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 배려 깊어 더 뭉클한 박서준의 사랑법

“왕자님 같아.” 어린 시절 함께 유괴됐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어린 미소는 그 오빠에게 그렇게 말하며 “결혼하자”고 말한다. 어린 아이의 소꿉장난 같은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겠지만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이 오빠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진짜 ‘왕자님’처럼 보일 법하다. 무서워하는 어린 미소를 달래주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 유괴범을 보지 않게 하려 애쓰던 그 모습.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이영준(박서준)은 바로 그 오빠 ‘왕자님’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백마 탄 왕자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재벌가의 부회장이고 그래서 뭐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김미소(박민영)가 비서직을 그만 두겠다고 하자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 즐거운 한 때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왕자님. 

그런데 이 왕자님, 어딘가 다르다. 물론 “뭐가 필요해”하며 뭐든 척척 사주고 해주는 그 허세나 나르시시즘은 비슷하지만, 이영준의 사랑법은 그걸 과시하기만 하는 그런 건 아니다. 그가 그 어린 나이에도 끔찍한 상황 속에서 미소의 눈을 가려주는 모습에서 드러나듯, 그의 사랑에는 깊은 배려가 깔려 있다.

유괴된 경험이 주는 트라우마 때문에 꽤 큰 고통을 겪었던 영준은 그래서 어느 날 김미소를 다시 보게 되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그것이 자칫 김미소로 하여금 잊고 지내던 과거 그 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저어해서다. 대신 그는 가까이는 두되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미소를 바라보며 남모르게 챙겨주는 방식을 택한다.

외국어가 능숙하지 못해 직장 내에서 어려움을 겪자 영준은 직접 김미소에게 일본어에서부터 중국어까지 공부할 수 있게 과제를 내준다. 직장 상사로서의 명령처럼 내려진 과제지만 사실은 김미소를 위한 배려에서 나온 이영준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영준의 그런 행동이 그저 배려의 차원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김미소가 어느 날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 새삼 깨달은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다. ‘난 절대 널 놓을 수 없다는 걸 그 때 깨달았어. 난 처음부터 너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과거의 기억이 되돌아오며 얻게 된 충격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김미소에게 하루 더 쉬라고 하지만 그것이 ‘특혜’라며 거부하는 그에게 이영준은 부서 전체가 마사지 체험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김미소 혼자 받는 것이 아니고 전체가 받는 것이니 특혜가 아니라고 했다. 이영준의 배려 넘치는 사랑의 방식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왕자님 이야기가 구시대적인 스토리가 되어버린 이유는 당연히 따라 나오는 신데렐라 서사 때문이다. 왕자님이기만 하면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는 그 능력으로 뭐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런 일방통행적 사랑이 주는 불편함이다. 그런데 이 이영준이라는 왕자님은 어딘가 다르다. 일방통행적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 되는 그런 사랑. 

이런 점은 <김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작품이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되지 않고,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와 배려 깊은 남자의 사랑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유다. 심지어 남녀 관계 사이에서도 권력구도가 읽히던 시절의 사랑이 아닌, 아픈 경험을 함께 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배려가 묻어나는 그런 사랑이야기가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는 읽혀진다.(사진:tvN)

이상한’이 가감 없이 보여준 요리·육아에 대한 편견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민지영의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함박스테이크를 만드는 모습이 방영됐다. 사실 그 장면은 조금 낯선 느낌을 주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이 특이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요리를 하는 걸 보니 사실상 요리를 하는 건 시어머니였다. 자신이 메인 셰프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야채를 칼로 써는 모습만 봐도 어딘가 불안할 정도였다. 결국 요리의 끝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몫으로 남았다. 민지영의 남편 김형균은 요리를 하는 동안 갑자기 졸립다며 혼자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잤다. 

