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에 보이는 여성성 경향

MBC 드라마 ‘히트’가 그려내는 강력계의 풍경은 욕설이 난무하고 폭력이 행사되던 여타의 우리네 형사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강력계 팀장이 차수경(고현정)이란 여성이란 점이 다르다. 김영현 작가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히트 팀에 여성을 내세운 것은 이 드라마가 전작인 ‘대장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김영현 작가는 여성들의 성장 드라마 혹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환타지를 제대로 포착해내는 작가이다. ‘대장금’의 장금이가 조선시대 수라간 이야기를 통해 현대적 여성상의 전형을 에둘러 보여주었듯이, ‘히트’의 차수경 역시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강력계 이야기 속에 보란 듯이 팀장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강력계 팀장을 여성으로 세우는 순간부터,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형사물들이 다루었던 범죄와 수사라는 재미에, 직장(?)여성의 성공담 혹은 성장담이라는 새로운 재미가 덧붙여지게 된다. 그 두 재미 중 무게중심이 기우는 것은 당연히 후자이다. 이유는? 전자는 이미 다른 드라마, 영화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닳고닳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즉 히트라는 지리멸렬해 보이는 팀을 이끄는 차수경이란 여성 리더십이 진짜 볼거리란 이야기다.

다른 형사물과 다른 차수경의 리더십
차수경의 리더십을 보면 확실히 다른 형사물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지시를 내릴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장형사(최일화)가 가출한 딸을 찾아 근무지를 이탈해 홍콩으로 갔을 때도 질책하기보다는 그를 도우려고 애쓴다. 물론 극화된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홍콩까지 그를 찾아간다. 심종금(김정태)이 비리를 저지르고 다녀도, 김일주(정동진)가 같은 팀원 뒤를 캐고 다녀도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한숨을 푹 내쉴 뿐, 주먹질을 한다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대신 팀원들을 가족같이 끌어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속을 지글지글 끓이면서도 챙길 건 다 챙겨주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닮았다. 모성으로 느껴지는 이 리더십을 보면서 팀원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명령이 아닌 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은 요즘 회사 내에서 불고 있는 ‘펀(fun) 경영’이나 ‘위미니지먼트(womanagement, 매니지먼트 개념에 우먼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를 연상시킨다. ‘히트’팀의 다른 풍경은 상명하복, 위계질서 등 과거의 남성성으로 대변되던 기업문화가 지금 상호존중과 조화 등 여성성을 내포한 문화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포착해낸 결과로 보여진다.

김재윤은 왜 애교만점 캐릭터가 되었나
그런데 그것이 단지 차수경이란 여성 강력계 팀장 때문 만일까. 이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은 그녀에서 머물지 않는다. 차수경과 멜로 라인을 만들어가는 김재윤(하정우)이란 캐릭터를 보면 그것은 단박에 드러난다. 그 역시 검사라는 설정이 있지만 과거의 명령체계와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구사한다. 그의 리더십은 지켜봐 주고 도와주는 것이지 억지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멜로 라인에서 보여주는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김재윤은 고압적인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무너져 애교를 부리면서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은 외모도 아니고 카리스마도 아니다. 그것은 배려하고 도와주는 그 캐릭터 속에 숨겨져 있는 여성성 때문이다. 그가 차수경에게 자꾸 잊고 있던 서랍장 속의 하이힐을 끄집어내 신겨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녀가 잃어가는 여성성을 되살려주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남성식은 어떻게 미키성식이 됐을까
이런 캐릭터의 여성성 경향은 다른 팀원들에게서도 드러난다. 가장 남성적으로 보이는 남성식(마동석, 이름조차 남성식이다)은 겉으로 보기엔 남성성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게 여성적일 수가 없다. 무기 같은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얼굴로 배신한 차수경에게 전화를 해 소리를 질러대지만 그 눈에 눈물이 흐르는 면모를 보여준다. 우람한 근육질의 사내가 수줍게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듯한 분위기 탓일까. 유독 남성식은 미키성식이라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히트’는 팀원들 간의 관계 역시 명령과 복종이 아닌 대화하고 고민하는 어찌 보면 가족 같은 수평적 관계를 그려낸다. 장형사(최일화)는 직급은 가장 낮지만 팀내에서는 맞형으로 대우를 받는다. 반대로 김일주(정동진)는 팀내에서 직급이 가장 높지만 막내 취급을 받는다. ‘히트’팀의 이런 관계는 거의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받은 팀장이지만 팀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급 호칭을 파괴해버린 어느 회사를 연상케 한다.

