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 짜깁기로는 유재석도 어쩔 수 없다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을 찾아서(이하 슈가맨)>는 시작 전부터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유재석이 처음으로 선택한 비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다. 2%에 못 미친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유재석이라는 최고의 MC를 데려온 프로그램치고는 너무나 완성도도 또 화제성도 못 미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슈가맨을 찾아서(사진출처:JTBC)'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90년대 노래 한 곡으로 최고의 가수로 등극했다가 사라져버린 슈가맨을 찾아 그 곡을 리메이크해 차트 역주행을 하겠다는 콘셉트는 이미 <무한도전> 토토가나 <불후의 명곡>과 다른 아이템이 아니다. 오히려 슈가맨이라는 한정은 이들 프로그램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만을 만들었다.

 

<무한도전> 토토가에 등장한 가수들은 지금은 잊혀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웬만한 시청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가수들이었다. 하지만 <슈가맨>의 가수들은 다르다. 첫 회에 출연했던 박준희와 김준석은 물론이고 2회에 출연한 유승범과 김부용도 마찬가지로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이들에 대한 화제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 건 그래서다.

 

물론 유승범의 질투같은 곡은 들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노래다. 동명의 드라마 OST였기 때문에 무수히 들었을 곡이고, 또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특정 상황에 자주 등장했던 곡이다. 그나마 반가운 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원하듯 차트 역주행을 시킬 만큼의 반향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슈가맨>의 형식이 그만큼 시청자들을 빨아들일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 그 날 출연할 슈가맨이 누구인가를 퀴즈 형식으로 풀고, 그를 무대 위에 소환해 토크를 하는 건 너무 전형적이다. 마치 오래된 옛 가수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스튜디오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이렇게 슈가맨을 불러 주목시킬 수 있는 건 <무한도전> 정도가 될 것이다. 낯선 슈가맨을 이미 캐릭터가 다 잡혀 있는 프로그램에 세우는 것과 그렇지 못한 프로그램에 세우는 건 그 차이가 너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무대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원하듯 슈가맨의 노래와 리메이크곡이 차트 역주행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음악쇼적인 요소다. 그런데 <슈가맨>의 무대란 너무 어정쩡하다. 토크쇼를 하는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누가 시켜 노래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노래를 들으며 함께 호응해줄만한 관객도 없다. 물론 승패 판정을 위한 관객 몇 명이 있지만 이런 정도로 노래가 전하는 감동을 전해주기는 어렵다.

 

<슈가맨>은 유재석을 데려온 프로그램치고는 너무 안이한 기획이다. 물론 2회 파일럿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완성도를 채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발군의 역량을 가진 유재석이라고 해도, 소재에서부터 프로그램의 완성도까지 너무 빈틈이 많은 이 프로그램을 살리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새로운 투유 프로젝트가 필요한 상황이다. <슈가맨을 찾아서>의 앞에 굳이 투유 프로젝트라고 붙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재석과 유희열을 중심으로 몇 개의 파일럿을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제 프로그램의 성패가 스타 MC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시대는 지났다. 물론 유재석 같은 스타가 있다면 훨씬 유리할 것이지만, 그래도 잘 기획된 프로그램이 우선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짜깁기 정도로는 유재석도 어쩔 수 없다.



<미세스캅>, 자본기계는 사이코패스와 뭐가 다를까

 

물론 드라마가 극화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세스캅>에 등장하는 KL그룹 회장 강태유(손병호)는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살인을 사주하는 조폭 두목처럼 그려진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비리 경찰을 매수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정을 덮기 위해 살인을 사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그 힘은 모두 돈, 자본에서 나온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미세스캅>이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강태유가 살인을 사주하고 현장을 벗어나다가 같은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짧은 순간 강태유와 연쇄살인범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강태유는 자신의 살인 사주를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범이 찍힌 블랙박스의 메모리칩을 최영진(김희애) 형사에게 건네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강태유라는 인물을 자신의 살인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범. <미세스캅>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즉 비뚤어진 재벌이나 연쇄살인범이나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별다른 동요나 감정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렇게 범죄와 결탁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우리는 자주 봐왔다. 왜 그럴까.

 

물론 재벌은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걸 대신하는 건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다. 돈은 모든 걸 덮어버린다. 수치화해버리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거래 관계로 치환해버린다. 자본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4대강 사업처럼 사람의 터전은 물론이고 자연의 터전에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포크 레인을 드리우는 것 같은 그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앞에 자본이라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 뒤로 숨어 그것이 자신의 죄라는 걸 애써 부정한다. 마치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살인을 살인이 아닌 하나의 게임으로 치부하듯이.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마를 둘 다 상대하는 존재가 그냥 형사가 아니라 미세스캅이라는 건 그래서 꽤 상징적이다. ‘미세스캅을 굳이 이 드라마가 캐릭터로 그린 건 아줌마라는 특징을,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형사라는 직업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치 엄마가 이 위험천만의 사회 속에 내보내는 딸을 걱정하는 모성애가 겹쳐진다.

 

15일 간격으로 가출한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 게임을 하듯 잔인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거래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비뚤어진 재벌. 그 앞에 서 있는 미세스캅이란 인물은 그래서 다분히 우리네 살벌한 현실 앞에서 가족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끌어낸다.

