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엽기적인 범죄? 이면에 담긴 피해자들의 억울함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드라마지만 이제야 그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알겠다. SBS 수목드라마 <리턴>의 제목이 왜 그렇게 정해진 것인지도. 

이 드라마는 이른바 악벤져스라 불리는 권력층 자제 4인방의 갖가지 폭력과 범법 행위들을 전면에 드러내며 시작했다. 그래서 시청률은 치솟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급기야 이 4인방에 과하게 집중된 스토리는 이야기를 너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하지만 주연배우가 바뀌는 파행을 겪으며 새롭게 최자혜 역할에 박진희가 투입되면서 이야기는 전반부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가장 큰 변화는 최자혜라는 인물의 미스터리한 과거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악벤져스를 둘러싼 갖가지 사건들, 이를테면 그들과 늘 함께 해왔던 염미정(한은정)의 죽음과 그 사체가 그들의 차 트렁크에서 발견되어 이를 유기하게 된 일이나, 염미정의 살인용의자로 강인호(박기웅)가 지목되고 그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경찰서로 가던 서준희(윤종훈)를 오태석(신성록)과 김학범(봉태규)이 붙잡아 죽이려고까지 했던 일, 그들이 염미정의 사체를 유기하는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영상으로 돈을 요구하다 오태석에 의해 자동차 딜러 김병기(김형묵)가 살해된 일 같은 것들이 모두 최자혜가 그린 복수의 큰 그림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악벤져스 4인방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 후 바다에 던져진 소녀가 최자혜의 딸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모든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벌어지게 만든 이가 바로 최자혜였다는 게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 그 소녀의 죽음과 부검결과를 속인 담당형사와 부검의까지 모두 살해당한 사실이 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그 소녀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에 역시 악벤져스에 의해 여동생이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들이 무죄로 풀려나는 현실에 억울함을 토로하던 김정수(오대환)가 최자혜와 공모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판결에 동석했던 최자혜 판사는 그렇게 판사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다. 이미 그 때부터 이 모든 복수의 설계를 두 사람이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법이 있어도 재력과 권력에 의해 덮어지고 피해자는 그 상처를 평생 가진 채 살아가야 하지만, 가해자들은 버젓이 갖가지 범죄적 행태를 하면서도 잘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항변이다. 최자혜 변호사는 법조계에 있었지만 그 법의 무력함을 알고는 이제 법 바깥에서 정의를 구현하려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그저 악벤져스들을 직접 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에게 다 잊혀졌던 과거의 그 사건들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끄집어내는 방식이다. 다 옛날 일이라며 그저 현재를 잘 살아가려던 악벤져스들은 그 과거와 마주하면서 다시 고통에 빠져버린다. 과거로부터 벗어나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건실하게 살아가려던 강인호나 그 과거의 잘못을 마음 한 구석에 죄의식으로 갖고 있던 서준희가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과거의 그 추악한 사건의 전말로 기억을 되돌리는(리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엽기적인 범죄의 연속으로만 여겨졌던 사건들이 알고 보면 묻혔던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최자혜가 꾸민 큰 그림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어쩌다 많은 파행과 난항을 겪으며 그 완성도에 균열들이 생겨나게 된 걸까.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갖고 있는 메시지가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런 파행들을 더더욱 안타깝게 만든다.(사진:SBS)


‘마더’ 가정폭력이 만든 비극, 그 비극을 넘어서는 법

tvN 수목드라마 <마더>는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똑같이 끔찍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진(이보영)은 엄마가 되는 선택을 했고, 설악(손석구)은 괴물이 되는 선택을 했다. 그 대물림은 어째서 이렇게 다른 선택으로 이 두 인물을 이끌었던 걸까.

그 다른 선택은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 후에 누군가에 의해 사랑으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뉘어졌다. 수진은 영신(이혜영)을 만나 그로부터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수진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세상이 그렇게 모질지만은 않다는 걸 영신을 통해 느꼈을 게다. 