‘히트’의 의미 있는, 위험한(?) 시도
‘히트’에서 드러나는 여성성 경향은 작금의 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미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톰킨스는 “기업 경영자들이 마르스(화성)형에서 비너스(금성)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로 변화되는 조직을 표현했는데, 여기서 마르스는 전생의 신인 반면,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다. 즉 정보화, 감성 마케팅 같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성성을 극대화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남성들조차 남성성으로 요구되는 마초이즘의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대. 그런데 이렇게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히트’는 왜 히트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전술했듯이 이 드라마가 갖는 두 가지 재미, 즉 범죄와 수사라는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재미와 직장여성의 성공담이라는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재미 사이에 균형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본격 수사물과 멜로 드라마, 아르레날린과 감성,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화시키려던 ‘히트’의 의도는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성이 너무 강조되면 현실의 리얼함이 취약해지기 마련이고 남성성이 너무 강해지면 과거 여타의 형사물과의 차별점을 잃게 된다. 이것이 마초이즘을 버린 형사물, ‘히트’가 지금 처한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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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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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을 따뜻함으로 채운 인물들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에는 캐릭터가 아닌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에서 스토리를 극화하기 위해 캐릭터들은 어떤 한 부분이 극대화되어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천사표 캐릭터는 한없이 천사가 되고, 악역은 한없이 악역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 우리가 흔히 ‘진부한 선악구도’라고 말하는 설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선악구도를 의도했다기보다는 드라마라는 또 하나의 세계 속에 스스로 움직이는(작가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 스스로 인물들이 움직인다고 한다) 인물들을 드라마의 극적 구도라는 명목으로 억압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맙습니다’는 살아있는 인물들이 꿈틀대는 드라마이다. ‘악역 없는 드라마’는 극중 인물을 어느 캐릭터로 규정되는 한 측면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인물들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어떨 때는 천사가 되고 어떨 때는 악역이 되는 살아있는 성격을 구축해 그 안에 저 스스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고맙습니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다.

강한 모성애를 가진 미혼모, 영신
영신(공효진)은 어딘지 답답한 구석이 있는 미혼모이다. 자신에게 섬을 떠나라고 하고, 또 이상한 남자를 소개시켜주면서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석현모(강부자)는 분명한 가해자지만 그런 그녀에게 영신은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봄이(서신애)와 미스터리(신구)를 위해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강력한 모성애다. 몸살을 앓으면서도 가출한 딸을 찾아 나선 영신이 꾸역꾸역 밥을 먹는 장면이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제 정신을 차린 영신이 옷과 신발을 새로 사 신고 민기서 앞에 나와 “이제 봄이 엄마 같아요?”라고 묻는 대사는 그녀의 모성애를 강하게 드러낸다.

