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강정’, 명작과 괴작을 가를 이 황당한 드라마의 분수령은?

닭강정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던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이 펼쳐놓는 상상의 세계는 이토록 황당하다. 치킨집을 소재로 해 무려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초대박 영화 <극한직업>에 이어 이병헌 감독이 또다시 닭을 소재로 한다는 점을 <닭강정>은 강조한다. 그래서 작품 소개도 ‘신계(鷄)념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라고 적시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시청자들이 ‘신계(鷄)념’ 추적극으로 보게 될지 아니면 ‘황당무계(鷄) 추적극’으로 볼 지는 아직 미지수다.

 

포스터만 봐도 느껴지듯이 <닭강정>은 B급 병맛 코미디다. 이상한 노래를 중얼거리며 춤을 추며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는 백중(안재홍)만 봐도 딱 알아차릴 수 있다. 이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 몇 발짝 정도 하늘 위로 들어올려져 있는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걸 백중의 그 등장만으로 금세 예감할 수 있다. 그 병맛 가득한 백중의 등장을 길거리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데 그건 바로 시청자들의 시선 그대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백중은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추며 거리를 걸어나간다. 그건 <닭강정>이 앞으로 펼쳐나갈 상상의 소신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민아(김유정)가 닭강정으로 변해버리자, 그의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를 짝사랑해온 백중은 충격과 절망감에 빠져버리고, 어떻게든 이 닭강정을 다시 민아로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는데 그 황당한 상황은 그 자체로 코미디가 된다. 누가 봐도 닭강정일 뿐인데 그걸 딸이라며 소중하게 챙기려는 두 사람의 진짜 절실해 보이는 안간힘이 부조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그 황당한 상황에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다가, 마치 하나하나의 시트콤처럼 상황이 주는 웃음에 조금씩 빠져들다가, 점점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선만과 백중의 절실함까지 공감하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이병헌 감독이 꿈꾸는 것이고 <닭강정>이라는 세계가 제대로 시청자들을 그 안으로 빨아들임으로써 사람이 닭강정이 되는 그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됐을 때의 일이다. 만일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이 작품은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알 수 없는 괴작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관건은 <닭강정>이라는 세계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어떤 힘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힘을 만드는 관건은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니 얼마나 ‘웃음의 밀도’를 높여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황당한 상황도 정신없이 웃게 만드는 빵빵 터지는 코미디를 촘촘하게 세워두면 결국 비현실도 선선히 받아들이게 되는 힘이 만들어진다. 이건 많은 판타지나 비현실을 담는 콘텐츠들이 자주 전략적으로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현실을 강조하면 오히려 비현실이 드러나는 콘텐츠들은 유머 코드를 슬쩍 채워넣음으로써 정반대로 비현실성을 가리는 전략을 쓰는 것.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 같은 작품이 그 비현실성을 뛰어넘어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어줬던 힘 역시 바로 이 웃음의 밀도가 그만큼 촘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웃음에서도 중요해지는 건 그저 황당하고 표피적인 웃음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현실의 은유나 풍자적인 웃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닭강정>의 다소 황당무계한 세계관을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고 열광할 수 있는가를 가르는 두 번째 관건이다. 

 

<닭강정>의 황당한 설정이 주는 코미디는 과연 어떤 현실을 은유하고 풍자하는 것일까.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한 그 상황은 우리에게 표피적인 웃음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화면만 열면 여기저기 우후죽순 등장하는 먹방들처럼 지나치게 먹거리에 집착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적 시선이나, 혹은 이를 산업화하는 자본화된 세상 꼬집기 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결국 비현실을 가져와 만들어내는 웃음은 현실을 밑그림에 깔고 있을 때 그저 휘발되지 않는다. 시리즈 같은 긴 호흡의 작품이라면 그걸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결국 이 현실 공감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닭강정>이 괴작이 아니라 재기발랄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명작이 되기 위한 관건은 이 비현실을 현실로 믿게 만드는 연출과 연기적 요소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신뢰가 투텁다. 안재홍은 첫 등장부터 이 작품이 어떤 세계를 갖고 있는가를 그 길거리를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추며 걸어나가는 장면으로 납득시켰고, 류승룡은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다는 황당한 사건을 금세 믿게 할 정도로 충격에서부터 부정이 느껴지는 슬픔까지 담아 진지하게(그래서 웃기지만) 연기해냈다. 