 

그녀의 분노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에 똑같이 절절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우리는 모두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 앞에 매일 같이 맨살을 드러내고 떨어야 하는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저 극화된 드라마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치부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몹시도 불편해지는 건 어찌된 일일까.



김구라, 이혼 발표에도 지지받는 까닭

 

사실 김구라가 아내와의 문제를 방송에서 털어놓을 때부터 왜 이혼 안 하지?”하고 생각했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1,2억도 아니고 몇 십 억에 달하는 돈이 남편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투자로 날아가 버렸다는 걸 알고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게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공황장애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겪을 정도로 치명적인 충격을 받은 그가 선택한 것은 이혼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같이 있으면 더 고통스럽고 불화의 골만 더 깊어질 것이 뻔했던 김구라는 아내와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일은 쉬지 않았고, 특유의 솔직함도 변치 않았다.

 

방송에서 그는 자주 자신의 가정사를 거론했다. 두루뭉술한 진술이 아니라 구체적인 빚의 액수와 정황까지도 그는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 그것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문제가 다 드러난 상황에서 그걸 숨기면서 방송을 한다는 건 김구라 답지 않다고 스스로도 여겼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 어려운 이야기까지 다 드러내면서 방송 일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그걸 듣게 되는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위기의 남자캐릭터로 만들어 희화화했던 것. 반복적으로 가정사 이야기를 하고, 토크의 도마 위에 빚 이야기를 꺼내고, 누군가의 상담을 해주면서 자신의 불운한 삶을 꺼내놓는 김구라는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예능화 했다. 제 아무리 사생활까지도 대중들과 공유되는 방송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불행까지 웃음으로 바꿔 공유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노력한 데는 아마도 아들 동현이에 대한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아내와는 불화를 겪게 됐지만 어쨌든 아이에게는 엄마다. 게다가 한참 민감한 시기가 아닌가. 그러니 아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면서 부모의 문제를 전가시키려 하지 않은 노력이 김구라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는 느껴진다. 그는 이혼을 발표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성년이 될 때까지는 자신이 키우고 그 이후에는 아들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 물론 빚은 자신이 떠안고 끝까지 가겠다는 아내에 대한 배려 역시 아들에 대한 배려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혼까지 가는 과정은 사실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일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김구라는 끝까지 쿨했고 배려 깊었다. 문제에 깊숙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려 노력했고, 자식과 아내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고 방송인으로서의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과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김구라의 이혼발표가 그래서 안타까움과 함께 나아가 김구라에 대한 응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이 일련의 과정들을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온 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문제는 겪는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단번에 모든 걸 끊어 상황을 무조건 벗어나려 하기 보다는, 사안을 객관화하고 쿨하게 받아들이며 차근차근 소통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김구라의 이런 문제 해결의 과정들은 그래서 대중들에게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여겨진다. 요즘처럼 문제가 생겨도 대충 덮고 넘어가기 일쑤인 현실에서는 더더욱.



연예인은 정치적 소신을 밝히면 왜 위험한가

 

도대체 4대천왕이 누구냐?” 김제동의 이 지극히 예능적인 질문에 대해 정형돈 역시 자신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 김제동이 “4대강은 우리가 알겠다라고 한 말이 빌미가 되었다. 정형돈은 마치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는 듯이 그런 위험한 이야기는 저한테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너무 짧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에 내포된 의미는 꽤 크다. 거기에는 연예인이 정치적 소신을 밝히면 왜 위험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김제동은 어찌 보면 그 대표적인 사례의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소신을 그가 하는 토크 콘서트와 방송을 통해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주목받은 인물이다. 한 때는 그로 인해 탄압을 받는 듯한 이미지를 갖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이미지가 오히려 방송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주는 상황이다.

 

‘4대천왕이야기에 뜬금없이 ‘4대강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연예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민감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장훈이나 이승환 같은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거침없는 소신을 밝히는 연예인들은 확실한 지지를 얻어가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와는 다른 소신을 가진 이들에게 배척받는 인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그래도 한 때는 SNS가 확산되면서 소신 발언을 하는 이른바 소셜테이너들이 꽤 많이 등장한 적이 있다. 그들은 당대의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것이 지속적인 활동(?)이 아닌 한두 번의 이벤트적인 성격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 소셜테이너라는 지칭은 쑥 들어간 느낌이다. 그만큼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내보이는 연예인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것은 그것이 어떤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다기보다는 우리네 현실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내보이는 것으로 이 편이냐 저 편이냐를 나눠버리는 불편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 무조건 좌측으로 몰아버리고,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 우측으로 몰아버리는 그 불편함.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는 연예인처럼 두루두루 대중적인 지지를 갖기를 원하는 인물군들에게는 의도치 않은 불편함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들이 이처럼 어떤 현실적인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단지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예인들은 그 언급의 무게감이 좀 더 클 뿐이다.

 

정형돈의 이야기는 어쩌면 김제동의 상황을 끌어와 웃음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을 포함해서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이 지독하게도 불편한 일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를 말해주는 하나의 풍자가 된다. 어마어마한 국세를 쏟아 부어 결과적으로는 삶의 터전을 망쳐버린 ‘4대강사업에 대해 얘기하는 건 국민으로서는 당연한 권리다. 누구나 4대강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하지만 정형돈이 얘기하듯 이러한 정치적 소신은 위험한 발언이 된 것이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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