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행보와 가능성

 

어째서 나이 들어가는 배우를 보는 느낌과 코미디언을 보는 느낌은 다를까. 이순재, 박근형, 최불암. 나이 든 노년의 배우들에게서 연륜은 나이테처럼 쌓여 연기에서도 더 깊은 맛을 준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지워져가는 코미디언들을 떠올려보라. 한때 우리를 그토록 웃게 만들었던 고 배삼룡 선생이나 고 서영춘 선생.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때를 풍미했던 최양락, 김학래, 엄용수 같은 현역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코미디언들에게서도 배우들과는 달리 느껴지는 건 어떤 애잔함이다.

 


'김준호(사진출처: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아마도 그건 직업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늘 밝게 웃으며 웃음을 주던 이들이 어느 날 나이 들어간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데서 오는 애잔함. 하지만 그것뿐일까. 혹 배우를 보는 시선과 코미디언을 보는 시선이 다르고, 배우들이 가진 환경과 코미디언들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3회를 맞은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그런 것이었다. ‘부산바다 웃음바다라는 캐츠 프레이즈에 걸맞게 다이내믹 부산의 이미지와 왁자지껄 한 바탕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 페스티벌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이 행사를 이토록 세우려 노력하는 이들의 안간힘을 슬쩍 슬쩍 발견하게 될 때면 느껴지는 것이 저 애잔한 마음이다.

 

이 행사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지금껏 이끌어온 김준호에게서 느껴지는 것도 그런 것이다. 방송에서 보면 영락없는 살살이캐릭터지만 행사장에서 본 그의 모습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3회를 거치며 규모가 커진 행사에 꽤 많아진 하객과 관계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담소를 나누었고, 우리네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설 수 있기 위해서 행사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동분서주 속에는 왜곡되고 편향된 우리네 코미디의 현실 그리고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들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네 코미디는 너무나 방송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다. 코미디를 얘기하면 <개그콘서트>, <웃찾사>, <코미디 빅리그> 정도를 얘기하는 수준이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공연형 코미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이 방송 코미디와 그다지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연형 코미디가 없고 방송형 코미디만 남아 있다는 건 코미디의 저변이 약하다는 얘기다. 해외의 코미디가 페스티벌 현장은 물론이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카페에서, 공연장에서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다면 우리의 코미디는 방송에 포박되어 있다.

 

방송형 코미디가 마치 코미디의 전부인 것처럼 되다보니 대사 중심으로 흐르는 개그가 그 중심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우리네 코미디가 본래부터 이런 편향과 왜곡을 갖고 있던 건 아니다. 굳이 남사당패 같은 먼 과거로 가지 않더라도 유랑극단이나 서커스의 시절 코미디는 만담만이 아니라 기예를 포함한 쇼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글링을 하거나 두발 자전거를 타거나 마술을 하고 심지어는 공중그네를 타면서도 코미디가 가능했다. 그건 저 남사당패 줄타기 명인이 제 몸을 살판과 죽을 판 위에 세워두고 그 아슬아슬함을 이완시켜가며 웃음을 만들 던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이번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개막식에 갈라쇼로 보여진 해외의 코미디는 대부분 기예를 포함한 공연형 코미디들이었다. 그들은 저글링을 하거나,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체조를 보여주고, 놀라운 복화술이나 마술은 물론이고 독특한 예술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그림자 연극을 코미디와 버무려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은 논버벌이 훨씬 더 효과적인 코미디의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한때 저질 코미디로 비하하며 버렸던 그 공연형 코미디들을 저들은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형 코미디가 중요한 건 그것이 생활 밀착형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거기에 종사하는 코미디언들의 생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방송형 코미디는 물론 고유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코미디언들의 살길이 오로지 이 방송에만 집중된 구조는 오히려 이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그것은 생계를 넘어 코미디언에 대한 인식조차 너무 고정적으로 굳혀버린다.

 

왜 코미디언들은 아티스트가 되면 안 되고, 배우가 되면 안 되는가. 왜 웃음을 준다는 사실이 그토록 저평가 받아야 한단 말인가. 왜 개그맨들은 잔뜩 보이는데 코미디언들은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 되었나. 왜 한때 우리네 삶에 즐거움을 주었던 동춘 서커스 같은 기예를 포함한 웃음들은 지금 어느 변방으로 밀려난 공터에서 쓸쓸한 천막을 치며 살아가게 됐을까.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의 그 왁자함과 유쾌함 이면에 이처럼 왜곡된 우리네 코미디의 현실을 되돌리려는 간절함과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김준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3대천왕>, 백종원에 김준현을 더한 먹방 고문이라니

 

백종원은 쿡방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먹방도 수준급이다. 사실 쿡방과 먹방은 동전의 양면이다. 결국 요리를 만드는 건 먹기 위해서고, 먹기 위해서는 요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요리에 초점이 맞춰지느냐 아니면 시식에 초점이 맞춰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백종원의 3대천왕(사진출처:SBS)'

<백종원의 3대천왕>SBS가 요즘 대세인 백종원을 데려와 만든 먹방 프로그램이다. 많은 이들이 백종원의 쿡방을 기대했겠지만 그는 요리 하지 않는다. 대신 전국 각 지에 있는 숨겨진 맛집들을 발품을 팔아 찾아가 그 특별한 맛을 선보인다.

