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제 위에서 펄펄 나는 나영석 사단, 여행 위에 쓴 예능사

vN 예능 <알쓸신잡3>는 국내가 아닌 해외로 영역을 넓혔다. 이전 시즌에서 슬쩍 나왔던 해외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영석 PD는 놓치지 않았다. 한 프로그램의 지나가듯 던져진 작은 이야기로부터 또 다른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건 나영석 사단의 중요한 제작방식 중 하나다. <꽃보다 할배>에서 농담처럼 나왔던 이서진의 요리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삼시세끼>가 만들어졌고, <신서유기>에서 비롯되어 <강식당>이 등장하는 방식이다.

<알쓸신잡3>는 그 여행지 선정부터가 야심이 넘쳐난다. 그리스에서 피렌체를 거쳐 독일로 가는 그 여정은 서양사를 조금 들여다본 본들이라면 그냥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문명의 발상지라고도 얘기되는 그리스가 고대 문명의 문화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라면, 피렌체는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꽃핀 시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직 방영되진 않았지만 독일은 여러모로 근현대로 넘어오는 역사들을 포함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그 흐름을 여행지를 통해서 어느 정도 훑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응도 좋다. 조금 진지한 지식 수다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고 그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이 현장의 화면들과 자료 화면들이 더해져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되니 더 깊은 지적 쾌감을 준다. 무엇보다 시즌1을 성공시킨 유시민, 김영하 작가가 전체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놀라운 면모를 이어가고, 여기에 새롭게 투입된 김진애 교수와 김상욱 박사의 진솔한 건축, 미술 그리고 과학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더해진다. 그저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지친 분들이라면 지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알쓸신잡3>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새로 시작한 <신서유기5>는 <알쓸신잡3>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할 법한 무식함이 갖가지 게임과 퀴즈로 이어지고, 여지없는 폭풍웃음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무식함이 과해 논란의 소지를 만든다는 아슬아슬함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은 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분들에게 <신서유기5>의 ‘무조건 웃기기’ 콘셉트는 그 자체로 기능하는 바가 있다 생각된다.

이번 시즌의 콘셉트는 ‘귀신 분장’이다. 그래서 처녀귀신, 저승사자, 가오나시, 강시 등등으로 분장한 출연진들이 그 모습 그대로 홍콩 시내를 활보하며 게임을 하고 음식을 먹는 장면들은 마치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보는 듯한 웃음을 준다. 게다가 매번 이어지는 퀴즈와 게임들은 그 놀랍고도 기상천외한 답변으로 이미 <1박2일>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웃음을 주는 아이템이다.

현재 순항중인 <현지에서 먹힐까>도 지난 시즌인 방콕편에 비해 이번 중국편이 단연 화제성에서나 시청률에서 성공적이다. 물론 <현지에서 먹힐까>는 이제 나영석 사단에서 벗어나 있지만 <신혼일기>에서부터 그 사단 아래 성장했던 이우형 PD의 독립 프로그램이다. 그러고 보면 나영석 PD가 당시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겠다고 공언한 후, 함께 했던 PD들인, <윤식당>의 이진주 PD, <알쓸신잡>의 양정우 PD 그리고 <현지에서 먹힐까>의 이우형 PD가 모두 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신서유기>의 신효정 PD는 본래부터 자기 색깔을 확고히 갖고 있던 PD이고.

이번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이 이우형 PD에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이 프로그램의 관건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음식을 할 것인가 만큼, 누가 그것을 수행할 것인가라는 걸 확연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연복 셰프는 온전히 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섰고, 그의 성공철학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향후 새로운 시즌을 계획한다면 누구를 중심에 세울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걸 이제 제작진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게다.

