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통쾌하고 먹먹하고... 이토록 완벽한 인과응보가 있을까

더 글로리

“아우 얘 맨발로 괜찮니? 왜 하필 니트를 입었어? 젖으면 무거울 텐데. 물이 너무 차다. 그치. 춥다. 우리 봄에 죽자 응? 봄에.” 절망 끝에 어린 문동은(정지소)이 죽기 위해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저 편에 또 다른 사람이 죽으려 한다. 그걸 보고는 문동은 그 사람을 구한다. 그런데 그렇게 구해진 사람이 자신을 구한 이가 어린 소녀라는 걸 알고는 그렇게 맨발에 니트를 입고 물에 들어온 걸 걱정하는 엉뚱한 말을 한다. 그러면서 너무 추우니 봄에 죽자고 한다. 지금 말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 등장하는 이 시퀀스는 웃프다. 절망의 끝을 보여주지만 그 곳에서 희망을 전한다. 결국 그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이 이 고통을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마음은 못내 아리고 아프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을 구하는 건 다름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고, 그래서 그 누군가를 구하고픈 마음이라는 걸 이 시퀀스는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웃게 만든다. 유머가 들어 있는 이야기지만, 그건 우리 삶의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은가. 혼자서는 버텨내기 어려운 삶이지만 그걸 공감함으로써 웃음으로 넘어서고 기대며 살아갈 수 있는 것. 

 

<더 글로리> 파트2가 드디어 공개됐다. 파트1이 끝나고 너무나 기다리던 시청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나머지 내용들이 전개됐다. 과연 문동은은 이 지난한 복수극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그 끝은 제목처럼 ‘영광스러운’ 빛으로 가득할까. 시청자들은 기대감과 더불어 어떤 마무리가 될 것인가에 대해 파트2를 그 어느 때보다도 목 놓아 기다렸다. 그리고 공개된 파트2는 이러한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통쾌한 인과응보에 먹먹한 생존자들의 온기가 더해지며 더할 나위 없는 엔딩을 통해 진짜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어서다. 

 

“왜 없는 것들은 세상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이렇게 말했던 박연진(임지연)이고, 그건 안타깝게도 가진 자들이 죄를 지어도 벌 받지 않는 우리네 현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지만, 문동은은 그런 말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지옥 끝까지 몰아붙인다.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자세한 그 과정을 말하긴 어렵지만, 놀랍게도 문동은이 짠 계획은 공고하게만 보였던 저들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 그들끼리 치고받는 파멸로 그들을 이끌어간다. 

 

그 복수의 과정은 ‘인과응보(因果應報)’, 즉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그 뜻 그대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가진 자들의 개가 되어 저들이 시키는 대로 폭력을 일삼다가 이제는 주인을 물려했던 손명오(김건우)가 결국 저들에 의해 자신이 했던 것 같은 폭력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식이다. 약에 취한 이는 약으로 끝을 마주하고, 입을 잘못 놀린 이는 말을 못하는 형벌에 취하며, 부모 잘 만나면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 여겼던 이는 바로 그 부모로부터 배신당해 벌을 받는다. 

 

그 복수는 단순하지 않고 결코 쉽게 전개되지도 않는다. 문동은의 평생에 걸친 치밀한 계획이 있고 그를 돕는 주여정(이도현)과 강현남(염혜란) 같은 이들이 있는데다, 죄를 지은 자들이 가진 저마다의 엇나간 욕망들이 결합되어 파멸의 불꽃이 타오른다.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어째서 저들의 엇나간 욕망이 자신들을 나락으로 이끄는가 하는 그 사필귀정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게다가 복수만이 이러한 끔찍한 폭력 앞에 무너졌던 피해자들에게 끝이 아니라는 것 역시 드라마는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복수로 저들의 파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되찾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걸 주여정의 목소리를 통해 전한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누군가는 그걸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는 복수로 되찾는 거죠. 그걸 찾아야만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더 글로리>는 그래서 복수극의 끝장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피해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의지하고 그래서 “봄에 죽자”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내는가를 그 단단한 연대를 통해 그려낸다. 실로 김은숙 작가는 기꺼이 이 땅의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해 칼춤을 추는 망나니가 되기를 자처한 듯 대사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였다. 멜로에서 그토록 달달했던 김은숙 작가의 대사들이 이토록 살풍경한 저주로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준다. 

