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3' 백종원, 주머니 사정 어려운 사람에게 주는 팁

‘마트가기 무서운 물가’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 주부들의 고민은 저렴한 식재료로 어떻게 하면 괜찮은 집밥을 만들어 먹을까가 아닐까. tvN <집밥 백선생>이 시즌3로 돌아와 계속해서 강조하는 있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부담스런 재료가 아니라, 값싼 재료로 의외의 풍성하고 그럴싸한 일품요리들이 가능하다는 것. 두 번의 시즌을 거쳐 이제 본격적으로 ‘응용편’에 들어온 <집밥 백선생3>가 주는 행복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첫 번째 소재로 가져왔던 김치로 이전 시즌에서 이미 보여줬던 ‘김치볶음밥’에 베이컨을 더한 색다른 레시피가 소개되고, 그 기본적인 김치볶음밥의 재료들에 밥 대신 우동을 넣어 또 다른 레시피가 탄생하는 과정은 한 가지 기본을 갖고 여러 가지 음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값싼 돼지고기 사태에 김치와 만능 맛 간장을 곁들여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김치짜글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집밥 백선생>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레시피의 효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소재였던 김치에 이어 두 번째 소재로 가져온 콩나물의 변신은 확연히 이번 시즌이 지난 시즌과 어떤 점들이 달라졌는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간단히 데쳐 무쳐먹는 콩나물 무침을 기본으로 콩나물이 가진 바삭한 그 식감을 공유하게 한 후, 지난 시즌에 얼큰하게 해먹어 화제가 되었던 콩나물 불고기를 이제는 아이들 간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맵지 않은 간장 불고기’로 뚝딱 내놓는다. 

물론 재료로만 보면 얼마 들지 않고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부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고기도 그냥 삼겹살이라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을 냉동 대패 삼겹살로 부담을 줄였고, 여기에 콩나물만 있으면 사실상 가능한 레시피라는 점은 간편하고 저렴하지만 효과는 큰 주부들이 원하는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흥미로운 점은 요리하고 조금 남아 처리가 어려운 콩나물을 ‘콩나물 국밥’의 맛을 연상해 거기 어울리는 재료들을 섞은 후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콩나물전으로 만들어낸 것과, 우리가 찜 요리에서 부재료로 생각해왔던 콩나물만 가지고 콩나물 찜을 선보인 점이었다. 이 두 레시피는 <집밥 백선생3>가 왜 ‘응용편’이라고 얘기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콩나물 국밥을 전 시즌에서 직접 시연해본 시청자라면 거기 들어갔던 새우젓이 의외로 콩나물과 잘 어우러진다는 걸 알고 있을 게다. 그러니 전으로 부쳐내기 전에 새우젓으로 간을 한 콩나물이 이 콩나물전의 핵심이라는 걸 쉽게 응용해낼 수 있다. 또 찜 요리를 먹어봤던 사람이라면 여러 찜 요리에 부재료로 여겨져 왔던 콩나물이 오히려 주재료인 콩나물 찜을 만들어봄으로써 다양한 찜 요리에 이것을 응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거기에 해물을 넣으면 해물찜이 되고, 새우를 넣으면 새우찜이 되는 식이다. 

<집밥 백선생3>가 추구하는 값싼 식재료, 간단한 레시피, 그리고 무한 응용이라는 이 새로운 지점들은 그래서 지금의 서민들에게는 굉장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닐까 싶다. 주머니 사정이 갈수록 좋지 않은 현실에서 적어도 먹는 것만큼만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 별명을 발판이로 설정한 '역적' 작가 노림수

“저들이 대감을 하루도 빠짐없이 손가락질하고 대감의 살을 씹어 먹겠다 독설을 뱉었사온대 대감께서는 어찌 저들이 다치는 것을 겁내십니까?” 사관 김일손의 사초에서 조의제문을 찾아낸 길현(심희섭)은 이제 조정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노사신(안석환)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노사신은 길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몰라 묻는가? 그래 그간 나랏일은 살피지 못하고 그저 전하와 힘겨루기만 하려했던 저들이 어리석고 우매했지. 허나 저들을 단속하여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편이 옳았어. 만약 저 어리석은 자들이나마 없어져 이 나라의 언로가 막힌다면 그 땐 이 나라 조선은 어디로 가겠는가.”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이 다루고 있는 건 실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무오사화다. 사관 김일손이 남긴 사초에서 발견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황후에게 죽은 초나라 왕 의제를 기리는 글)이 사실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에둘러 비난한 글이라 해석되며 생긴 피바람에 얽힌 연산 시절의 역사. <역적>은 이 역사적 사실을 가져와 홍길동이라는 인물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연결시켰다. 즉 조의제문으로 인해 연산(김지석)의 역린이 할아버지 세조인 것을 알게 된 홍길동(윤균상)이 소문을 역이용해 충원군(김정태)을 역적의 무리로 엮어낸 것. 

