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형 개그가 담은 개그맨의 진심

언제부턴가 개그맨들은 자기 현실을 개그의 한 요소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중간에 어색해지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애드립. “이거 또 편집인데...” 물론 그 어색한 장면은 편집되지 않는다. 웃기지 않는 상황을 애드립 한 방으로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집의 공포’라는 소재는 오랜 전통을 가진 개그맨들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개그맨,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하다
이러한 경향은 여타의 공개개그 프로그램 중에서도 ‘개그콘서트’에서 유독 돋보이는데 ‘마빡이’를 비롯해, ‘착한 녀석들’, ‘개그두뇌 트레이닝’,‘개그전사 300’등은 그 계보 상에 있다. 이들 개그의 특징은 대화형 개그라는 점. 진정으로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서 자신의 상황을 100% 활용하는 이 개그들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거나 심경을 토로한다.

물론 대화형 개그는 이제 일방향적 소통으로는 공감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요즘은 UCC를 통해 시청자가 개그에 직접 참여하는 시대, 저들끼리 떠들고 저들끼리 웃긴다고 깔깔대는 개그는 이제 그만큼 효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그맨들은 이제 옆으로 서지 않고 정면으로 서서 시청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마빡이’, ‘착한 녀석들’ 편집이 두려워?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 “웃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빡이’는 시청자들을 웃게 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마빡을 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개그맨들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마치 자학처럼 보이지만 그 동작에는 개그맨들이 처한 실제 상황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기에 공감의 틀이 만들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개그맨들이 처한 현실 또한 제각각의 캐릭터로 보여준다는 것. 마빡이(정종철)와 얼빡이(김시덕), 대빡이(김대범)가 힘겨운 동작을 하며 웃기려 안간힘을 쓸 때 갈빡이(박준형)는 쉬운 동작으로 관객을 웃긴다. 같은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층위를 만들어내자 이것은 단순한 개그맨들만의 현실이 아닌 사회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현실로 확장된다.

이들이 가진 직업으로 인해 생기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조직에 몸담은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강박관념과 유사하다. 누군가 그들에게 ‘웃기지 못하면(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편집 당한다(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요하는 현실을 이 개그는 꼬집고 있다.

그런 면에서 ‘착한 녀석들’은 그 강요하는 자에 대한 반란을 꿈꾼다. 개편을 앞에 둔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절대로 개편되지 않기 위해 안티 관객들의 입을 막거나, 심지어는 코너의 종료를 알리는 밴드의 음악연주를 못하게 막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억압된 이들 존재들이 보여주는 작은 반란은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개그두뇌 트레이닝’, 간파 당한 개그 뒤집기
개그맨들이 웃기지 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개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들이 만든 개그들이 이미 관객들에게 간파 당했기 때문이다. ‘개그두뇌 트레이닝’은 5초 후를 예측한다는 설정으로 이 상황을 전복시켜 버린다. 5초 후의 상황을 간파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는 관객을 개그 속으로 끌어들인 개그맨들은 거기에 오히려 급수를 매겨준다. “이 정도를 예측했으니 당신은 초급 수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쉽게 간파 당하며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쉬운 수준의 개그조차 이 형식 속에 들어가면 웃음을 유발한다. 거기에는 새로운 요소, ‘예측한 일이 벌어진다’는 기대감과, 개그맨과 관객간의 퀴즈대결형식 속에서 ‘맞췄다’는 만족감이 새롭게 창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몸 개그’라는 새로운 형태의 개그가 필수적이 된다. 개그라는 언어적 기능에 충실한 웃음의 요소에 몸이라는 표현수단이 접목된 형태인 ‘몸 개그’는 과거의 저질이라 비난받던 슬랩스틱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슬랩스틱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맞고 넘어지는 동작을 보이는 반면에, ‘몸 개그’는 몸으로 언어의 한 부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이것은 오히려 마임에 가까운 것이다.

‘몸 개그’는 따라서 ‘개그두뇌 트레이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퀴즈 형식에서 단순히 말로 해결되는 해답은 그다지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지 않지만 ‘몸으로 표현된 해답’은 그 장면 자체가 우스꽝스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코너가 이러한 형식을 가지고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늘 간파되기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이 코너 역시 “웃기기 어렵다”는 말의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이 코너의 특징은 개그맨이 웃음을 준다기보다는 관객들이 ‘스스로 웃음을 찾는다’는 점이다. ‘웃기기 어려운 상황’을 개그맨들은 관객의 머릿속에 기대된 장면을 끄집어냄으로써 웃기는 상황으로의 바꾸어놓은 것이다.

