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밴드’, 경합보다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유

'톱밴드'(사진출처:KBS)

이 소름끼치는 실력의 소유자들은 프로일까, 아마추어일까. 적어도 ‘TOP밴드’라는 오디션에서는 이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또 중요해서도 안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광필EP의 말대로 우리사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방송을 포함한 가요계가 밴드를 프로로 대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프로라면 밴드 활동을 통해 적어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이들을 의미한다. 이 놀라운 실력자들은 과연 그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아니 평가는 둘째 치고 일단 음악활동에만 전념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 있을까.

사실 게이트 플라워즈나 액시즈, 브로큰 발렌타인, TOXIC 같은 밴드는 전문가들도 놀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음반제작자들이 왜 저런 천재들의 음반을 내지 않고 있었는지” 의아 하다는 김종진의 조금은 격앙된 말이나, “감히 평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그룹 딜라이트 DK의 발언, “한국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남궁연의 상찬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브로큰 발렌타인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밴드 페스티벌인 ‘아시안 비트’에서 대상과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한 바 있고, 게이트 플라워즈는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록 부문 2관왕을 했던 실력파다.

하지만 이들이 그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대폭 넓히고 그로 인해 생계문제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인 김경민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면서 밴드를 하고 있고 이들의 작업실은 여전히 리더의 집인 게 현실이다. 이 밴드의 변성환, 변지환 형제의 어머니가 하는 말은 그래서 아프다. “제가 정신적으로 가장 깊게 갈등을 했던 게 아시안 비트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난 다음이에요. 우승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음악으로 살아가는 길이 열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상 타온 걸로 끝나고 그 다음 길이 안보이니까. 그 때 정말 음악을 하게 한 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바로 작금의 밴드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준 프로에 가까운(어쩌면 프로의 실력을 넘어서는) 이들을 참여시킨 ‘TOP밴드’의 선택은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목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들을 좀 더 대중들 앞에 알리는 것에 있다면, 획일적인 기획사 중심의 음악들로 점철되어 그간 생계를 걱정하며 생업과 음악을 병행해온 이들에게 무대를 내주는 것은 어쩌면 밴드 서바이벌을 내세운 ‘TOP밴드’가 진정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TOP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서 있는 독특한 지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물론 형식적으로 최후의 ‘TOP밴드’를 향한 경합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그간 가려져 있던 숨은 고수들을 방송을 통해 재발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합이라는 대결구도를 통해 시청률을 끄집어내는 오디션 형식에서는 불리한 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경쟁 이외에도 오디션 형식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TOP밴드’의 특징 중 두드러지는 점으로, 세세하게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따라가는 다큐적인(?) 카메라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토리성을 잘 말해준다. 이것은 예능 PD가 아니라 교양 PD가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TOP밴드’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누가 밴드 음악에 순위를 매길 수 있으랴. 다만 저마다의 사연들을 갖고 그 사연들로 저마다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밴드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쟁보다는 그 각각의 밴드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 독특한 지점을 점하고 있는 ‘TOP밴드’가 끝이 났을 때, 우리는 어쩌면 그 최후의 밴드만이 아니라, 이 과정을 지나오며 발견한 수많은 밴드들을 기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예전 곤지암에 사는 화가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작업실로 쓰시는 집이었는데 넓은 마당과 집 구석구석 
선생님의 손때가 묻은 작품들이 투박하게 놓여져 있었죠.
TV가 없어서 우리는 서로 얼굴보고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죠.
선생님이 집 뒤켠에서 따온 호박을 듬성듬성 자르고
햄 하나를 통째로 꺼내서 역시 대충 썰어 넣고는
볶아서 안주로 내놓으셨습니다.
글쎄요... 맛으로 치면 식당처럼 맛깔나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여긴 농약도 없어. 그냥 먹어도 되지."
그 말 한 마디에 왠지 더 맛이 나더군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노래도 듣고
그러다 녹차도 마셨습니다.
차와 술은 함께 하면 안된다고들 했지만
그 때는 녹차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도 했죠.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곤지암 소머리 국밥집에서 해장을 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곤 했죠.
사실 뭐 특별한 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저는 늘 그 집을 떠올립니다.
선생님...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내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일 것입니다.
그 집은 아주 아름다운 집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곳. 힘들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
뭔가 늘 얻어갔던 곳. 마음 하나 편하게 놓고 사색에 잠길 수도 있었던 곳.

