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형사’, 뻔한 형사물 뒤집는 통쾌한 갑질 수사 보여줄까

재벌×형사

재벌이 형사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SBS 금토드라마 <재벌×형사>는 이런 상상에서 시작한 색다른 형사물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흔히 재벌3세가 낙하산 인사로 특정 부서에 들어와 그 남다른 재력과 배경으로 평범한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면, <재벌×형사>는 재벌3세가 어쩌다 강력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와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다룬다고나 할까. 

 

첫 회는 한수 그룹 막내아들 진이수(안보현)가 어쩌다 경찰이 되었는가를 다루는 스토리로 채워졌다. 서바이벌 게임을 위해 백화점을 통째로 빌리는 등, ‘노는 데 목숨 건’ 진이수가 경찰이 된 건, 어느 날 우연히 살인범을 때려잡게 되면서다. 마침 그 현장을 목격한 강하경찰서 강력1팀 이강현(박지현) 팀장이 오히려 재벌이 무고한 시민을 폭행한 것으로 오해했고, 그것이 기사화되어 한수 그룹 진명철(장현성) 회장이 시장출마를 선언 발표를 망쳐버렸다. 

 

하지만 뒤늦게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강하경찰서와 진이수의 형이자 한수 그룹 부회장인 진승주(곽시양)는 이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진이수를 진짜 경찰로 만든다. 두 달 전 변호사 특채로 경찰이 되어 강력1팀과 일가족 살인사건 수사를 해왔고 결국 범인을 검거했다고 발표한 것. 다소 믿기 힘든 전개지만 이런 설정을 통해 진이수라는 재벌3세가 낙하산으로 강력1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첫 회의 내용들이다. 

 

이 설정과 전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재벌×형사>는 현실성이 있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를 그리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재벌이 서민들에게 던지는 이미지는 양면적이다. 그 하나가 갑질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라면, 다른 하나는 뭐든 못할 게 없다고 여겨지는 부유함 같은 판타지다. 그래도 돈과 권력을 쥔 재벌3세의 서사는 부정부패의 원천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서 자주 등장하듯 신데렐라 스토리의 왕자님 같은 판타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쥐고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그걸 범인 잡는 일에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드라마가 첫 회에 제시한 진이수의 캐릭터는 ‘노는 데 목숨 건’ 인물이다.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못 하는 스포츠가 없는데다, 모든 장비들까지 다 갖춘 존재다. 낙하산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원한다면 특진 같은 것도 제 마음대로 하고 그래서 경찰 임무에서도 제 뜻대로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인물. 

 

판타지가 판타지로 끝나 버리면 드라마는 허황된 이야기에 머물고 만다. <재벌×형사>에는 그래서 진이수라는 인물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엄마에 대한 상처를 집어 넣었고, 재벌이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한량’ 이미지를 더해 넣었다. 다소 상투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그 상처는 진이수가 피해자들을 남달리 바라보는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않을까.

 

“교도소에 가든 벌금을 물든 네가 벌인 일 네가 책임져 봐. 넌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냐.” 중요한 행사를 망쳐버린 진명철 회장이 화가 나 진이수에게 하는 이 말 역시 향후 이 인물이 재벌의 힘이 아닌 스스로 무언가를 해냄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서사의 줄기가 될 거라는 걸 말해준다. 재벌이라는 판타지를 쓰고는 있지만 ‘자기 존재 증명’이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그리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도 기대할만한 부분이다. 보통의 형사물에서 형사들의 수사를 가로막는 건 돈과 권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재벌인 이 형사에게는 이런 상황들이 모두 뒤집어진다. 돈과 권력에 휘둘리기보다는 돈과 권력을 오히려 휘두르며 수사를 해나간다. 그건 통쾌한 지점을 만들어주는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약점도 있다. 설정 자체가 황당해 비현실적이라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비현실을 판타지로 바꿔줄 수 있다면 <재벌×형사>는 오히려 틀에 박힌 형사물의 뻔한 지점들을 뒤집는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재벌집 막내 아들 진이수(공교롭게도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그도 진씨 집안이다)는 재벌의 갑질을 통쾌함으로 뒤집는 그 반전의 쾌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진:SBS)