‘개그전사 300’, 같은 현실 앞에 신인과 기성이 껴안다
더 어려운 상황은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개그전사 300’은 이 상황을 영화 ‘300’을 패러디해 보여준다. 기성개그맨들은 치고 들어오는 신인개그맨들에 맞서 자칭 새롭다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신인개그맨들의 왕(?)으로 등장하는 윤성호에 의해 ‘식상한 개그’로 치부된다.

기성개그맨들은 방패로 무대 한 구석에 수성의 자세를 유지하고 신인개그맨들이 등장해 공격(?)을 감행한다. 신인개그맨들의 개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개그콘서트 분석’ 코너이다. 기성 개그맨들을 하나씩 들추어내 그 면면을 비하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코너는 ‘개그콘서트’의 자기반성시간이라 할 수 있다.

‘개그전사 300’은 마치 신인개그맨이 기성개그맨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신인개그맨들의 개그에 윤성호는 역시 “뻘쭘하다”는 말로 비판을 가한다. 이 코너의 진짜 의도는 신인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기성개그맨들이 마련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성개그맨들은 사실 자신들을 비하해 신인개그맨들의 자리를 마련한 셈이 된다. 이로써 이들의 대결은 대결이 아니라 ‘웃기기 어려운’ 개그맨이란 자리에서 보여주는 선후배간의 끈끈함으로 재확인된다.

개그맨들이 개그하기 어려운 상황을 개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상황과 연결해보면 이 개그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는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칼 쥔 사람들 앞에서 잘릴 걱정 앞에 놓인 사람들을 꼭 껴안아주는 따뜻함이 있다. 누구나 할말은 있고, 잘 될 수 있지만 단지 상황이 그걸 막는 현실에서도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이 웃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개그맨들의 처절한 개그가 공감을 주는 건 그 속에 그네들의 진심이 담겨있고, 그 진심이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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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월화 ‘내 남자의 여자’의 강품이 유난히도 강했던 한 주였습니다.

역시 김수현인가
김수현 작가의 독한 대본을 바탕으로 김희애의 독한 연기에 맞선 배종옥의 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시청률은 20%를 넘어 월화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히트’의 부진이 또 한 몫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애초에 전문직 드라마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멜로 드라마를 표방했다면 이런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정우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압권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들은 전문직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차수경이란 캐릭터와 그 연기를 하는 고현정으로 떨어진 시청률을 그나마, 하정우씨의 멜로가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화에 독한 드라마로 풀어내며 이 악물고 일을 하다가 수목이 되면 슬슬 따뜻한 햇살이 간절해지기 마련, 이 욕구를 맞춰주듯 ‘고맙습니다’는 수목에 활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공효진과 서신애의 연기에 그들을 보호해주는 두 수호천사, 장 혁과 신성록의 따뜻한 연기는 월화에 맺힌 독기를 쪽 빼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한가인을 빼고는 트렌디한 설정으로 지속되고 있는 ‘마녀유희’의 전선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 전락하는 등 점점 먹구름이 끼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아예 시청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고 항변하듯 ‘마왕’은 꿋꿋이 자신의 노선을 밟아가며 매니아드라마로서의 명품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말드라마는?
주말 드라마는 별다른 진전 없이 대조영과 설인귀의 엎치락뒤치락 두뇌게임이 돋보이는 ‘대조영’의 선전이 눈에 뜨입니다. 부기원의 미친 행세가 사실 연기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이런 작은 음모들로 극이 진행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연개소문’은 유동근이란 굵직한 배우가 등장하면서 무언가 변수를 가질 것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개소문 역의 유동근과 당태종 이세민 역의 서인석의 본격 대결이 이루어지면 조금 약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동시간 대의 ‘케세라세라’는 ‘하얀거탑’의 뒷자리에 잘못 앉아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아줌마를 잡아라
월화의 강자였던 ‘주몽’의 종영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급변했던 드라마 기상은 이제 안정된 날씨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몽’, ‘하얀거탑’으로 젊은 시청층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놓았던 MBC는 그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해 시청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고, SBS는 좀더 강한 강도의 자극을 김수현이라는 작가를 통해 풀어내면서 전통적인 아줌마 시청층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KBS는 시청률과는 무관한 듯 제 행보를 유지하면서 전통적으로 보여왔던 사극의 강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90%) : 이제 등장할 배종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녀에게 빙의된 시청자들은 그녀의 곧 이어질 반격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90%) :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애정공세가 본격화되면서 훈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짙습니다.
▶ ‘대조영’(기대감 70%) : 부기원의 변신, 하지만 여기에 속지 않을 대조영의 모습에서 기대가 되지만 그 다음은 또 누구의 반복이냐가 기대감을 낮추는 요인입니다.
▶ ‘히트’(기대감 60%) : 하정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기대감 자체. 그러나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저하될 전망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시청률은 낮지만 죽 보아왔던 시청자라면 기대감 100%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 전개. 세 번 째 희생자는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가 관심의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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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서 ‘무릎팍 도사’까지