시즌3를 하고 있는 <알쓸신잡>, 시즌5에 도달한 <신서유기>, 시즌2에 안착한 <현지에서 먹힐까> 또 호평과 시청률을 모두 가져갔던 시즌2 <윤식당>까지를 보면, 이제 나영석 사단의 시즌제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초 <1박2일>을 하다 tvN으로 오게 된 나영석 PD가 다른 것도 아니고 ‘여행’이라는 아이템 하나에 집중하겠다고 했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두가 여행이라는 소재 위에 쓴 다양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닌가. 그렇게 나영석 사단은 시즌제 위에서 여전히 펄펄 날고 있다.(사진:tvN)

‘나인룸’의 영혼체인지, 그 흥미진진함과 복잡함 사이

사형수와 변호사. 두 인물의 영혼이 바뀌었다. 장화사(김해숙)는 자신의 애인 추영배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수가 되었지만, 영혼이 바뀌어 변호사 을지해이(김희선)의 몸에 들어가 감옥을 나온 후 추영배가 버젓이 살아 SHC그룹의 기산 회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향후 장화사가 어떤 방식이든 을지해이의 몸을 빌어 복수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다. 

한편 장화사 사건을 수사하다 끝없이 추락해버린 아버지 을지성(강신일)의 딸 을지해이는, 그 때문에 돈과 출세를 위해서 뛰고 또 뛰는 변호사가 되었다. 기산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법무법인 담장에서 시니어 파트너가 되기 위해 할 짓 못할 짓 다 하던 차에 장화사와 영혼이 바뀌어버린다. 잘나가던 변호사에서 졸지에 사형수의 처지가 되어버린 을지해이는 장화사로부터 제 몸을 돌려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tvN 토일드라마 <나인룸>은 이처럼 나이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 두 인물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어버리는 판타지를 통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보면 장화사의 몸에 들어오게 되어 이제 꼼짝없이 감방에서 지내야 하는 을지해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당할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평소 장화사가 감방에서 지낼 때 유일한 소망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그의 족쇄가 된다. 장화사의 몸에 갇히고, 그래서 감방에도 갇히게 된 을지해이는 장화사의 어머니를 간병하는 감미란(김재화)을 이용해 그의 어머니를 빼돌림으로써 을지해이의 몸을 가진 장화사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을지해이는, 을지해이의 몸을 갖고 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장화사로 하여금 복숭아를 먹게 해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그 영혼체인지를 만들었던 제세동기로 다시금 영혼을 되돌려 놓으려 한다. <나인룸>의 이야기는 그래서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두 여인의 대결구도처럼 보이지만, 또한 두 여인의 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몸은 그저 육체가 아니라, 그 몸을 가진 자의 삶 전체를 규정하고 지배하는 틀이 된다. 마치 영혼을 가두는 감옥 같은.

<나인룸>의 영혼체인지는 그래서 단지 영혼 하나 바뀐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인물이 처한 상황들이 너무나 극적이고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는 엄청나게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장화사는 자신의 삶 전체를 갉아먹어버린 과거 추영배와 얽힌 사건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을지해이는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장화사와 바뀐 영혼을 되돌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 법무법인 담장에서의 자신의 입지나 자신의 애인인 기유진(김영광)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장화사는 을지해이의 몸을 이용하고, 을지해이는 장화사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거나 그 알레르기가 있는 몸을 이용한다. 

시청자들로서는 영혼이 바뀐 장화사와 을지해이의 몸을 차지하려는 대결구도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다. 장화사의 몸이지만 그가 을지해이고 을지해이의 몸이지만 그가 장화사라는 사실을 드라마를 보면서 스스로 계속 생각하며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지가 납득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몸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영혼이 바뀌었다고 설정을 했어도 자꾸 혼동을 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아마도 이 두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갖는 고충일 수 있다. 김희선은 김희선의 몸으로 김해숙을 연기해야 하고, 김해숙은 김해숙의 몸으로 김희선을 연기해야 한다. 사형수지만 모범수로서 살아가던 장화사가 어느 순간 영혼이 바뀌어 을지해이의 그 간교하기까지 보이는 두뇌플레이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김해숙의 연기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는 역시 그 욕망의 화신이었던 을지해이가 영혼이 바뀌어 장화사의 그 어눌하고 억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김희선의 연기에서도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이야기가 복잡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혼이 바뀌었다는 설정은 알겠지만 몸으로 부지불식간에 그 존재를 인식하는 우리네 습관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인룸>이 하려는 복수의 이야기 속에는, ‘몸이라는 감방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의 영혼’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 몸이 바뀐 두 사람은 그 몸을 차지하기 위해 대결하던 걸 끝내고, 그 바뀐 상황을 통해 서로를 공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복잡함과 흥미진진함 사이에 놓여진 <나인룸>이라는 드라마의 처지다.(사진:tvN)