 

여기에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대사와 그 상황들을 효과적인 병맛 코미디로 그려내는 연출이 더해졌다. 그러니 일단 온라인 시사회로 언론에 선공개된 3회까지만 보면, 황당하지만 저도 모르게 빠져드는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단언할 수 있다. 다만 그 힘이 연기와 연출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진짜 이 작품의 코미디가 건드리는 현실 은유의 깊이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는 나머지 7회분을 다 봐야 제대로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명작일지 괴작일지, 공개된<닭강정>을 의구심과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보려는 이유다. 닭강정에 맥주 한 잔 곁들여 불금을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사진:넷플릭스)

‘눈물의 여왕’, 김지원은 ‘행복한 왕자’ 같은 변화를 보여줄까

눈물의 여왕

“내가 어렸을 때 <행복한 왕자> 보고 느낀 건 딱 하나였어. ‘하여튼,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아니, 왕자 입장에서도 이런 데 살 때가 좋았겠지. 괜히 밖에 나갔다가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어? 보석이며 눈알이며 다 남 퍼주고 에휴, 쯧쯧쯧.”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해인(김지원)은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 <행복한 왕자>에 대해 현우(김수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3년 전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 독일 포츠담 상수시 궁전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그 궁전이 바로 그 행복한 왕자가 살던 곳이었다는 현우의 이야기에 해인이 보인 반응이었다. 알다시피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는 생전 부유하게 살 때는 몰랐지만 마을 광장 높은 탑 위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채 서있는 동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의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눈물을 흘리던 왕자의 이야기다. 그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비에게 사파이어로 된 제 눈까지 떼서 나누어주는 이야기. 

 

<눈물의 여왕>이 갑자기 에필로그를 빌어 꺼내놓은 동화 <행복한 왕자> 이야기는, 해인이 현재 마주한 상황과 그로 인해 그가 겪을 변화를 예감하게 만든다. 퀸즈백화점 사장으로 도도하게 세상 위에 군림하며 살아왔던 해인은 갑작스런 희귀병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변화를 겪는다. 먼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걸맞게 남편 현우에 대한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부정맥도 아닌데 남편 보고 심장이 떨리고, 어떤 날엔 남편 눈망울을 보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어떤 날엔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어진단다. 

 

물론 이 도도한 여왕이 그런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인하려하고 비서에게 마치 남이야기처럼 하는 장면은 어딘가 설레면서도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진다. 너무 섹시해보여서 세상에 내놔도 괜찮을까 싶어진다며 마치 남 이야기하듯 하는 해인의 이야기가 설레면서도, “진짜 꼭 병원 가 보라 그러세요. 아픈 거야 그건.”이라는 나비서(윤보미)의 자못 진지한 리액션은 여지없이 그 설렘을 깨고 들어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하지만 이 코미디는 어딘가 진짜 해인에게서 벌어지는 심경의 변화에 대한 예고다. 주치의를 찾은 해인은 자신이 이상하다며 그 증상을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걸 보면 동정심이 생겨요.” 스스로 “피가 차가운 여자”였다며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해인은 자꾸만 “공감이 된다”는 ‘증상(?)’을 이야기한다. 사무실에 든 잡상인 남자에 화를 내다가 그의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다는 이야기에 짐짓 나비서에게 화를 내는 척 그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까지만 봐줄 거라며 그 남자를 도와준다. 

 

아픈 엄마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시집 갈 때 쓸 돈이라며 수술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우는 직원의 이야기를 화장실에서 몰래 듣고는 “아픈 거야 고치면 되지 왜 울고 난리”라고 툴툴 대면서도 그 이야기에 공감되어 눈물을 보인다. “제가 원래 안 그랬거든요. 누가 아프거나 말거나 울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왜 자꾸 공감이 돼죠? 남편 보고 설레질 않나? 아무래도 제 뇌가 정상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주치의에게 해인이 털어놓는 이 말은 그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해인은 이제 “안하던 짓”을 해보겠다고 공언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남들 다 하는 거 안하고 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억울하단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거 이제 하면서 살겠단다. 그건 과연 ‘행복한 왕자’의 삶을 살겠다는 것일까. 경제성이니 효율이니 하면서 1조클럽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은 것들도 안하고 감정 또한 드러내지 않으며 ‘피가 차가운 여자’로 살아왔던 것 대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단다. 