 

김은숙 작가가 피해자들의 망나니를 자처했다면 배우들은 그 대본 위에서 기꺼이 김은숙 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극의 중심을 끝까지 잃지 않고 잡아낸 송혜교의 연기 변신은 그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향후의 작품들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여기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박성훈, 정성일, 김히어라, 차주영, 김건우, 정지소, 신예은 등등 모든 연기자들이 마치 작두를 탄 듯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임지연과 김히어라의 미친 악역 연기와 이 복수극에 따뜻함과 간절함을 더해준 염혜란 그리고 배우로서의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 정성일, 박성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더 글로리>의 훌륭한 망나니들이었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 또한 구하는 일이 아닐까. <더 글로리>는 피해자 문동은이 어떻게 생존해내는가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전한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누가 됐든 뭐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열여덟 번의 봄이 지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걸. 친구도 날씨도 신의 개입도요. 그리고 봄에 죽자던 말은 봄에 피자는 말이었다는 걸요.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렇게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는 문동은의 목소리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희망을 건네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리 대중에게는 어떻게 읽힐까

스즈메의 문단속

“다녀오겠습니다” 아마도 이 대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 담긴 정서를 한 마디로 담은 게 아닐까. 감독이 말했듯 문은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다. 아침마다 그 곳으로 나가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저녁에 돌아와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재난이라는 거대한 불가항력 앞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등굣길에 우연히 만난 사내 소타. 그는 폐허를 찾아다닌다. 스즈메는 그 사내가 마음에 걸려 자신이 알려줬던 폐허를 찾아갔다가 문을 발견한다. 그 문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해주는데, 그것은 이승과 저승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이기도 하다. 별 생각 없이 문 앞에 놓인 고양이석상을 뽑아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문이 열리지 않게 몸으로 봉인해온 고양이신 다이진이었다. 문이 열리면 그 곳으로부터 미나미라는 거대한 기둥이 빠져나오고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지진이 일어난다. 

 

문을 본 후 스즈메는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미나미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거대한 미나미가 폐허에서 솟아나오는 걸 본 스즈메는 그 곳을 찾아가 애써 문을 닫으려 하는 소타를 발견한다. 소타는 미나미가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문단속을 하는 소임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도망친 다이진이 소타를 스즈메 엄마의 유품인 세발 다리 꼬마의자에 가둬버리고 도망치자, 스즈메는 세발 다리 꼬마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다이진을 찾아 나선다.

 

말하는 고양이이자 신이 등장하고,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가는 문이나 저주를 받아 꼬마의자가 된 사람이 나오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판타지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지진이라는 재난상황은 일본에서는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아픈 현실적 상처다. 실제로 이 작품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했다. 이 작품은 그래서 대지진이라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아름다운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즈메와 소타의 이야기를 통해, 이 지진이 남긴 상처들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다. 

 

스즈메는 어린 시절 대지진으로 인해 엄마를 잃었고, 며칠을 엄마가 살아있다며 울며 찾아다닌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소타가 하는 이 일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고 앞장선다. 문을 닫기 위해서 그 문이 있던 자리가 폐허가 되기 전 사람들이 나눴을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그래야 문을 잠글 수 있는 열쇠구멍이 생겨난다는 설정은, 여러모로 재난이 파괴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다. “다녀올게”라는 말은 그래서 이 순간에는 더더욱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든다. 

 

영화는 스즈메와 소타가 사라진 다이진을 찾아나서는 로드무비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여정 중 도처에서 열린 문으로 미나미가 튀어나오는 걸 두 사람이 막는 긴박한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처럼 끔찍한 재난이 눈앞에 펼쳐지기 직전까지 보이는 두 사람의 여정은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해 마치 즐거운 여행길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는 점이다. 그 여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스즈메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인간적인 온기를 전해준다. 

 

즉 이 이중적인 변주가 <스즈메의 문단속>이 전하고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의미’ 같은 메시지를 강화한다. 즉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미나미가 보이지 않아 너무나 평화롭게 살아가는 정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정조를 띤다. 그것은 곧 벌어질 비극을 모르는 이들의 평화와 행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빛의 마술사라는 칭호에 걸맞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일상에 깃든 작은 빛들마저 축복처럼 느껴지게 구현해낸다. 심지어 도시나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이나 설렘, 두려움 같은 감정들까지 그가 그려낸 영상을 통해 전해질 정도다. 

 

반면 스즈메와 소타는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비극을 맞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을 희생하려는 선택까지 하게 되는데, 그것은 스즈메가 어린 시절 지진 때문에 엄마를 잃은 그 충격과 연관되어 있다. 그가 소타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소타가 마침 세발 다리 꼬마의자가 되는 저주는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준 꼬마의자라는 점에서 엄마와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세발 다리 꼬마의자는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어 재밌는 장면들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 불안정함과 그럼에도 누군가 그 위에 앉으면 애써 버텨내는 소타의 모습을 통해, 재난이라는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삶과 그럼에도 이를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를 은유한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스즈메의 여정 속으로 들어와 함께 여행하는 과정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비극 같은 허망함 앞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말해준다. 

