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무도> 카레이싱, 그래도 지지하는 이유

 

제 아무리 <무한도전>이라도 이번 스피드 레이서특집은 결코 쉽지 않다. 박명수가 몰던 차가 레인을 빠져나와 가드 레일에 부딪쳐 반파되는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카 레이싱은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미션이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 위험이 따르고 심지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어찌 생각해보면 이것이 예능 프로그램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은 지금 상황극도 아니고 그저 한번 체험해보는 것도 아닌 진짜 카레이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올해 송도에서 벌어지는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에 참가한다. 지금껏 어느 예능 프로그램이 이런 부상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하는 도전을 했던가.

 

그나마 <무한도전>이니 이런 미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간 불가능해보였던 도전들을 이미 하나하나 수행했던 모습을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봅슬레이나 조정, 프로레슬링 같은 도무지 무모해보였던 도전도 이들이 하니 현실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 <무한도전>의 도전 과제는 카 레이싱 정도는 되어야 주목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스피드 레이서특집이 어려운 건 단지 그 미션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이 특집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예능적인 포인트, 즉 웃음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의 출전권을 놓고 벌인 출연진들 간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웃음을 주기 위해 차를 타러 나가는 출연자들의 몸 개그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스에 들어가면 모두가 심각해졌다.

 

자동차를 모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봅슬레이나 조정, 프로레슬링 같은 도전이 갖고 있는 몸 개그의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이전의 장기 프로젝트 도전 과제들이 눈에 보이는 땀과 몸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었다면 카레이싱은 감동과 스릴은 줄 수 있어도 웃음을 주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카레이싱이라는 종목 자체가 대중들에게 그다지 친숙하지가 않다. 물론 그 묘미를 아는 사람들이야 <무한도전>이 다루는 카레이싱에 더 환호할 것이지만, 이 종목을 잘 모르는 대중들은 이 도전 자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자동차가 질주하고 또 서로 앞으로 나가기 위해 경쟁하며 때로는 사고가 나기도 하는 장면들은 물론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거의 자동차 안의 앵글에만 비춰지게 된다) 실제 하는 사람들과 그걸 보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실감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즉 카레이싱이라는 도전 과제는 결코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대중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도전 과제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김태호 PD가 말했던 것처럼 다카르랠리 같은 최종목표를 위한 사전 포석이기 때문이다. 이 도전을 통해 자동차 경주라는 한 분야를 출연자들이 체득하게 되면 그 위에 다른 도전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최근 <무한도전>이 응원단 도전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면모이기도 하다. 연대와 고대의 응원전을 통해 응원을 체득했기 때문에 <무한도전>은 월드컵 응원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 결국 하나의 도전은 거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무한도전> 카레이싱, 당장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모한 도전의 과정을 거쳐 <무한도전>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던가.

<꽃할배> PD가 현장 자극제가 된 까닭

 

이게 오줌 누지 말라고 그러는 거래.” 나영석 PD가 골목 한 켠에 기묘한 각도로 타일을 붙여 놓은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한 <꽃보다 할배> 이서진과 나영석 PD가 주차 때문에 함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나영석 PD의 이 한 마디는 난데 없는 초딩 대화를 이끌어낸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여기다 오줌 못 눠?” 이서진이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며 묻자 나영석 PD는 이순재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순재 선생님 말씀은 오줌을 누면 자기한테 다 튄다는 거지.” 심지어 입사각이 어떻고 반사각이 어떻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자 이서진은 대뜸 나영석 PD에게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황당해 하며 형이 해봐라고 맞받아치는 나영석 PD. 이서진이 투덜댄다. “난 좀 아까 눠서 없어 지금. 그럼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는 데 뭐가 나오겠냐 내가.” 그리고 붙는 자막. ‘이게 뭔 초딩들의 대화인가.’

 

이 짤막한 장면에는 나영석 PD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만일 나영석 PD가 그 순간에 오줌 논쟁의 화두를 꺼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장면에서 이런 마치 만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뭔 초딩들의 대화인가라는 자막은 이 짧은 순간에 촉발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해준다. 이처럼 현장에서 출연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때론 자극을 주는 방식은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왜 밋밋한 순간 없이 자잘함 속에서도 뾰족한 재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준다.

