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사제복 입은 슈퍼히어로 과한 건 득일까 실일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사자>는 개봉 첫 주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겨냥한 텐트폴 영화로서 그렇다고 많은 수치도 아니다. 같은 날 개봉한 <엑시트>는 벌써 290만 관객을 넘기고 300만 관객을 앞두고 있다.

 

<사자>가 <엑시트>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르적 색깔이 뒤로 갈수록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엑시트>도 재난에 가족드라마, 코미디가 뒤섞여 있지만 그 균형이 꽤 괜찮다. 하지만 <사자>는 오컬트 장르와 슈퍼히어로물을 섞어 높았지만 어딘지 과한 느낌이 있다.

 

아마도 <사자>를 보려는 관객들은 이 작품이 <검은사제들> 같은 오컬트 장르일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라는 캐릭터가 바티칸에서 온 구마사제 안신부(안성기)와 함께 구마의식을 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 영화는 순간 <아이언 피스트> 같은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실체를 드러낸다.

 

<검은사제들>의 구마의식이 액션이 아니라 오컬트 장르가 주는 오싹한 악령들과의 영적인 대결이었던 걸 떠올려보면, <사자>는 오히려 액션이 전면에 등장한다. 실제로 이 영화의 장르 구분을 보면 미스터리, 액션, 판타지, 공포가 혼재되어 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영화가 어느 순간 톤을 넘어 과한 판타지로 넘어가는 지점이 되면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생겨난다.

 

용후가 점점 자신의 특별한 힘을 알아가고 키워가는 동안, 안신부가 잡으려 하는 악을 퍼뜨리는 검은 주교 지신(우도환)의 힘도 덩달아 커져간다. 그래서 결국은 이 거대한 두 힘이 맞붙게 되는데, 그 장면은 영락없는 ‘철권’ 같은 액션으로 채워진다. 인간의 모습을 뛰어넘는 괴물로 변신한 지신과 완벽한 슈퍼히어로의 한 판 액션.

 

영화의 과한 설정을 그나마 누그러뜨리고 끝까지 이어가는 힘은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김주환 감독의 전작에서도 함께 했던 박서준은 그 바르고 조금은 둔감한 모습으로 이 영화가 오컬트의 공포로 빠져드는 걸 막아준다. 보기에도 섬뜩한 악령들의 모습 앞에서도 “그게 뭐?”라고 할 법한 무감한 반응은 관객을 충분히 안심시켜주는 면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오컬트에서 액션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건 전적으로 박서준의 안정적인 그 표정연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너무 과해 현실성을 넘어서는 상황과 설정들을 끝내 끌어당겨 땅바닥에 붙여 놓는 안성기의 안정적인 연기가 더해졌다. 실로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툭툭 농담을 던지는 생활연기(?)를 선보이는 안성기의 존재는 <사자>가 가진 약점들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린 중요한 요인이 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퇴마사와 격투기 선수를 붙인 캐릭터는 흥미로울 수 있었지만, 어째서 반전이 있는 이야기에 공을 들이기보다 액션 볼거리로 나갔을까. <사자>는 엔딩에 사제로 돌아올 용후의 이야기가 또 이어질 거라는 여운을 남겨 놨다. 혹여나 후편으로 올 것이라면 좀 더 이야기를 치밀하게 꾸려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화려한 볼거리는 물론 여름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것이긴 하지만.(사진:영화'사자')

‘캠핑클럽’, 이들의 캠핑여행에 우리도 동승하게 되는 이유

 

새벽 경주 화랑의 언덕에 해가 떠오른다. 너무 예쁜 모습에 이진은 한참 꿈나라에 있는 옥주현과 성유리도 그걸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은 보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이효리가 말한다. “애들도 때가 되면 보겠지. 다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JTBC 예능 <캠핑클럽> 캠핑 4일 차, 해돋이를 보며 이효리와 이진이 나누는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이효리는 아마도 이 캠핑여행을 오기 전부터 이들과 하고팠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먼저 꺼내 보인다. “너는 어떻게 잘 다 받아줘? 잘 이해하고?”

 

이효리가 불쑥 던지는 그 말은 이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는 그렇지 않다며 자신도 불편할 때가 많지만 고맙고 미안할 때가 더 많다고 한다. 말로 내놓지 않았지만 싫다는 내색을 늘 표정에 드러내며 했다는 것. 그걸 받아줬던 멤버들이 고마웠다며 그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이진은 조용히 눈을 훔친다. 왜 우냐고 웃다가 이효리도 전염된 듯 눈이 촉촉해진다.