흥미로운 건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덧댄 이야기 속에 이 사극이 전하는 ‘언론’에 대한 생각이다. 결국 그 발단은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조정대신들과 그 이야기들을 더 이상은 듣지 않기로 마음먹는 연산의 ‘불통 정치’에서 비롯된 일이다. 흉흉한 소문들을 ‘불충’이라고 단정하고, 그 소문을 담은 기록을 찾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권력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게 됐던 것. 

<역적>은 이 역사적 사실을 일종의 정보전의 형태로 재해석해낸다. 그러고 보면 길현이 타인의 족보를 얻어 과거에 응시해 합격하고 사관이 된 것이나, 길동이 기방 활빈정을 만들어 양반들의 술판에서 벌어지는 소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이야기 역시 바로 이 조의제문을 통해 생겨난 무오사화를 정보전으로 해석해내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보인다. 밑에서는 길동이 이 무오사화에 충원군을 엮고, 위에서는 사관이 된 길현이 그 충원군의 이름을 듣자마자 연산에게 국문을 해야 한다고 주청함으로써 복수극의 서막이 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주하는 폭군 연산의 이야기는 ‘불통’이 만들어내는 국가적 재앙을 환기시킨다. 결국 제대로 된 언로가 막힌 채 떠도는 소문들에 귀 기울이고 그걸 자의적으로 해석해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훗날 연산을 폭군으로 기억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잘 살아가고 있다가도 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진실이 왜곡된 채 모든 걸 빼앗기게 되는 사회. 길현이 울분을 터트리고 연산을 돕는 엇나간 행동을 하게 된 것 역시 그 ‘불통’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역적>은 이 불통의 시대에 그저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거꾸로 이용해 한바탕 세상을 뒤집는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결국 소문을 거꾸로 이용해 충원군을 엮어버리고 그의 무고를 입증할 증인으로서 길동이 서게 되는 설정이 그렇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길동은 충원군의 ‘발판이(말을 탈 때 발판이 되주어 생긴 별명)’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 발판이 이제 자신을 밟고 오르던 충원군을 무너뜨릴 역전의 장치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발판으로 표징되는 민초들의 역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적>에서 민초들은 심지어 ‘역창’이라고 불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민초들을 사회를 좀먹는 ‘전염병’ 취급하는 것. 그래서 참봉 부인 박씨(서이숙)는 감옥에서 피흘리는 아모개(김상중)에게 그 역창들을 모두 몰아내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역창으로까지 치부되는 민초들이 거꾸로 하나하나 모여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길동이 어떤 흐름으로 만들어 잘못된 세상에 일격을 가하는 <역적>은 그래서 그만큼 시원한 반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청자들이 발판이 길동의 반격에 열광하는 이유다.

‘역적’, 이토록 흥미로운 홍길동의 재해석이라니

난세는 영웅을 원하는 걸까. 1998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홍길동>은 당시 IMF 외환위기라는 시국과 맞물리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던 바 있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홍길동을 재해석한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이 시국의 어떤 지점들을 겨냥하고 있을까. 

'역적(사진출처:MBC)'

<역적>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그 이름을 제목에 넣지 않았다. 대신 ‘역적’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홍길동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홍길동전’과는 다를 거라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역적>은 홍길동(윤균상)을 서자 출신의 적서차별을 겪는 인물로 그리지 않고 아모개(김상중)라는 순수 노비 혈통의 아들로 탄생시켰다. 게다가 도술을 부리는 홍길동이 아닌 애기장수 설화를 가져와 홍길동을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그려냈다. 

길동이 시대의 역적이 되어가는 그 과정은 신분사회의 구조 안에서 물건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노비들의 처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어머니가 죽음을 당하자 주인을 죽이고 익화리에서 새 삶을 살아가던 길동이네 집안과 이웃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던 참봉부인 박씨와 그녀를 돕는 충원군(김정태)에 의해 갈갈이 찢어진다. 