‘알쓸신잡3’,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김영하의 여행

이건 소설가의 여행법이 아닐까. 피렌체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두오모 성당,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시내의 좁은 골목길과 오밀조밀한 집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지만, 김영하는 엉뚱하게도 ‘영국인 묘지’를 찾아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지치게 되기 마련, 그 때마다 이 소설가는 묘지를 찾아가곤 했단다. 그래서 피렌체에 와서 묘지를 검색해보니 ‘영국인 묘지’라는 게 있다 해서 가게 됐던 것. 

피렌체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3>의 수다가 두오모 성당과 그 성당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그리고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을 때 김영하가 꺼내놓은 ‘영국인 묘지’ 이야기는 생소하기 때문에 참신하게 다가왔다. “도시에 묘지가 있으면 꼭 한 번씩 가본다”는 김영하의 말에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재치있는 농담을 섞어 답한다. “일단 조용해요. 고요합니다. 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실제로 김영하가 간 ‘영국인 묘지’는 생각보다 예쁜 조각공원 같은 분위기의 묘지였다. 아름답다고 하자 그 곳에 있는 수녀님은 4월에 오면 붓꽃이 만발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영국인만 묻힌 묘지는 아니라고 한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외국인들이 묻혔다고 한다. ‘피렌체의 이방인’들을 위한 묘지라는 것. 그러면서 슬쩍 꺼내놓는 생각. “도시를 설계할 때 우리도 산자와 죽은 자를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해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니까.”

김영하의 여행을 들여다보면 그 흐름이 마치 소설을 읽는 것만 같다.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소재가 독자들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남들이 다 가는 곳이 아니라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영국인 묘지’라는 이름이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왜 영국인이 이 먼 곳에 와서 묻혔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소설이 끊임없이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를 몰입시키듯이 김영하의 여행은 그 흐름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간 곳에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발견된다. 영국인 묘지에 존재하는 시인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묘지. 그러면서 그와 그의 남편 로버트 브라우닝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어 사회 비판시를 많이 썼던 이 시인은 40세에 로버트 브라우닝과 사랑에 빠지면서 유명한 사랑 시를 썼던 인물이라고 한다. 편지를 통해 이어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스산해져가는 초가을에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봤던 묘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묘지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파리 시내에 있는 이 거대한 묘지에는 쇼팽, 짐 모리슨의 묘가 있다. 김영하는 이 묘지의 장점이 “아름답고 파리의 도시에서 가깝고 유명인들의 묘지이고 잘 가꿔져 있다”고 말한다. ‘묘지 투어’를 할 정도로 여행을 할 때 묘지를 찾는다는 김영하를 보며 유시민은 “역시 소설가는 다르긴 다르다”라고 말했다. 김진애 교수는 “작가에게 묘지가 중요한 건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생길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 이야기는 김진애 교수가 썼다는 ‘묘비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라고 썼다는 묘비명에서 김진애 교수는 ‘의외로’에 꼭 인용구 마크를 넣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항상’이 아니라 ‘의외로’ 라는 것. 이 말에 빗대 김영하라는 소설가의 여행법을 들여다보면 그는 그 ‘의외로’ 멋진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나 도보로 피렌체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르는 김영하는 여러 차례 피렌체를 방문하면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스무 살 남짓에 처음 찾아왔던 피렌체와 신인작가 시절 그리고 중년에 또 그 곳을 찾아오면서 변화한 건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대로 변화하지 않고 있는 그 곳이 고맙게 느껴진다는 것. 그 와중에 시간이 흘렀고 그도 시간을 따라 흘러왔다. 그 흐름은 한 편의 소설 같다.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일출을 백 번 보든 천 번 보든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근데 먹고 사는데 아무 상관없을 지라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할 때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요.”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고, 또 소설 같은 예술 작품을 보는 이유가 아닐까. 김영하라는 소설가의 여행법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사진:tvN)

