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꾼일지>, 정통사극 시대에 판타지 괜찮을까

 

MBC <야경꾼일지>의 첫 방송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시청률이 첫 회에 10%를 넘기며 월화 드라마 전체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타방송사의 월화 드라마들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첫 회에 시선을 잡아끌었다는 건 괜찮은 행보라고 보여진다.

 

'야경꾼 일지(사진출처:MBC)'

판타지 사극이라는 사전 정보가 있었지만 첫 회에 몰아치듯 보여준 CG의 향연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볼거리쪽으로 집중시켰다. 시청자들의 의견에 CG 얘기가 대부분인 것은 그래서다.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시도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디워>에도 못 미치는 CG 수준에 실망했다는 평가도 있다. 확실히 CG로 등장한 이무기와 조선 왕이 활로 싸우는 장면은 의도는 창대했지만 실제 결과물은 B급 괴수물 같은 인상을 주었다.

 

판타지 사극이라는 기치를 내걸어서인지 <야경꾼일지>는 기존 동서양을 초월한 무수한 이야기들의 조합 같은 인상을 주었다. 궁궐로 쏟아지는 유성은 KBS에서 했던 사극 <전우치>가 떠오르고, 왕자를 죽이기 위해 좇는 구름 같은 귀물들은 <해를 품은 달>의 초반 CG를 연상시키며, 왕인 해종(최원영)이 원정대를 이끌고 백두산에 가는 시퀀스는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건 거기 갑자기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스켈레톤 골렘을 없애는 방식이 부적을 붙이고 활로 쏘는 <강시>의 한 장면이라는 점이다.

 

이밖에도 판타지와 모험담에서 가져온 이야기 시퀀스가 이 사극에는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백두산 마고족에게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활을 받는 장면은 <주몽>의 한 대목 같기도 하고 나아가 아더왕의 칼을 떠올리게도 한다. 또 용신족에게 재물로 잡혀간 마고족의 무녀를 이무기와 싸워 구해내는 장면은 <손오공>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 시퀀스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다양한 북구의 민담과 전설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처럼 동서양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와 사용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스토리의 확장면에서 권장되어야 될 일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합한 이야기와 시퀀스들이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어떤 정서적인 공감이나 만족감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첫 회를 마친 <야경꾼일지>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대중들의 사극에 대한 기호가 상당 부분 정통사극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이다. <정도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지금 영화판에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명량>이 그렇다. 이렇게 된 것은 퓨전사극이 점점 역사를 벗어내 이제는 아예 장르물처럼 변모한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사극의 핵심적인 힘은 결국 역사라는 팩트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미 역사를 통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현재에 울림을 주는 사실이나 인물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정도전> 같은 정통사극은 보여주었다.

 

이런 시점에 판타지 사극을 아예 내걸은 <야경꾼일지>는 어떨까. 유성이 쏟아져 궁궐이 초토화되고, 이무기와 말을 타고 싸우는 왕의 장면이 새롭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이러한 CG가 아니라 사극이 담고 있는 현재적인 울림이다. <야경꾼일지> 첫 회는 일단 그 이색적인 CG로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다. 사실 판타지든 정통이든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지금 현재의 시청자들이 왜 그걸 봐야하는가를 설득시키는 일. 그것만 있다면 충분하다. 과연 <야경꾼일지>는 그 설득을 해낼 수 있을까.

 

탈 많은 <룸메이트>, 오히려 돋보인 송가연의 진심

 

아마도 상대적으로 방송경험이 일천해서일 지도 모른다. SBS <룸메이트>의 송가연을 보다 보면 언뜻 언뜻 그녀의 진짜 얼굴이 느껴진다. 연예인들이라면 숨기고픈 얼굴이다. 그 웃는 얼굴 뒤에 드리워진 그늘. 이제 겨우 만 19세의 나이에 무엇이 이 어린 소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을까.