그렇게 만들어진 함박스테이크을 민지영은 맛있게 먹으며 사진에 담았다. 그러면서 “시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첫 음식”이라는 것에 큰 의미부여를 했다. 김형균은 “시아버지가 만든 함박스테이크”라는 의미로 “시함박”이라 이름을 붙여 가족들을 모두 웃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시아버지의 요리로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가족의 풍경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요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보였다. 즉 여성들에게 요리는 당연한 것이지만, 남성이 하면 “해주는 것”으로 여기는 편견이다. 물론 시아버지가 요리를 해준다는 것 자체가 기특한 일이긴 하지만, 그걸 이색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우리네 요리의 의무가 온전히 여성들에게만 부여되어 있다는 걸 에둘러 보여줬다. 

가장 프리(?)할 것 같았던 마리도 시어머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며느리라는 걸 김장을 함께 담그는 과정에서 보여줬다. 물론 각자 일정들이 있어 빠진 것이라고 해도, 김장처럼 몸 쓰는 일이 많은 일을 당연하다는 듯 여성들이 전담하는 건 우리 사회가 가진 요리에 대한 생각들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긴 손톱으로 힘들게 시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고, 마침 돌아온 시아버지와 수육에 김치를 얹어 같이 먹는 장면은 그래서 단란한 가족의 한 때처럼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여성들의 전담 의무가 되어 있는 요리에 대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육아에 있어서 이런 점은 더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수유 같은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육아를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만 남기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에 있는 김재욱과 그의 아내 박세미는 과연 육아에 있어서 똑같이 그 일을 분담해나갈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관찰카메라라는 특징 때문에 우리가 지나치던 일상적 풍경들도 객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어준다. 며느리들과 그들을 둘러싼 삶의 풍경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여자가 하면 당연하고 남자가 하면 ‘해주는 것’이 되어 있는 요리나 육아의 세계. 그 편견들을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풍경의 발견으로 드러내주고 있다.(사진:MBC)

‘검법남녀’, 오만석 투입이 만들어낸 톡톡한 효과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는 4.5%로 시작해 9%까지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애초 예상과 달리 지상파3사 드라마 중 1위 기록이다. 워낙 흥미진진한 법의학의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그 소재를 드라마틱한 사건들 속에서 잘 풀어낸 결과다. 무엇보다 백범이라는 법의관을 까칠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구현해낸 정재영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렇게 잘 나가는 드라마에 갑자기 오만석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이는 ‘긴급수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검법남녀>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보면 어디에도 오만석의 자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필요에 의해 긴급 투입된 상황이다. 어째서 오만석이 출연하게 된 걸까.

가장 큰 건 백범이라는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법의관과 함께 수사를 해가면서도 각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애초 이 역할은 강현 검사(박은석)의 몫이었다. 과거 자신의 형이 백범에 의해 살해됐다는 심증을 갖고 오래도록 뒤를 캐왔던 인물이다. 검찰의 조사관이 비슷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자 그는 백범을 긴급 체포해 수사한다. 

강현 검사는 백범을 살인범으로 몰고 가며 사건 수사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한다. 결국 그것이 모두 잘못된 심증이었다는 게 밝혀지고 강현은 자신이 검사 자격이 없다며 옷을 벗는다. 사실상 하차의 성격을 갖는 행보지만, 그렇다고 박은석의 출연이 그것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그 후 강현은 자신의 형의 죽음이 얽힌 과거사건을 추적한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백범의 연인 한소희가 식물인간 상태로 10년 째 백범의 아버지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강현이 검찰에 사표를 내고 새롭게 투입된 도지완 검사(오만석)는 백범과 시작부터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은근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살해된 사체의 손을 묶은 끈을 풀려고 하자 그러면 안될 것 같다며 각을 세운 것. 그런데 도지완 검사는 강현과는 사뭇 달랐다. 백범과 의견을 달리하지만 수사에 있어서 살인범을 잡기 위해서는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결국 벌어진 살인사건이 30년 전 우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 있다는 걸 주장하며 거기에 포인트를 맞춰 수사하는 도지완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체로부터 증거를 찾아내려 하는 백범은 방향성은 달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그 의지 하나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강현이 과거 사건에만 집착해 현재의 사건 수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다른 건 캐릭터만이 아니다. 이를 소화해내는 연기도 사뭇 다르다. 강현 역할의 박은석이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지르며 백범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만석은 다소 느물느물하지만 웃으면서도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만만찮은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다. 