빙고게임으로 사건 해결? ‘천원짜리 변호사’가 풍자하는 것

천원짜리 변호사

엉뚱하고 다소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하다.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가진 이상한 관전 포인트다. 단 돈 천 원에 변호를 맡아주는 이상한 변호사가 등장하고 뭔가 대단한 법 조항을 들어 반전의 승소를 이끌어내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지만 이 변호사가 풀어내는 의뢰인 변호는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천영배(김형묵)의 갑질사건이 결국은 천지훈(남궁민)이 제안한 빙고게임으로 해결된다는 에피소드는 단적인 사례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물론이고 개인 운전기사, 회사 내 직원들에게 툭하면 폭행, 폭언 같은 갑질을 해온 천영배. 천지훈은 경비아저씨가 차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생떼를 쓰는 천영배의 차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수레로 밀어버리고, 소송을 걸겠다는 천영배의 으름장에 백마리(김지은)를 자신의 변호인으로 내세운다. 천지훈 밑에서 시보를 하려는 백마리에게 일종의 숙제를 준 것. 

 

하지만 사건을 오히려 키워버린 천지훈의 행동에 백마리는 법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돈을 들여 차를 고쳐주거나 돈이 없으면 구치소에 들어가거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던 것. 여기에 백마리가 무료법률상담을 해줬던 김태곤(손인용) 역시 바로 그 천영배의 상습적인 폭행, 폭언으로 갑질을 당했던 운전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백마리는 심지어 천영배와의 학연까지 이용해 어떻게든 의뢰인들에게 도움을 줘볼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천지훈이 원하는 해결책이 아니었고, 백마리 역시 끝내 천영배에게 “선배님-”이라는 말을 내뱉지 못한다. 

 

“마리씨. 일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말이죠.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사과를 해서 일을 무마시키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헌데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온 게 아니잖아요. 도움이 필요해서 온 거지. 변호사니까 무조건 법으로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봐요.”

 

고민하는 백마리에게 천지훈이 건네는 이 말은 <천원짜리 변호사>가 그리는 법정물이 여타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가가 잘 드러나 있다. 법이든 법이 아니든 천지훈이 꿈꾸고 있는 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물론 법적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꼭 법정 안에서의 해결만을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것. 

 

결국 백마리는 언론에 천영배가 자신의 차량을 파손한 경비원에게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짓 미담을 터트리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천영배의 심리를 이용해 차량 분쟁을 해소하면서도 경비원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갑질을 일삼는 천영배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천지훈의 몫으로 남겨졌다. 천지훈은 천영배가 모시는 모회장의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준 후, 그를 등에 업고 천영배에게 거꾸로 갑이 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갑질에는 갑질로 대응해준 것. 

 

또 천지훈은 모회장이 구치소에 갇혀 자리를 비운 사이 천영배에게 갑질을 당해온 직원들의 집단 소송 대리인이 되어 그 사실들을 폭로하고, 기상천외하게도 모회장에게 빙고게임을 제안하며 자신이 지면 고소를 취하할 것이고 자신이 이기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천영배를 사직시켜달라고 한다. 그간 구치소에 모회장을 면회하며 빙고게임을 계속 이겨온 천지훈이 그 승부욕을 건드려 게임에 응하게 한 것이다. 