 

여기 앞치마 형 이따 요리할 때 필요하지 않아?”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가게에서 앞치마를 보게 된 나영석 PD는 또 이렇게 이서진에게 툭 던진다. 요리하는 게 싫다고 그토록 얘기하던 이서진을 마치 골려주겠다는 식으로 약간은 깐족대는 것을 즐기는 듯한 목소리. 그러자 예상한대로의 반응이 이서진에게서 나온다. “이따 요리를 왜 해 내가.” “한 몇 번 더 할 거 같은데 이번에.” 나영석 PD의 이 말은 결코 그냥 지나치는 농담이 아니다. 의외로 이서진이 요리할 때 재밌는 장면들이 연출되는 걸 나영석 PD가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자극제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나영석 PD아무 연출이 안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되면 그게 그냥 여행이지 방송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다 보니까 그게 제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는데 저희는 대본도 없고 미션도 없는 대신에 보이지 않는 그런 자극 같은 걸 하죠. 내버려두면 지나칠 것들을 일부러 이서진씨 한테 꺼내놓는 거예요.” 나영석 PD가 굳이 방송 한 가운데 들어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최근 들어 더 프로그램 속으로 깊게 들어온 이유에 대해 나영석 PD는 이렇게 말했다. “1박에서는 강호동씨처럼 MC가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히 MC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의 특징은 묻기 전에 대답을 안해요. 예능인들은 묻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하고 더 크게 부풀려 가고 이렇게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옆에서 툭툭 건드리는 거죠. 대놓고 질문을 하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어떤 말이 나오게끔 현재 상황을 자기들이 알아서 설명하게끔 물꼬를 터줄려고 옆에서 자꾸 이렇게도 찔러보고 저렇게도 찔러보고 하는 거죠.”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그 상황이 어떻게 재미있을지 없을 지를 알아차리는 걸까. 거기에 대해 나영석 PD는 자신도 100%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건 시청자도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 대신 자신만 믿지 않고 주변에 물음으로써 좀더 객관적인 조언을 들으려 한다고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이우정 작가라는 것. 늘 한 발 더 뒤에서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 못했던 부분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제가 나서서 말을 나누지만 그 중 50%는 뒤에서 오는 말이에요. 이우정 작가가 예를 들어서 아까 보니까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 한 번 물어봐 주거나 끄집어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미처 제가 생각 못했던 부분이라도 일단 하죠. 믿으니까.”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제로서 기능하는 나영석 PD. 그리고 그 과정까지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연출. 이것이 <꽃보다 할배> 같은 어찌 보면 소소한 여행의 일상을 마치 모험처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힘일 것이다.

<웃찾사>, 한 번 웃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률 5%는 그렇다 치고, <웃찾사>는 화제가 잘 되지 않는 걸까. 우리는 <웃찾사>에서 어떤 유행어가 나오는 지 잘 모른다. 무명의 일반인이 올린 동영상이라도 재미가 있거나 뒷통수를 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지상파다. 금요일 밤 11시가 워낙예능의 격전지인 건 맞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행어 하나 뜨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

 

'웃찾사(사진출처:SBS)'

재미가 없어서? 아니다. 분명 <웃찾사>를 한 번 마음 먹고 본다면 이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웃찾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몇몇 코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감도 되고 재미도 있는 코너들이 꽤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열혈강호같은 전형적인 몸 개그 말 개그형 <웃찾사> 표 개그 코너에서도 이제는 현실이 보인다.

 

이 코너는 강호의 고수들이 서로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웃음을 주지만, 이 고수들 사이에서 등 터지는 서민들의 이야기로 현실을 담는다. “그깟 최고수 자리가 뭐길래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고...” 같은 남호연의 읊조림은 이 아무 맥락 없어 보이는 개그를 현 정치판에 대한 풍자로 느껴지게 만든다. 당하기만 하던 서민 김정환이 갑자기 본 모습을 드러내며 강호의 고수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까지 다가온다.

 

응답하라 1594’<응답하라 1994>를 제목의 패러디로 가져왔지만 내용은 사실 현 세태를 풍자를 담고 있다. ‘걸 떼거지(걸 그룹)’ 에피소드에서는 은근한 연예 비즈니스 한탕주의나 걸 노출 문제를 비판하고, ‘면상 개조원(성형외과)’ 에피소드에서는 너도 나도 성형에 줄서는 성형공화국과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 ‘부산특별시같은 코너는 서울과 지방을 뒤집어놓은 상황을 통해 서울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비꼬기도 한다.

 

<웃찾사> 개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몸 개그와 말 개그 역시 살아있다. <별에서 온 그대>를 패러디한 별에서 온 그놈은 천송이와 소시오패스 재경을 흉내 내는 홍윤화와 김건영의 연기가 큰 웃음을 준다. ‘체인지의 남자 같은 여자 박진주와 여자 같은 남자 장홍제도 예사롭지 않다. ‘우주스타 정재형의 자칭 스타라며 너스레를 떠는 정재형도 주목되고, ‘누명의 추억의 이동엽이 보여주는 “25년 전이었어...”하며 시작되는 엉뚱한 말을 쏟아내는 스피디한 말 개그도 흥미롭다. ‘굿닥터의 주원 흉내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안시우도 빼놓을 수 없다.

