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 이시영의 모든 것이 허용됐던 까닭

 

아는 형님. 넘 좋은 형님들. 편하게 제발 막 하라고 하셔서 정말 막 했어요. 죄송해요. 수근오빠 호동오빠가 더 신경도 써주고 고마워요. 예체능팀. 으어허헝.” JTBC <아는 형님>에 나왔던 소감을 이시영은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그녀가 새삼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건 <아는 형님>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이 한 마디로 거침이 없었기때문이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보통의 경우 <아는 형님>에서 여성 출연자는(그것도 단독 출연이라면 더더욱) 이 아재들의 짓궂은 농담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날은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이시영이 아재들을 압도하는 모습들로 채워졌다. 물론 아재들의 짓궂은 모습은 여전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권투를 배우겠다며 나선 이상민을 몇 방 만에 포기하게 만들고, 35살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절대 동안인 그녀는 아재들이 서로 애정공세를 펼칠 만큼 그들을 쥐락펴락했다. 데뷔전에 찜질방 매점에서 일을 했었다는 이야기부터 복싱 연습을 너무 심하게 해 생수병 마개를 딸 힘도 없어 서러웠었다는 이야기까지 소탈함과 털털함은 아재들마저 빠져들게 만들었다. 같은 스포츠인으로서 서장훈은 그녀가 했을 연습량을 얘기하며 존경스러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즉석 상황극으로 펼쳐진 일주일 남친 인사이드는 이시영이 일곱 명의 아재들을 상대로 일곱 다리를 걸친 상황을 통해 그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말로 게스트를 당황시켜운 월요일 남친 김희철에게 뱃속 아기 아빠를 찾아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냐는 드립을 날려 당황하게 만들었고, 화요일 남친 거구의 서장훈을 군 부사관이 되어 점호를 실시하고 얼차려를 주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수근은 스스로 샌드백이 되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남친으로 등장해 이시영에게 펀치를 맞고 베개에 맞고 또 딱밤을 연거푸 맞는 굴욕을 당했고, 돈 자랑하던 이상민은 반지부터 신발, 목걸이까지 모두 빼앗긴 채 쫓겨났으며, 강호동은 먹방 훈련이라며 연거푸 레몬을 통째로 먹고 휘파람을 불어야 했다. 이시영이 아니라면 보기 어려웠을 <아는 형님>의 역전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건 저 이시영의 인스타그램이 얘기해주듯이 그녀가 맘껏 모든 걸 할 수 있게 해준 <아는 형님> 아재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동네 예체능>으로 이시영은 강호동, 이수근과 친분을 갖고 있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시영의 자신감 넘치고 털털하며 인간미 가득한 모습들을 맘껏 꺼내놓을 수 있게 기꺼이 아재들이 온갖 굴욕을 감수하고 나선 것일 게다.

 

무엇보다 이런 모습은 그간 여성 출연자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해오면서 쌓인 불편한 느낌들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는 차원에서 <아는 형님>에도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보인다. 물론 뭘 해도 예뻐 보이는 이시영 같은 출연자가 아니라면 시도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지만. 이시영이 가진 매력은 <아는 형님>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강호동도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의 변화

 

KBS <우리동네 예체능>이 종영했다. 36개월만의 종영. 처음에는 화제성도 시청률도 괜찮았지만 갈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심지어 2%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경우도 생겼다. 화제성이 너무 없어 최근에는 이 방송을 여전히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무존재감이 됐다. 사실 보통의 프로그램이라면 일찌감치 종영했을 일이지만, 생활체육의 저변을 넓힌다는 취지가 KBS라는 공영방송과 잘 맞아떨어져 더 오래 방영될 수 있다.

 

'한식대첩4(사진출처:올리브TV)'

여기서 주목할 만한 건 <우리동네 예체능>이 종영함으로써 이 프로그램을 이끌던 강호동이 지상파에서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이다. 그는 현재 JTBC <아는 형님>tvN <한식대첩4>에 출연중이다. 그리고 곧 JTBC에서 새롭게 런칭하는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에 이경규와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강호동은 케이블과 종편으로 자신의 거취를 옮겼다.

