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 본격 전업주부 사이다 드라마의 등장

닥터 차정숙

“이제 나 꼴리는 대로 산다고!”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차정숙(엄정화)이 남 같은 남편 서인호(김병철)에게 하는 일갈에 아마도 전업주부들이라면 박수를 쳤을 게다. 입만 열면 무시하는 가족들. 시어머니 곽애심(박준금)은 며느리를 마치 식모에 비서나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갖가지 허드렛일을 시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백화점에 신청한 값비싼 명품백을 갖다 달라고 하면서 며느리에게는 아이쇼핑이나 실컷 하라고 하고, 아침마다 디톡스 주스를 대령하라 요구한다.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커피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정숙을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 취급한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아침을 챙겨줘도 먹기 싫다며 투덜대고 엄마가 마스크까지 챙겨주는 걸 당연하게만 여기는 딸과 레지던트 1년 차로 같은 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긴장하고 눈치 보는 아들 서정민(송지호). 차정숙이 아침에 가족들 챙기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저들은 마치 차정숙은 없는 존재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며 저들끼리 웃고 떠든다. 그는 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들에게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그런데 이런 장면이 차정숙만의 이야기일까. 아침에 출근하고 등교하는 가족들을 챙기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곤 하는 전업주부들이라면 차정숙의 이 아침 풍경이 그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게다. 마치 집안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가족들의 무심함. 해도 티가 안 나고 안하면 그것도 하나 안하냐는 식의 시선이 돌아오는 집안일로, 본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2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아온 차정숙의 허탈감이 공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 이식 수술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하고, 그 순간 시어머니의 반대로 간 이식을 해주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은 차정숙을 각성하게 만든다. 이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못하는 감수성 제로의 남편은 죽음의 문턱까지 갖다온 차정숙에게 장애 등급 신청했냐고 묻는다. 간 이식 수술하면 나오는 장애 5급으로 장애인 구역 주차를 할 수 있다며.  

 

<닥터 차정숙>은 이러한 전업주부들의 꾹꾹 눌려진 억압된 감정을 각성한 차정숙의 모습으로 빵빵 터트려준다. 시어머니 심부름으로 간 백화점에서 사고 싶은 옷부터 명품 백까지 남편 카드로 마구 긁어대고, 청담동에서 우아하게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다. 직장 없고 재산 없어 카드 한 장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남편 명의로 카드 갖고 다니면서 늘 감시당하는 느낌 속에서도, 남편 재산 앞에서 초연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내 돈 아니라 날 위해 쓰는 건 부당하는 결벽증 따위를 이젠 버리려 한다. 뻔뻔하게 내 맘대로 살겠다는 것. 

 

최근 들어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가 인기다. 역대급 빌런들이 등장하고 그들을 시원하게 응징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드라마들이다. <닥터 차정숙>은 본격적인 전업주부 사이다 드라마를 보여준다.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지만 헌신짝 취급 받는 전업주부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외치는 드라마. 시작부터 빵빵 터지는 차정숙의 일갈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과몰입하게 만든다.

 

<닥터 차정숙>은 그래서 전업주부 차정숙이 다시 의사 차정숙으로 서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한다. 남편 서인호와 같은 병원에서 불륜 관계인 최승희(명세빈)의 밑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하며 저들에게 차정숙이 어떤 일격을 가할 지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차정숙 앞에 나타난 로이 킴(민우혁) 같은 새로운 로맨스(물론 저들에겐 불륜이 되겠지만)가 만들어낼 파장 역시. 벌써부터 전업주부들이 던지는 응원의 박수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사진:JTBC)

'퀸메이커', 김희애와 문소리의 연대가 그리고 있는 것

퀸메이커

김희애에 문소리다. 작품 하나하나 허투루 선택하는 일이 없는 이 두 배우가 한 작품으로 뭉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메이커>. 제목부터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여성 서사다. 

 

김희애와 문소리가 각각 연기하는 황도희와 오경숙은 서로 대척점에서 만난다. 황도희는 은성그룹 재벌가 사람들이 저지르는 갖가지 더러운 비리들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처리하는 해결사다. 그는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로 그 악마의 재능을 재벌가의 더러운 짓거리에 쏠린 대중들의 공분을 분산시키고 덮어버리는 데 쓴다. 

 

반면 ‘코뿔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오경숙은 인권변호사로 부당하게 해고된 여직원들을 위해 은성백화점 옥상에서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황도희와 오경숙은 정반대의 위치에서 부딪친다. 오경숙을 끌어내리려는 은성그룹 오너들의 편에서 황도희가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은성그룹의 충성스런 개로 살아가던 황도희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은성그룹 재벌가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세상에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할 나위 없는 사위로 알려진 백재민(류수영)의 추악한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황도희는 심경에 변화를 겪는다. 결국 은성그룹을 퇴사한 황도희는 한 때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었던 황도희에게 손을 내민다. “오경숙, 시장하자.”