 

<눈물의 여왕>은 이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꺼내놓고 있다. 그 눈물은 아마도 저 ‘행복한 왕자’가 비로소 동상이 되어 마을을 들여다보고는 알게 됐던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향해 흘리는 것일 테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고, 눈물 따위는 결코 흘릴 것 같지 않았던 해인의 눈물은 그래서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해인의 이런 변화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윤은성(박성훈)이 돈이면 누군가의 은인이자 가족이나 다름 없는 반려견을 죽여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감정 없고 공감도 못하는 사이코 패스라는 점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준다. 약자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가진 것들을 다 내어주면서 드디어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해인과,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감정 없는 사이코 패스처럼 살아가는 윤은성으로 대변되는 자본화된 비정한 세상에 대한 대결구도가 그것이다. 

 

해인은 사랑에 대해 윤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걸 함께하면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서 죽을 것 같은 걸 함께 견뎌주는 거야. 어디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거.” 달콤함이 아니라 쓴 걸 함께 견뎌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그걸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고 해인은 말하고 있다. 그는 불치병에 걸렸고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어떤 의미로 보면 그건 병이 아니라 어쩌면 고쳐지는 중인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눈물의 여왕>은 그래서 이 해인이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기분좋게 꺼내놓는 과정이 작품의 메시지나 다름 없는 관건인 드라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역할을 맡은 김지원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대체불가라는 생각이 든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 도도한 모습에서 마치 그 얼음이 녹아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그 변화를 이토록 설득력 있게 연기해내고 있으니. 그가 앞으로 할 ‘안하던 짓’을 계속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사진:tvN)

‘연애남매’, 연애 리얼리티에 가족 서사가 붙으니 생겨난 것들

연애남매

“괜찮아?” 철현과 초아는 ‘남매의 방’에서 만나자마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그렇게 물었다. 두 사람은 남매다. 함께 JTBC, 웨이브에서 방영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남매>에 출연했다. 이 연애 리얼리티는 남매가 함께 출연해 서로의 인연을 찾아간다는 색다른 차별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방송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게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남매가 함께라고?

 

남매라고 하면 어딘가 티격태격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런 관계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혈육이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갖게 되고 그래서 그걸 표현하는 걸 옆에서 바라본다는 건 평소 모습과 달리 보일 게 뻔하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마음을 다루기 마련인 연애 리얼리티에서 ‘혈육’이라는 키워드가 잘 붙을까 싶은 거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건 여기 출연한 남매들의 면면이 하나씩 공개되면서 저절로 풀려버렸다. 이보다 따뜻하고 살뜰하게 서로를 혈육으로서 챙겨주는 마음을 가진 남매들이 있었던가. 깨발랄한 세승과 엉뚱한 재형은 툭탁대는 장난기가 가득한 남매로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밝게 만들고, 용우와 주연은 10살 차이가 나는데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오빠가 거의 아버지처럼 여동생을 챙겨주는 그런 훈훈함이 절로 묻어났다. 

 

2회에 소개된 철현과 초아 남매의 관계는 더더욱 특별했다. 그들이 남매의 방에서 처음 보자 마자 “괜찮아?”라고 서로에게 물어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정불화가 있었고 어머니가 스무살에 암으로 돌아가셨단다. 그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누나인 초아는 중학교 때부터 무려 7년 넘게 수발을 했다. 엄마 옆에 있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았다. 서울로 가려던 대학도 교환학생도 포기했다. 그런 누나를 옆에서 바라봐온 동생 철현의 마음이 어땠을까. 끝내 엄마가 떠나고 나자 철현은 갈등하는 누나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 곳에서 남매의 새 삶이 열렸다. 

 

이러한 가족의 서사가 있으니 이 <연애남매>라는 프로그램에서 철현과 초아 남매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따뜻한 집에서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가족 코드가 들어가 있는 구성안을 기획하면서 제작진이 철현, 초아에게 그런 구성이 불편할 수도 있다며 사전에 미리 이들에게 상의를 한 부분 또한 제작진의 배려 가득한 마음이 느껴졌다. 