 

강호동이 지상파에서 사라졌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스타 MC들의 탈 지상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 이어져온 일이기 때문이다. 강호동과 함께 지상파 예능의 쌍두마차로 불렸던 유재석도 JTBC와 몇 차례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시도한 바 있는데 그 행보는 꽤나 상징적이었다. 지상파에서 비지상파로 스타 MC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예능의 흐름 역시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구라도 신동엽도 전현무도 물론 지상파 예능에 출연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지상파 예능에서 맹활약해 왔다. 최근에는 지상파 이외의 방송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던 예능의 대부 이경규가 비지상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런 흐름들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스타 MC들 이전에 많은 지상파의 스타 PD들이 비지상파행을 한 것 때문이다. 결국 스타 MC들도 자신들의 전성기 시절 함께 했던 스타 PD들과 다시 비지상파에서 만나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한다. 지상파가 발휘하던 플랫폼의 힘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지금, 콘텐츠로 무장한 비지상파에서 옛 동료와 함께 전성기를 다시 구가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고 보면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여전히 맹위를 발휘하고 있는 건 <무한도전>이나 <12>을 빼곤 사실 찾아보기가 어렵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에서는 펄펄 날지만, <런닝맨>이나 <해피투게더>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결국 제아무리 훌륭한 MC라도 좋은 PD와 만나지 못하면 빛을 보기 어려운 시대다. 그러니 지상파를 떠나 비지상파에 자리 잡은 스타 PD들을 따라 스타 MC들도 이동하고 있는 것.

 

그러고 보면 강호동이 1년 간의 휴지기를 거치면서 복귀해 많은 지상파 프로그램에 투입되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던 건 그의 개인적인 역량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변화하고 있던 예능의 흐름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가 복귀했을 때 이미 많은 지상파 PD들은 비지상파로 옮겨가고 있었고, 시청자들의 관심도 비지상파로 바뀌고 있었다. 또한 MC가 아닌 PD 중심으로 프로그램도 재편되고 있었다.

 

그래도 한때 스타MC였던 강호동은 이런 변화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년 간의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겪으며 그도 이제 많은 걸 내려놓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주종목인 콩트 코미디(아는 형님)과 먹방(한식대첩, 한끼줍쇼)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처음 복귀해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던 <달빛 프린스> 같은 무모한 도전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강호동이 지상파에서 사라졌다는 건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다. 플랫폼 시대에서 콘텐츠 시대로 바뀌고 있고, 스타 MC 시대에서 스타 PD 시대로 바뀌고 있으며, 그 흐름에 따라 지상파에서 비지상파로 MCPD도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강호동 같은 한 때를 풍미했던 스타 MC도 이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무모함이 아니라 자신이 잘 하는 분야를 찾아야 하는.

<아는 형님>, 이수근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만일 JTBC <아는 형님>에 이수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이외에도 만만찮은 출연자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심심한 예능이 되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원탑으로 불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수근이다. 그는 학교 콘셉트로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아는 형님>에서 독보적인 드립을 연속으로 날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상황극을 하거나 개인기를 선보인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애초에 강호동을 중심으로 그 존재감이 느껴졌던 <아는 형님>은 점차 그 무게중심이 이수근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물론 이수근은 강호동과 오랜 콤비를 맞춰오며 그가 어떻게 하면 돋보이는가를 몸에 익혀왔고, 그래서인지 <아는 형님>에서도 톰과 제리 같은 치고 박는 코미디언 콤비를 선보이곤 했다. 때려서 웃기는 강호동이 있다면 그걸 맞아서 웃기게 만들어내는 이수근이 있다. 만일 이수근이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강호동의 다소 가학성이 있는 개그는 자칫 불편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상민을 현모양처라고 소개하고는 현재 모양이 처량해서라고 드립을 치고, 씨스타 보라가 예전에 방송을 찍고도 통편집 되어 화난 모습을 보이자 JTBC가 선물을 준비했다며 “1년치 신문 구독권이라고 툭툭 던지는 모습은 어깨에 힘을 뺀 타자가 바로 그것 때문에 연타석 안타를 쳐내는 모습을 그려낸다. 반장으로 지목되어 나선 이수근이 방송 분량이 거의 없어 고민이던 김영철에게 북한 드립을 시켜 주목받게 하고, 민경훈에게 계속해서 뻥을 쳐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장면들 역시 그가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것들이다.