유쾌한 드라마가 그리웠나, ‘테리우스’에 빠져드는 이유

드라마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작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수목은 어느새 지상파에서부터 케이블까지 가세해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 그런데 그 대전의 결과로서 MBC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가 전체 드라마들 중 9.4%(닐슨 코리아)로 시청률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어찌 보면 조금은 가벼운 스파이액션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라, 상대적으로 심각한 경쟁작들과 비교해 약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주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숨 쉴 틈 없이 전개되는 SBS <흉부외과> 같은 작품은 생사가 오가는 수술방에서의 사투에 가까운 수술들과 그 속에서 갈등과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지만 그걸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 무겁고 힘겹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은 주인공 캐릭터가 가진 섬뜩함과 미스터리가 뒤섞인 독특한 매력이 시선을 잡아끌지만 어딘지 일본드라마 원작이 갖고 있는 정서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 뒤에 테리우스>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심각한 사건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주인공인 고애린(정인선)은 그 남편이 살해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살인범인 케이에게 살해당했다. 결국 혼자 남게 된 고애린은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 일도 해야 하고 육아도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상황의 심각함은 코미디 장르가 만들어내는 적당한 판타지로 유쾌하게 풀어진다. 고애린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육아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는 한번쯤 상상하고픈 판타지적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전직 요원이었던 김본(소지섭)은 대표적이다. 고애린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터가 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코미디 장르가 가져오는 그 특징들 속에서 ‘꿈꾸고픈 판타지’가 된다. 

거기에는 국가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우는 일만큼 아이를 키우는 ‘육아’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가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뉴스를 보면 저게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은 거대담론들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것보다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더 중대하게 다가오는 건 경력단절이나 육아, 살림 같은 현실들이 아닌가. 

고애린을 돕는 이웃들 또한 판타지들이다. 심은하(김여진)나 봉선미(정시아) 그리고 남성 주부 김상렬(강기영)은 고애린이 위기에 처하거나 힘들 때마다 모여 힘이 되어주는 이웃들이다. 살림을 하는 주부들만의 모임은 마치 국정원의 조직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유괴된 아이를 구해내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경력단절로 취업이 어려웠던 고애린이 갖게 되는 일자리 또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남편이 살해됐다는 걸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적을 가까이 두려고’ 고애린을 비서로 채용하는 진용태(손호준)는 전형적인 코미디 캐릭터다. 그가 운영하는 J인터내셔널이 사실은 무기거래의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위장기업이기 때문에 고애린이 하는 주업무가 진용태의 점심 메뉴에 맞는 음식점 예약을 하는 일이라는 설정은 일자리의 무게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웃음을 주는 면이 있다. 또 거기서 해고된 고애린이 김본이 채용공고를 갖다 줘 입사하게 된 ‘킹스백’ 매장도 마찬가지다. 역시 요원업무를 위한 위장기업이라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지만, 고애린이 심은하와 봉선미 그리고 김상렬의 도움으로 백을 완판시키는 성과(?)를 냈다는 설정은 빵 터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내 뒤에 테리우스>가 이처럼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힘은 그것이 비현실일지라도 상상하고픈 유쾌한 판타지이자 코미디로 풀어내진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 일등공신은 역시 심각한 액션과 웃음을 넘나들 수 있는 소지섭이지만, 의외의 발견으로서 정인선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실적인 눈물과 더불어 이토록 사랑스럽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의 매력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정인선이 끌고 소지섭이 밀고. 이 유쾌한 드라마가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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