미혼모가 강한 모성애를 보여준다는 설정은 영신이란 인물을 살아있게 만든다. 모성애가 부여되자 그녀는 미혼모라는 굴레 속에 갇히지도 않고 또 그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 인물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강한 모성애로서의 그녀를 그저 긍정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모성애는 때론 자신을 부정하는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 그녀는 “전 여자가 아니에요. 봄이 엄마일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에 의미가 없지만 생명을 살리는 의사, 민기서
반쯤 감은 눈이 초점을 허공에 두고 읊조리듯 말하는 민기서라는 인물은 까칠함의 대명사이지만 그 까칠함은 종종 따뜻한 마음을 숨기는 은폐물로 활용된다. 이 인물 속에는 유달리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로 인해 당한 가족의 고통을 옆에서 본 민기서로서는 환자는 환자일 뿐이라는 냉정함으로 의사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그것을 깨준 것은 차지민(최강희)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환자이자 자신의 연인이었던 것. 이로써 그의 마음 속에는 환자에 대한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게 된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절대로 의사 짓 안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푸른도로 들어오면서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삶을 포기한 듯한 민기서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린다는 설정은 아이러니다. 영신의 집에 하숙하는 그가 저 자신은 대충 살아가면서도 곤경에 처한 영신네 가족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를 부정하고 아이를 그리워하는 석현
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석현(신성록)은 그 사실을 부정한다. 민기서의 “넌 도대체 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민기서는 그런 자신이 당황스럽고 미워진다. 지나가는 아이와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거기에 봄이와 자신을 끼워 넣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그를 가로막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의 그가 가진 것들이 아이를 인정하고 영신을 맞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석현이 사장이자 민기서의 어머니인 강혜정(홍여진)에게 찾아가 푸른도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며 그 이유로 “다 시시하고 무의미해졌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강혜정의 말대로 민기서가 푸른도 보건소에서 일하겠다면 떠날 때 했던 말과 같은 것이다. 비즈니스 자체를 시작한 그가 그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는 상황은 그간에 석현이란 인물 속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는 석현을 통해 엘리트의 전형처럼 보이는 인물 속에도 남겨져 있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 속에서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이 많다. 보건소 의사인 오종수(류승수)는 돌팔이로 매도되면서 자학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지만 푸른도에서 봄이로 촉발된 에이즈에 대한 편견 앞에 온몸을 던지는 능동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늘 영신네 집 사람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석현모는 봄이의 에이즈가 잘만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에 패물을 끄집어내며 “일단 살리고 봐야된다”고 말한다. 욕심과 소유욕에만 불타던 박씨(김하균)는 봄이를 껴안고 자신보다 오래 살아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들이 한 인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그 인물을 보는 시선이 아이의 그것처럼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봄이가 에이즈라는 사실에 난리법석인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에이즈라는 병은 그저 병일 뿐, 질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마치 에이즈라는 병에 걸린 듯 위협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보이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지면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바로 따뜻한 인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미혼모지만 모성애가 강한 것이 아니라 미혼모이기 때문에 모성애가 강해진 것이고, 삶의 의미가 없으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삶의 의미가 없어진 연후에야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며, 아이를 부정한 후에야 아이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영신네 가족이 가진 온갖 부족함은 작가의 시선으로는 가능성이다. 그 부족함을 따뜻하게 채워줄 많은 살아있는 인물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란 제목은 바로 그 부족함을 채워준 인물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인사이자, 부족하기에 꽃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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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도 전문성도 아닌 형사란 직업에 천착해야

‘히트’는 지금 고민중이다. 기획의도에서 밝혔듯이 직업인으로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남녀, 즉 검사인 김재윤(하정우)과 형사인 차수경(고현정)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특히 김 검사의 귀여운 모습은 털털한 이미지의 차수경과 어우러지면서 마치 풋사랑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반면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했던 남성들에게 이 낯간지러운 멜로는 극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놓는 방해꾼이 된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멜로가 풀어놓은 극적 긴장감을 다시 묶어줄 만한 전문적인 에피소드가 보이지 않는다. 첫 회의 헬기 추격 신에서부터 나왔던 비판은 홍콩 에피소드에서 더 강해졌다.

치밀한 디테일이 보이지 않는 수사장면들이 반복된 데 이어 한가한 멜로 신이 덧붙여진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즉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에피소드가 약한 전문직 드라마에, 주인공 남녀의 강한 멜로 라인이 붙여지자 우리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었다. 혹 이거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 아닌가 하는.

‘히트’는 멜로와 전문직 봉합 실패
‘히트’의 시청자게시판에서 연일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 것은 이 드라마가 이 둘을 동시에 껴안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멜로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멜로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고 만든 전문직 드라마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전문성을 갖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즉 이것은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가 어떻게 잘 엮어지느냐의 문제이지 멜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잘 하면 멜로도 살고 전문성도 사는 그래서 적절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거머쥐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히트’가 고민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을 것이다. 전문성으로만 가면 매니아 드라마가 될 가망이 높고, 따라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멜로를 가미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잘 엮느냐는 문제. 작가가 ‘대장금’이란 역사 속의 전문직 드라마를 썼던 김영현인 만큼 멜로와 전문성 그 둘 다를 기대해볼 만한 문제였다. ‘대장금’도 수라간이라는 공간에서 임금님에게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한 여성의 전문성에, 민정호(지진희)와 장금(이영애)의 멜로 라인이 엮어지지 않았던가.