 

강호동과 유독 프로그램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이수근은 마치 그에게 묻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과거 <12> 시절 이수근이 강호동과의 케미로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고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또 <신서유기>에서도 강호동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아는 형님>을 보면 오히려 이수근에 강호동이 의지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사실 도박 사건으로 휴지기를 가졌지만 이수근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여전히 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반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건 이수근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이렇게 된 건 이수근이 보여주는 이른바 웃음의 진정성때문이다. 사과하고 사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일이다. 그래서 이수근은 결국 진정으로 사죄하는 건 대중들에게 큰 웃음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해오곤 했다.

 

결국 예능인이 할 수 있는 진심어린 속내의 표현이란 말보다는 직접 프로그램에서 온 몸을 던져 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일일 것이다. 웃기기 위해서는 제 몸을 망가뜨리는 일쯤은 언제든 서슴없이 해온 그가 아닌가. <아는 형님>은 그런 그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호불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웃음에 대한 그 누구보다 절실한 모습을 통해 조금씩 호감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 박수 받을 일이다. 예능인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보이기 시작한 강호동의 진가

 

역시 강호동이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역시라고 했던 이수근의 말마따나 이번 <신서유기2>는 그 수식어가 제대로 어울리는 시간들이었다. 안재현이라는 새로운 예능 보물이 탄생했고, 지니어스원 은지원은 미친 X’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우뚝 섰으며, 이수근은 특유의 순발력으로 강호동과 케미를 만들어내며 쉴 틈 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건 역시 강호동이다. 그의 웃음을 향한 질깃질깃한 집념은 결국 해냈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역대급 제기 차기 미션이 되었던 이른바 신의 제기는 사실상 강호동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제기를 못 차는 안재현이 고작 3개를 차면 되는 걸 못하고 실패하자 강호동은 끝없이 재도전을 협상하는 것으로 판을 키워 나갔다. 이수근이 50개를 차는 것으로 재도전 기회를 얻고 안재현이 5개를 차면 드래곤볼을 얻는 식. 이수근이 4개를 남기고 50개 차는 걸 실패하자 그 다음에는 네 명이 합해서 100개를 차는 재도전 협상을 얻어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가 벌칙을 수행하게 됐지만 보다 못한 나영석 PD가 안재현에게 5개를 차면 벌칙을 없애주겠다고 제안함으로써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놀라운 건 그렇게 못하던 안재현이 무려 7개를 찼다는 것.

 

사실 제기 하나로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는 건 이미 <12> 시절부터 봐왔던 일들이다. 여행을 떠났는데 폭우가 쏟아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만 보내게 되자 했던 무수한 게임들이 그것이다. 그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게임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었던 건 게임 자체가 아니라 그걸 수행하는 출연자들이 그만큼 상황을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만일 강호동이 특유의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않고 그저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예능 새내기로서의 안재현이 있었고 제기 전문가(?)로서의 이수근, 그리고 그들과 밀당하는 나영석 PD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협상이었지만 그걸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이고 웃음이 터지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강호동의 노련함이 있었기에 신의 제기라는 역대급 장면이 가능할 수 있었다.

 

강호동의 진가는 모든 촬영을 끝내고 근처에서 회식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서도 발휘됐다. 비슷한 집들 사이에서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는 상황. 강호동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중국인들에게 다가가 숙소의 위치를 물었고 그러다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해준 친절한 중국인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앞장 서 걷는 중국인 청년을 보면서 강호동은 눈물 날 거 같다며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렸을 때 착하게만 사시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는 강호동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서 욕심을 좀 내셨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착한 중국인 청년을 보면서 욕심이 아니라 저렇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그러면서 강호동은 스스로에게 정신 차려라라고 말했다.

 

아마도 강호동에게 복귀 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실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것이 혹시 더 강해졌던 욕심때문이었다면, 강호동이 스스로 말했듯 그걸 내려놓고 그저 바르게 한 길을 가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이미 많은 걸 내려놓으면서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그러면서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 걸 <신서유기2>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으니. 앞으로도 역시강호동이라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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