 

이진은 갑자기 “어제도 미안했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자신의 말투가 직선적이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는 것. 그러자 이효리는 이제 그런 것들을 세심하게 생각하는 나이가 됐다며 이진과 함께 핑클 시절을 회고한다. 이진은 “유리는 챙겨주고 싶고 주현이한테는 기대고 싶다”며 이효리에게는 여기 오기 전에는 잘 몰랐다고 말한다. 자신과 이렇게 비슷한 성격일 거라고는. 21년 만에 알게 된 동질감에 공감하며 두 사람은 미소 짓는다.

 

이효리는 그간 말하지 못하고 풀리지 못했던 ‘응어리’가 있다며 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너무 달랐던 그들. 이효리는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데 자신만 빠져 있는 상황을 느끼며 “내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게다. 이효리는 자신이 “혼자 있는 게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실제로 그는 캠핑에서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고 요가를 하고 불을 피워 차를 마시고 혼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한다. 다른 멤버들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달라진 점도 있다. 그것은 해돋이를 함께 보고 있는 것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 같이 일어나 준 이진이 있었고, 그와 함께 있어 좋았던 시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효리는 여기 오기 전까지 “너네가 날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마도 자신이 잘못한 게 많아서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했다. 이진은 다만 함께 이렇게 만나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전날 낮에도 경주의 어느 피맥집에서 그들은 핑클 시절 각자 다른 것에 대해서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들을 이야기했었다. 성유리는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캠핑클럽>은 어쩌면 한때 핑클로 지냈던 멤버 네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여행을 담아내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그건 아마도 <캠핑클럽>이 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건네는 남다른 위로와 위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때 치열했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어느 새 나이 들어 “그때는 왜 그랬을까”하고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누구나 겪기 마련인 늘 미숙해서 미안하고 후회됐던 관계에 대한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는 그것이 응어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질.

 

어느 새벽 해돋이 앞에서 이효리와 이진이 나누는 진솔한 대화에 우리가 깊이 빠져드는 건, 저마다 개성이 강해 부딪치기도 했던 이들이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늘 갖고 있었다는 걸 확인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걸 발견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캠핑클럽>은 저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아픔도 오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풀어지기 마련이라는 것. 해가 져도 다시 뜨는 것처럼.(사진:JTBC)

‘놀면 뭐하니?’, 유재석 측근과 멀어질수록 반응은 좋아진다는 건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시작은 김태호 PD가 유재석에게 카메라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릴레이카메라는 당연한 결과지만, 유재석 주변의 인물들로 퍼져나갔다. 조세호에서 태항호, 딘딘, 유노윤호 등을 거치고 유희열과 정재형을 거쳐 장윤주로까지 가게 된 카메라는 거기서 갑자기 배우 이동휘로 넘어가면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즉 이전까지만 해도 유재석과 어느 정도는 친분이 있는 예능인들로 쭉 이어져왔지만 갑자기 이동휘로 넘어가면서 이른바 ‘배우 라인’으로 릴레이 카메라가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 이동휘에서 카메라는 영화 <극한직업>의 배우들을 포착해내고, 그의 절친인 배우 박정민을 찾아가 뜬금없는 인터뷰를 하더니 난데없이 낚시에 푹 빠져버린 박병은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배우 라인으로 넘어오면서 영상 자체도 달라졌다. 이동휘의 경우 차분한 목소리로 다양한 콘텐츠들을 담아내며 마치 <아름다운 TV얼굴> 같은 느낌이 담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소개하고, 힘들 때 자신을 힐링시켜줬다는 산책길을 걷다가 급기야 즉흥적인 파리 여행을 선보였다. 또 잘 가는 빈티지샵에서 패션쇼(?)를 보이다가 놀랍게도 <극한직업>의 배우들을 만나 그들의 인사를 담아냈다.

