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보고 또 보는 까닭

 

조두순, 이춘재, 정남규, 유영철... 이름만 들어도 분노하게 되는 끔찍한 범죄자들을 마주한 채 면담하고, 살인 현장을 찾아 그 범인의 동기와 동선을 찾으려 범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며, 심지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범죄자와의 심리적 유대관계까지 갖는 범죄심리학자나 프로파일러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고 또 어떤 마음을 갖고 그 일을 대할까.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그것이 알고 싶다' 2탄 특집으로 마련한 방송에는 범죄심리를 연구하는 이수정 교수,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 인천지방경찰청 이진숙 경위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 프로파일러 권일용 같은 분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연쇄살인범들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때론 함께 밥을 먹기도 해야 하는 그들이 '범죄를 연구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그래야 범죄가 더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수정 교수는 범죄심리학이 범죄자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며, 왜 그 마음을 연구하느냐는 질문에 "범죄자가 형이 만기 돼서 출소를 해도 사회로 돌아갔을 때 또 다시 재범을 할 거냐 안할 거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마음을 연구 안하면 이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조두순 출소에 대해서 당시의 피해자가 그 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사법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단지 엄벌만 하는 게 정의가 아니고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 사법 정의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현재의 형사사법제가 무조건 범죄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되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고 강조했다.

 

이춘재나 고유정 같은 이들과의 면담을 해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는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 이진숙 경위는 범죄자들과의 면담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그 범죄 과정들을 들으며 경악하거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면담 과정에서 프로파일러들은 그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라포르'라 불리는 범죄자들과의 친근한 유대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즉 그들 앞에서는 친밀하게 대화하면서, 그걸 통해 드러난 사건들을 처리할 때는 냉철하게 해야 하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이 상황을 살인범과 마주해 함께 밥을 먹어야 했던 경험을 통해 토로했다. 그는 그 경험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같았다며 "범죄자들은 범행을 저지르고 남을 해치기 위해 열심히 먹고 살고" 자신은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열심히 먹고 살아야 되는" 그런 극단의 상황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됐을까.

 

2009년 강호순 체포 이후 연쇄살인범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권일용은 그것이 없어진 게 아니라 빨리 잡히는 것이라고 했다. 즉 범행 후 빨리 잡히기 때문에 연쇄살인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지, 만일 늦게 잡혔다면 끔찍한 범행이 더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빨리 잡히는 이유에 대해 권일용은 시민의식이 높아졌고 CCTV나 블랙박스 영상 등을 활용하면서 검거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 했지만 범죄심리학자나 프로파일러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 또한 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그것이 알고 싶다' 2탄 특집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그런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는 분들의 생생한 현장에서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또한 한 사람으로서 갖는 복잡한 감정들과 고충들까지 담아냈다는 점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그려내듯 우리와는 다른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의 위대한 헌신이 엿보였다. 모두가 고개를 돌릴 때 그 끔찍한 범죄를 마주하고 보고 또 보는 그런 분들의 헌신이 있어 그나마 우리의 안전이 담보되고 있는 게 아닐까.(사진:tvN)

'골목식당' 포항 덥죽집 사연, 올 최고의 미담이 되길 바라는 건

 

2018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찾았던 포방터 시장은 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보여준 바 있다. 그 곳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제대로 된 음식과 서비스에 대한 고집으로 백종원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감동하게 만든 돈가스집은 그래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모범답안처럼 제시된 바 있다. 코로나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는 올해 요식업계에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준 가장 큰 미담의 주인공이 있었다. 그건 바로 포항 덮죽집이었다.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동생 둘이 벌인 가게가 연거푸 어려움을 겪고 결국 맏언니가 떠안아 어렵게 돈가스집으로 운영하던 그 가게를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처음 찾았던 건 지난 봄. 돈가스집으로는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았던 가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솔루션 자체 몇 개월 동안 미뤄진 그 곳은 그러나 몇 달 뒤 찾아간 백종원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백종원이 던진 "죽은 어떻겠냐"는 한 마디에 마치 성실한 학생이 숙제를 하듯 무려 세권이나 되는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 연구를 거듭한 레시피에 백종원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덮죽. 백종원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드디어 이 집이 그 간의 긴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꽃길을 걷게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지난 10월 덮죽집 사장님이 SNS를 통해 올린 눈물겨운 호소문으로 대중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덮죽'을 한 식품 제조 마케팅 업체이자 프랜차이즈가 상표 출원을 해 도용했다는 것. 사장님은 "포항 골목식당 출연 덮죽집은 서울 강남 그 외 지역의 업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뺏어가지 말아주세요. 제발. 수개월의 제 고민이, 수개월의 제 노력이, 그리고 백종원 선생님의 칭찬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 연말을 맞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힘내요 소상공인 특집'으로 마련된 방송은, 덮죽집 사장님의 사연이 공개됐던 10월 백종원이 부랴부랴 포항 덮죽집을 찾았던 내용을 보여줬다. 가게를 들어오는 백종원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덮죽집 사장님에게서 그간의 마음 고생이 읽혔다.

