스스로 자존감을 잃게 하고 심지어 자책하게 하는 일이다. 오부장이 자신이 22년 동안 다닌 회사의 옥상 난간에서 뛰어 내리려 하게 만든 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김과장이 말하듯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도 회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김과장이 오기 전 그 자리를 지키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이과장의 경우처럼, 회사는 오히려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한다. 심지어 회사의 비리까지 몽땅 뒤집어씌워 개인의 비리로 치부해버린다. 죽어서까지 이용당하는 셈이다. 

김과장이 안타까워한 건 바로 그렇게 회사를 탓하기보다는 자책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잘 살아온 선량한 이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삥땅 쳐봤어요? 해먹어봤어요? 남의 눈탱이 치고 남의 돈 가지고 장난 쳐봤냐구. 근데 뭘 잘못 살아. 이 양반아. 잘만 살았구만. 남의 돈 다 해먹고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그런 새끼들도 아주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는데 부장님이 왜 요단강 건너려고 그러는데 왜! 거기 올라가 가지고 뒈져야 될 거는 부장님이 아니라 바로 그 딴 새끼들이라고 그 딴 새끼들.... 빌어먹을 회사만 몰라 우리 부장님 최고로 잘 살아온 거.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다 아는데. 그죠?”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복도 한 편에 놓여진 빈 책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방치하는 대기발령이라는 치욕을 더더욱 견디기 어려울 게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그 결과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라는 배신감과 모멸감도 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김영삼 정부 시절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은 삶을 통째로 회사에 헌납한 채 살아온 가장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언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회사의 정리해고를 그리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일상화된 어떤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당사자들의 고통이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을 게다.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 모멸감을 참아가며 대기발령을 견디는 가장들의 고통이 어찌 무뎌질 수 있을까.

<김과장>은 겉으로 보면 경쾌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뜯어보면 꽤 묵직한 메시지들이 발견된다. 기업의 회계비리라든가, 노조를 분쇄하기 위해 투입되는 폭력이라든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가까운 대기발령 에피소드 모두 우리네 기업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러한 무거운 메시지들을 전하면서도 결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김과장이라는 캐릭터 덕분이다. 선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수하지도 않은 이 캐릭터는 그러면서도 사람에 대한 정이 있다. 바로 그 정 때문에 자신은 더럽혀져도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그저 지나치지 못한다. 삥땅 전문인 김과장이 “삥땅 쳐봤냐”며 오부장을 설득하는 모습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독특한 위치를 잘 보여준다. 그는 회사에 뭘 그리 충성을 다하냐는 투로 말한다. 지나치게 회사에 충성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자세. 의인이라고까지 불리는 김과장이 회사의 부조리에 맞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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