 

결국 스즈메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한다. 폐허 위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고 다니는 어린 스즈메를 끝내 안아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밝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는 희망을 선사한다. 그 상황은 미래에서 온 스즈메가 과거의 어린 스즈메에게 하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어린 스즈메가 엄마가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현재의 스즈메가 마주하고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트라우마를 벗어나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이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아마도 우리 식의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월호 참사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우리에게 벌어졌던 그 많은 인재들을 대입해보면, 제대로 된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한 미래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관점은 최근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과거사 관련 문제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과거를 마주하지 않고 과연 미래의 문은 열릴까. 나라마다 다른 국가적 트라우마가 있게 마련이다. 그걸 넘기 위해서는 저마다 과거에 벌어졌던 그 일들의 진실을 알아야 하고 또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거기서 비로소 과거의 문이 닫히고 미래의 문이 열릴 테니까. (사진:영화'스즈메의 문단속')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사랑이라 밀해요

“세상 외로워 보이고 세상 심심해 보이는 그 등짝이 제일 별로라고. 겉만 멀쩡하면 뭐해? 그런 축축한 등짝을 달고 사는데. 미련해 보여서 싫어.”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이성경)는 동진(김영광)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애증이 담겨있다. 그건 다름 아닌 ‘불쌍하다’는 이야기지만, 우주는 애써 그게 ‘별로’이고 ‘싫다’고 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은 우주가 동진에게 접근한 이유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주가 동진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그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마희자(남기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마희자는 우주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내연녀 마희자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화를 속으로 삭이다 암에 걸렸다. 겨우 언니와 동생과 함께 버텨가며 살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들이 살던 집조차 마희자가 빼앗아버린다.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경에 이른다.   

 

“매일 매 순간 매 초마다 생각했어. 내 주제에 무슨 복수냐. 관두자. 참는 게 남는 거다. 근데 이거 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산 말이거든? 나는 여전히 그 때 우리 엄마가 그 아줌마 머리채라도 잡았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암은 안 걸렸을 거 같아. 그래서 난 뭐라도 해야겠다고. 안 그럼 내가 미쳐버릴 것 같거든.” 

 

그런데 그렇게 복수하기 위해 동진의 회사에 들어온 우주는 가까이서 이 남자를 들여다보며 연민을 느낀다. 지독히도 당하고 아프게만 살아가는 사람인데 뭐 하나 아프다고도 말하지 않고 항변조차 않는 남자. 그의 주변에는 배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7년 만났던 애인이 배신했고, 살뜰하게 자신이 가정사까지 일일이 챙겨줬던 거래처 본부장이 배신을 했으며, 직원마저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배신을 했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그 배신의 상처 앞에 이렇다 할 말 한 마디를 토로하지 않는다. 애인이 배신했을 때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고, 배신한 거래처 본부장을 찾아가 “술 적게 드시고 건강 챙기라”고 말한다. 직원의 배신을 알고도 그는 대놓고 뭐라 하지 않는다. 라이벌업체의 신대표(신문성)가 그 배후인 걸 알고 그 사실을 드러내면 또 다른 직원에게 접근할 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 항변도 하지 않고 늘 당하기만 하는 그가 우주는 몹시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혼자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눈에 밟히고, 비틀대다 차가 달려와도 마치 그대로 죽고 싶다는 듯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애써 끌어당겨 구해낸다. 그러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우주는 끝없이 대놓고 동진에게 속에 있는 날이 선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자 참다못한 동진이 드디어 입을 연다. 

 

“근데요, 그렇게 매번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살면 편해요? 심우주씨 눈엔 다른 사람들이 미련해서 참는 거 같은가 본데, 속에 있는 말 다 해버리면 실시간으로 내 말에 상처받는 얼굴들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참는 거보다 더 고역이라서 안간힘 쓰는 사람도 있어요.” 동진의 그 말은 우주를 주춤하게 만든다.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와 동진의 관계는 결코 사랑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아니 복수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마음은 우주가 동진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고 어떤 지점에서는 지독히도 상처받은 이들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없이 저마다의 세상에서 눈물을 삼키며 버텨내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지치고 지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솟아오르는 건 그래서다. 그 눈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도 아파? 나도 그래.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고, 정반대로 동진은 뭐라도 하면 누군가 상처를 입는 걸 봐야하는 걸 견디지 못해 아무 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상반되어 보이지만, 이 두 청춘의 공통점은 그래서 그 참혹한 현실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들 사이의 관계로 들여다보면 결코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은 두 사람이, 차라리 잘 됐으면, 그 아픔을 서로가 보듬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김영광은 <썸바디>의 그 살벌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한없이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동진을 뒷모습마저 공감하게 만들고, 이성경은 그저 밝기만한 청춘의 이미지를 탈피해 한없이 텅 빈 슬픈 눈빛으로 톡톡 쏘아대는 상반된 모습을 통해 이 복합적인 감정의 인물을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여기에 밑바닥을 긁는 주인공들의 축축함을 순식간에 말려주는 신스틸러 성준과 김예원, 전석호의 연기가 더해져 <사랑이라 말해요>는 균형 잡힌 드라마가 됐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뭘까. 어른들에 의해 꼬이고 꼬인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래서 참 많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관계지만, 둘 다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떤 것. 그걸 이 드라마는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사진:디즈니+)