 

"제가 잘 모르잖아요"라고 자꾸 말하는 사장님은 장사 초보로서 음식에만 온 정신을 쏟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런 일까지 겹쳐 너무나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자신은 내지도 않은 상표 등록과 프랜차이즈로 인한 오해 때문에 오시는 손님들 중에는 사장님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맛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분량만 팔다 보니 못먹고 돌아가는 분들도 많았고 포장을 원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맛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안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니 다른 업체가 '덮죽' 브랜드를 슬쩍 상표등록해 프랜차이즈까지 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장님을 오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있었다고 말하는 사장님에게 백종원은 "우리가 있는데요"라고 말했다. 그 '우리'라는 말이 사장님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됐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싸움은 내가 대신해줄게요." 백종원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대해 사장님은 그날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너무나 든든하게 걱정 말라며 내가 있잖냐고 내가 다 알아서 해줄테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위로해주셨다. 내 생애 이렇게 든든한 빽이 생길 수 있다니. 감동이다.'

 

제작진과 백종원이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고 사실을 알게 된 분노한 누리꾼들이 해당 업체의 다른 프랜차이즈까지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후 업체 대표가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방송의 힘이나 덮죽집을 응원하게 된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일단락된 사안처럼 보였지만 아직 상표권 관련 문제들은 여전히 남은 숙제가 되었다. 다음 회 예고에서는 백종원이 나서서 특허청과 변리사를 찾아가 해결책을 물어보는 장면들이 공개됐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사장님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백종원 같은 인물이 있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사안이지만 사실 이런 소상공인들이 때론 잘 몰라서 때론 힘이 없어 겪게 되는 보이지 않는 피해사례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런 일들은 방송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어야 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씁쓸함이 느껴지지만 그 실현되지 않는 일들을 나서서 해주고 있는 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존재 근거가 아닐까 싶다. 불황에 코로나19 같은 악재까지 겹친 데다 상표 도용 문제까지 겪은 포항 덮죽집이 그래도 그 모든 문제들을 이겨내는 미담으로 남기를 바라는 건 그것이 마치 마지막 남은 희망처럼 보여서다.(사진:SBS)

'펜트하우스', 진짜 복수극은 아이들이 한다

 

"적당히 좀 하세요! 제가 잘못 살았다면 그건 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오윤희(유진)에 의해 불륜과 이혼을 청아재단 이사장인 아버지 천명수(정성모)에게 들통 나 버리고 이사장 자리는 물론이고 모든 걸 잃게 된 천서진(김소연)은 빗속에서 그렇게 항변한다. 자신과 동생을 끝없이 비교 경쟁시키고 채찍질했던 아버지 때문에 사랑에 굶주렸다는 천서진. 하지만 그런 항변을 하는 천서진을 천명수는 어디다 말대꾸냐며 뺨을 올려붙이며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한다.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라고.

 

그리고 결국 드라마는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유서가 든 가방을 두고 부녀가 몸 싸움을 벌이다 아버지는 쓰러져 계단 밑으로 구르고,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손길을 천서진은 마치 사이코패스 같은 눈빛으로 외면하고는 유서를 빼들고 도망친다. 존속 살해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하는 최악의 패륜마저 등장하는 것.

 

<펜트하우스>의 이 장면은 아마도 향후 천서진이 그의 딸 하은별(최예빈)에게 겪을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 천서진이 그의 아버지에게 겪었던 경쟁과 비교를 고스란히 딸에게 대물림한 하은별은 점점 비정상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아버지 하윤철(윤종훈)이 정신과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니 하은별이 겪고 있는 건 '가면증후군'이다. 천서진으로 인해 끝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경쟁에 내몰리게 되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는 것.

 

천서진이 오윤희에게 저질렀던 끔찍한 범죄(트로피를 빼앗고 목을 그어 성악을 못하게 만든)는 고스란히 그들 자식들로 이어진다. 천서진의 딸 하은별은 오윤희의 딸 배로나(김현수)를 협박해 학교를 그만 두게 하려 한다. 심지어 엄마가 저지른 것처럼 배로나를 공격하려고까지 한다. 이미 누가 응징하지 않아도 천서진의 비극은 그래서 이미 예고되었다. 다른 이가 아닌 딸이 자신처럼 부모를 패륜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니.

 

<펜트하우스>의 이런 상황 설정은 김순옥 작가표 사이다 저주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다. 법의 심판대 위에 올리는 그런 정도로는 이 세계 속 악당들에 대한 저주와 처벌이 너무나 약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들이 하는 짓들은 거의 악마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순옥 작가가 가져오는 이들에 대한 저주는 저들 스스로 만든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족 복수극'의 틀이다.