 

돼지불고기라는 주제로 찾아간 나주, 김천, 대구 등의 맛집은 그가 오래 전부터 찾았던 음식점들. 돼지불고기를 시켜놓고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백종원은 거기에 설명을 덧붙인다. 그냥 돼지불고기에 야채를 싸서 먹는 게 아니라 어떤 집에서는 거기 반찬으로 나온 고추 절임을 툭 잘라서 그 국물을 소스로 쳐서 먹고, 쌈을 싸는 데도 가장 맛이 좋을 수 있는 일종의 시식 노하우를 설명해주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여행이라면 <3대천왕>이 백종원을 통해 보여주는 건 아는 만큼 맛있는 게 음식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백설명이라 닉네임 붙인 그는 음식을 먹는 데도 그 음식의 재료가 무엇이고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했으며 어떤 반찬과 함께 했을 때 그 맛이 달라진다는 걸 소담스런 먹방과 함께 설명해주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식욕 고문일 수밖에 없는 백종원의 먹방. 하지만 그건 겨우 이 프로그램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본게임은 이들 음식점의 요리사들을 스튜디오로 모셔와 요리대결을 펼치는 것. 즉석에서 또 다른 먹방이 펼쳐지는데 거기에 선수(?)로 나서는 건 이제 김준현이다.

 

먹선수로 캐릭터화된 김준현은 특유의 놀라운 먹방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백종원이 음식에 대한 지식을 더한 먹방을 선보인다면, 김준현은 본능적인 먹방 리액션에 특유의 맛 표현이 그의 주무기가 된다. 간장 양념으로 한 돼지 불고기의 양념 맛만을 본 그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국수를 그냥 말아먹어도 될 만한 맛이라고 설명하기도 했고, 연탄에 구워낸 돼지 불고기를 먹고는 연탄을 씹어 먹고 싶을 정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먹방처럼 보이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을 스포츠 중계하듯이 풀어낸 것도 <3대천왕>의 특징이다.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음식의 향연은 스포츠 중계에서 해설자와 캐스터가 있는 것처럼 상황을 설명하고 그걸 해설하는 MC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식욕과 침샘을 자극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미칠 듯한 반응들도 스포츠 중계의 한 장면처럼 포착된다.

 

사실 먹방이 특별할 건 없다. 하지만 그 특별해보이지 않는 먹방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백종원과 김준현 같은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출연자들이다. 돼지 불고기 같은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을 소재로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역시 친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진 백종원다운 먹방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다만 지나치게 먹방의 자극적인 장면으로만 흘러가는 건 조심해야 될 부분이다. 물론 그 자극이 먹방의 힘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반복적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자칫 자극 자체가 무감각해질 수 있다. 혀와 식욕을 자극하기보다는 그 음식의 맛을 보다 정보적으로 잘 전달해주고 거기에 담겨진 비의를 소개함으로써 적절히 뇌와 감성을 자극해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이 롱런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신서유기>의 실험, 강호동에게는 각별한 까닭

 

이제 9월에 인터넷을 통해 방송될 <신서유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정서적으로는 부정적이다.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 과거 <12>의 주축이었고 한 때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거의 바닥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영석 PD 같은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스타 PD가 만드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신서유기>에 대한 사전 반응이 그리 좋지 않은 건 출연자들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서유기(사진출처:CJ E&M)'

하지만 예고편이 살짝 공개된 이후의 반응을 보면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와는 달리 재미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인다. 예고편이 올라오고 단 하루만에 100만 뷰를 넘어선 건 이런 뜨거운 반응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예고편 내용도 흥미롭다. 예고편 속에서 옛날 사람으로 표현된 강호동은 오히려 현재에 적응 못하는 예능인의 이미지를 캐릭터화 했다. 나영석 PD 다운 역발상이다.

 

과거 <12>의 전성기를 일요일 저녁마다 기다리며 봐왔던 시청자라면 이들이 다시 모여 떠난 여행이 못내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12>을 나오면서 저마다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천상계에 있는 것처럼 잘 나가던 그들이 이제는 추락해 지상에서 떠도는 모습을 여행이라는 형식으로 잡아내면서 거기에 <신서유기>라고 이름붙인 건 기발한 승부수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신서유기>에 대한 기대가 큰 건 강호동일 것이다. 강호동은 방송 복귀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낸 것이 없다. 그게 너무 장기화되다보니 이제는 트렌드가 지나버린 옛날 예능인(?)’처럼 치부되는 경향까지 생겼다. 물론 이것은 강호동의 예능 스타일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스타 중심이 아닌 콘텐츠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예능 현실에서는 스타일보다 어떤 프로그램과 PD를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강호동이 복귀하면서 했어야 할 것은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뭐든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모험적인 선택이어야 했다는 점이다. 다소 무리하게 보일 수 있어도 늘 프론티어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성적표와 무관하게 강호동의 이미지가 세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리얼 버라이어티 트렌드가 지나가고 리얼리티쇼로 바뀌어가고 있는 와중에 복귀한 강호동은 여전히 옛 트렌드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스튜디오 토크쇼에서 캐릭터 쇼를 하는 야외형 버라이어티까지, 새로운 느낌이 별로 없었다.

