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비’, 희망 따윈 없는 조진웅과 이성민의 정치판 ‘파우스트’

대외비

“본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러운 기다.” 영화 <대외비>에서 정치판의 비선 실세 순태(이성민)가 공천이 취소되어 억울해하는 해웅(조진웅)에게 던지는 그 말은 이 작품이 보는 정치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 시선은 지독하게 냉소적이다. 이 판에 발을 딛는 순간, 국민과 대중을 향한 최소한의 소신도 무너지고 결국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 

 

번번이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이제 부산 해운대에서 공천이 내정된 국회의원 후보 해웅은 이 작품이 그리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소신과 대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 정치판을 쥐고 흔드는 비선실세 순태를 보좌하며 머슴 역할을 자임해온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선하기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 인물이 변하기 시작하는 건 공천이 취소되면서다. 총선에 이어질 대선 비자금 마련을 위해 해운대 재개발 계획이 은밀히 이뤄지고, 이를 진행하게 된 순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재개발 반대를 외치는 해웅의 공천을 취소한다. 순태에게 토사구팽 당한 해웅은 소신과 대의 대신 어떻게든 권력을 쥐겠다는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입수한 해웅은 재개발 반대의 소신도 접고 그 이권을 미끼로 조폭과도 손을 잡고 선거자금을 조달해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선다.  

 

결국 <대외비>는 정치판과 또 거기 연결된 이권을 두고 해웅과 순태가 치고 받는 대결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는다. 의외로 해웅이 선전을 하기도 하지만 이를 다시 순태가 뒤집고 그러면 다시 해웅이 나서서 순태의 뒷덜미를 잡는 식이다. 이 과정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의 대의나 민주주의 같은 이야기들은 공염불이 되어버린다. 대신 치열한 이전투구의 장이 정치이고, 그것은 심지어 무고한 민초들의 삶조차 권력을 위해 빼앗는 ‘악마와의 거래’라는 게 그 과정이 담고 있는 것들이다. 

 

‘The Devil’s Deal’이라는 영문 제목에 담겨 있듯이 <대외비>가 그리고 있는 건 정치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악마와의 거래’다. 그것은 순태의 대사로도 나오는 데, 정치라는 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원태 감독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듯, 이 작품 속 순태와 해웅은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소토펠레스와 파우스트를 연상케 한다.

 

순태와 해웅이 극한의 대결구도 속에서 한 허름한 주점에서 마주한 채 서로를 향해 패를 꺼내드는 장면은 진짜 <파우스트>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었다. 한 명이 교차 편집되어 클로즈업 된 얼굴만으로도 이 악마와의 거래가 실감되기 때문이다. 순태는 악마의 눈빛으로 해웅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는 패를 내밀고, 해웅은 극도의 긴장감에 땀을 줄줄 흘려가며 떨면서도 자신의 패를 내민다. 사실 이 한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걸 담았다고 할 정도로 인상적인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를 나눈 후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정치판은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하거나 협상을 했을 테지만 이원택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그 엔딩은 말해준다. 흔히들 빌런들이 등장하는 이런 영화 속에서 권선징악, 사필귀정을 꿈꾸지만, 이 영화는 애초 이상적인 정의나 정치라는 것이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가 굳이 1992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작품 속에도 등장하지만 당대는 87년 민주화운동에 이은 6.29 선언으로 직선제에 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 시간이 흘러 차기 대선이 벌어지던 시기다. 선거에 있어 불법과 부정을 근절하겠다고 정부가 나섰지만 여전히 금권선거와 부정선거가 횡행했던 시기라는 것.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당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레트로적 감성이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영화가 그 때를 소환해낸 건 그런 정치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는 달라졌는가를 오히려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정치판을 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당시 그토록 쏟아져 나왔던 ‘민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치는 끝없는 권력 대결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있다. 

