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CF처럼 살지만 상처투성이 현대인들에 보내는 위로

 

왜 하필 조인성이어야만 했을까.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장재열은 마치 광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집에 들어오면 마치 아파트 광고의 한 장면 같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면 냉장고 광고 혹은 생수 광고처럼 보이며,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면 자동차 광고 같다.

 

그렇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 덕분이다. 그가 공개된 DJ 부스나 클럽에서 음악에 맞춰 살살 춤을 추기만 해도 순간 그 장면은 광고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조인성이 광고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미지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그저 걷거나 숨만 쉬어도 광고 같은 완벽한 비주얼과 느낌을 보여준다.

 

하지만 광고란 일종의 환상이다. 사람은 결코 광고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은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광고 같은 삶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아프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맨발로 피가 나도록 집으로부터 도망쳤던 인물이고,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놔두고 도망쳤다는 것을 자책했으며, 그러던 어느 날에는 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트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 상처는 현재의 장재열의 주변을 여전히 맴돈다. 그래서 한강우(디오)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가상을 만들어내고는 그를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보듬어 안고 때로는 함께 웃으며 밤거리를 달리는 중이다. 광고 같은 삶? 그렇게 쿨하고 멋지게 보여 지고 싶지만 그것은 결코 장재열의 현실이 아니다.

 

그는 어쩌면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형 장재범(양익준)은 그의 말대로 억울하게 동생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엄마는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형을 범인으로 지목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장재범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도 사실은 이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어느 게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투약하면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아미탈 같은 약물의 힘을 간절히 원할 정도로.

 

하지만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가족이 모두 비극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장재범이 교도소 철창 안에 갇혀 지내고 있지만 장재열 역시 마음의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그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린 그녀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처럼 광고처럼 쿨하게 보이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아픔 하나씩을 껴안고 살아간다. 홈 쉐어라는 어찌 보면 쿨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환경 속에서 광고의 한 장면 같은 파티를 벌이는 그들이지만,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그들은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상처를 껴안고 잠들어야 한다.

 

당찬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는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목격한 엄마의 불륜으로 일종의 남성 기피증을 갖고 있고, 멀쩡한 허우대에 쿨한 성격의 박수광(이광수) 역시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찾아온 투렛증후군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재혼해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며 아픈 이들을 돕는 조동민(성동일)도 마찬가지다. 껄껄 거리고 웃는 그의 얼굴 이면에도 어떤 허허로운 아픔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깔끔하고 쿨하고 괜찮아 보이는 현대인들의 삶 이면에 놓여진 결코 괜찮지 않은 아픔을 꺼내놓고는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드라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은 각각 힘겨워 하지만 의외로 타인에게 간단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스킨십 기피증을 갖고 있는 지해수에게 그냥 하면 된다며 장재열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지해수는 그 방법을 결벽증을 가진 환자에게 적용한다. 사랑은 상대방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그 주변 사람들까지 치유시켜준다.

 

겉보기에 우리의 삶을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광고 속의 삶을 꿈꾸고 어느 정도 성공한 이들은 그 삶을 현실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멀쩡해 보이는 삶의 진면목은 심지어 병을 앓을 정도로 아파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상처다. 사랑? 물론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다. 다만 모두 상처받은 이들이라는 타인과의 공감과 그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교감이 그래도 우리네 삶을 괜찮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괜찮아 사랑이야>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섹스 이야기를 그토록 입에 달고 다녀도 섹스 한 번 하지 못하는 스킨십 거부증을 갖고 있는 지해수와 연예인인지 작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장재열의 사랑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이자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화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없다. 다만 괜찮다고 애써 말하며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스타 예능 MC, 이제 살 길은 비지상파다

 

MBC <별바라기>에 출연중인 샤이니의 키는 우리 딱 한 번만 5% 넘어보자잉하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현재 <별바라기>의 시청률은 3% . 헨리와 써니가 출연한 효과인지 지난 2%대에서 그나마 1% 올라온 성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3%대로 동시간대 꼴찌인데다 목표치가 5%라는 얘기는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 강호동이라는 스타 MC의 이름이 무색하기 때문이다.