액면대로 말한다면 <검법남녀>는 캐스팅이 전반적으로 약했던 게 사실이다. 정재영이 드라마를 혼자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을 줬던 것. 그런 점에서 보면 카운터 파트로서 오만석의 투입은 드라마에 적절한 긴장감과 균형을 만들어주고 있다.(사진:MBC)

'미스터 션샤인' 진구·이시아·김지원·윤경호 죽음에 담긴 의미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드디어 대장정의 깃발을 올렸다.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넘어갔던 유진 초이(이병헌)는 스페인 전쟁에서 공을 쌓은 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게 됐다. 미국인의 신분으로. 의병 부모를 잃고 홀로 할아버지댁에 맡겨진 고애신(김태리)은 부모를 그대로 빼닮아 사냥꾼인 장승구(최무성)로부터 총포술을 배우며 요인 암살자가 되었다. 낮에는 명망 높은 사대부가의 딸이었지만.

같은 요인을 암살을 하는 자리에서 유진 초이와 고애신은 복면 쓴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됐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치며 풍겨 나오는 화약 냄새에 서로에게 정체를 들켰다. 미국인의 신분으로 저격사건을 수사하는 척 하면서 유진 초이는 고애신과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 하관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그 정체를 확인한다. 긴장관계와 함께 미묘한 멜로의 향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제 대장정의 깃발을 올렸고, 순항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 전에 잊지 말아야할 조연들이 있다. 그들은 이 드라마의 첫 회에 전사한 인물들이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제 한 목숨 우물에 던진 한 맺힌 유진의 엄마(이시아)와 의병활동을 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애신의 부모(진구, 김지원) 그리고 신미양요 때 빗발치는 미군의 총탄에도 도망치지 않고 싸우다 전사한 장승구(최무성)의 아버지(윤경호)가 그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이 시대가 가진 아픈 공기를 드라마 전편에 깔아주었다. 열강들이 몰려오는 시기였고, 나라는 있으나 나라 걱정하는 이들은 별로 없는 조정과, 신분사회 속에서 사람 취급받지 못하며 살아가던 민초들이 사실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던 이 시대의 공기. 어쩌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이들은 죽음으로써 담아냈다.

기획의도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뜨겁고 의로운 이름, 의병’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 그래서 첫 회에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그들은 바로 이 ‘무명’의 존재들이 사실상 그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누군가는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제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죽음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핍박하기만 했던 나라지만 그 곳에서 살아갈 아이들,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이들의 죽음은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후대들의 피에 각인된 삶의 동기가 된다. 의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부모를 둔 애신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글로도 싸우는 방법이 있는데 왜 총을 드느냐는 사부 장승구에게 “한 나라의 왕후가 시해 당했습니다. 나랏님은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도망을 쳐 이 나라 저 나라 황제에게 글로 손을 벌립니다. 그 덕에 서양 대국들이 줄을 지어 조선에 간섭합니다. 글은 힘이 없습니다. 저는 총포로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애신도 장승구도 모두 그 부모가 갔던 길을 따라간다.

노비로 태어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부모를 본 유진은 그 때문에 조선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의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차갑게 식어버린 조국에 대한 마음은 과연 뜨겁디뜨거운 애신의 마음 앞에 과연 방관만 할 수 있을까. 먼저 간 그들이 심어놓은 마음의 씨앗들은 이 격변기 구한말에 어떤 선택 앞에 놓인 주인공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의 추동력을 만들어낸 인물이면서도,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인, 첫 회에 죽음을 맞이한 ‘이름 모를’ 그들이 더 빛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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