 

결국 빙고게임은 숫자를 불러줄 파트너로 백마리가 지목되면서 사실상 승부는 끝나버렸다. 둘 만이 아는 법 조항들을 암호처럼 주고 받으며 천지훈이 원하는 숫자를 백마리가 추리해 불러주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됐던 것. 물론 법정에서 벌어지는 법의 대결이 아니라, 빙고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황당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통쾌하게 느껴지는 면 또한 있다. 그건 어찌 보면 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혹은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안들이 우리네 서민들의 현실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천지훈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이러한 부조리한 법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법을 잘 아는 이들이 오히려 가진 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법망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법을 활용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그런 인물. 그래서 이러한 돈키호테 같은 판타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코믹함과 진지함을 오가며 실제로 존재했으면 싶은 인물로 형상화해내는 것에 있어 남궁민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의 역할과 아우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든든한 연기력이 있어 <천원짜리 변호사>의 유치함이 가벼움으로 치부되지 않고 세태를 꼬집는 속 시원한 판타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진:SBS)

갑질하거나 응원하거나, '브람스'와 '청춘'의 극과 극 어른들

 

무엇이 청춘들을 힘겹게 할까. 청춘멜로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의 밑그림이 만만찮은 건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나 tvN <청춘기록>이나 마찬가지다. 이 두 드라마에서 어른들은 두 부류로 갈라진다. 갑질하거나 응원하거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박은빈)와 박준영(김민재)이 힘겨운 건 그들이 하고 꿈꾸고 있는 일의 성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을 힘겹게 하는 건 성적이나 순위 심지어 태생으로 줄 세우고 차별적 시선을 던지는 현실이다. 채송아가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면서 돕게 된 이수경(백지원) 교수는 그 현실에 선 청춘들의 절실함을 이용해 갑질하는 어른이다.

 

마치 제자로 키워줄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채임버 공연에 채송아를 앞세워 티켓을 팔고 자신의 라인을 세우려는 게 이수경의 진짜 속내다. 이런 사정은 이미 콩쿠르 수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박준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를 매니지먼트 하는 회사의 한국지부 본부장을 맡을 거라며 박성재(최대훈)는 박준영에게 일종의 사연 팔이를 하라고 강요한다. 지금 대중은 당신의 음악에 관심이 없다며.

 

<청춘기록>에도 여지없이 이런 갑질 어른들이 등장한다. 사혜준(박보검)의 이전 소속사 대표였던 이태수(이창훈)는 그의 모델료를 가로챘던 인물이다. 결국 계약을 해지하고 독립해나와 이민재(신동미)를 매니저로 배우의 길로 들어서지만, 어떻게 업계 톱 기획사에 이사가 된 이태수는 톱 배우 박도하(김건우)를 매니지먼트하며 사혜준의 가는 길마다 발목을 잡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는 꿈을 갖고 샵에서 일하는 안정하(박소담)에게도 이런 갑질 선배가 있다. 진주(조지승)는 안정하가 실력도 있고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어 손님들이 그를 찾기 시작하자 샵의 동료들에게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안정하를 왕따시킨다. 심지어 갑질 고객을 일부러 심어 안정하를 공개적으로 망신시키려고까지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나 <청춘기록>의 갑질하는 어른들은 그 머릿속이 비슷하다. 그들은 모두 경쟁사회에서 오로지 이기기 위한 선택들을 한다. 그래서 순위에 따라 차별하고 절실한 청춘들을 이용해 먹는다. 성적과 성과를 내기 위해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자행한다. 안타까운 건 이런 인면수심의 인간들이 잘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런 갑질 어른들 때문에 힘겨운 청춘들이지만, 그래도 이 청춘들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있다. 이들 덕분에 청춘들은 그나마 숨 쉴 틈을 찾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차영인(서정연)은 그런 어른이다. 경후문화재단 설립 때부터 일해온 그는 인턴으로 들어온 채송아에게 정직원과의 차별 없이 대하고, 인턴이 끝난 후에도 인간적으로 그를 응원한다. 박준영이 가진 상처들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봐주고, 조언조차 조심스럽게 살피며 건네는 그런 인물. 그래서 현실에 힘겨워하는 박준영도 채송아에게도 그의 따뜻한 말 한디는 큰 위로가 된다.