하지만 설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자살해버린 엄마가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처를 그에게 납치된 어린 윤복(허율)은 단숨에 들여다봤다. “삼촌 그 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엄마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죠?” 윤복이 설악의 상처를 들여다 본 건 자신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설악의 그 깊은 상처와 자책감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은 그가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용서하지 못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그 아이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엄마들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그의 범행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악독한 짓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괴물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마더>가 촘촘하게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바로 이 수진과 설악의 대결구도에서 나타난다. 애초에 작가는 이런 두 인물의 대결구도를 통해 가정폭력의 문제, 진정한 부모의 자격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상처를 겪었음에도 누군가는 엄마가 되고 누군가는 괴물이 된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남은 희망은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다. 

수진은 어느새 윤복의 엄마가 되어있고, 윤복의 친모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수진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부모 자식으로 이어지는 혈연보다, 피는 달라도 진정한 사랑으로 엮어진 관계가 더 진정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복에게 읽어줬던 동화책의 내용처럼 수진은 끝까지 어디든 아이를 찾아가 꼭 안아주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를 거둬 사랑으로 키워준 영신을 통해 알게 된 부모의 사랑법일 게다.

그리고 윤복의 구원은 또한 수진 자신의 구원이 되기도 한다. 이미 친모로부터 버림받은 윤복의 상처를 수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그 아픔을 영신이 그래준 것처럼 보듬어 치유해주는 건 수진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신이라는 인물에게서 전해진 사랑은 그렇게 수진을 통해 윤복에게 대물림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이지만 이들은 그래서 그 어떤 부모 자식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된다. 

설악의 과거사까지 밝혀지면서 <마더>가 담으려는 이야기의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그것은 가정폭력이 만들어내는 비극이 어떤 결과로 대물림되는가 하는 것이고 그 비극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수진은 설악으로부터 윤복을 구해내고 이 비극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아이를 유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수진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게다.(사진:tvN)

‘셰이프 오브 워터’, 괴생명체와의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이라니

“만일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하면, 우리도 사람이 아니예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여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남미 어딘가에서 잡혀온 미지의 존재가 해부될 위기에 처하자 이웃집 친구인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는 아마도 이 영화가 하려는 많은 메시지들을 함축하는 것일 게다. 

인간과 괴생명체와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미녀와 야수>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뛰어넘어 사랑에 이르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본 바 있다. 또 일찍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E.T.’를 통해 외계인과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담아냈었다. 그러니 <셰이프 오브 워터>가 가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의 사랑이야기는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이 작품만이 가진 물의 이미지를 통해 전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오히려 괴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여타의 비슷한 구도를 가진 작품들과 이 작품을 명확하게 구분지어 놓는다. 저마다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하나로 뭉쳐지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사랑의 본질’을 통찰하는 이미지를 그려낸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이라는 어마어마한 공간과 그 곳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를 가진 엘라이자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대비되는 면이 있다. 그 곳은 거대한 우주선이 있는 곳이지만, 엘라이자와 그의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그 우주선 밑을 청소하는 일을 한다. 세상은 그렇게 우주를 향할 정도로 변해가지만, 엘라이자는 어딘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곳으로 괴생명체와 함께 부임한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그래서 그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라는 공간이 가진 이미지를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에게 남미에서 원주민들에게 신처럼 받들여져 온 괴생명체는 그래서 단지 실험대상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엘라이자는 다르다. 그는 이 괴생명체에게서 자신과 이어지는 어떤 공감대를 발견한다. 