 

1회에 부모들이 챙겨주신 음식으로 첫 저녁식사를 함께 할 때는 몰랐었는데, 철현과 초아 남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장면을 다시 되돌려 보니, 이들이 느꼈을 소회가 남달랐다. “원래 이렇게 식사 모여서 자주 하세요?”라고 철현이 묻는 대목에 남다른 의미가 느껴졌고, 주로 혼자 먹는다는 철현에게 다른 출연자들이 같이 먹으니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너무 좋아요. 너무 단란하고.”라고 답하는 철현의 말이 새삼스러웠다. 

 

식사 도중 부모님의 전화가 온 세승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가족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고 솔직히 말하는 철현이 “되게 보기 좋으세요”라며 담담히 웃는 모습도 가슴을 건드렸다. 철현은 인터뷰를 통해 이를 지켜보는 게 대리만족도 된다며 “슬프기보다는 따뜻함을 많이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철현이 그 모습을 보고 슬프기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기를 더 바라고 있었을 테니. 

 

이렇게 여기 출연한 남매들의 특별한 끈끈함을 확인하고 나니, 드디어 <연애남매>라는 연애 리얼리티가 가진 색다른 관전 포인트들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 철현이 가진 매형에 대한 로망이 용우를 살갑게 대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하지만 초아는 용우보다 대화가 통할 것 같고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섭에 마음이 간다며 혈육의 이상형과 본인의 이상형이 보이는 차이를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이 눈에 띤다. 

 

물론 프로그램의 룰에 의해 혈육이라는 걸 드러내고 내색할 수는 없지만 한 발 떨어져 때론 안타까워 하고 때론 응원하려는 모습이 발견되는 순간들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진주 PD의 전작이었던 <환승연애>에서처럼 이 프로그램도 저녁 시간에 그 날 호감을 준 인물에게 익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거기에도 혈육이라 더해지는 새로운 감정적 순간들이 등장한다. 메시지를 받고 즐거워하던 세승이나 정섭은 자신들의 혈육인 재형과 윤하가 하나의 메시지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순간 굳어버린다. 

 

차라리 자신이 0표를 받고 혈육이 많은 표를 받기를 바라는 이 착한 남매들은 그래서 은근히 혈육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승은 오빠인 재형에게 공유를 닮았다는 다른 여자 출연자의 말에 애써(?) 공감해주고, 정섭은 인터뷰를 통해 아무도 자신의 누나인 윤하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한다. 그래서 혈육이 누군가와 썸의 신호를 보낼 때 이들은 숨어서 미소를 보낸다. 그 광경은 여지없이 관찰카메라에 담겨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사랑은 개인적 감정이 우선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매 같은 혈육이나 가족과는 조금은 어우러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연애남매>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어딘가 언발란스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편견이자 선입견일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고 있다. 가족 개념은 사랑의 방해자가 아니라 지원자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연애남매>가 더해놓은 가족의 서사는 프로그램을 개인적 사랑의 설렘과 애틋함에 이를 감싸는 따뜻한 온기로 채워놓는다. 

 

하루종일 일하고 늦게 귀가한 초아에게 “당장 앉아요”라며 저녁 식사를 챙기는 출연자들은 또한 또하나의 가족 같은 훈훈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속에서 정섭이 굳이 계란요리를 챙겨주는 애정과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철현의 가족애가 겹쳐지는 순간. 이토록 따뜻한 연애 리얼리티가 가능하다는 걸 이진주 PD는 <연애남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역시 레벨이 다른 느낌이다. (사진:JTBC, 웨이브)

‘마스크걸’부터 ‘닭강정’까지, 이제 안재홍은 매작품 은퇴한다

닭강정

누구에게나 스스로 쌓아온 이미지는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건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그에게 일관되게 갖는 이미지에 의해 그의 정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그 사람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를 그 고정된 이미지가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그 이미지를 깨는 색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건 하나의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재홍이라는 배우는 독보적이다. 매번 ‘은퇴설’이 나올 정도의 파격적인 변신에 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는커녕 더더욱 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그런 배우이기 때문이다. 

