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저씨’ 신구 캐릭터는 어째서 갑질 재벌들 비판처럼 보일까

현실에도 이런 회장님이 있을까. 성폭력으로 시작됐던 미투 운동이 이제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장회장(신구)이 마치 이런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안 E&C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다. 건물을 설계하고 그 위험을 진단하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의 대부분이 이른바 ‘성장 지상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윤상무(정재성) 같은 인물은 실적을 위해 건물의 안전진단도 적당히 하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그것이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이 회사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제대로 일을 하는 인물이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이다. 그는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경영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은 건물에 대한 ‘구조적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소신을 지켜나간다. 모두가 라인에 붙어 자리보전을 위한 암투에 몰두할 때 그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는 인물이 바로 장회장이다. 왕전무(전국환)가 쥐락펴락하며 자기 회사인 양 힘을 넓혀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로얄패밀리의 아들인 도준영(김영민)을 대표로 세우긴 했지만 그는 그가 미덥지 못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본다. 실제로 도준영은 이 회사 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바람을 피우고, 장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캠핑장에서의 ‘불 피우기’를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처럼 보인다.

장회장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사실상 이 회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회장님이지만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봐온 회장님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라서 그런지 애사심이 남다르고, 진짜 일을 하는 박동훈 같은 인물에게 선선히 다가가 “밥 한 번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남다른 회장님이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던 이지안(이지은)이 그의 과거를 뒷조사하는 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찾아오라고 하는 부분에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상무 심사를 위한 부하직원의 인터뷰 자리에 나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인물이었는가를 피력하며 이 회사에서의 몇 개월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말한 바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장회장은 그래서 이지안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됐고,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소식에 “사과라도 해야겠다”며 찾아오라 했던 것.

스펙과 자기 측근만을 챙기고, 직원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렸다는 재벌가 회장님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이런 회장님은 아마도 판타지일 것이다. 그저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으로 여기고, 저 비정규직 사원 하나의 일에까지 이토록 마음을 쓰는 회장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장회장의 면면이 갑질 재벌들의 비판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라이브’, 미투·약자·적폐 현실 담은 노희경 작가의 저력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경찰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낯선 직업은 아니다. 흔한 형사물들 속에서 늘 등장했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tvN 금토드라마 <라이브>에서 경찰은 우리에게 드디어 진짜 얼굴을 드러낸 느낌이다. 때론 딜레마에 빠지고, 매뉴얼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억울하게 당하며, 심지어는 올바르게 경찰 일을 해왔다는 것 때문에 중징계를 받기도 하는 경찰들.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리경찰만 있는 것도 아닌,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라이브>는 담았다. 

노희경 작가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건, 경찰이라는 특정 직업을 깊이 있게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들을 포착해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성범죄를 다루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미투 운동의 한 자락이 포착되고, 국회의원들의 음주운전 거부 사건 같은 걸 다루며 역시 사회적 사안으로 떠오르는 갑질 행태가 담겨지는 식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염상수(이광수)가 오양촌(배성우)을 구하기 위해 총기를 사용한 것 때문에 오히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사건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일선 경찰의 문제가 담겼다. 그 사건에서 보이는 건 검경의 수뇌부들이 저지르는 적폐청산의 문제와, 진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균형을 잃은 언론의 문제다. 결국 약자들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도 늘 힘 있는 자들이 빠져나가는 구실이 되는 현실을 맞이하기도 한다.

‘최고의 경찰 부부’라고 자임하는 오양촌과 안장미(배종옥)가 둘 다 중징계를 받는 대목도 그렇다. 특히 안장미는 연쇄 성범죄자를 붙잡은 장본인이면서도 오히려 ‘늦게 잡았다’며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수뇌부를 차지한 남성 권력들은 비겁하게도 안장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로 숨어버린다. 이것이 <라이브>를 통해 노희경 작가가 전하려는 경찰의 진면목이었다. 

드라마 초반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강제해산시키는 장면으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라이브>가 그리려는 건 공권력으로서의 경찰들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그 힘 있는 누군가의 잘못되고 비겁한 선택들이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경찰들까지도 모두 욕되게 하고 있다는 것. <라이브>가 비판하려는 건 그래서 그 잘못된 권력구조들, 경찰 수뇌부의 적폐에 대한 것이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염상수를 위해 그를 변호하는 오양촌이 ‘사명감’을 강조해왔던 자신을 후회한다고 말하며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일선에서 사명감이 아니라면 버텨내기 힘든 갖가지 더럽고 두려우며 때론 힘겨운 일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적어도 그 사명감 하나는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애꿎은 그들을 희생양 삼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경찰들이 진짜 접하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우리 사회가 가진 갖가지 문제들이 드러난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과 사회정의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요즘, <라이브>의 일선 경찰들을 통해 전하는 노희경 작가의 메시지는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치 우리 사회의 환부를 경찰이라는 특정 직업군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 느낌.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사진:tvN)

‘예쁜 누나’, 갑질 세상 이 작은 드라마가 바꾸고 있는 것들

“어떤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나보다 더 날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애쓰는 어떤 사람을 보면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사람이 덜 걱정하게. 안심할 수 있게. 내가 내 자신을 더 지켜나가야겠다.”