해부될 위기에 처한 괴생명체를 구하기 위해 엘라이자가 자일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에서 그는 자신과 괴생명체가 다르지 않다는 걸 강변한다. 말을 못하지만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고 심지어 사랑을 느끼는 자신 또한 ‘괴물’이냐고 반문한다. 괴생명체에게 먹을 것을 내밀고 음악을 틀어주기보다는 전기 충격기를 내미는 스트릭랜드는 구분 짓고 차별하는 사회를 표징하는 인물이다. 그가 보이는 괴생명체에 대한 차별은 인종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국적으로도 또 성별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와 그 곳을 탈출해 시작되는 사랑의 이야기는 이러한 차별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강렬하다. 물에서 사는 양서류의 괴생명체와 물속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공존하고 나아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저 괴생명체를 연구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스트릭랜드의 생각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고 한 기예르로 델 토로 감독의 말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괴생명체와 인간의 기괴하지만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신비한 순간들을 담아냄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사랑의 정반대편은 무심함이 아니라 폭력의 양상을 띤다는 건 우리가 현실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니 이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접하고 있는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이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1960년대의 미국 볼티모어라는 구체적인 냉전시대의 배경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는 작품이지만, 워낙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울림은 우리네 관객에게도 적지 않다. 세대, 성별, 지역 등등 구분되어 갈등하는 양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리네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갈등의 차원을 뛰어넘는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마치 물방울처럼 가슴 먹먹하게 차오르며 남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사진:영화'셰이프 오브 워터')


‘키스먼저’ 야하기는커녕 먹먹한, 독특한 19금 드라마의 등장

“같이 잘래요?” 사실 19금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는 야한 뉘앙스를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는 이 대사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야하기는커녕 먹먹해진다. 그건 진짜 혼자이기 때문에 솔로의 중년이 겪는 불면의 고통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감우성)이 “자러 올래요?”라고 던진 질문에 1도 기다리지 않고 “네”라고 답하는 순진(김선아)의 모습에서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가 느껴진다. 

바로 이런 점은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멜로의 지점들이다. 청춘의 멜로라면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사랑의 궁극적 결실로서 등장하지만, 이들 중년의 멜로는 키스보다 ‘하룻밤’보다 더 큰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차갑게 식어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말 한 마디가 된다. 그래서 19금의 상황들이 대담하게도 전개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놀라운 감성들이 포착된다.

‘오늘만 살자’는 문신을 새긴 후, 안 해본 짓을 하겠다며 진창 술을 마시고 오래도록 안 해봤던 ‘같이 자는 일’을 하기 위해 코스프레 무인 모텔을 찾은 그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감성들 역시 이 드라마만이 갖는 멜로의 독특한 코드를 보여준다. 시청 앞 지하철 콘셉트로 꾸며진 방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그 공간이 주는 독특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기보다는 지하철이 주는 남다른 감흥에 젖어든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르는 그 모텔 방의 정경 속에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무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그들을 같은 시간대의 같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있는 연인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버린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갔을 것이지만, 어느 날 그렇게 한 공간에 서 있게 된 사람들에게서 새삼 느껴지는 기적 같은 느낌을 무한은 말한다. 그래서 그 곳은 지하철 콘셉트의 모텔이 주는 에로틱한 상상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시간을 달리는 공간 위에서 드디어 마주한 운명적인 만남을 더 떠올리게 한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씩 결혼을 했고 배우자들의 배신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처를 겪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도 딱지가 앉은 채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먼저 두 사람은 단지 남녀의 욕망으로 이끌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없는 고적한 한겨울의 동물원에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무한이 자살을 시도하려던 순진을 애써 구해낸 건 어쩌면 자신을 구해내는 일과 다른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욕망의 이끌림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고 그 상처가 내 것인 양 다독이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의 19금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되지만, 야하기보다는 먹먹해진다. 19금 상황 속에서도 욕망이 저만치 뒤로 물러나고 대신 그 순간이 주는 따뜻한 ‘기억’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더더욱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스 하면 당신이 오늘도 기억을 지울 것 같아서” 무한은 순진에게 키스 하지 못한다. 

웬만한 일들에 그리 놀라지도 않고, 이제는 밖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별로 없어 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는 과정은 그래서 가슴 시린 느낌으로 다가온다. 19금이지만 먹먹한 이상한 드라마의 등장이다.(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