 

'별바라기(사진출처:MBC)'

KBS <우리동네 예체능>도 시청률 4%대에 전전하다 최근 5% 시청률에 도달했지만 강호동이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려보면 초라하게만 여겨진다. 물론 시청률만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짜 이제 강호동의 시청률 목표는 5%가 된 듯하다. 복귀 이후 이렇다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호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강호동만이 아니다. 최근 스타 MC들은 모두 과거의 영광이 꺾인 지 오래다.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를 여전히 하고 있는 유재석은 예외다. 그 역시 주중 예능 프로그램에서 4%에서 6%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그의 인기나 존재감은 단지 프로그램 안에서만의 평가에 머물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관리의 표본으로서 유재석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한때 예능의 달인이었던 이경규도 최근 들어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신동엽이나 김구라 같은 토크의 달인들도 지상파 시청률 성적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 이것은 어쩌면 전체적인 지상파 예능의 몰락이기도 하고 또한 스타 MC 예능 트렌드의 추락이기도 하다. 이제는 일반인들이 참여하거나 반 일반인들(연예인 가족 같은)이 참여해야 그나마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가져간다.

 

지상파 예능이 이렇게 된 데는 기존 방식인 스타 MC 중심의 예능 트렌드를 좀체 벗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지상파 예능의 추락과 스타 MC들의 추락은 서로 공조하며 벌어진 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몇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정규화 했다 추락한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이효리의 <매직아이>가 그렇고, 강호동의 <별바라기><우리동네 예체능>이 그렇다. 스타 MC를 세우면 달라진 트렌드 속에서도 옛 습관(스타를 중심으로 풀어가는)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 주목해야 할 인물은 신동엽과 김구라다. 여타의 스타 예능 MC들과 사뭇 다르게 이들은 일찌감치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종편이든 상관없이 종횡무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시도해왔다. 그러다 보니 지상파가 옛 트렌드에 묶여 있을 때 케이블과 종편이 시도한 참신한 형식들의 예능에 이들은 쉽게 적응했다. 지상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하더라도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는 자기 존재감을 확실히 세운 이들은 그래서 아무런 위기설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tvN<SNL 코리아>JTBC<마녀사냥>으로 신동엽은 19금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를 열었고, JTBC <썰전> 같은 프로그램으로 김구라는 시사와 비평이 접목된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만들었다. 사실 어찌 보면 강호동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은 그를 받쳐줄만한 참신한 지상파 예능이 부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스타 MC가 출연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보던 시대는 지났다. 참신한 콘텐츠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MC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강호동은 지상파에서 5% 시청률을 내려고 안간힘을 쓸 게 아니라, 비지상파로 가서 똑같은 5% 시청률을 노리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지상파 5%와 비지상파 5%의 어감은 이렇게 다르다. 게다가 비지상파들이 최근 들고 나온 일련의 참신한 예능 형식들은 오히려 지상파들이 배워야 할 덕목들이다. 강호동 역시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강호동의 추락을 과거 잠정은퇴 선언을 했던 그 세금 문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그가 얼마나 파괴력 있고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가이다. 결국 연예인의 이미지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강호동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에 도달해 있다.

 

지상파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판에서 다시 입지를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지상파를 끝까지 고수할 것인가. 이 문제는 물론 스타 MC들과 공조해온 지상파 예능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상파는 언제까지 기득권을 주장하며 옛 트렌드에만 머물 것인가. 이제 시청률에서조차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변화의 바람은 일찍부터 불고 있었다. 다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명량>, 애국영화보다는 <변호인>에 가까운 까닭

 

요즘은 영화관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70년대 말 80년대 초반만 해도 영화를 보며 박수치는 일이 흔했다. 이렇게 된 것은 과거에는 영화가 연극이나 비슷한 실제 무대 체험으로 받아들여졌던 반면, 이제는 영화가 그저 하나의 가상체험일 뿐이라고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량>을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이 시간을 거슬러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충동을 순간순간 느끼게 된다.

 