 

영화는 끝내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그 거래로 인해 끝없이 저들과 손잡아야 하고, 거기에 더 이상 순수한 정치나 민주주의의 이상 같은 것들은 존재할 수 없어지는 절망을 보여준다. 그 절망에서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정치판이 겹쳐지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어둡고 그래서 비밀로 감춰져 있지만 이 <대외비>를 끝내 마주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서 충분하다. 그 비밀이 비밀로 남겨져 있는 한 거래는 계속 일어날 것이고, 그만큼 세상은 더러워지고 민초들의 삶은 서러워질 것이며, 그럴수록 희망은 찾을 수 없을 테니.(사진:영화'대외비')

‘더 글로리’ 파트2, 송혜교를 괴롭히는 새 고데기에 담긴 참혹한 현실

더 글로리 파트2

“성공했네. 박연진. 나를 상대할 새 고데기를 두 개나 찾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문동은(송혜교)이 던지는 그 대사는 이 드라마의 후반전의 뜨겁게 타오를 화력을 예감케 한다. 고데기와 문동은의 온 몸에 남아있는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폭력의 시스템의 중요한 상징들이다. 머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쓰는 고데기를 저들은 약자들의 온 몸에 상처를 내는데 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왜 없는 것들은 세상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박연진의 대사로 등장하는 이 말이 바로 저 가해자들의 뻔뻔한 입장이다. 하지만 문동은의 온 몸에 남은 화상자국이 그러하듯이, 피해자들은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간다. 심지어 죽고 싶을 만큼. 문동은은 그래서 저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마치 바둑을 두듯 차근차근 상대의 집을 무너뜨려가며 걸어가지만, 박연진도 만만하지 않다. “네 X을 상대할 고데기를 찾을 것”이라고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박연진이 찾아낸 두 개의 새 고데기는 문동은의 엄마와 그의 든든한 조력자 현남(염혜란)이다. 이미 어린 문동은을 박연진의 엄마가 준 돈 몇 푼에 합의서를 써준 후 버렸던 문동은의 엄마다. 그런 그를 이제 박연진이 찾아와 돈을 주며 문동은을 학교에서 떠나게 만들라고 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엄마가 다시 찾아오자 문동은은 분노한다. 과거의 상처와 악몽이 또 다시 현재에 되살아난다. 

 

또한 박연진은 현남을 찾아와 그의 딸을 빌미로 협박한다. 딸의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는 것. 그러면서 현남을 회유해 문동은을 배신하라고 획책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동은은 괴롭다. 자신이 믿고 함께 하는 조력자가 자신의 복수 때문에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두 개의 새 고데기는 그렇게 다시 박연진의 손에 들려 문동은을 향해 드리워진다. 

 

온라인 시사회를 통해 미리 공개된 파트2의 2회분 내용을 보면 <더 글로리>의 후반전이 문동은과 박연진의 치고받는 대결로 치열해질 것인가를 예감케 한다. 여기서 가장 소름 돋는 설정은 가해자의 ‘새 고데기’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학교폭력 같은 과거의 폭력 전과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다시 새로운 고데기가 되어 피해자를 괴롭히는가에 대한 서사가 들어 있어서다. 

 

물론 <더 글로리>에서 새 고데기는 박연진이라는 최강 빌런이 끝내 찾아내는 ‘악의 성실함(?)’에서 등장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들의 새 고데기는 그들이 처벌받지 않고 심지어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을 괴롭힌다. 최근 자녀의 학교 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단적인 사례다.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드러낸다. 서울대생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그래서다. 당시 피해자가 자살 시도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학교폭력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입시, 인사 시스템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고데기가 아닐까.

 

최근 MBN <불타는 트롯맨>에서 과거 폭력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하차하지 않고 활동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가 쏟아지는 비판 속에 결국 하차를 결정한 황영웅과 제작진에 쏟아졌던 공분도 같은 것일 게다. 피해자는 여전히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새로운 고데기를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폭력의 이면에 존재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스템과 그래서 돈과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더 잘 살고, 약자인 피해자는 더 힘겹게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저격하는 드라마다. 성실한 악은 아니라고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의는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게는 새 고데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더 글로리>는 에둘러 말해준다. 

 

만일 죄지은 자들이 처벌받는 정의가 작동했다면, 문동은 같은 피해자가 왜 스스로 나서서 사적 복수를 하려하겠는가. 그건 복수가 아니라 새 고데기가 여전히 드리워진 삶으로부터의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까. 오는 10일 후반부 전편이 공개되는 <더 글로리> 파트2는 이 첨예한 새 고데기와 맞서 싸우는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연진의 말과 달리 이 세상에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가 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보여주길.(사진:넷플릭스)

‘일타 스캔들’, 노윤서 사고가 불러일으킬 파장

일타 스캔들

달달했던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에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청자들은 남행선(전도연)과 최치열(정경호)의 꿀 떨어지는 멜로에 빠져들었다가, 이를 위협하는 범죄의 그림자에 긴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명 ‘쇠구슬’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밤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길고양이를 죽이고 학원 학생을 건물에서 밀어 추락사시키고, 학원 강사 역시 쇠구슬을 쏴 살해하는 상황들이 조금씩 등장했기 때문이다. 