블로그를 하면서, 나는 늘 이 곳이 내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촌스럽게도 '홈페이지' 세대였던 나는 그 홈페이지도 집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가끔씩 누군가 허락도 받지 않고 저벅저벅 들어와 침을 뱉거나
심지어 용변(?)을 보고 가면 정말 화가 났습니다.
이 곳, 사적인 공간이 아니었던가요?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 않더군요.
이제 블로그가 마치 공적인 공간이나 되는 것처럼
당연스럽게 마구 글을 달기도 하니까요.

어떤 한 블로거가 자기 집에서 장사를 한 모양입니다.
뭐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처음부터 상업화되진 않았을 겁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자본이 찾아오고,
그 때부터 그 사람 많은 곳은 사람살기 어려운 곳이 되버리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인 듯 합니다.

덕지 덕지 상품들의 흔적이 묻어난 곳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금 그 때 그 아름다운 집이 떠오릅니다.
선생님도 떠오르고요..


드라마에 포만감을 주는 연기자, 정보석

'내 마음이 들리니'(사진출처:MBC)

끼니 때마다 그는 아들 봉마루(남궁민)를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그릇에 담는다. 물론 아들이 언제 집으로 돌아올 지 그는 모른다. 그래도 그는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퍼 잘 싸놓는다. 무려 16년째. 그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며 밥을 싸는 봉영규(정보석)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봉영규는 봉마루가 집을 나간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같은 바보가 아버지라는 게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봉영규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게 따뜻한 밥을 해서 준비해놓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만난 아들은 자신을 부인한다. 그것은 "당신이 바보라서 (아들이라고) 거짓말 한 것"이라고 한다.

순간 봉영규의 얼굴은 흔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말한다. "마루야. 그런데 딱 한 번만 집에 와라. 집은 안 창피하잖아. 꼭 한 번만 와. 내가 밥 맛있게 해줄게. 나 이제 밥 맛있게 잘한다. 그럼 진짜 다시는 아는 척 안하고 기다릴게." 그 얘기를 듣던 봉마루의 애써 차갑게 굳은 얼굴이 흔들린다. 봉영규는 그 와중에도 젖은 눈을 숨기려는 듯 봉마루를 위해 바보 같은 미소를 애써 짓는다.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정보석이 연기하는 봉영규라는 캐릭터는 그 '밥 한 끼'로 상징되는 뜨거운 진심이다. 모두가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상처줄 때, 봉영규는 이 드라마의 한 구석에서 묵묵히 밥을 짓는다. 그 따뜻한 밥 한 공기의 온기가 없었다면 이 얽히고설킨 드라마는 자칫 자극만 난무하는 막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사위가 장인의 죽음을 방조하며,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그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 키워 그 원수에게 복수하게 하는 이 극한의 상황을 모두 덮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밥 한 공기의 온기다. 이 드라마는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친자식을 버리고, 또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자식을 다시 찾으려는 똑똑한 친부모들과, 친부모는 아니지만 집나간 아들을 위해 바보처럼 16년 간 밥 한 공기를 준비해 놓는 봉영규를 대결시킴으로서 비로소 주제의식을 지켜낸다.