 

그는 진솔한 자기고백도 빼놓지 않았다. 2017년에 연기를 멈추고 싶었고 지쳐 있었다며 그 때 <극한직업> 대본을 보고 함께 한 배우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며 큰 위로를 받았고 너무나 행복했었다는 것. 일종의 슬럼프가 있었지만 <극한직업>을 통해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동휘의 바통을 이어받은 박병은은 전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이면서도 남다른 영상과 앵글로 이를 모니터하는 유재석과 그 출연자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워낙 낚시를 좋아해 일종의 낚시방송처럼 되어버린 박병은의 카메라는 어느 지인의 낚시터를 찾아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한적한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잔잔한 영상으로 담아내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인맥왕인 박병은은 하정우와 전화로 농담을 주고받고 드라마 <킹덤>을 촬영하러 가서는 거기 함께 하는 배우들, 배두나, 주지훈, 김성규, 전석호 등과의 식사 자리 영상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를 조세호의 집에서 TV로 본 유재석과 출연자들은 “점점 블록버스터가 되어간다”고 잔뜩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향후 박병은의 카메라가 어디로 넘어갈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놀면 뭐하니?>의 진가가 아이러니하게도 유재석의 측근들에서 멀어질수록 발견되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시청자들이 늘 봐오던 인물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것이고, 너무 예능에 익숙한 인물들이 아니어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진짜를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원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건 김태호 PD가 릴레이카메라라는 실험을 통해 얻으려 했던 ‘큰 그림’이 아닐까. 그는 애초 유재석과 함께 한 기획회의에서 아는 인물이 주는 ‘뻔한 이야기’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고 유재석 또한 그 말에 수긍한 바 있다. 그래서 그 때 유재석도 자신은 잠깐씩 등장해도 되고 더 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이 카메라에 들어오길 기대한 바 있다.

 

물론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지만, 몇 다리를 거쳐 옮겨가면서 카메라는 의외의 인물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물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그들의 셀프 카메라로 담기게 된다. 유재석을 중심으로 놓고 시작했지만 그 진가는 그에게서 카메라가 멀리 갈수록 나타난다는 것. <놀면 뭐하니?>는 그래서 향후에도 엉뚱한 인물이 오히려 더 흥미진진해지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기대하게 만든다.(사진:MBC)

‘의사요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메시지

 

이 드라마 어딘가 깊이가 다르다.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의학드라마의 접근이 상당히 표피적이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대부분의 의학드라마가 보여줬던 건 아픈 환자와 이를 우여곡절 끝에 고치는 의사의 이야기가 대부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의사요한>은 그 환자의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나아가 고통뿐인 삶이 과연 환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같은 지금껏 의학드라마가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던진다.

 

중증 근무력증을 앓는 격투기 선수의 사례는 이런 질문들을 다차원적으로 담아낸다. 어떻게 하면 고통을 줄까를 고민한다는 주형우(하도권)는 어떻게 하면 고통을 줄일까를 고민하는 차요한(지성)에게 우리는 닮았다고 말한다. 주형우는 살아있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살아있는 게 아니라 고통일 뿐이라고 하지만, 차요한은 고통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링에 올라 싸우는 것이 자신의 존재 증명이라 여기는 격투기 선수 주형우는 연명하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자신이 쓰러졌을 때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치료를 하지 말아 달라 요구한다. 그는 “죽음을 앞당기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한때 도저히 손 쓸 수 없어 고통만을 연장시키던 환자를 안락사 시킨 경험이 있는 차요한은 그러나 주형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차요한은 주형우가 말하는 “죽을 만큼 괴롭다”는 그 이야기가 보내는 시그널을 읽어낸다. 그래서 거기부터 시작해 그가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걸 알아내고 결국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낸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이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자 시그널이라는 것. 그래서 고통을 느낀다는 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병을 사전에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몸이 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차요한이 주형우가 말하는 그 고통을 통해 병을 발견해낸 것처럼.

 

그렇다면 과거 차요한은 어째서 환자를 안락사 시킨 걸까. 그것은 고통을 통해 병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고칠 수 있다는 희망자체가 사라졌을 때, 과연 통증의학과 의사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긴 것이었다. 그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줄여줄 수 없는 고통을 없애주려 한 것이었다. 설령 그 선택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지라도.

 

<의사요한>은 이처럼 고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하고도 진지한 질문들을 담아내고 있다. 새로운 에피소드로 등장한 극단적인 두 환자의 사례는 그래서 더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선천적으로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와 아주 미세한 접촉에도 엄청난 통증을 느끼는 환자의 대비. 이 에피소드에서 통증은 다만 피하고픈 어떤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삶의 증명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을까. 겉보기엔 무통환자가 훨씬 좋아 보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또 다른 아픔을 전제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의사요한>이 통증의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전하는 고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아가 병원 밖에서의 우리네 삶에도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삶에서 느끼는 힘겨움이나 아픔은 우리가 늘 피하고픈 어떤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살아있다는 증명이며 나아가 더 큰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기 위한 신호일 수 있다는 것. 의사 역할을 하는 사회가 힘겨움의 신호를 보내는 이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걸 <의사요한>이라는 의학드라마는 마치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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