 

애초 드라마는 장서진(장영남)의 아들로 은둔형 외톨이인 이희재(김태정)가 범인인 것처럼 몰아갔지만 그건 트릭이었다. 진범은 진짜 정체를 숨긴 채 최치열 밑으로 들어와 그의 매니저를 자처했던 지동희(신재하). 최치열에 집착하는 지동희는 그 주변 사람들을 공격해왔고, 이제 최치열과 가까워진 남행선과 그 가족들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남해이(노윤서)가 지동희에 납치됐고 도망치다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일타 스캔들>이 굳이 후반부에 이르러 범죄의 그림자를 넣은 건 드라마적으로 보면 느슨해질 수 있는 긴장감을 계속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효과적인 측면에서만 범죄가 들어간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타 스캔들>이 갖고 있는 무게감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바로 이 범죄 설정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지동희가 그런 연쇄 살인범에 스토커가 된 이유는 부모의 학대 때문이었다. 아이의 성적에 집착하는 엄마는 급기야 시험지를 유출해오는 범죄까지 저지를 정도로 지동희의 누나를 압박하고 결국 누나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러자 그 엄마의 집착은 다시 지동희에게 이어지고, 압박을 못 버티던 그는 엄마를 베란다에서 밀어 죽이는 존속살해를 저지른다. 즉 지동희 역시 입시 과열 경쟁과 그 속에서 제정신이 아닌 엄마에 의해 탄생한 괴물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장서진의 집에서도 마치 평행이론처럼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 이희재는 압박에 못 견뎌 시험을 포기하고 방안으로 숨어들었고, 동생인 이선재(이채민)도 급기야 엄마가 유출해온 시험지 때문에 멘탈이 붕괴되어 간다. 그게 유출된 시험지인지 모르고 좋은 마음으로 남해이에게 그 시험지를 줌으로써 그에게까지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과 엄마에 대한 분노, 죄를 저지른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자책감까지 더해져 미칠 지경이 되어간다. 

 

입시 경쟁 속에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어른들의 욕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른들의 압박은 선을 넘는다. 남해이가 지동희에게 납치되고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상황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참다못한 아이들이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해이의 사고를 죄책감에 의한 자살 시도로 오인한 이선재는 미칠 듯한 마음에 자신도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자살 시도를 하려할 때 다행히 서건후(이민재)가 이를 막아주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 이 답답한 새끼야. 뭔지 모르겠지만 해결을 해라 해결을. 피하지 말고. 야, 너 이러는 거 해이가 봤어 봐. 해이가 일어나고 싶겠냐?” 이선재는 결국 담임을 찾아가 시험지 유출을 솔직히 고백한다. 

 

“아 걔는 강단이 있어 보인던데 생각보다 멘탈이 약한가 봐.” 남해이의 사고에 대해 입방아를 찢으며 수다를 떠는 조수희(김선영)에게 딸 방수아(강나언)는 유리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외친다. “그게 나였을 수도 있어.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고!” 아이들의 외침에 어른들은 깜짝 노라고 있는 중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공부 하는 게 뭐가 어렵냐고 말하며 몰아세웠던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간 일종의 입시 학대를 받았다는 걸 이제 깨달아야 하는 시간에 이르렀다. 

 

이제 2화를 남긴 <일타 스캔들>이 남행선과 최치열의 달달한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일은 그 멜로만이 아니다. 어른들이 펼쳐놓은 이 지옥 같은 입시 경쟁의 세계 속에서 질식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들 역시 진정한 삶의 행복을 향해 나갈 권리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행복해요? 엄마는 좋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행복하냐구요?” 선재가 엄마에게 던지는 이 질문을 무겁게 들어야 한다. 