‘대외비’, 희망 따윈 없는 조진웅과 이성민의 정치판 ‘파우스트’

대외비

“본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러운 기다.” 영화 <대외비>에서 정치판의 비선 실세 순태(이성민)가 공천이 취소되어 억울해하는 해웅(조진웅)에게 던지는 그 말은 이 작품이 보는 정치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 시선은 지독하게 냉소적이다. 이 판에 발을 딛는 순간, 국민과 대중을 향한 최소한의 소신도 무너지고 결국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 

 

번번이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이제 부산 해운대에서 공천이 내정된 국회의원 후보 해웅은 이 작품이 그리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소신과 대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 정치판을 쥐고 흔드는 비선실세 순태를 보좌하며 머슴 역할을 자임해온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선하기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 인물이 변하기 시작하는 건 공천이 취소되면서다. 총선에 이어질 대선 비자금 마련을 위해 해운대 재개발 계획이 은밀히 이뤄지고, 이를 진행하게 된 순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재개발 반대를 외치는 해웅의 공천을 취소한다. 순태에게 토사구팽 당한 해웅은 소신과 대의 대신 어떻게든 권력을 쥐겠다는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입수한 해웅은 재개발 반대의 소신도 접고 그 이권을 미끼로 조폭과도 손을 잡고 선거자금을 조달해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선다.  

 

결국 <대외비>는 정치판과 또 거기 연결된 이권을 두고 해웅과 순태가 치고 받는 대결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는다. 의외로 해웅이 선전을 하기도 하지만 이를 다시 순태가 뒤집고 그러면 다시 해웅이 나서서 순태의 뒷덜미를 잡는 식이다. 이 과정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의 대의나 민주주의 같은 이야기들은 공염불이 되어버린다. 대신 치열한 이전투구의 장이 정치이고, 그것은 심지어 무고한 민초들의 삶조차 권력을 위해 빼앗는 ‘악마와의 거래’라는 게 그 과정이 담고 있는 것들이다. 

 

‘The Devil’s Deal’이라는 영문 제목에 담겨 있듯이 <대외비>가 그리고 있는 건 정치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악마와의 거래’다. 그것은 순태의 대사로도 나오는 데, 정치라는 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원태 감독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듯, 이 작품 속 순태와 해웅은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소토펠레스와 파우스트를 연상케 한다.

 

순태와 해웅이 극한의 대결구도 속에서 한 허름한 주점에서 마주한 채 서로를 향해 패를 꺼내드는 장면은 진짜 <파우스트>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었다. 한 명이 교차 편집되어 클로즈업 된 얼굴만으로도 이 악마와의 거래가 실감되기 때문이다. 순태는 악마의 눈빛으로 해웅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는 패를 내밀고, 해웅은 극도의 긴장감에 땀을 줄줄 흘려가며 떨면서도 자신의 패를 내민다. 사실 이 한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걸 담았다고 할 정도로 인상적인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를 나눈 후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정치판은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하거나 협상을 했을 테지만 이원택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그 엔딩은 말해준다. 흔히들 빌런들이 등장하는 이런 영화 속에서 권선징악, 사필귀정을 꿈꾸지만, 이 영화는 애초 이상적인 정의나 정치라는 것이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가 굳이 1992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작품 속에도 등장하지만 당대는 87년 민주화운동에 이은 6.29 선언으로 직선제에 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 시간이 흘러 차기 대선이 벌어지던 시기다. 선거에 있어 불법과 부정을 근절하겠다고 정부가 나섰지만 여전히 금권선거와 부정선거가 횡행했던 시기라는 것.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당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레트로적 감성이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영화가 그 때를 소환해낸 건 그런 정치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는 달라졌는가를 오히려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정치판을 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당시 그토록 쏟아져 나왔던 ‘민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치는 끝없는 권력 대결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있다. 

 

영화는 끝내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그 거래로 인해 끝없이 저들과 손잡아야 하고, 거기에 더 이상 순수한 정치나 민주주의의 이상 같은 것들은 존재할 수 없어지는 절망을 보여준다. 그 절망에서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정치판이 겹쳐지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어둡고 그래서 비밀로 감춰져 있지만 이 <대외비>를 끝내 마주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서 충분하다. 그 비밀이 비밀로 남겨져 있는 한 거래는 계속 일어날 것이고, 그만큼 세상은 더러워지고 민초들의 삶은 서러워질 것이며, 그럴수록 희망은 찾을 수 없을 테니.(사진:영화'대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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