왜 갑자기 예전과 달라졌냐고 묻는 직장 상사 공철구(이화룡)의 물음에 윤진아(손예진)는 그렇게 말했다. 툭하면 회식자리에서 성차별과 성희롱, 성추행까지 하던 공철구는 갑자기 회사대표가 여직원들의 불만수리를 한다는 소식에 겁먹고 윤진아를 회유하려 저녁을 사주는 자리였다. ‘윤탬버린’이라고 불리던 윤진아는 회사대표가 여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예쁜 누나 윤진아와 밥 사주고픈 동생 서준희(정해인)의 풋풋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흥미롭다. 그건 하도 갑질이 일반화되어버려 심지어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고 살았던” 윤진아가 바로 그 사랑을 통해 변화하게 됐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서다. 

웬 사랑이야기에 이런 시퀀스와 대사가 들어갔을까 싶지만, 잘 들여다보면 윤진아의 변화는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의 대중들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사람의 변화와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작은) 사회의 변화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시대의 변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사랑이야기에 사회적 사안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절묘하게 엮어 놓았다고 보인다. 

사실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이지만, 권력에 의한 갑질 행태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런 갑질은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게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세상이 그렇다”며 “간 쓸개 다 빼놓고” 일터로 나가는 이들은 그걸 그냥 수용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내재화는 결국 갑질 아래서도 탬버린을 들고 맞춰주는 자기 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몇몇 사건들을 보면 세상이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물 컵을 던지고 욕설을 하는 일이 늘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고 일파만파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을들이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는 잘 들여다보면 저 윤진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그간은 그 누구도 그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지지해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에 대중들이 귀를 기울인다. 대중들은 그 상처 입은 분들에게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와 서준희의 사랑이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들의 사랑은 그들만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를 넘어서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에 의해 작은 사회가 변화하는 그 과정까지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상처 주는 세상에 서로가 상처를 껴안아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윤진아가 서준희에게 녹음 파일로 보내는 마음은 그래서 더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준희야 나야. 고마워. 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게 될 줄 몰랐어. 너는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많이 배우고도 있어. 사랑은 한없이 아낌없이 한 사람만을 위해서 모든 걸 쏟아내는 마음이라는 걸. 그래서 사랑을 할 때는 서준희처럼. 준희야. 사랑해. 아주 많이. 아주 오래오래 사랑할게.”(사진:JTBC)

‘우만기’ 김현주, 흔들리지 않는 그에게 기대고픈 건

김현주가 이런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배우였던가. KBS 월화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에서 물론 단연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건 김명민이다.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김명민은 영혼이 바뀐 송현철의 역할을 진짜로 두 사람이 섞여있는 듯 연기해내고 있다. 간간히 김명민의 얼굴에서 영혼이 빙의된 고창석의 표정이나 모습이 보일 때는 실로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며 직장에서나 직장 밖에서나 좌충우돌의 시간을 보내는 송현철(김명민)의 모습이 보이면 보일수록 자꾸만 그 옆에 서 있는 선혜진(김현주)이 눈에 띈다. 아마도 개차반이었던 지점장 송현철과의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을 그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굳건히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니 “나 좀 도와줘요”하고 애원하는 송현철에게 이 침착하고 단단한 인물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선혜진은 처음부터 주목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송현철의 아내로서 마치 도우미 취급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그런 정도의 인물로 슬쩍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물이 이혼을 결심하고 있고, 돈 많은 남편으로부터 먼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마트에서 일하는 모습을 통해 그 존재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통 선혜진 정도의 사모님이라면 정반대로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으로 마구 살아갈 것 같지만, 이 인물은 정반대다. 고객의 불편을 들어주고 그 편의를 해결해주는 일을 하는 선혜진은 단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트의 대표인 금성무(조셉 리)가 해외입양아였다는 사실을 듣고는 부모를 찾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친절은 물론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이 인물이 가진 ‘선함’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인물이 그저 선하기만 해서 무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트의 진상 고객에게는 확실하게 매뉴얼에 따라 거부할 건 거부하고 잘못된 건 지적하는 그런 강단을 보인다. 이른바 ‘갑질’ 아래 무작정 고개 숙이고 당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드라마가 그리는 풍경(이건 최근 신문 사회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일이지만)이지만, 선혜진은 다르다. 그는 사태를 들여다보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 말하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아들이 친구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학교에 와서도 선혜진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사모님의 모습과는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자기 자식 편만 드는 그런 사모님이 아니라, 먼저 앞뒤 정황을 다 살핀 후 자기 아들이 친구에게 “못생겼다”고 놀린 사실이 문제의 발단이었다는 걸 이해하고 오히려 사과한다. 

게다가 선혜진은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해서 또 다른 관계의 틈입을 허용하는 인물도 아니다. 금성무의 과한 친절에 대해 그는 선을 긋는다. 사장과 직원 사이에 그 이상의 친절은 불편하다는 걸 드러내는 것. 남편과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그래도 그가 일말의 기대 같은 걸 갖고 있는 것도 남다른 면모다. 영혼이 바뀐 송현철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그는 다시 이 남편을 기대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이혼장을 내밀지만.

<우리가 만난 기적>은 영혼이 바뀐 송현철이 만들어내는 변화들을 기적 같은 사건들을 통해 그려내는 드라마다. 그런데 송현철만큼 이 드라마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은 선혜진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좀체 발견하지 못했던 가졌지만 따뜻하고 올곧은 생각을 가진 ‘기적 같은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김현주는 큰 과장 없이 이 인물을 깊이 있게 연기해냄으로써 다소 판타지와 과장이 많아 들뜰 수 있는 이 드라마에 안정감을 선사하고 있다. 정체성 혼돈으로 힘겹게 버텨가던 송현철이 선혜진에게 “나 좀 도와줘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도 읽힌다. <우리가 만난 기적>이라는 드라마에 김현주라는 배우의 도움은 앞으로 기대이상으로 필요해질 것으로 보인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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