짐 캐리가 트루먼으로 나온 영화, ‘트루먼쇼’는 지금 우리가 TV에서 보는 거의 모든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트루먼의 샐러리맨으로서의 삶과 사랑은 그 자체로 드라마이며, 그가 술집이든 집이든 직장이든 누군가를 유쾌하게 하기 위해 떠들어대는 농담은 그 자체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트루먼이 매력적인 것은 굉장한 스타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이 트루먼을 24시간 엿보는 것만으로 감동과 슬픔, 분노, 행복, 유쾌함, 웃음 같은 TV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게된다. 이 ‘트루먼쇼’는 지금 우리 TV가 변화하고 있는 한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TV라는 가상의 세계는 점점 더 실재의 세계를 넘보고 있고 그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리얼리티’를 부르짖는다.

‘무한도전’, 쇼를 하라! ‘생(生)쇼’를 하라!
‘무한도전’이 ‘리얼버라이어티쇼’를 주창하고 나섰을 때 그것은 면면히 방영되어온 리얼리티쇼의 새로운 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전 리얼리티쇼의 대부분은 이른바 사연을 보낸 시청자의 문제를 풀어주는 솔루션 리얼리티쇼였다. “이랬던 집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하면 와하며 놀라는 얼굴로 감동하는 사람들. 대표적인 솔루션 리얼리티쇼가 ‘러브하우스’였다. 이것은 국민공감프로젝트란 기치를 걸고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느낌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루션 리얼리티쇼에서 연예인들은 도우미의 역할이었지 어디까지나 그 중심은 사연을 보내온 시청자들의 리얼리티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무한도전’에 와서 그 리얼리티는 연예인 당사자에게 맞춰진다.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 노홍철, 하하, 정형돈으로 구성된 연예인단에게 미션이 떨어지고 그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가감 없이(?) 담는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의도. 그간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기획 연출된 재미에 질력이 난 시청자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필요한 것은 던져진 상황에 따라 넘치는 끼로 재미를 만들어 가는 캐릭터이지 기획된 대본에 맞춰 대사를 읊는 출연자가 아니었다. 연출보다 중요해진 것은 순발력과 애드립이었다. 좌충우돌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어져야 했기에 자막은 또 하나의 출연자가 되었다. 그 틀 안에서 여섯 명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트루먼처럼 생(Live, 生)쇼를 한다. 그 안에서는 유재석과 마봉춘 나경은 아나운서와의 열애사실 같은 개인적인 사생활도 가십처럼 쏟아져 나온다. 연예인의 리얼리티쇼라는 점에서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시 프로그램 안에서도 다루어진다.

리얼리티에 도전한 ‘무한도전’의 한계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저 트루먼처럼 날 것의(生) 쇼일까. 여기에 ‘무한도전’이 갖는 리얼리티쇼로서의 의미와 한계가 드러난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란 진짜 개인으로서의 맨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실제 얼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연예인으로서의 맨 얼굴일 뿐이다. 그것이 실제 얼굴처럼 보이는 것은 보통의 TV스타들이 당시 지향하던 신비주의의 반대방향으로 ‘무한도전’은 무한질주를 해왔기 때문이다.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을 거쳐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과거와 달리 ‘굴욕을 당하는’ 현재의 캐릭터들로 만들어졌다. 그 굴욕은 도전이란 의미로 상쇄되고 그 도전은 반응을 끌어내면서 각자에 맞는 캐릭터가 창출되었다. 출연자들의 캐릭터는 끌어내려지면 내려질수록 리얼리티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문제는 ‘무한도전’이 인기를 끌면서 그 출연자들 역시 인기가 상승되었다는 데 있다. 인기를 얻기 전의 굴욕적인 모습들은 더 이상 ‘무한도전’ 속에서 다루어지기 어려워졌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무한도전’이 리얼리티쇼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자가당착이다. 무한도전은 이미 톱스타가 되어버린 캐릭터들의 리얼리티에 걸맞는 도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패션모델이나 드라마 주인공처럼 톱스타가 톱스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자 ‘무한도전’의 리얼리티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청률 하락의 원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트루먼쇼화 되어 가는 TV의 모습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과도기적 프로그램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어쨌든 식상한 기획 프로그램을 넘어서기 위해 TV의 리얼리티라는 미션을 두고 벌인 ‘도전 한 판’은 성공적인 셈이다. 이제 그 바통은 ‘무릎팍 도사’가 이어받는다.

