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3’,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떠올려진 우리의 포용성 수준

이것이 진정한 <알쓸신잡>의 묘미가 아닐까.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가 우리네 공동체 문화 이야기로 옮겨가고, 그 이야기는 포용성 문화가 얼마나 그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코드가 되는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의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시작해 우리네 아파트 이야기,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이야기, 인구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심지어 음악하던 친구들이 모이던 홍대와 최근 새로운 음악인들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온라인으로까지 옮아간다. 대화를 통한 인식의 확장. 지식들이 겹쳐지면서 생겨나는 깨달음. <알쓸신잡3>가 시에나 캄포광장을 통해 우리의 포용성 수준을 질문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던 이유다. 

이야기는 김진애 교수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시에나의 캄포광장을 다녀온 소감에서 비롯됐다. 마치 미로처럼 펼쳐진 이탈리아 특유의 좁은 골목길들을 헤매다 보면 어느 새 캄포광장에 와 닿아 있게 그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는 것. 그러한 공간 설계는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골목들은 다니다 보면 조금 넓어지는 공간들이 존재하는데, 그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캄포 광장 이야기는 김영하로 하여금 우리네 아파트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김영하는 개인 공간을 인정하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우리네 문화를 지적한다. 유시민 작가는 거기에 더해 우리가 “너무 많은 공동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을 무시하고 관계망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 그러면서 캄포 광장이 말해주는 건 “유럽의 공동체”가 “개인주의의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 개인을 무시하는 사회의 문제에서 유시민은 ‘포용성’이 얼마나 그 지역 발전에 중요한 인자인가를 말해주는 이른바 ‘게이 지수(Gay Index)’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어떤 지역의 번창 혹은 몰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를 연구해 도시들의 순위를 나열해 보니, 그 순서가 게이 지수(도시마다 동성애자의 거주 비율)와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3T이론’이라는 가설로 분석했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테크놀로지(1T)가 높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능 있는 사람(탤런트, 2T)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톨러런스(포용성, 3T)라는 것이다. 게이지수가 포용성의 지표가 되는 건,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소수집단으로서의 동성애자들까지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곳이라면 모든 유형, 모든 종류의 괴짜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김영하는 실제 그 사례로 지난 몇 십 년 간의 샌프란시스코를 들었다. 미국 5대 밀집지역으로서 성소수자의 상징적 도시이고 동시에 실리콘 밸리가 있는 곳이 그 곳이다. 유시민은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과학기술에서 완전히 뒤지게 된 이유가 바로 그 포용성이 사라지면서 많은 인재들이 전부 미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상욱 박사는 그 사례를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이유에서도 찾았다. 당시 영국에 천재들이 많이 나왔는데 출신성분이 미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나 빈민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전기모터를 발명한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 사례다. 즉 당시 영국사회는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알쓸신잡3>가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되어 나온 포용성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문화로 인해 똑같은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아파트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우리들. 유시민이 말하듯 천만 인구가 서울에 모여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괴짜들이 이방인이 살 수 있도록 지역이 포용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익명성으로 살 수 있는 서울로 모여 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인식의 지평이 아픈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건 김상욱이 얘기한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사회처럼 우리는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스펙과 출신으로 미래가 결정되고,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이런 문제들은 이야기를 듣다 1990년대 홍대를 떠올린 유희열처럼 우리 사회 어디서나 발견되는 것들이다. 클럽 한두 개였던 당시 홍대에 몇몇 괴짜들이 음악을 시작하면서 실력 없는 친구들도 데뷔할 수 있는 포용성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홍대문화’가 생겨났는데, 자본이 들어오면서 클럽들이 사라져갔다는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괴짜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공간이 이제는 온라인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포용성을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오프라인)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 대안적으로 찾아낸 온라인 공간이 어째서 최근 들어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유시민이 적어도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속 시원하게 느껴진 건, 포용성 없는 우리네 현실의 갑갑함을 우리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사진:tvN)