 

<일타 스캔들>에 드리워진 범죄의 그림자는 그래서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에는 일관되게 닿아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1조원의 남자’같은 수치로 계산되어 성공을 매기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도 성적이라는 숫자로 강요되는 현실을 가져와, 그것이 진짜 행복일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밥 한 끼 따뜻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다움이 결국 행복일 수 있지 않냐고 말하고 있다.  (사진:tvN)

‘일타 스캔들’과 ‘길복순’, 전도연이 그리는 새로운 여성상

길복순

도대체 전도연의 한계는 어디인가.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남행선(전도연)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길복순(전도연)도 모두 싱글맘이지만, 두 캐릭터가 보여주는 색깔은 극에서 극이다. 남행선은 반찬가게 사장님으로 조카를 딸 삼아 키워 온 싱글맘(실은 싱글)이지만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과 더할 나위 없이 달달한 멜로를 보여준다. 반면 길복순 역시 10대 딸 길재영(김시아)을 둔 싱글맘이지만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로 <킬빌> 우마 서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액션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두 캐릭터 모두 싱글맘이라는 건 흥미롭다. 한 명은 진짜 싱글이지만 조카를 위해 엄마가 되어준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거기에는 별 관심도 없는 싱글맘이다. 멜로와 액션으로 장르가 갈라질 정도로 보여주는 결은 다르지만, 두 캐릭터가 모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 역할을 한다는 점이나, 그 아이가 모두 딸로서 두 서사 모두에 여성들의 삶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깔아 놓은 건 우연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겹쳐지는 면이 있다. 

 

이건 아마도 현재 드라마든 영화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요구하고 있는 ‘여성 서사’의 요소들이 부지불식간에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전도연이 두 역할을 맡았고, 두 인물 모두 평범한 여성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엄마들, 특히 싱글맘이라면 더더욱 전형화되어 있는 캐릭터에서 두 엄마들은 확연히 비껴나 있다. 

 

모두가 자식 교육을 위해 비정상적인 사교육 열풍에 휘말려 있을 때, ‘밥의 가치’를 믿고 조카도 딸 그 이상으로 챙기는 남행선이라는 인물은 나아가 스캔들에서 로맨스로 극적 전환을 이루는 멜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엄마(싱글이라도)의 사랑은 자식에게만 한정될 거라는 그런 틀에서 이 엄마는 그 자신으로서의 사랑을 하고 사랑 받는다. 그리고 딸(조카)은 그런 엄마를 지지한다. 

 

<길복순>은 마치 어엿한 회사의 형태를 갖춘 데다, 의뢰받은 일을 수행하는 능력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청부살인업체와 업계가 등장한다. 그러니 시작부터 칼과 도끼가 난무하고 피가 튀는 액션이 펼쳐진다. 하지만 <길복순>이 저 <킬빌> 같은 작품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건, 이러한 청부살인을 하는 액션을 치열하게 일터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을 은유하는 방식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포스터 속에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지만 다른 한 손에는 장 본 봉지를 안고 있는 장면이나 ‘길복순’이라는 제목에 피가 튄 듯한 빨간 색이 그어져 ‘킬복순’으로 보이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액션과 삶의 이중주를 잘 표현하고 있다.

 

길복순이 찾아가는 청부살인업자들이 오는 술집의 풍경은 그래서 하루의 피로를 술 한 잔과 회사 상사 욕을 하며 푸는 샐러리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거기서 연봉을 얘기하듯 의뢰받아 청부살인을 하고 받는 수입을 비교한다. 최고 등급인 길복순이 처리하는 청부살인 하나가 등급이 낮은 자들이 7명은 처리해야 얻을 수 있는 수입에 달한다. 게다가 길복순은 이러한 일(?)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 길재영을 돌보는 육아가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길복순이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딸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속이며 살아가는 길복순과 성 정체성 때문에 갈등하고 이를 숨기고 지냈던 딸이 서로에 대해 그것이 ‘다른 삶’이지만 그렇다고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며 등을 두드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모순투성이의 세상에서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피하지 않고 부딪치는 삶에 대한 긍정이 이 액션 가득한 작품에 색다른 감성을 더해준다. “떳떳하고 싶었어. 나한테”라는 딸에게 “멋있네. 내 딸”하고 말해주는 엄마는 확실히 우리가 전형적으로 봐왔던 그런 엄마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도연은 어언 50줄의 나이에 들어섰다. 이제 멜로 퀸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애매해진 나이처럼 보이고, 나아가 화려한 액션 히어로는 더더욱 애매해 보이지만, 전도연은 그것이 그저 편견일 뿐이라고 이 두 작품을 통해 선을 긋고 있다. 이러한 다소 도발적인 캐릭터들 때문일까. 전도연이 하는 멜로와 액션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 멜로에 있어서는 나이가 갖는 현실적인 면모들과 더불어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액션에 있어서도 그 치열함과 비정함 이면에 더해지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진다. 뭘 해도 되는 배우 전도연은 그렇게 2023년이 그의 해라는 걸 알리듯 두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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