도사가 무릎 꿇린 연예인의 맨 얼굴
무릎팍 팍팍! 이 단순한 구호는 마치 주문 같다. 이 주문 앞에 연예인들이 그간 숨겨온, 혹은 숨기고 싶었던 맨 얼굴은 TV라는 마법의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공개된다. 다음날 인터넷에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폭탄선언을 한 연예인들의 말들이 기사가 되어 뉴스를 장식한다. 쇼는 쇼일 뿐이라고? 적어도 ‘무릎팍 도사’의 경우 쇼는 그저 쇼가 아니다. 쇼는 바로 리얼리티며, 그 리얼리티는 마치 ‘트루먼쇼’의 트루먼의 일상처럼 연예인들의 실제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기사거리가 된다. 현실과 쇼가 묘한 동거를 시작하는 곳, 바로 ‘무릎팍 도사’라는 코너다.

형식은 간단하다. 연예인이 도사 앞에 질문을 가지고 등장하고, 무릎팍 도사 강호동과 거만한 도사 유세윤, 그리고 올라이즈 밴드는 거침없는 질문공세를 퍼부어 출연자의 속내를 드러내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인터뷰 형식이 대결구도를 가진다는 점. 무릎팍 도사 측은 출연자가 얘기하지 않으려는 당혹스런 부분을 끄집어내 진실(?)을 밝히려 하고 출연자는 거기서 벗어나려 때론 땀을 뻘뻘 흘리고 때론 공세를 취해 강호동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고드는 시도는 이미 ‘야심만만’을 통해 실험된 적이 있다. ‘야심만만’은 어떤 안건에 대하여 마치 설문조사를 하는 듯 포맷이 구성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 질문들을 통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질문 자체나 출연자를 영화나 드라마 홍보의 수단으로 만들면서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한없이 떨어뜨렸다. ‘무릎팍 도사’는 리얼리티 떨어진 ‘야심만만’이 갖고 있는 약점을 대결형식과 좀더 과감해진 질문, 그리고 인터뷰형식의 관건인 적절한 출연자 선정으로 보완한다. ‘연예인의 맨 얼굴 드러내기’라는 리얼리티쇼의 본질을 ‘야심만만’처럼 우회적인 방법이 아닌 보다 직접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무릎팍 도사’, 연예인 탈신비주의와 손잡다
질문은 시청자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노골적인 질문공세는 마치 저 ‘제리 스프링어쇼’를 연상할 정도. 그런데 일반인도 아닌 연예인들이 왜 무릎팍 도사의 부름에 기꺼이 출연해 무릎을 꿇는 것일까. 그것은 달라진 연예인들의 이미지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된다. 이제 연예인들은 더 이상 스타로서 저 하늘 꼭대기에만 있어서는 전혀 빛을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의 스타란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을수록 빛을 발했다면, 현재의 스타는 우리와 같은 눈높이여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살아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연예인들의 스타로서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와 함께, ‘생얼’과 깨는 이미지의 ‘직찍사’가 유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는 연예인들의 신비주의가 이제는 위험한 이미지 관리방법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한몫을 차지한다. 누구나 손에 휴대폰이라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그렇게 우연히 찍힌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유포되는 세상에서 신비주의를 주창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갖고 온 새로운 전략은 신비주의와 탈신비주의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다. 이효리는 뮤직비디오와 스테이지 위에서는 섹시코드의 대명사로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바로 탈신비주의로 돌아간다. 편안한 누나 같고 털털한 여자친구 같은 이미지를 동시에 갖게 하는 것이다.

여기가 ‘무릎팍 도사’와 거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만나는 지점이다. ‘무릎팍 도사’는 달라진 환경 속에서 또한 달라져야 하는 연예인의 탈신비주의 전략을 만족시킨다. 그래서 ‘무릎팍 도사’는 누구든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털털한 보통사람이 되는 마법의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과거 방송을 통해 어떤 문제를 일으켰거나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들은 기꺼이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 감췄던 그 문제를 오히려 들추어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릎팍 도사’는 살벌한 질문들을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풀어내는 한바탕 살풀이를 하게된다. ‘무릎팍 도사’의 복장과 캐릭터 설정이 신기 오른 무당을 표방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살풀이를 하는 기능과도 맞닿는다.