 

안재홍에게 ‘은퇴하는 거 아니냐’는 대중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작품은 작년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2023)’이다. 웹툰 자체가 워낙 파격적이었다. 특히 그 작품 속 주오남이라는 캐릭터는 외모콤플렉스를 가진데다 컴퓨터에 약 2만 개의 야동을 저장해 놓을 정도로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끼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마스크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통해 안재홍 스스로도 밝혔듯이 “더럽고 음침한” 캐릭터를 완전히 그 인물 자체인 것처럼 연기한다는 건 부담되고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그가 기존에 해왔던 역할들이 대부분 순수하고 수줍음 많은 청년 캐릭터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그의 인생캐릭터로 불리는 ‘응답하라 1988(2015)’의 정봉이를 떠올려보라. 2대8 가르마를 한 채 덕선(혜리)의 친구 미옥(이민지)과 어색하지만 설레는 연애를 하던 정봉이의 모습을. 또 ‘쌈, 마이웨이(2017)’에서 백설희(송하윤)와 연인 사이로 등장했던 주만이의 모습은 어떤가. 흔들리는 마음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후회한 후 노력 끝에 다시 사랑을 이루는 너무나 현실적인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멜로가 체질(2019)’에서 스타 드라마 감독 손범수로 등장해 드라마 작가 임진주(천우희)와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밀고 당기는 케미를 선보였던 건? 

 

‘마스크걸’의 파격변신은 그래서 그간 이 수줍은 청년으로 각인되어 가던 안재홍이 그런 이미지로 굳어지기를 거부하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그는 코로나19로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결국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사냥의 시간(2020)’에서부터 삭발한 채 탈색한 헤어스타일을 한 반항기 가득한 모습으로 변신을 예고했다. 2023년에는 ‘마스크걸’의 주오남 역할과 더불어,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로 실존 인물인 강양현 코치 역할을 연기했는데 실제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몸무게를 10킬로 늘리기도 했다. 

 

‘마스크걸’의 은퇴설은 올해 방영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에서 또 불거졌다. 이솜과 과감한 19금 연기에 도전한 안재홍은 극중 섹스리스 부부의 남편인 사무엘 역할을 진짜 부부 같은 모습으로 찰떡같이 연기해냈다. 당연히 부부 간의 내밀하고 대담한 대사들은 물론이고 행위들까지 연기해내야 하는 부담이 분명했을 테지만, 그의 리얼한 연기는 “내 얘기 같다”는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물론 솔직한 성담론이 담겨진 작품이지만, ‘LTNS’는 여기에 빈부의 차이와 성 문제와의 상관 관계 같은 사회적 코드들을 녹여낸 블랙코미디로 호평받았고, 거기에는 은퇴설이 또 나올 정도로 변신에 도전한 안재홍의 지분이 분명했다. 

 

그런 그가 이제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으로 돌아온다. ‘멜로가 체질’로 인연을 맺은 이병헌 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코미디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어느 날 누군가에게 배달된 의문의 기계에 들어간 민아(김유정)가 닭강정으로 변하게 되고, 그걸 되돌리기 위해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다. 2019년 네이버 웹툰 ‘지상최대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너무 황당한 설정인지라 과연 드라마에도 어울릴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해지는 작품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극한직업’ 같은 독특한 세계를 특유의 코미디로 풀어내는 이병헌 감독이 대본과 메가폰을 잡았기에 오히려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 됐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안재홍과 류승룡 같은 배우가 주는 아우라다. 특히 그간의 필모를 통해 예사롭지 않은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 안재홍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 

 

안재홍은 여러 역할들을 통해 여러 이미지와 얼굴들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꿰어지는 하나의 이미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바로 ‘덕후 기질’ 같은 모습이다.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도 모든 것에 마니아틱한 열정을 드러내는 인물로 심지어 전화번호부를 정독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고, ‘멜로가 체질’에서는 드라마 연출에 푹 빠져사는 스타감독을, ‘마스크걸’에서는 그런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들과는 상반되게 비정상적인 성에 빠져사는 샐러리맨을 보여줬으며, ‘LTNS’에서도 섹스리스 부부가 갖는 허탈함 속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찬가지로 ‘닭강정’에서 백중은 짝사랑해온 민아를 본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닭강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코미디는 그 웃음의 코드에 일단 어느 정도 적응하고 공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닭강정’은 그런 의미에서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항간에는 벌써부터 잘 되면 명작이지만 안 되면 ‘괴작’이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하나의 이미지에 멈춰서기보다는 심지어 은퇴설이 나오더라도 계속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넓혀나가는 안재홍의 행보는 박수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아마도 우리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열어보고 싶다면, 늘 은퇴하는 마음으로 기존의 편안했던 삶의 틀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안재홍은 연기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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