 

<신서유기>는 강호동에게 그래서 각별한 도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방송 플랫폼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 들어가 있다. 이 작은 플랫폼 차이는 엄청난 결과물의 차이로 이어진다. <신서유기> 예고편에도 보였듯이 아예 상품명을 대놓고 퀴즈를 하는 것이 가능하고, 거의 일상에 가까운 모든 것들이 과거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는 편집되었을지 몰라도 이 인터넷 방송에서는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호동에게 <신서유기>가 각별한 것은 1인 미디어 시대, 인터넷 방송 시대의 프론티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만일 강호동이 기존 플랫폼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면면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다면 그는 인터넷 방송 시대에 기성 예능인들이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전범을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재미와 기대요소들이 <신서유기>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정서를 이겨낼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 플랫폼이 기존 방송 플랫폼과 다른 점은 상당 부분 클릭수가 가진 힘에 의해 콘텐츠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보던 이들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분명히 있다. <신서유기>의 성패는 그 새로움이 관건일 수밖에 없고, 강호동이 거는 남다른 기대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용팔이>, 깨어난 김태희 멜로의 시작은 독?

 

<용팔이>가 방영되기 전부터 김태희 연기력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도 대놓고 기자들은 연기력 논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태희 역시 이제는 그런 논란에 대해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너무 많이 제기되다 보니 그 대처에 있어서도 당황하는 모습보다는 능수능란하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그녀는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노력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용팔이(사진출처:SBS)'

드라마가 방영되었지만 막상 김태희의 분량은 적었다. 간간히 회상 신에서 그녀의 분량이 나왔지만 대부분은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상 4회까지 김태희가 한 연기는 반듯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는 지적들이 나왔다. 심하게는 누워서 돈 번다는 얘기도 나왔고, 누워만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기력이 여전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사실 이건 김태희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평가일 수 있다. 즉 본격적으로 연기를 보여준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기되는 연기력 논란이라면 사실 어떤 연기를 보여줘도 논란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준다. 게다가 누워 있는 연기도 연기이고 그것 역시 결코 쉬운 연기는 아닐 것이다. 본래 대사라는 것이 움직이면서 나올 때 가장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움직임이 제한된 누운 상태에서 던지는 대사는 자칫 잘못하면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김태희의 연기는 대단히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논란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한 번 엇나간 흐름을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젊은 시절부터 꼬리표가 달려버린 연기력 논란은 그렇게 떼어버리기 어려운 주홍글씨처럼 김태희라는 이름 석 자에 달라붙어 있다.

 

거기에 지금의 연기야 그렇다 쳐도 그 연기까지 오는 기간이 1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는 사실을 덧붙이면 연기력 논란의 문제는 더욱 떨치기 어려운 사실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연기력 논란을 한 번 겪고는 그대로 영원히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상황을 겪기도 하는데, 김태희는 그런 논란 속에서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작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4회가 지난 후 <용팔이>에서 김태희는 눈을 뜨고 본격적인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가 눈 뜨고 보여주는 연기의 선이 멜로. <용팔이>는 진화된 의학드라마 형태로 그 안에 누아르적인 요소부터 액션, 사회극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포괄한 작품이다. 그런데 김태희가 보여줄 연기가 이 많은 틀 중에서 우선 멜로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그녀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물론 이 선택은 드라마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즉 많은 이들이 멜로가 끼어든 장르물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사실상 아직까지 지상파 드라마에서 멜로 없이 성공한 장르는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대중성을 높여주는 건 결국은 멜로다. 그러니 김태희가 눈을 뜨는 시점은 정확히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던 드라마가 이제 멜로라는 틀로 그 몰입도를 높여놓는 단계와 일치한다.

 

멜로 연기는 지금껏 김태희가 계속 보여줬던 연기다. 그러니 아무리 잘해도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기 어렵다. 오히려 악역을 하거나, 액션을 선보이거나 한다면 다른 반응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주원처럼 젊은 배우의 사랑을 받는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게 되었다. 이 멜로 구도는 분명 드라마에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김태희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모든 건 그녀로부터 생겨난 일들이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그 난관을 극복해내야 한다. <용팔이>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것이 김태희에게도 좋은 선택인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연기력 논란을 제대로 털어내고 싶다면 지금껏 하지 않았던 역할로 기존 이미지를 깨버리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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