‘히트’는 대장금도 봉달희도 아니다
하지만 ‘히트’는 ‘대장금’도 아니고 ‘외과의사 봉달희’도 아니다. 전문분야는 형사나 의사나 요리사나 대동소이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문분야를 다루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대장금’은 요리사는 요리사지만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것도 임금님의 요리사를 선택했다는 점이 차별적인 요소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를 다루되 병 고치는 의사로서의 의사만이 아닌 ‘똑같이 병을 앓는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라는 측면을 조명한 것이 차별화 되었다.

그러나 ‘히트’ 속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우리가 이미 많은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 쉽게 유추되고 추리될 수 있는 평이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어느 정도 끌다가는 범인을 검거하는 식이다. 여기에 4부 정도의 분량으로 한 사건씩 마무리를 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는 매회 압축되지 않은 스토리 전개로 인해 끝 부분에 와서 미완적으로 급하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다. 홍콩 에피소드에서도 좀더 장형사의 상황을 드라마적으로 눌러 주었다면 후반부의 해결에 있어서 더 진한 감동과 페이소스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과장(손현주)과 최반장의 에피소드 역시 최반장의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나 빨리 드러나면서 긴장감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트’는 형사들이 맡게 되는 사건보다는 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건이 끝날 때쯤이면 그 에피소드가 사건이 아닌 인물들 간의 관계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된다. 홍콩 에피소드가 부녀간의 가족애였다면 조과장과 최반장 에피소드는 유사 부자(아버지 같은 분)간의 갈등이다. 이러한 관계설정을 통해 드라마는 처음부터 형사라는 직업이 갖는 삶의 페이소스를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히트’의 경우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싱거워서인지 그 효과는 반감된다.

‘히트’, 멜로나 전문직 아닌 형사에 집중해야
이러한 비판들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그간 히트 팀의 빛나는 캐릭터들에 가려져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영두(김정민)가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현재 진행되는 ‘히트’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영두란 캐릭터가 다른 점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희화화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차수경이란 여성 강력반 반장 캐릭터를 위시해 김재윤과 히트 팀원들은 모두 조금씩은 만화 같은 면면을 보여왔다. 그 아기자기한 맛이 ‘히트’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상 총과 칼이 날아다니는 현장 속에서 그것은 또한 단점도 된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두는 다르다. 그는 진짜 형사 같다. 평상시엔 한 여성을 짝사랑해온 평범한 남성처럼 보이지만 급박한 상황에 들어가면 거칠고 과격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과거의 형사였지 지금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가 살해당한 연쇄 성범죄자와 벌인 난투극은 과거엔 수사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발목을 쥔다. 형사라는 직업이 가진 이중성, 즉 법을 지키기 위한 폭력과 범법 사이에서 김영두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 속에서 좀더 진전된 에피소드를 끄집어낼 가능성이 있다.

전문직 드라마와 멜로를 같이 끌고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히트’는 저 ‘외과의사 봉달희’의 길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목되어온 에피소드들은 뒤통수를 치는 놀라운 스토리보다는 ‘형사들의 애환’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차수경이란 형사가 갖는 여성성의 억압, 장형사가 보여준 형사란 직업의 현실, 조과장과 최반장이 그려낸 형사와 범인간에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 같은 것은 모두 형사란 직업이 부여한 어려움이다. 이것은 저 ‘외과의사 봉달희’가 의사들의 인간적인 고민을 다룬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히트’의 멜로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형사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안 되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그 대상이 검사라면 미묘한 직업적 관계 속에서 멜로와 전문직이 부딪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히트’는 이제 더 이상 멜로니 전문직이니 하는 것에 대한 소모적인 비판을 끝내고 오로지 형사라는 직업에 더 충실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이 현재 ‘히트’가 처한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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