 

'룸메이트(사진출처:SBS)'

<룸메이트>에서 자기 생일 때 살짝 고백한 것처럼 그녀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로는 운동하는 형들(?)이 가족처럼 자신을 챙겨줬다고. 이런 사연 때문인지 그녀가 그토록 앳된 얼굴과 달리 험악한 격투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어딘지 슬픈 느낌이 든다. 마치 그런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있어야 현실의 아픔이 잊혀지는 듯한 절실함이 거기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룸메이트>는 사실 그다지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홈 쉐어 문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시청률이 뚝 떨어지면서 자꾸만 인위적인 재미를 가미하려는 제작진이 문제의 원인이다. 쓸데없이 몰래카메라를 하고 편집해야 될 부분을 버젓이 내놓아 논란을 만들기도 하는 통에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훼손될 대로 훼손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송가연의 모습은 가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꾸밈이 없다. 처음 함께 사는 집에 들어왔을 때, 파이터 형들과 지내던 습관 그대로 군대식 말투를 벗어버리지 못했던 모습이 그렇고, 남자들이 로우킥을 날려달라고 하면 적당히 해줄 만도 한데 오히려 진지해지는 모습이 그랬다. 생일에 자신을 챙겨주는 이소라에게 울컥해 그녀를 꼭 껴안는 모습에서는 이 어린 소녀가 얼마나 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룸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한 모습이기도 하다. 모두가 가족을 떠나와 혼자 살아가는 외로운 도시인들이 함께 모여 대안적인 가족의 정을 찾는 것. 이것이 공동주거가 갖는 문화적인 의미일 수 있다. 송가연의 때로는 어눌하고 항상 타인의 기색을 살피는 모습에서는 그녀의 관계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설거지를 늘 자기가 한다며 투덜대는 박민우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송가연은 어찌 보면 늘 벌 받듯 살아가는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격투기 프로데뷔전은 그래서 더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육체적인 고통 속에 자신을 밀어 넣을 정도로 간절해진 그 마음이 그 프로데뷔전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폭발할 것 같은 기대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룸메이트>의 일본 방문편에서도 단연 주목된 것은 세계 챔피언 홍창수 선수 앞에서 그녀가 보인 파이팅이다. 어깨 부상으로 무리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홍창수 선수와 함께 진지한 스파링을 펼치며 한 수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말을 많이 한다고 또 나서서 자꾸만 뭔가를 하려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했던 일관된 습관이나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드러나는 표정, 그리고 말보다는 몸이 전하는 진정성을 통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룸메이트>에서 송가연이라는 진심 하나는 확실히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부지게 앙다문 입으로 애써 웃는 모습 속에는 그녀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가녀린 소녀지만 무언가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 얼굴이 진심으로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시공간을 초월한 놀라운 마블의 세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우주를 배경으로 Red bone‘Come and get your love’를 듣게 될 줄이야. 7,80년대 펑키한 팝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 1을 배경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만하다.

 

'사진출처: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 도입 부분에 이 영화의 주인공 스타로드가 워크맨에 테이프를 끼워 듣는 그 장면은 복고적이며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건드린다. 그런데 그 장면의 배경이 우주의 어느 혹성이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Blue Swede가 부른 ‘Hook on a feeling’이나 엔딩곡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Jackson 5‘I wan’t you back’ 같은 주옥같은 곡들은 과거를 향수하게 하면서 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어떤 인간적인 정감을 느끼게 만든다.

 

스타로드라는 인물은 마치 서부극의 영웅을 SF식으로 재해석한 느낌을 준다. 건맨 스타일로 적과 싸우는 것도 그렇고 특유의 낙천적인 모습이 그러하며 뜬금없이 카우보이 춤을 추는 스타일도 그렇다. 그래서 그가 그토록 집착하는 워크맨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은 이 우주를 배경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인물과 기묘하게 잘 어울린다.

 

우주라는 공간이 본래 그렇겠지만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마구 뒤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80년대 지구에서 우주로 날아온 주인공이지만 그 우주의 어느 혹성은 마치 미래의 지구 같은 인상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 세계는 그래서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세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마블의 영화들이 그렇듯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역시 캐릭터가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다. 많은 이들은 그래서 <어벤져스>와 이 영화를 비교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스타워즈> 초창기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다. 외계 인종의 용광로처럼 그려지던 <스타워즈>가 그랬듯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는 지구인도 있지만 외계인과의 로맨스도 있고 심지어 나무인간과 너구리와의 우정도 있다.

 

무엇보다 <스타워즈> 1탄의 해리슨 포드가 보여줬던 그 카우보이 같은 특유의 낙천적이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 영화의 기조라는 점이 관객들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마블의 코믹들이 그러하듯이 무시무시한 적이 등장하지만 그 적 앞에서도 엉뚱하게 춤을 출 수 있는 여유. 마치 전장에서 워크맨으로 옛노래를 듣는 그런 여유를 이 영화는 제공한다.