 

드라마에서 그토록 많이 등장했던 구도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이었다면, <퀸메이커>는 그런 구도로 시작하지만 그들이 함께 손을 잡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오경숙을 시장으로 만들려는 황도희는 은성그룹이 시장을 만들려는 백재민과 맞서게 된다. 재벌가 사위와 인권변호사의 대결.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이지만, 오래도록 은성그룹 재벌가를 위해 일했던 황도희는 그들의 약점 또한 정확히 알고 있다. 일방적인 게임이 아닌 치고받는 치열한 공방이 가능해지는 이유다. 

 

황도희라는 인물은 한때 재벌가에서 일했지만 어떤 각성을 한 후 그 경험들을 통해 그들과 맞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과거 김희애가 연기했던 <밀회>의 오혜원이라는 인물과 겹쳐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건 이기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정치판에 뛰어든 만큼 어떻게든 오경숙을 시장으로 세우기 위해 갖가지 지략들을 짜낸다. 

 

여기에 오경숙 또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황도희가 “타고 났다”고 말할 정도로 순발력 있게 던지는 말에 힘이 있고, 그렇게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선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인물이다. 정치인으로서 나선 적은 없지만, 황도희의 말처럼 이미 그 자질을 갖고 있는 인물. 그래서 오경숙의 지략이 있다면 황도희는 ‘코뿔소’라는 별명처럼 밀어붙이는 뚝심과 결단력을 갖고 있다. 

 

실전 정치는 이미지 메이킹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좋은 이미지를 더 부각시키고 안 좋은 이미지를 가리거나 좋게 포장하는 건 대중들의 표심을 얻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도희가 재벌가를 위해 해오며 능력을 갖게 된 이미지 메이킹은 이제 오경숙을 시장으로 세우는 정치판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진짜 대중들을 움직이는 건 진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오경숙이 갖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마음은, 황도희의 이미지 메이킹으로는 할 수 없는 빈 구석을 채운다. 그래서 이 둘이 힘을 합칠 때 시청자들은 그 연대의식에서 비롯되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갖게 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틀을 벗어나 두 여성이 연대하면서 생겨나는 시너지를 작품을 통해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작품은 결국 이 황도희와 오경숙이라는 인물을 얼마나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들 역할을 연기한 김희애와 문소리의 섬세한 연기는 시청자들이 <퀸메이커>에 몰입하게 해주기에 충분한다. 이름만으로도 갖게 되는 기대감만큼 충분히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배우들의 면면을 이 작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때 대척점에 서 있던 두 사람이 한 편으로 서 있는 광경만 봐도 가슴이 웅장해질 정도로. (사진:넷플릭스)

‘리바운드’ 이 기적 같은 농구 실화가 주는 감동의 실체

리바운드

“농구 하다 보면 슛 쏴도 안 들어갈 때가 있다 아이가. 근데 그 순간의 노력에 따라서 기회가 다시 생기기도 한다. 그거를 뭐하고 하노?”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에서 마지막 결승전에 양현이 코치(안재홍)가 선수들에게 하는 이 질문의 답은 바로 ‘리바운드’다. 그리고 이건 2012년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기적 같은 실화를 담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농구를 소재로 한 <리바운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른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서를 건드리며 N차관람 장기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팬들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까지 팬덤이 확장되었다. 원작이 강백호 중심의 서사였다면 이 영화는 송태섭을 중심으로 세워 저마다의 약점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관객들을 열광시킨다. 

 

<리바운드>는 어떨까. 먼저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다른 점은 이 이야기가 100%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2년 전국 고교 농구 대회에서 단 6명의 선수진만으로 결승까지 진출했던 부산 중앙고 농구부 이야기가 그것이다. 선수가 없어 해체 위기에 놓여 있던 농구부를 공익 근무 요원인 양현이 코치가 맡으면서 결코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이야기. 

 

실화가 갖는 힘은 그래서 <리바운드>에 절대적이다. 그래서인지 장항준 감독은 처음부터 애써 힘을 잔뜩 주는 연출을 하는 대신, 차분하게 각 선수들이 가진 서사를 풀어내고 그들 각자가 갖고 있는 상황과 그래서 거기서 얹어지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장항준 감독 특유의 코미디가 이런 다소 처질 수 있는 과정들을 유쾌하게 이끌어나가는 힘을 만들어준다. 

 

<리바운드>라는 제목에 걸맞게 양현이 코치가 맡은 오합지졸 농구부는 경기에 나가 참담한 패배를 경험한다. 그런데 여기서 인상적인 건 양현이 코치가 선수들을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이다. 그는 선수로서 실패한 자신이 마치 세상에 복수하듯 이 농구부를 몰아세웠다는 걸 인정하고, 선수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한다. 그렇게 다시 해체 수순을 밟던 농구부가 다시 뭉치고, 양현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선수들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맞는 포지션에서 기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들을 훈련시킨다. 그 과정을 통해 선수들은 농구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은 각자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 된다. 