쇼는 그저 쇼가 아니다
그런데 TV 속에서 벌어지는 이 살풀이는 그저 쇼가 아니다. 다음날이면 대문짝만하게 인터넷을 장식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 역시 저 ‘무한도전’이 그러했듯이 연예인들의 실제 맨 얼굴이라기보다는 연예인으로서의 맨 얼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청자와 연예인이 만나는 지점이기에 그것은 리얼리티가 된다. ‘무한도전’이 프로그램 속의 출연자들에게 리얼리티를 부여해 그들의 인기상승과 함께 프로그램의 인기하락이라는 자가당착에 빠진 반면, ‘무릎팍 도사’는 매번 외부인물을 끌어다가 인터뷰 배틀이란 형식으로 외부 출연자의 리얼리티를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고정 출연자에게 있다. 그것은 ‘무릎팍 도사’가 하는 질문이 과연 진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해명을 위한 질문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후자로 가게된다면 이 트루먼쇼는 가짜임이 판명날 것이고 그 결과는 저 ‘야심만만’이 가게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TV는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니다. TV는 더 이상 그저 그 앞에 사람을 멍한 표정으로 앉혀놓는 상자가 아니다. TV 속의 ‘난장이들’은 이제 현실세계로 빠져나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화면 속에 비춰지는 세계는 화면 밖의 세계가 되었다. 쇼가 일상이 되었다는 걸 알리듯 TV는 소리친다. 쇼를 하라! 생쇼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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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기라는 ‘마왕’의 낯선 드라마 공식

데이빗 핀처 감독의 명작, ‘세븐’을 보면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 밀스가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한 걸 알게되고 ‘분노’를 참지 못해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의미심장한 것은 이 순간 형사는 살인자가 되고 연쇄살인범은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범법자와 법을 집행하는 자 사이는 이렇듯 백지 한 장 차이로 구분된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퍼즐을 푸는 듯한 드라마의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 ‘마왕’이 던지는 질문도 다르지 않다. 자신은 나쁜 놈 잡는 형사이지 나쁜 놈이 아니라고 생각해온 강오수(엄태웅) 형사가 맞닥뜨린 현실은 끔직하다. 그것은 첫 번째 경고문 그대로다. ‘진실은 친구들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사건을 좇던 그가 사건의 실마리를 통해 알게되는 것은 범인의 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 저질렀던 끔찍한 사건의 기억. 강오수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일의 진실이 주는 고통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보통의 형사물이나 스릴러를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자신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낯설게만 느껴질 것이다. 범인을 좇던 형사가 결국 그 범인은 자신이었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로 드라마화시키기에 어려운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있어 이만큼 강력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강오수와 오승하(주지훈)는 상황의 양 끝단에 서서 정반대의 길을 향해 달려간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형사는 피의자가 되고, 범인은 피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마왕’이란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거리 두기를 강요한다. 그것은 시청자가 특정 캐릭터에 동화되어 흘러가는 것을 막고, 전체 피스를 손에 쥔 채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듯이 사건 전체를 생각하며 보게 만들기 위함이다. 기존 감정이입의 법칙에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너무 어렵고 힘겹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이것이 ‘마왕’이란 드라마를 보는 진짜 재미이다. 지금까지 가볍고 쉬운 게임에 질력이 났던 시청자라면 이 드라마가 선사하는 복잡한 게임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화면 상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늘 불분명하게 처리된다. 그것은 때론 마치 훔쳐보듯 멀리 떨어져서 보여주는 카메라 때문이기도 하며, 때론 빛과 어둠이 명백한 조명 탓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론 사건 전개에 있어서 바로 이어져야 이해가 쉬울 신과 신 사이를 일부러 띄어놓는 장치 때문이기도 하며, 때론 거친 듯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 탓이기도 하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화면에 구성된 캐릭터들은 전체로 보여지지 않고 주변 사물들에 걸쳐져 가려지거나 갇혀진다. 마치 캐릭터들은 그 갇혀진 화면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익숙하지 않은 화면이다.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조각 위에 그려진 작은 흔적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마치 카메라는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분할되거나 가려진 공간 속에 놓여진 캐릭터의 일거수 일투족을 우리는 퍼즐 조각을 바라보듯 집중해서 바라본다. 그 안에 무언가 있기 때문이다.

‘마왕’이란 드라마는 지금껏 등장했던 여타의 드라마들과 달리, TV 속의 드라마와 TV를 보는 시청자 사이의 간극을 넓혀놓았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재미와 새로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빠져들고 동화되어 보는 드라마에서 탈피해, 철저히 이화되고 객관화시켜 봐야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다분히 매니아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늘 같은 공식에 같은 인물들이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들만 봐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늘 같은 밥상에 같은 반찬을 맛봐야 했던 시청자들이라면 이 낯선 반찬에서 왠지 모를 대접받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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