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야심만만’은 가고, ‘무릎팍도사’는 사는 시대

국내 대표적인 연예 토크쇼 ‘야심만만’이 5년여의 긴 여정을 끝냈다. 한 때 20%에 육박하던 고공 시청률에 비해서는 쓸쓸한 퇴진이다. 시청률이 어느새 10%대 미만까지 추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야심만만’의 추락을 불러왔을까.

재미와 정보의 균형이 깨지다
많은 이들은 프로그램 내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야심만만’은 설문 조사 결과 내용을 연예인들이 출연해 맞추는 형식의 토크쇼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맞추는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사담이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 키스하기 좋은 장소는?’이란 질문이 나오면 MC는 연예인에게 ‘언제 첫 키스를 했습니까?’하고 묻는 식이다. 이런 진솔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미디어를 통해 회자되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알아본다는 두 가지 기능이 만나면서 ‘야심만만’은 재미와 정보를 모두 껴안을 수 있는 획기적인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그 균형이 깨지는 지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홍보성 질문들이 설문으로 등장하고, 출연진 역시 홍보를 위한 인물로 맞춰지면서 심리에 대한 정보는 온데간데없고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흐르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야심만만’이 추락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초창기 ‘야심만만’은 연예인들의 진솔한 이야기(사실은 사생활에 가까운)를 끄집어내면서 인기를 끌었으나, 지나친 홍보성 포맷으로 인해 그 신뢰성을 잃게 된 것이다. 2007년 들어 급부상한 리얼리티쇼들은 한편으로 ‘야심만만’의 진솔한 이야기마저 홍보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몸 개그가 자리한 세상, 말은 독해진다
한편으로 몸 개그가 자리를 잡으면서 말은 점점 자리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리얼리티쇼가 주창하는 리얼리티는 말보다는 몸에 손을 들어주었다. 몸은 가식 없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점점 편집의 공포에서 짧아져만 가는 개그의 시간 속에서 순간적으로 웃음을 주기에 적합했다. 반면 말로만 진행되는 토크쇼는 점점 ‘연예인들이 출연해 저들끼리 노는 말장난’ 정도로 인식되어갔다.

물길이 막히면 물은 돌아가기 마련. 몸 개그가 자리한 세상에서 말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더 커지고 독해지는 것이었다. 막말과 호통이 2007년도 예능의 키워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독해졌다는 것은 단지 막말개그와 호통개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야심만만’의 밤이었던 월요일밤을 처음 잠식하기 시작한 것은 편성이 바뀌기 전 죄민수의 몸 개그가 작렬하던 ‘개그야’였다. 그러나 ‘개그야’의 편성이 바뀌면서 월요일 밤 토크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야심만만’은 물론이고 ‘지피지기’가 아나운서들을 내세워 토크를 시작했고 ‘미녀들의 수다’는 그 속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다.

‘야심만만’과 ‘지피지기’가 고만고만한 10% 미만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미녀들의 수다’는 15%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유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몸과 말의 자극적인 배합 때문이다. 프로그램 명에서부터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굳이 미녀들을 모아놓고 서로 다른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성희롱에 가까운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는 데 있다. ‘지피지기’는 아나운서라는 베일에 싸인 직업의 속살을 끄집어내면서까지 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몸이 부상하고 말이 가라앉은 세상, 자막이 뜨다
왜 하는 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도전에 기꺼이 몸 하나를 던져 웃음만을 끄집어내는 몸 개그가 급부상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이 독해지고 거칠어지고 커지면서 토크쇼가 하던 말의 본래기능은 자막으로 흡수됐다. 오로지 웃음을 만들기 위해 몸을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자막은 스스로 비하하거나 꼬집으면서, 오히려 그 몸 개그가 웃음만을 위한 것이란 점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같은 자막들이 몸 개그와 함께 등장하는 식이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몸 개그의 힘 앞에서 거칠어진 말은 과거처럼 편집되지 않는다. 이유는 이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쇼를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본에 의한 대사가 아닌, 즉흥적인 애드립에 의존하는 말을 수위가 높다해서 편집을 해버리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리얼리티의 손실로서 드러난다. 따라서 말 수위는 높게 하면서 그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은 자막이 맡았다. 출연진이 우연히 만난 청소부에게 실수로 비하에 가까운 말을 한다 해도, 자막은 이런 식으로 붙는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이런 자막이 붙는 순간 그 출연진의 막말은 프로그램 자체가 매도시키는 셈이 된다.

알 수 없는 행동들과 순서가 없어 서로 뒤엉키는 거친 말들이 오고갈 때, 촌철살인의 자막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니 몸 개그의 시대에 말이 선 자리는 두 지점이 된다. 하나는 독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막으로 남는 것이다. ‘야심만만’의 종방이 말해주는 것은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추면 성공하던 토크쇼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점이다. 이 리얼리티 시대에 강호동이 처한 입장은 토크쇼의 변화를 또한 말해준다. ‘야심만만’의 강호동은 가고,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은 살아남는 시대다.