아모개는 옥사에서 모진 곤욕을 치른 후 가까스로 목숨만 살려냈고, 길동의 형과 여동생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길동이 다시 아버지와 그를 형제처럼 따르던 무리들을 모아 충원군에게 복수를 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이면서 동시에 신분사회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혁명적 행동이 된다. 

즉 1998년에 다뤄진 <홍길동>이 백성을 핍박하는 양반들과 싸우는 서민 영웅의 양상을 보여줬다면, <역적>은 제목과 이야기 설정에서부터 보이듯 훨씬 더 국가 체제 자체와 싸워나가는 영웅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양반들 곳간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 정도로는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 드라마가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적>은 사건 전개만이 아니라 홍길동과 그 가족, 이웃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연산군(김지석)을 위시해 그 수직적인 권력 구조 속에서 백성들을 핍박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대비시킨다. 홍길동과 함께 하는 가족 같은 익화리 사람들의 차별 없는 삶은 그들이 밥을 지어먹는 장면에서부터 여실히 나타난다. 남자고 여자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다 함께 밥을 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은 그들이 강조한 ‘형제로서의 삶’을 잘 보여준다. 

<역적>이 세상의 오랜 적폐와 대결하는 방식은 그래서 훨씬 더 세련되어졌다. 즉 복수나 치기어린 협객 흉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꿈꾸는 ‘형제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꿈꾸고 실행하는 것으로 세상과 대결하고 있다는 것. 마치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이야기를 사뭇 진지하게 풀어내는 <역적>의 방식은 그래서 지금의 시국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권력을 사유한 자들의 농단 앞에 촛불을 들고 있는 국민들이 그간의 적폐를 깨고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 <역적>의 울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피고인’ 해도 너무한 고구마 전개, 개연성 부족

감옥에서만 빠져나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박정우(지성)가 탈옥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감옥 안과 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고 보면 <피고인>의 지지부진한 전개와 답답함은 단지 감옥이라는 틀에 주인공이 갇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어떤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 전개 그 자체보다는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둬두고 질질 끌고 다니려는 의도가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피고인>이 시청자를 낚는 그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박정우를 한없이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희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박정우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전개다. 소망을 이루는 것을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이 참기 어려운 갑갑함을 느끼게 만들고 아주 조금씩 소망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고, 기억을 서서히 되찾으면서 그 진범을 알게 되고는 복수를 소망하게 만든다. 또 감방에서 박정우가 도움을 줬던 성규(김민석)가 마치 아내와 딸을 죽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 사실은 그가 딸을 데리고 보살피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려준다. 복수에 대한 소망과 딸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리고 탈옥에 대한 소망을 계속 갖게 만들고 그걸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전개. 

탈옥을 한 후에도 이런 전개는 변함이 없다. 딸 하연(신린아)이를 만나기 위해 박정우가 그를 추격하는 경찰들을 따돌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드라마 마지막에 보여주는 건 그의 딸이 차민호(엄기준)에게 먼저 붙잡혔다는 사실이다. 탈옥을 하면 무언가 고구마 전개에 있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여겼던 시청자들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지연 전개와 함께 <피고인>의 문제로 지목되는 건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개연성 부족이 너무 많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은 걸로 알려져 있는 박정우의 딸이 이렇게 몇 달 째 가족들과 떨어져 성규와 함께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하연이는 이 모든 상황들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탈옥해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처럼 보이던 박정우가 갑자기 나타난 서은혜(권유리) 변호사의 차를 타고 도주하는 설정도 그렇다. 서은혜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심지어 탈옥을 돕고 있는가 하는 점은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다. 간수인 윤태수(강성민)가 탈옥하는 박정우와 그 일행에게 총을 겨누는 다른 간수를 제지하는 장면도 너무 간단히 처리되어 있다. 탈옥이나 탈옥을 돕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물론 드라마라고 해도 완벽하게 개연성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두는 지연 전개를 하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엔딩에 박정우를 절규하게 만드는 반전상황을 집어넣기 위해 개연성이 무시되는 건 문제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지금 <피고인>은 끝없이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 위한 것에만 더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고구마 전개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는 어떤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끝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18부작으로 2부를 연장시킨 <피고인>이 18부 마지막까지 고구마만 던지다 끝에 가서 겨우 사이다 한 잔을 주는 전개를 보인다면 시청자들로서는 허탈해지지 않을까. 그것도 어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그저 시청률을 얻기 위한 목적에 그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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