봉영규가 한쪽에서 묵묵히 밥 한 끼를 준비하는 모습은 정보석이라는 연기자의 묵직한 존재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한 없이 망가지며 이 시트콤에 웃음의 바탕을 만들어내던 그는 '자이언트'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 조필연으로 열연하며 드라마의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들리니'의 지적장애를 가진 봉영규를 통해 그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정보석이라는 중견연기자의 아우라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드라마의 중심에 서지 않지만 그 묵직한 존재감으로 드라마의 든든한 포만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는 드라마의 따뜻한 밥 같은 존재다. 매 끼니 때마다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반찬일 지 모르지만, 우리를 든든하게 해주는 것은 밥인 것처럼. 정보석은 그렇게 우리가 바라보지 않는 구석에서도 열심히 밥 한 끼를 준비해놓는, 그럼으로써 그것이 결국 그 드라마의 결이 되게 만드는 그런 연기자다.


'1박2일', 외풍에 버틸 수 있는 길

'1박2일'(사진출처:KBS)

여배우 특집에 이은 명품조연 남자 배우 특집까지 두 차례에 걸친 빅 이벤트는 지금까지 못보던 '1박2일'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1박2일'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아날로그 여행'을 콘셉트로 간 관매도에서의 '1박2일'은 그 가능성을 다시금 되새겨주었다.

지금껏 '1박2일'을 견인했던 것은 특별 게스트들이었을까. 물론 시청자 투어나 외국인 근로자, 혹은 박찬호 같은 명사나 여배우들과 명품조연들의 출연은 이 프로그램의 특별메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1박2일'이 제 맛을 냈던 것은 그들만의 소박한 여행과 그 속에서의 작은 발견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흥미로운 게임들이 잘 어우러졌을 때였다.

특히 '1박2일'이 섬에 강하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딘지 도시에서 소외된 섬에 들어가 그 고립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1박2일' 특유의 건전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의 관심 바깥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그 곳을 카메라가 비추고, 그 위에서 멤버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 이것이 '1박2일'이 대리경험해주는 주말여행의 미덕인 셈이다.

찬찬히 섬을 걸어서 둘러보며 거기 자라난 작은 풀과 돌에 일일이 관심을 던지는 장면들이 푸근하게 다가오고, 소나무 숲길을 걷는 그들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설레게 하며, 저녁 밥상에 올라온 깻잎 하나에도 군침이 돌게 하는 힘. 그 힘은 특별 게스트들의 출연으로 얻어내기 힘든 것이다. 아무래도 게스트가 들어오게 되면 여행은 게스트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삶과 발견 못했던 특별한 모습들을 카메라가 촘촘히 포착하다보면 정작, 여행지의 설렘을 담아내기 어려워진다.

물론 그것도 또 하나의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결국 전국 각지에 숨겨진 여행지가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소재인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출연자들이 여행지에서 너무 돌출되지 않고, 오히려 그 여행지에 푹 파묻힐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가보지 못했던 곳을 대신 가게 해주고, 거기서 낯설지만 친근한 우리네 이웃들을 만나게 해줄 때, '1박2일' 특유의 구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런 기본적으로 여행지에 충실한 흐름 위에 적절한 자극으로서의 복불복이 얹어지면 의미 있는 밥에 재미있는 반찬이 올려지는 격이 된다.

물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꽤 오랫동안 방영되어 오면서 시청자들은 이제 대충 이 여행 버라이어티의 패턴을 읽게 되었다. 오프닝하고 떠나면서 게임하고 도착해서 여행지를 둘러보다가 또 복불복 게임하고 자고 아침 미션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고정된 패턴. 여행도 비슷한 패턴으로 자주 하면 지루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해야 될 것은 여행지 자체의 매력을 부각시키거나(같은 패턴이라도 지루함을 없앨 수 있다), 아니면 일련의 비슷해진 여행 패턴을 기획을 통해 흔들어놓음으로써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의외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선택적인 게 아니라 동시에 이뤄질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1박2일'은 '나는 가수다' 같은 신상 예능 프로그램에 의해 어떤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틀을 벗어나 외부 게스트들이 들어오는 그런 식의 변화는 자칫 '1박2일' 본연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화려함에 화려함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박함을 찾는 일이며, 여행 이외의 것을 통한 자극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의 매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지금 예능의 세계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같이 변화에 휩쓸리기보다는 오히려 '1박2일'만의 단단함을 더욱 굳건히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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