 

어찌 보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오즈의 마법사>의 우주판 같은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느 날 훌쩍 그 세계로 날아 들어가는 스타로드의 이야기가 그렇고, 국적과 인종 그 이상의 다양한 인물들이 일종의 루저처럼 등장해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그렇다. 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세계의 평화를 지켜내는 전형적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무엇보다 마블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이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세상 어느 구석에 있는 시공간조차 초월한 이야기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마블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사실 장황하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영화의 도입 부분에 흐르는 ‘Come and get your love’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블록버스터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기대 없이 봤다면 그 놀라운 감흥에 한없이 유쾌해질 수 있는 영화.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꽃청춘>, 뜬금없이 떠난 여행의 패닉? 혹은 즐거움!

 

<꽃보다 청춘>. 이것이 청춘의 여행이다. 갑자기 떠날 수 있다는 것. 현실의 족쇄들이 점점 견고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아채는 중년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뜬금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특히 해야 될 일이 있고 만나야 될 사람들이 있고 게다가 가족까지 있다면 이런 여행은 심지어 무책임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청춘이야 치기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중년이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내야 하는 어떤 시간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아무 준비도 없이 미팅을 한다며 모인 윤상, 유희열, 이적이 그 날 바로 갑자기 페루로 떠나는 여행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러고 가란 말야?”하고 맨발을 내밀며 웃는 유희열처럼 약간은 즐겁고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패닉과 설렘. 중년이라는 견고한 책임감과 그걸 살짝 벗어버린다는 데서 오는 들뜸.

 

공항패션은커녕 거지꼴을 하고 출국하는 공항에서 이적은 어 이상해 왜 자꾸 웃음이 나지?”하고 말했다. 아마도 그런 치기어린 여행을 했던 청춘에서 이제 꽤 멀리 걸어온 중년이 갑자기 떠나면서 느끼는 현실과의 거리감이 그런 이상한 웃음을 만들어냈을 게다. 프로그램이 자막을 통해 보여주듯, 그들은 나이 들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소년이 살아있었다. 다만 숨겨져 있었을 뿐.

 

혼자가 아닌 마음 맞는 친구와 떠나는 여행은 더더욱 그 소년의 치기를 밖으로 끌어낸다. 일종의 공모의식. 다 같이 업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선후배지만 그걸 다 뒤로 남겨두고 훌쩍 떠난다는 그 같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공범(?)의식이 그들을 더욱 현실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의 관계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의외의 능력과 개성들을 발견한다.

 

비행기에서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여행을 준비하는 유희열은 의외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런 형이 믿음직스런 이적은 이 형이 이런 형이라니까하고 든든해하며, 윤상은 희열이만 믿어하고 신뢰를 보낸다. 장소 찾는데 능력을 보이는 지리맨 유희열은 돈데 에스타...’라는 한 마디 할 줄 아는 스페인어로 시장을 찾아낸다.

 

꼼꼼하게 경비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이적은 페루라고 새겨진 작은 지갑 하나를 사고는 어린애처럼 즐거워한다. 유희열은 작은 지갑 하나의 의미를 되새긴다. “카드가 없는 삶은 이걸로 되더라구... 가죽지갑을 사면 신분증이니... 뭐든 꽂아야 되잖아. 다 필요 없던 거야.” 좁은 공간에서 수건 하나로 함께 샤워를 하는 경험이나 미처 챙겨가지 못한 속옷을 현지에서 사고, 혼성 도미토리에서 다양한 인종과 함께 혼숙을 하는 체험은 아마도 갑자기 떠나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을 것이다.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의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건 오히려 청춘이었다. 할배 신구는 유럽까지 날아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청춘을 찬양했고, 누나들은 크로아티아까지 날아가 여전히 젊고 소녀 같은 감성이 그 속에 살아있다는 걸 발견했다. <꽃보다 청춘>은 그래서 이 배낭여행 프로젝트의 일관된 메시지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프로젝트다. 그건 바로 청춘이다. 여행을 통해 다시 찾는 청춘의 나. 언제든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소년, 소녀가 여전히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 특별한 여행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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