사진출처:영화 <명량>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이순신이 아들에게 던져주는 이 한 마디는 이 영화의 굵직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는다. 자신은 압송되어 고문까지 당하고 백의종군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라를 지키는 최 일선에 서 있는 이순신. 그 이유는 왕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것. <변호인>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한 마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명량>은 후반부의 해전 장면이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지만 그렇다고 단지 전투의 재미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의 전반부가 다소 지루할 정도로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향해 있는 건 그 장수로서의 고민을 감성적으로 이해한 연후에야 바다에서의 전투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스스럼없이 나아가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숭고미는 <명량>이 이순신 장군을 재조명하면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와 대적해야 하는 고작 12척 남은 배. 한 대 남은 거북선까지 불타버리고 병사들도 두려움에 탈영하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단 하나 남은 희망의 불씨를 떠올린다. 그것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명량이라는 회오리 바다는 그래서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완벽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죽은 자들의 외침처럼 들려오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가 주는 두려움을 내려다보는 이순신의 모습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는 표현이 중의적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이순신을 포함한 조선 병사들의 마음 속을 회오리치며 헤집고 다니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면서, 저 울돌목 바다가 만들어내는 무서운 조류변화를 오히려 전투의 기폭제로 활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명량>은 저 77년 반공시절의 <난중일기> 같은 다소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와는 여러모로 궤를 달리한다. 영화는 국가 같은 애국에 호소하기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을 위하는 애민에 더 호소한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장수가 백성들과의 의리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게다가 영화가 포착해내는 이순신의 내면은 그것만으로도 국적과 상관없는 위대한 인간승리의 휴먼드라마를 보여준다.

 

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에서도 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단순하지만 묵직한 대결이 주는 액션의 묘미를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활이나 바다가 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액션 속에 인물들의 감정이나 정서를 잘 얹는 감독인 만큼 죽음의 바다를 향해 나가는 이순신의 내면이 압도적인 전투신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최민식의 연기는 한 마디로 압권이다. 그 스스로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100% 이해하지 못해 흉내만 냈다고 했지만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있어 비로소 수백 년 전의 영웅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표정 하나 동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연기는 죽음 앞에서 오히려 담대하게 맞섬으로써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준 이순신의 면면을 되살려놓았다.

 

만일 영화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명량 해전 당시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순신 장군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과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작 나라를 지켜야할 정치인들은 저 살길만을 찾을 때, 오롯이 백성들만을 생각하며 선선히 죽음을 불사하고 나가는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대중의 욕망이 수백 년을 넘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저 명량의 회오리 바다가 놓여있다.

 

<신의 한수>, <군도>의 이슈화, 할리우드를 잠재운 까닭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4)>가 개봉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름철 블록버스터 시장은 또 할리우드가 장악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비주얼에 개봉했다 하면 관객수 신기록을 경신해버리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이 가세하면서 할리우드의 장악은 더 공고하게 여겨졌다.

 

'사진출처:영화 <트랜스포머:사라진 세계>'

하지만 이런 예측은 한국영화들이 하나 둘 블록버스터 시장에 선을 보이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트랜스포머4>가 워낙 중국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에 우리네 관객에게는 그다지 어필하지 못한 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제 5백만 관객을 조금 넘어섰다는 건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이것은 <혹성탈출>도 마찬가지다.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객수는 현재 4백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19금이라는 족쇄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신의 한수><트랜스포머4><혹성탈출> 사이에서 35십만 관객을 돌파한 건 대단한 성과다. 또한 개봉하면서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킨 <군도 : 민란의 시대>가 순식간에 4백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군도> 역시 평단이나 관객의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과거라면 단순히 한국영화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요즘은 한국영화니 더 봐달라는 식은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러니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면서도 괜찮은 성적을 낸 <신의 한수><군도>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최근 변화한 영화 마케팅 방식이 한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신의 한수><군도>가 보여준 것은 이슈화의 성공이다. 좋은 평가가 나오던 좋지 않은 평가가 나오던 일단 말이 많이 나오는 작품에 관객들이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군도>의 바람몰이는 본격적인 이번 여름 우리 블록버스터의 첫 걸음을 기화로 활활 타올랐다.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럼에도 <군도>는 일정한 완성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호불호를 호기심으로 바꾸며 끊임없이 관객들을 유입시킬 수 있었다.

 

<군도>의 이슈화가 워낙 강하다 보니 할리우드 영화들의 이야기는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여기에는 계속 연이어 개봉되는 <명량>, <해적>, <해무> 같은 한국영화의 라인업으로 더 힘을 받았다. <명량><군도>의 비교점을 만들면서 벌써부터 흥행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일정 부분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 우리 블록버스터 이슈화 바람에 쉽게 올라탈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트랜스포머><혹성탈출> 그리고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이 정도의 선전을 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논란이나 호불호마저 이슈화하고 잘 꾸며진 라인업으로 밀고 당겨주는 마케팅의 힘이 느껴진다. 과거 할리우드 대작들이 들어오면 거의 초토화되어버렸던 극장가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최근 들어 제작뿐만 아니라 이제 마케팅적인 면에서도 성공하고 있는 우리 영화의 달라진 면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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