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부재의 현실, <명량>회오리를 만들다

 

개봉 11일 만에 900만 관객이 <명량>을 봤다. 거의 매일 백만 명 가까운 관객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신드롬이다. 영화만의 힘으로 이런 폭발력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명량>의 흥행 회오리를 만들어낸 걸까.

 

사진출처:영화<명량>

사극은 역시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한 콘텐츠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야 이역만리 서구인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니 왜 지금 현재 이순신 장군이고 그가 치른 명량해전인지가 중요하다. 왜 하필 지금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에 닿은 걸까.

 

가장 큰 것은 민초들을 어루만지는 리더십의 부재다. <명량>의 첫 장면은 기묘하게도 이순신 장군이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선조는 잘 싸운 이순신 장군을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며 역적죄로 몰아 백의종군하게 만드는 왕이다. 이 첫 장면은 이 영화가 결코 왕을 위해 헌신한 장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니 애국이라 말할 수는 있어도, 여기서 말하는 국가란 이순신 장군에게는 왕이 아니라 백성이다. 이것은 영화의 대사를 통해서도 명백하게 밝혀진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즉 백성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나라이며 마지막이 임금이라는 것.

 

왕의 리더십 부재와 그럼에도 자신을 희생해 백성을 구하는 <명량>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만을 두고 봐도 딱 이 이야기랑 다른 게 없다. 우리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정부의 리더십 부재와 그럼에도 온 몸을 던져 한 명이라도 더 학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버린 숭고한 국민들이 아닌가.

 

영화의 제목이 영웅 이순신이 아니고 <명량>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4백여 년 전 발 아래 내려다보던 그 회오리 바다 명량이 지금 우리네 현실을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바다 저 앞에는 왜적들이 수백 척의 배로 침공해 들어오고 있는데 왕은 나가서 싸우려는 이순신 장군을 독려하기는커녕 왕명을 어긴다며 질책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죽음이 뻔히 앞에 보이는데 누가 나설 것인가. 그러니 홀로 명량의 바다 한 가운데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한 장수의 숭고함에 벼랑 끝에 서서 피난 가던 백성들마저 저마다 함께 싸우는 방법을 찾아나간다. 누군가는 저고리를 풀어 위험을 알리고, 누군가는 적진에서 첩보활동을 하다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명량은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을 위한 헌사의 공간이다.

 

<명량>은 왜 하필 지금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어야 하는가를 지금의 대중들에게 제대로 설득시켰다. 최민식이 되살려낸 이순신 장군은 죽음의 명량 바다를 향해 나가는 그 비장한 얼굴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대중들을 울린다. 또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이름 모를 백성들이 보여주는 그 피눈물 나는 응원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명량>은 그 시대의 백성들이 가졌을 그 절망과 희망을 4백 년 넘어 살아가는 대중들의 가슴에 회오리치게 만들었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이들의 가슴 한 켠이 저마다 명량의 회오리 하나씩을 갖게 만든 것. 그것이 <명량> 신드롬의 실체가 아닐는지.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샘 해밍턴의 진정성

 

바야흐로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만 틀면 출연자 중 한 명은 외국인인 경우가 다반사다. MBC <나 혼자 산다>의 파비앙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입맛에다 우리 문화 전도사 같은 인상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끌었다. <진짜사나이>는 샘 해밍턴에 이어 헨리를 투입시켜 그 이질적인 군대문화 체험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JTBC <비정상회담>은 아예 여러 나라의 비정상들을 출연시켜 화제가 되고 있다. 여기 출연하는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나 가나 출신의 샘 오취리는 준 연예인이다. 에네스 카야는 영화 <초능력자>에 출연한 바 있고 샘 오취리는 tvN <황금거탑>에도 출연하고 있다. SBS의 강제 처가살이 프로그램인 <백년손님 자기야>에도 이제 외국인 사위 마크 테일러가 출연해 장인 장모와의 흥미진진한 동거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 대거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다문화 가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글로벌 지구촌 사회가 되다보니 해외를 찾는 일도 잦아졌고 당연히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라면 막연한 부담감과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지구촌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가 열린 직접적인 원인은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효과를 가장 먼저 보여준 인물은 다름 아닌 샘 해밍턴이다. <진짜 사나이>의 구멍병사로 등극한 그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우리네 군대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외국인이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다가 구토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구급대에 실려가는 장면은 흔한 것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에서 리키김이 정글 생존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정글이야 외국인도 가겠지만 군대야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색다른 그림 하나만으로도 샘 해밍턴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구멍병사로서 웃음을 주면서도 정작 진지한 그의 모습은 심지어 대중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그가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그들 못지않게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줄 때 그 감동은 더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샘 해밍턴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 문화라면 빠질 수 없는 군대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건 이 이국의 젊은이가 우리나라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에 외국인들은 대체로 능숙한 우리말로 우리 못지않게 우리나라에 적응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투리를 쓰거나 사자성어를 쓰고 술 마신 다음날은 뜨끈한 국물이 최고로 시원하다고 하거나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은 한국사람 다 됐네라며 반색한다.

 

하지만 샘 해밍턴이 보여주는 모습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 육중한 몸으로 우리의 문화가 있는 곳으로 뛰어든다. <진짜 사나이>에서의 병영 체험이 그러하고 <섬마을 쌤>에서 섬의 분교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요즘은 점점 외국인 출연자들이 현장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것은 예능 프로그램 자체가 야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온 몸을 던져 그 진정성을 보여주는 외국인 출연자를 생각하면 먼저 샘 해밍턴이 떠오른다.