 

<청춘기록>의 이민재 역시 그런 갑질 하는 어른들 세상의 부당함을 외치고, 그런 어른들과 대적하며 사혜준을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어른이다. 그는 매니저지만 작은 지위를 갖고 갑질 하는 이태수와는 너무나 다르다. 포기하려는 사혜준을 끝까지 설득해 다시 배우로의 도전을 하게 만들고, 그의 성장을 자기 일처럼 좋아하며 지지해주는 어른.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의 청춘들이 맞닥뜨린 힘겨운 현실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 현실을 만들어놓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여전히 그 경쟁적인 현실 속에서도 청춘들을 이용해먹으려고만 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 이들의 현실을 너무나 공감하며 그들이 그 현실을 깨치고 나올 수 있게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어른들이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어른이어야 할까. 어떤 어른이어야 좀더 나은 세상이 될까.(사진:tvN)

 

갑질·머슴살이 같은 자극적 단어보다 매니저 처우 현실을 봐야

 

'갑질', '머슴살이'라는 단어들은 너무나 자극적이다. 그런데 단어가 이순재라는 배우를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자극적이다. 지난 29일 방영된 SBS <8시뉴스>에 이순재의 매니저로 일했다는 김모씨가 폭로한 내용이다. 그는 '머슴살이'에 비유해 평균 주 55시간 넘게 일했고 추가 수당 없이 기본급 18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회사는 4대 보험도 들어주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도 없었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호소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고용 두 달 만의 해고였다는 것.

 

이에 대해 이순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내가 몇 차례 잘못한 것이 맞다"며 이미 전 매니저와 만나 사과를 했다고 했다. 또 매니저는 자신이 채용한 게 아니라 소속사가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들을 잘 몰랐고 4대 보험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사실 머슴살이 같은 말이 너무 자극적이라 이 사안의 핵심적인 논점들이 오히려 이런 말에 가려지는 것만 같다. 연일 매체에서 이 단어들만 전면에 내세워 보도를 하고 있어서 이 문제가 지목하는 지금까지 관행처럼 굳어져 왔던 매니저의 처우 현실에 대한 부분들은 슬쩍 밀려나 보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순재는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가족의 허드렛일까지 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악의적으로 의도했다기보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들조차 관행처럼 별 문제시되지 않고 해왔던 데서 생겨난 문제라고 보인다.

 

실제로 지난 4월까지 약 1년 6개월간 이순재의 매니저로 일했다는 백씨가 올린 SNS의 글을 보면 이번 논란으로 인해 매도되고 있는 이순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며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연로하신 두 분만 생활하시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인터넷 주문은 전혀 못하셔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드리고 현금을 받았고, 무거운 물건은 제가 당연히 옮겨드렸다. 집을 오가며 분리수거를 가끔 해드린 것도 사실이지만, 전혀 노동착취라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들은 도와드리고 싶었다."

 

즉 이 내용 속에는 매니저라는 직무가 가진 특이한 지점이 들어가 있다. 즉 어디까지가 일의 영역이고 일 바깥의 영역인지가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늘 연예인과 함께 붙어 다녀야 하는 직업이고, 그러다 보니 사적인 영역까지도 수시로 드나드는 게 매니저의 직무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건 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있지만 어떤 건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하게 되는 일도 있다는 것.

 

물론 잘잘못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이번 사안으로 우리가 진짜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부분은 매니저라는 직업이 지금껏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던 직무의 범위에 대한 문제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가끔 매니저의 과잉된 배려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동반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직무가 매니저의 일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다.

 

영화 <라디오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스타와 매니저 사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마치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관계로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거의 사생활에 가까운 것들까지 모두 매니저 직무의 영역인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끄집어낸 것처럼 매니저만이 아닌 그 어떤 직업에서도 일의 영역과 사생활의 부분은 명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아직도 여전히 매니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의 세계에 남아 있는 가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일이라고 볼 수 없는 영역들까지 "우리가 남이냐"며 무시로 선을 넘어오는 그런 시대착오적 사고방식들이 더 이상 관행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게 하는 일.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진짜 봐야하는 것들이 바로 이것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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