‘내 뒤에 테리우스’, 유치해보여도 코믹·멜로·액션 다 있다

이 드라마 정체가 도대체 뭘까. MBC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는 큰 부담 없이 그저 피식피식 웃으며 보다가 어느 순간 이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킹캐슬이라는 단지가 점점 익숙하게 다가오고, 그 안에서 비밀작전을 펼치고 있는 킹스백이라는 가방가게를 둘러싼 정보전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사실 그 이야기가 굉장하다거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아이를 등원시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그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을 뿐이다. 매일 매일이 거의 똑같고 별로 사건이랄 것 없이 지나가는 그 일상이 모험의 세계로 바뀐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내 뒤에 테리우스>의 그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그 모험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남편 차정일(양동근)이 죽고 준수(김건우) 준희(옥예린)와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주부 고애린(정인선)이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경력단절은 재취업을 만만찮게 만들고, 아이를 돌봐줄 시터를 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마치 만화 ‘캔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전직 요원 김본(소지섭)이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그는 아이를 돌봐주는 시터로 위장한 채 차정일의 죽음과도 연관된 무기 브로커 진용태(손호준)를 예의주시한다.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 과장된 사건전개를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로 극복한다. 그것은 국정원이 개입된 정보전 같은 엄청난 사건들이 킹캐슬 단지의 주부들 모임인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가 활약하는 코믹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이 눙치며 이 일상과 거대 사건들을 병치해놓는다. 고애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김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곤 하지만, 또 고애린 역시 자신이 일하는 캥스백이라는 가게에 숨겨진 비밀기지를 자기 방식으로(?) 추적해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 모든 것들이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어 허용되는 과장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코미디가 허용하는 상황들 속에서 <내 뒤에 테리우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사한다. 즉 김본이 시터 역할을 자신이 요원으로 해왔던 자질을 통해 더 잘 해내는 모습을 통해 육아의 능력이 요원들이 갖는 능력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유쾌한 메시지를 던지고, 고애린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달달한 멜로 관계를 보여준다. 사회풍자극과 멜로드라마의 재미요소가 더해지는 것.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자칫 소소해질 즈음, 진짜 스파이액션을 보는 듯한 액션 장르가 펼쳐진다. 진용태가 운영하는 J인터내셔널의 정체가 드러나자 누군가 “깨끗이 지워내라”는 명령을 내리고, 클리너로서 케이(조태관)가 투입되어 진용태마저 죽이려 한다. 코너에 몰린 진용태는 고애린을 납치해 김본을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그가 국정원의 추격에 노출된다. 국정원의 권영실(서이숙)이 진두지휘하는 국정원요원들과 김본의 도심을 질주하는 차량 추격 장면이 연출된다. 

일상의 현실과 거대한 모험이 묘하게 엮어진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래서 조금 유치해보이긴 하지만, 피식피식 웃다가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세계를 그려낸다. 거기에는 정서적으로 우리를 잡아끄는 워킹맘이나 육아, 경력단절 같은 단어들이 어른거리고, 동시에 달달한 멜로와 거의 시트콤에 가까운 웃음 그리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작지 않은 스케일의 액션이 들어있다. 이러니 이 드라마가 쟁쟁한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들과 경쟁하며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사진:MBC)

'골목식당', 라면 하나 못 끓이면서 분식집은 왜 여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백종원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식당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준비 없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내동 만화거리의 식당들을 보면 왜 백종원이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가 이해된다. 이렇게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식당들이 덜컥 장사에 뛰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해외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돌아와 와인집을 낸 동생의 제안으로 5년 동안 근무하던 어플회사를 그만두고 피맥집(피자맥주집)을 오픈한 7개월차 초보 사장은 자신의 가게의 정체성이 피자집인지 맥주집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본인은 맥주집이라고 했지만, 메뉴판을 보면 맨 앞장에 피자 메뉴가 들어가 있어 누가 봐도 피자집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가게 전면은 맥주병들이 인테리어랍시고 그냥 널려 있어 전혀 피자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 집은 손님이 별로 없는 이유가 그 정체성조차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또 시그니처 피자라고 해서 시켜놓고 보니 토핑이 보이지 않고 토마토소스만 위에 발라져 있었다. 나름 아이디어라고 토핑들을 안쪽에 넣고 위 아래로 도우를 덮어 구워낸 것이지만, 백종원은 그 비주얼만 봐서는 “주문 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맛 역시 밀가루맛과 소스 맛이 강해 재료들이 어우러지지 않고 겉돈다고 했다. 결론은 맛이 없다는 것. “최악”이라고 백종원은 최종 평가했다.

짬뽕이 대표메뉴라는 중식집에서는 탕수육 고기에서 나는 냄새의 원인이 잘못된 해동과정에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냉동 돼지고기를 가져와 비닐을 벗기고 물에 해동을 하기 때문에 세균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던 것. 결국 그 때 그 때 소진되지 않는 재료는 더 빨리 상할 수 있었다. 냄새는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짬뽕의 국물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이유가 육수를 온장고에 보관하는 것과 조리 후 바로 음식을 내놓지 않을 때 무쇠 웍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백종원은 알려줬다.

생각해보면 보통의 피자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아이디어라고 엉뚱한 방식으로 피자를 만드는 피맥집 사장이나, 꽤 장사를 해왔음에도 잘못된 습관이 하나 둘 합쳐져 제대로 된 짬뽕국물 맛을 못 내고, 심지어 쉰내가 나는 탕수육을 내놓은 중식집 사장이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장사가 될 리가 있을까.