 

헨리가 <진짜 사나이>에 들어오면서 샘 해밍턴은 위치가 애매해졌다. 외국인 병사로서의 방송분량을 거의 헨리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샘 해밍턴은 그 안에서 헨리를 챙겨주고 자신만의 위치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이런 면은 그의 인성과 관련된 것일 게다. 그는 여전히 우리 문화가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물론 가끔씩 발끈하는 모습에서 자존심 강한 남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가 깨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보는 시선은 편견 그 자체다. 그래서 심지어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어도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여주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각별한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거기에는 편견마저 감싸 안는 드라마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괜찮아 사라이야(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투렛증후군 연기를 위해 각별히 노력한 이유 중에는 자칫 잘못하면 그 연기가 해당 질환자를 희화화시킬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괜찮아 사랑이야>가 정신질환자들을 소재로 다루는 방식은 극히 조심스럽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특정한 정신질환자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도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의 정신적 상처를 갖는다는 얘기를 건네고 있다.

 

장재열(조인성)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으로 한강우(디오)라는 환상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다는 상황이 그렇다. 그는 모든 여성들이 보기만 하면 하트를 날리는 연예인에 가까운 추리소설작가다. 그런 그가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네 편견을 깨준다.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어딘지 괴상하고 이상하게 생긴 무서운 존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장재열 같은 멋진 남자는 그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주는 멋진 남자다. 특히 이 드라마에는 캐스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어 지해수(공효진)가 찾아간 윤철의 부인은 정신분열 환자지만 외모는 평범 이상으로 출중하다. 해수가 재열에게 그녀를 가리키며 예쁘지 않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하는 정신질환자들의 배역으로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 이상의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한 건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보인다. 정신질환자의 이미지? 혹여나 싸이코라고 부르는 그런 섬뜩함이나 불편함을 떠올렸다면 이 드라마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뒤집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지해수라는 정신과의사 역시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설정일 것이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정신과의사. 그러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건 작건 자기만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다소 간의 부딪침과 소란이 있을지 몰라도 모두 문제없이 잘 살아간다는 게 이 드라마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장재열과 지해수는 어찌 보면 둘 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지해수는 장재열이 무언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안고 살아가겠다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그래도 필요하면 약도 먹고 상당도 받으라는 것이 고작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불륜을 지속적으로 목격한 후 남자와의 스킨십을 거부하는 지해수에게 장재열은 그냥 확 해버리라고 말하며 그녀를 계곡 물 속에 빠뜨려 버린다. 지해수는 그에게 그냥은 그냥이네.”라고 답하며 자신의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라는 걸 점점 확인해간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다모>의 한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멀쩡해 보여도 우리는 모두 다소 아프게 저마다의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괜찮다는 것. 그것은 감기 같은 병일뿐이라는 것. <괜찮아 사랑이야>는 재열과 해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빙자해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 결국 한 똑같이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자들의 인간애를 얘기하고 있다.

 

윤모 일병 사건, 분노 이해되지만 방향은 틀렸다

 

지난 4월에 경기도 연천 28사단 소속의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폭력과 가혹행위 끝에 숨진 사실은 온 국민을 공분하게 만들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됐다는 것에 대해 고인에 대해 애도하는 것과 동시에 가해병사들과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하의 짓들이었으니 말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그런데 엉뚱하게도 잘못된 군대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그 불똥이 <진짜사나이>라는 병영 체험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떨어졌다. 군대가 이토록 썩어가고 있는데 화기애애한 내무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군대를 미화하고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이른바 리얼에 대한 지나친 오해가 깔려 있다.

 

<진짜사나이>는 진짜 군대의 모습을 100% 리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군 기밀 유출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일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진짜 심각한 상황들을 모두 끄집어내 보여준다면 그건 예능이 아니라 르뽀성 시사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그건 <진짜사나이>가 지향하는 바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할 일도 아니다.

 

<진짜사나이>가 진짜 보여주려는 리얼은 다른 곳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군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니라 병영 체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즉 일반인(연예인)이 군대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군대를 실제로 가는 것과 해병대 체험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진짜사나이>의 리얼이란 군대 자체를 보여주는 리얼이 아니라, 일반인이 일정한 군대 체험을 하는 것의 리얼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진짜사나이>가 군대를 미화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진짜사나이>가 일반 사병들과 함께 군대 체험을 하는 모습을 리얼로 보여주는 것은 군대의 실상과 문제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좀 더 바람직한 군대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또한 일반인들로 하여금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진짜사나이>라는 군대 체험은 그래서 군대와 일반인 양자 사이에서 어떤 소통의 물꼬를 여는 역할로서 기능한다. 군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좀 더 바람직한 군대문화를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고, 일반인들은 흔히들 군바리라고 폄하되곤 하는 군인들이 사실은 우리들의 소중한 자식들이고 오빠들이며 형이자 친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딱 거기까지다. <진짜사나이>는 그 선을 넘은 적도 없고 넘어설 수도 없으며 넘어서도 안 되는 그 위치에 서 있다.

 

윤모 일병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은 당연히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원시적으로 퇴화된 군대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바꿔나가기 위해 국민들도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 분노가 크다고 엉뚱한 곳으로 불씨를 옮겨서는 안 된다. 지금 분노가 집중되어야 할 곳은 정부와 군 당국이지 <진짜사나이>라는 일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잘못된 군대문화를 방치하고 있는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해 분노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진짜사나이> 같은 그나마 바람직한 군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 분노로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추궁하는 것만이 군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길은 아니다. 폐쇄적인 군대라는 집단을 좀 더 일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일. 어쩌면 그것은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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