 

물론 '가족 복수극'은 누군가에게 가족이 불행을 당한 것을 복수하는 오윤희나 로건리(박은석)의 복수극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저 천서진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지옥도다. 돈과 권력만이 삶의 존재 근거처럼 여기는 저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서로 물어뜯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펜트하우스>는 이들의 자극적인 패륜을 통해 사이다를 던져 놓는다.

 

이 설정은 통쾌함을 주긴 하지만,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보기 불편한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아버지가 빗속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 그를 버리고 헤라팰리스로 돌아온 천서진이 아버지의 피가 묻은 손으로 광기어린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그래서 소름끼친다. 그건 다름 아닌 지옥이고 그 곳에 스스로 떨어진 악마의 형상을 재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에서 진짜 복수는 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이들이지만 어른들의 범죄를 거의 똑같이 재연하는 아이들. 그들이 끔찍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모습에서 지독한 자극과 더불어 저들 악당들에 대한 살벌한 저주가 느껴진다. 시청자들이 지독한 범죄적 설정과 개연성 없는 막장이라 부르면서도 보게 되는 건 그 선을 넘는 자극 속에 심어 넣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철인왕후'에 쏟아진 논란, 패러디나 풍자가 선을 넘을 때

 

"주색으로 유명한 왕의 실체가...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지라시네. 괜히 쫄았어."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에서 조선시대로 타임리프되어 왕후인 김소용(신혜선)의 몸으로 들어간 장봉환(최진혁)은 그렇게 말한다. 애써 철종(김정현)과의 첫날밤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도리어 그가 피곤하다며 혼자 잠자리에 들자 안도하며 툭 내뱉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이 조선왕조실록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던 철종의 모습과 그의 앞에 마주한 철종이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말이다. 역사는 철종이 세도정치 속에서 주색에 빠진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기록과 다른 철종의 행동에 장봉환이라는 바람둥이의 목소리로 그런 대사가 담긴 것. 

 

그런 의미라고는 하지만, 이런 과격한 표현은 분명 문제의 소지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첫 회에 등장했던 "여기가 무슨 조선시대야?"라고 김소용이 왕에게 묻고 왕이 "조선시대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수위의 표현이다. 그건 비하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재에도 시대착오적 상황을 말할 때 "무슨 조선시대야?"라고 하는 그 비판적 뉘앙스를 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구체적인 문화유산을 가져와 '지라시' 운운하는 건 제아무리 패러디나 풍자라고 해도 선을 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는 김소용이 술자리 게임에서 어깨춤을 추며 던진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 같은 대사에서도 똑같이 생겨나는 문제다. 굳이 구체적인 '종묘제례악'을 가져와 웃음을 만들려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철인왕후>는 조선시대로 상정되는 엄숙한 권위들을 뒤틀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가 힘을 발휘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모두를 웃게 만들려면 표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극중 실존인물인 신정왕후의 후손인 풍양 조씨가 <철인왕후>가 그려낸 신정왕후의 희화화에 대해 강력대응 하겠다 나선 건 이처럼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드라마 속 인물을 굳이 실존인물의 이름 그대로 담아낸 데서 발생한 일이다. 

 

만일 철종이나 신정왕후 그리고 풍양 조씨, 안동 김씨 같은 실제 역사 속 인물군을 끌어오지 않고 아예 조선시대라는 시공간만 가져와 가상의 인물들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이런 논란을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게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종묘제례악' 같은 구체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끌어와 희화화할 정도로 과격한 길을 선택했다. 이런 표현이 논란이 될 거라는 걸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사건 등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드라마는 이렇게 사전고지를 함으로써 여기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창작자의 허구라는 걸 분명히 한다. 하지만 그 허구 속에도 구체적인 실제 역사 속 인물이나 유산들이 그 이름 그대로 지칭되고 있는 건 이런 고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또한 이렇게 철종 같은 역사 속 실제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발생하는 논란은 단지 표현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국 드라마는 역사에서 다뤄진 철종과는 너무나 다른 철종의 모습을 그려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겉으로는 주색에 빠진 듯하고 별 강단도 없어 보이는 인물처럼 꾸미고 있지만 밤이 되면 궁을 빠져나가 마치 협객처럼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 인물이다. 허구라는 걸 밝혔지만 철종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역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과연 괜찮은 걸까. 

 

만일 실제 역사와는 다른 완전한 허구의 세계로 그려졌다면 <철인왕후>는 충분히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전할 수 있는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 등장하는 구체적인 인물과 유산을 담은 표현들은 허구라고 해도 웃기 힘든 지점들을 발생시킨다. 다소 파격적이지만 괜찮은 시도일 수 있었던 <철인왕후>. 너무 과격하고 과감했던 '표현의 문제'가 그 발목을 잡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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