 

양현이 코치는 물론이고 선수들 하나하나의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기가 펼쳐지면서 이들의 패스나 슛 혹은 리바운드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생겨난다. 그래서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골이 들어갔을 때 함께 기뻐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울림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는 없는 <리바운드>만의 차별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듯이 그 안에 드리워진 우리 사회의 현실이 더 실감나게 담겨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결승에서 만난 용산고 농구부와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그들이 타고 온 어엿한 전용버스와 작은 봉고차의 차이만으로도 서로 다른 환경이 비교된다. 각종 지원을 받는 용산고 농구부는 후보군까지 포함해 참가 기준 12명의 선수들이 함께 뛰지만 부산 중앙고 선수들은 단 6명밖에 선수가 없고 그 중 한 명마저 부상으로 빠지게 되면서 5명이 매 경기를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애초부터 공정할 수가 없는 경기다. 

 

그 불공정한 현실 앞에서도 기적 같은 결과를 내는 힘은 다름 아닌 ‘리바운드’ 정신 때문이다. 양현이 코치가 말한 것처럼, 골을 던져서 들어가는 것보다 안 들어갈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그래도 리바운드를 하면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기회를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팀과 나눈다는 점이다. 리바운드를 해낸 이가 다른 팀원에게 패스를 해주고 그가 또 다시 던질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래서 <리바운드>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갖게 된다. 내가 다시 한 번 기회를 갖는 것이면서, 동시에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른 이에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청춘들에게 이러한 ‘리바운드’를 해주고 있을까. 첫 발을 잘못 디디면 아니, 아예 본인들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어떤 부모에게 태어났는가에 따라 정해진 결과만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현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일까. 농구라는 스포츠를 다룬 영화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장항준 감독이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로는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진:영화'리바운드')

'오토라는 남자', 톰 행크스를 살게 한 작지만 큰 이유들

오토라는 남자

미국 영화 맞아? 톰 행크스 주연의 <오토라는 남자>는 마치 한국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자그마한 타운하우스에 중간 도로를 마당처럼 나눠 쓰는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응답하라1988>의 골목과 이웃들이 보여줬던 그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소소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의외로 그 감정의 진폭이 커져 끝내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영화. 

 

오토(톰 행크스)는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잃고 곧 그 뒤를 따라가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웃들과 선을 긋고 자신만의 삶에 머물며 전기도 끊는 등 끝을 준비한다. 그러니 이웃들에게 살가울 이유가 없다. 계속 함께 살아갈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하고 이웃들도 그를 대놓고 ‘꼰대’ 취급 한다. 하지만 오토가 갖가지 방법으로 죽으려 할 때마다 그 계획이 어그러지는 건 바로 그 귀찮기만 한 이웃들 때문이다. 

 

새롭게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은 어딘가 집안일에는 젬병인 남편 대신 오토를 찾는다. 공구와 사다리를 빌려달라고 하고 사다리에 올라 열리지 않는 문을 열려다 떨어져 다친 남편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자 차로 거기까지 데려다 달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운전연수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봐 달라고까지 한다.

 

그런데 툴툴거리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이 ‘꼰대 할아버지’는 그러면서도 이러한 부탁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마리솔만이 아니다. 길가에 꽁꽁 얼어붙은 길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아내의 제자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준다. 본인이 죽으려 하지만 죽을 위기에 처한 이를 구하기도 하고, 평생 지기였지만 차에 대한 취향이 달라 갈라졌던 이웃 친구가 마주한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주기도 한다. 

 

죽고 싶은 오토를 살게 하는 건 그를 귀찮게 만드는 이웃들이다. 그리고 오토가 그들을 귀찮아하면서도 외면하지 않고 자잘한 일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쓴 것처럼, 이웃 마리솔은 죽으려만 하며 오토가 그 누구도 들이지 않았던 그 길로 들어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울어준다. 그건 어둠 속에 자신만의 집과 루틴 안에만 머물던 오토를 다시 살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 죽음으로만 가던 길을 소소한 일상으로 되돌리는 것. “이게 사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일상에 있었다는 걸 마리솔은 깨닫게 해준다. 

 

베스트셀러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 영화지만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건 미국 영화에 대한 일종의 편견 때문일 게다. 사는 곳은 달라도 ‘인간의 온기’를 원하는 건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라는 걸 이 작품의 흥행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원작도 세계적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영화도 미국내 박스오피스 톱5에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를 통해 코미디 안에 잔잔한 감동과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담아내곤 했던 톰 행크스의 명불허전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마리솔 연기를 한 마리아나 트레비노다. 그가 톰 행크스와 호흡을 맞춰 보여준 연기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가슴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의 여운을 준다. 

 

<오토라는 남자>는 다른 한 편으로 우리의 이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앞서도 언급했던 <응답하라1988> 같은 작품 속 훈훈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현실에서 사라져버린 이웃들에 대한 결핍이 불러온 복고이자 추억이 아니었던가. <이웃사람> 같은 영화처럼 언젠가부터 우리네 영화에서 이웃이 따뜻하기보다는 심지어 공포를 주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오토라는 남자>가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여운이 우리네 관객들에게도 결코 작지 않은 것은. (사진:영화'오토라는 남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