 

<웃찾사>는 분명 재미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재미에서만 머물 뿐 화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웃찾사>의 안철호 PD는 이 프로그램의 인기 하락 이유에 대해 공감개그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침체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근거 있는 분석이다. <웃찾사>가 한때 <개그콘서트>와 함께 경쟁을 하다가 점점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맥락 없는 유행어의 반복으로 마치 개그가 말장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맥락 없는 개그는 처음에는 관심을 끌지만 조금 지나면 식상해져버리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의 <웃찾사>는 확실히 위에서 언급한대로 과거에 비해 현실 공감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개그가 워낙 강해서인지 현실 공감은 말의 상찬 앞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재능은 오히려 독이 된다. TV로 방영되는 개그는 공연으로 하는 무대 개그와는 다르다. 공연이라면 그 순간 얼마나 웃겼는가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TV 개그 프로그램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회자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분명 쏟아지는 말 속에서 웃기는 웃었는데 지나고 나면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잘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화제가 될 수 없다. 무수히 쏟아놓은 재치 있는 말의 상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팩트 있는 말 한 마디다. 유행어 역시 마찬가지다. ‘민기네 경비아저씨같은 코너는 그 때 그 때 던져지는 전해 줘-”, “기운 내-” 같은 말이 웃음을 주지만 그것이 강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것은 유행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유행어가 나오는 상황이 어떤 현실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유행어를 하기 위한 코너가 되어버린다.

 

유행어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웃찾사>는 그걸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정도로 개그의 기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중요한 건 그 기량으로 만들어낸 유행어가 현실을 반영한 공감 가는 상황을 만나 오래도록 울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 유행어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감 가는 상황이 더 이상 여의치 않다면 코너를 접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웃찾사>가 반복적인 느낌을 주는 건 한 번 자리 잡은 코너가 적절히 변주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코너 발굴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웃찾사>는 지금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다. 또 코너의 재미 그 자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급한 건 일단 한 코너라도 대표 코너로서 화제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재미만큼 공감 가는 현실 상황을 끌어와 더 오랜 여운을 남기면서 반복적인 느낌을 없애줘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웃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웃기는 것이다. 그것만이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브랜드를 확고히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로트의 귀환,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트로트

 

이번엔 헬멧 대신 보자기, 체육복 대신 밭일이라도 나갈 것 같은 모시적삼이다. ‘빠빠빠라는 곡 하나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크레용팝이 새로 들고 나온 어이(Uh-ee)’라는 곡의 의상 콘셉트. 이런 의상을 입게 된 것은 아마도 이들이 들고 나온 장르가 트로트이기 때문일 게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재해석된 트로트는 크레용팝의 발랄한 댄스와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물론 크레용팝이 부르는 트로트풍의 노래 역시 마치 시골장터의 품바를 보는 듯 정겹고 구수하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엔터테인먼트)'

트로트 하면 어딘지 올드하다고 여겼던 분들이라면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올드하다기보다는 어딘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지는 정감이 느껴진다. 그 정감은 일렉트로닉 사운드 같은 차가운 기계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트로트가 가진 힘일 것이다. 제 아무리 세련된 팝에 우리의 귀가 유혹되면서도 트로트가 가진 그 의 힘에 순간 무력해지는 것은.

 

Mnet <트로트 엑스>라는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이 트로트가 가진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인 힙합 듀오 디오지가 무조건을 일렉트로닉과 접목시켜 보여준 무대는 대표적인 사례다. 트로트는 랩과 힙합을 섞어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장르였다. 여기에 좌중을 휘어잡는 무대매너와 코믹댄스까지. 트로트의 세계는 무한히 열린 가능성이라는 걸 디오지는 보여주었다.

 

단 한 번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목회자 구자억은 트로트를 통한 찬양사역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그가 부른 참말이여는 트로트가 찬양의 무대에서도 어색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특히 이 곡의 구성진 사투리가 섞인 가사는 듣는 이들을 흥겹게 만들었고, 무겁지 않게 지친 대중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으로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성악 전공자 유채훈이 부른 트로트는 또한 클래식과도 잘 어울렸다. 시원스런 성악 창법으로 부른 노래는 트로트 특유의 감성과 어우러져 마치 사연을 담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한때 (feel)은 가요 히트의 중요한 요소로 제시되곤 했었다. 트로트가 아니라도 그 트로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곡이라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 오랜 세월 조용필을 전설로 세웠던 것은 그 밑바탕에 깔린 국악적인 감성까지를 느끼게 해주는 필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조용필은 최근 트렌드에 맞게 그 색채를 지워내고 새로운 창법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 감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신세대 걸 그룹인 오렌지 캬라멜의 노래 속에도 트로트적인 감성은 묻어난다. ‘까탈레나같은 곡은 그 트로트적 감성에 인도 전통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곡이다. 이처럼 트로트는 젊은 세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트로트를 올드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런 선입견이다. 현재적인 재해석은 트로트가 가진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의 가능성을 열리게 해준다.

 

올드하다는 표현은 아마도 세련되지 못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만듦새의 문제이지 장르 그 자체의 문제는 되지 못한다. 결국 트로트라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충분히 세련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와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젊은 감성을 트로트에 수혈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크레용팝의 트로트 도전이나 <트로트엑스> 같은 프로그램의 시도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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