하지만 더 심각한 집은 분식집이었다. 집에서 아이들이 맛있다고 해서 덜컥 창업까지 하게 된 분식집 사장님은 장사의 현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백종원이 내놓은 미션은 손님들을 두 조로 나눠 장사의 ‘천국(환상)’과 ‘지옥(현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느긋하게 타이밍을 맞춰 주문하는 손님들을 맞으며 기분 좋아하던 분식집 사장은, 한꺼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시켜대는 손님들 앞에서 당황하며 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라면을 끓이는 방식이 특이했다. 물을 먼저 끓이는 게 아니라 찬물에 스프와 면을 동시에 다 집어넣고 뚜껑을 닫은 채 딱 3분 타이머가 돌아가는 동안 끓여서 그냥 내놓는 방식이다. 한때 백종원이 요리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처럼,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거기 봉지에 적혀있는 대로 끓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찬물에 면까지 넣어 끓이면 퍼질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면발을 쫄깃하게 하려면 뚜껑을 열고 면을 몇 번쯤은 들었다 놨다 해야 된다.

그런데 분식집 사장님은 2인분을 시켜도 4인분을 시켜도 한꺼번에 스프와 면을 다 집어넣고 3분 타이머를 돌리는 식으로 라면을 끓였다. 그러다 보니 면이 풀어지지 않은 채 그냥 그릇에 담겨져 나오기도 하고, 물이 쫄아 버려 짜게 되면 뜨거운 물을 넣어 간을 맞추는 식으로 라면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분식집에서 라면은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닌가.

백종원이 분식집 사장에게 장사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경험하게 해준 건, 어쩌면 그 분만을 위한 미션은 아니었을 게다. 그건 너무 쉽게 창업을 생각하는 우리네 현실에 경각심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도대체 피자 하나 못 만들면서 피자집을 내고,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하면서 분식집을 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결국 장사가 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처지가 된 건, 아무런 준비 없이 막연한 환상으로 뛰어드는 창업 그 자체 때문이 아닐까. (사진:SBS)

‘여우각시별’, 공항은 어째서 드라마의 공간이 되었나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고 만나는 곳. 또 날고픈 비행의 설렘과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는 운명을 가진 우리네 현실이 교차하는 곳. 공항은 어쩌면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이 담으려 하는 ‘평범’과 ‘비범’이 교차하는 지점으로는 최적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만 사고로 인해 비범한 몸을 갖게 된 이수연(이제훈)과, 누구보다 비범하게 인정받고 싶지만 실상은 지극히 평범해 오히려 사고만 치고 다니는 한여름(채수빈)이 만나는 공간.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그 길 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설렘을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냈던 것처럼, <여우각시별>은 가까이서 보면 별의 별 인간 군상들이 모여 복작대는 그 공간이지만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여우각시별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공항처럼 그 부대낌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랑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비행기들이 오르내리는 그 여우각시별에는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그 곳을 지나쳤던 우리들에게는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최근 들어 공항이라는 공간이 자주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우각시별>은 아예 공항을 소재로 삼았고, JTBC <뷰티 인사이드>에서도 남자주인공 서도재(이민기)는 티로드항공 본부장으로 공항에서 그 첫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2007년에 방영된 <에어시티>가 그저 공간으로서의 공항만을 차용한 느낌에 머물렀다면, 2016년 방영됐던 <공항 가는 길>같은 작품은 공항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정서를 통해 풀어낸 바 있다. 이처럼 이제 공간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드라마가 담아내는 정조를 표징하는 곳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다.

드라마가 다루는 공간은 당대의 대중들이 갖는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의학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꽤 오래도록 드라마의 공간이 되고 있는 병원은 ‘생명’과 ‘자본’이 뒤얽혀 있어 극적인 사건들이(심지어 사람들이 살고 죽는) 벌어지는 곳으로서, 대중들이 갖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축소해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 법정드라마의 법정은 대중들이 갖는 ‘법 정의’에 대한 갈증이 투영되는 공간이고.

<여우각시별>의 공항은 갖가지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때로는 날아든 새 때문에 프로펠러에 불이 붙어 비행기가 불시착하기도 하는 그런 큰 사건들이 벌어진다. 또 난동을 부리는 진상 여객들 때문에 기물이 파손되거나 사람이 다치는 사고들이 벌어진다. 물론 국가와 국가가 나뉘어지는 일종의 접경지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특별하고 비범해 보이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여우각시별>이 집중하고 있는 건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이수연과 한여름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의 진전과 저마다의 성장담이다. 좌충우돌의 사고뭉치로 보이는 한여름을 마치 젊은 날의 자신처럼 바라봐주고, 또 남다른 몸을 갖게 된 이수연을 지극히 평범한 직원처럼 보듬어주는 양서군(김지수)이라는 인물은 이들의 나날이 벌어지는 사건들의 지향점이 어느 방향으로 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저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거나 넘치는 걸 덜어내 가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간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감성을 가진 양서군의 모습 같은.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익숙해도 여전히 설레는 감정. 아마도 우리가 공항을 떠올리면 항상 반복해서 느끼는 그 감정의 교차는, <여우각시별>이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그 특별함과 일상의 균형과 닮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담아내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복작대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지만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특별한 여우각시의 형상을 닮은 우리네 삶이라는.(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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