아마추어들에 대한 찬사, ‘스타킹’

강호동이 진행하는 ‘스타킹’에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자리가 바뀌어져 있다. 일반인들은 무대 위에 오르고, 연예인들은 객석에 앉아, 때론 개그맨 뺨치는 일반인들의 개그에 자지러지게 웃고, 때론 그 놀라운 실력에 깜짝 놀라며, 때론 찡한 사연에 감동을 받는다. 거기 앉아있는 노사연, 하하, 조형기, 송은이, 김종서, 혹은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같은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노래나 개그를 선보이기 위해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거기 앉은 이유는 단 하나. 이 연예인 뺨치는 일반인들의 재능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기 위함이다.

프로들을 놀라게 하는 아마추어의 자리, ‘스타킹’
실제로 출연자들의 면면을 보면 UCC 스타라는 말에 걸맞게 끼가 보통이 아니다. 2007년 스타킹 왕중왕이 된 40대 동방신기는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비보잉 실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20대 아이돌 스타들의 입을 쩍쩍 벌어지게 만든다(실제로 스타킹의 카메라는 이런 장면들을 곧잘 인서트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놀라운 노래실력으로 필리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펨핀코는 가수 박정현과 함께 그 어렵다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여유있게 듀엣으로 불러낸다.

물론 연예인에 필적하는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건 아니다. 아마추어 특유의 풋풋함과 재기발랄함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박수 받을만하다. 딱딱한 경찰제복을 입고 거기에 걸맞지 않는 앙징맞은 텔미춤을 춰 UCC스타가 된 ‘경찰텔미’나 언발란스한 노래와 밸리댄스를 선보여 장안의 화제가 된 ‘밸리 원장’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그것을 뒤집는 발상으로 주목을 끌었다.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들만의 아마추어리즘은 스타킹만의 가치이면서 동시에 그네들의 가치가 조명되는 UCC 시대의 진정한 스타가 가질 덕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 인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타킹’의 MC로 지금의 ‘스타킹’을 만든 강호동이다. 계속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부진으로 SBS는 한 때 시청률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스타킹’마저 폐지하려 한 적이 있다. 반대여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강호동의 저력이랄까. 초반 시청률을 내지 못했던 ‘스타킹’은 10%를 넘어서 현재 12%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강호동의 무엇이 ‘스타킹’을 이렇게 끌어올 수 있는 저력이 되었을까.

씨름판의 강호동과 MC 강호동, 그리고 스타킹 강호동
‘스타킹’은 일반인들의 장기자랑만큼 연예인들의 반응(리액션)이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강호동의 프로그램 장악력은 이미 잘 알려진 바. 그는 일반인들 앞에서는 특유의 거구를 이용한 커다란 리액션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끄집어냈고, 연예인들과의 미묘한 경쟁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몸을 아끼지 않는 그의 MC스타일은 보는 이들에게 그 열정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나왔을 때 키 높이를 맞추기 위해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앉거나 필요하면 아예 무대 위에 누워 버리는 행동은 저 씨름판에서부터 몸에 밴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강호동이라는 인물 자체가 개그맨의 길로 들어오기 전에는 한 명의 일반인이었다. 물론 씨름판에서는 이만기 선수가 아끼는 차세대 스타가 분명했지만, 개그맨으로서는 아마추어가 분명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눈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경규가 개그계의 입문을 독려했다는 사실은 그 역시 한 때는 스타킹의 출연자 같은 입장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개그맨을 웃기는 몸 개그와 입담이 무대 위에 올려지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일으키면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온 사람이 바로 강호동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추어리즘과 프로의식이 결합된 그만의 독특한 MC스타일을 보여준다. 그에게 붙여진 ‘유일하게 사투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MC’라는 표현은 MC로서 큰 부담이었을 사투리 자체마저 강호동이 캐릭터로 끌어안아 버렸다는 걸 말해준다. 또한 유재석과 종종 비교되면서 ‘1대1에 강한 토크의 힘’을 보여주는 그의 MC스타일 역시 개그맨 이전 씨름선수였을 때의 강호동에서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특유의 뚝심과 1대1 대결에 강한 면모,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드는 순발력은 씨름선수로서도 MC로서도 지금의 강호동을 만든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마추어들의 리얼리티 세상, ‘스타킹’
강호동의 이러한 MC스타일이 ‘스타킹’이 추구하는 코드와 부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강호동의 성공스토리 자체가 그렇듯이, 생활과 일상 혹은 직업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강점으로, 때론 부족함조차도 장점으로 승화시켜 저마다의 장기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스타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이 솔직함으로 전이되는 무대는 스타킹의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강호동에게도 자신들만의 진솔한 재미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장이 된다.

때론 프로들의 짜여진 듯한 노래나 장기는 식상한 것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리얼리티 쇼가 대세가 된 세상에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 가식 없이 드러나는 아마추어리즘의 리얼리티는 그 미숙함이나 어색함이 오히려 미덕이 된다. 또한 아마추어에 대한 찬사는 그 자체로 작금의 달라진 스타관을 반영한다. 스타들은 이제 저 위에 떠있는 별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별이며 때론 우리에게 잘 한다고 박수를 쳐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론 평범한 우리들조차 인터넷이라는 별천지 세상을 매개로 별이 되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연예인들에게 박수 받는 곳, ‘스타킹’은 이처럼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프로들의 찬사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호동이라는 스타킹을 통해 반짝반짝 빛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