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강마에가 된 사연

‘강심장’이 처음 기획 될 때만 해도 관계자들은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고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게스트만 스무 명이라면 섭외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로도 드러났다. 초기 ‘강심장’은 이른바 ‘병풍 게스트’로 논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바쁘게 카메라가 움직이고 이야기를 이쪽저쪽으로 토스한다고 해도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비춰낸다는 건 실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강심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병렬적으로 저마다의 주제를 하나씩 피켓에 적어놓고 순서에 따라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병풍 게스트’는 피할 수 없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강심장’은 ‘스타킹’식의 ‘조연 시스템’을 도입한다. 즉 한 명이 주연(?)으로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때, 주변에서 몇몇이 조연으로서 그것을 받쳐주는 형식이다.

이것은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이 출연할 때 그들을 중심에 세워두고 연예인들이 조연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스타킹’에서는 그 조연역할이 주로 몸개그에 가까운 것인 반면, ‘강심장’은 토크를 통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시스템’을 운용하는 MC, 강호동이다. ‘스타킹’에서 그는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우기 위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해 보여준다.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것은 보통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강호동의 솔선수범(?)을 보는 게스트로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도 적극적으로 리액션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 ‘스타킹’은 사실상 ‘리액션의 예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워두고 강호동의 진두지휘에 따라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강심장’은 기본적으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스타킹’처럼 몸으로 보여주는 리액션보다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강호동은 마에스트로 같은 강력한 토크의 지휘자 역할을 자처한다. ‘강심장’에는 다양한 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즉 김영철 같은 개인기로 똘똘 뭉쳐 있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김효진처럼 이승기를 추종하는 뒷배(?)를 갖고 강호동에게 호통치는 목소리도 있다. 정주리처럼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조건 들이대는 목소리도 있고, 데니안처럼 옛 아이돌로서 지금의 아이돌과의 비교점을 세워주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강호동 옆에 자리한 이승기는 마치 오케스트라 협연에서 지휘자 옆에 서는 메인 악기 연주자 같은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반고정된 출연자들인데, 새로 들어온 게스트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합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강호동은 게스트의 이야기가 조금 재미없다 싶으면 확실하게 웃음을 보장하는 김영철 같은 개그맨에게 바톤을 넘기고 잠깐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게스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면 이야기가 좀 더 매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게스트의 이야기가 좀 밋밋하다 싶으면 ‘야심만만’ 시절에 했던 것처럼 슬쩍 슬쩍 넘겨짚기로 게스트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기도 하는 데, 그것이 좀 부담스러운 아이템이라면 자신이 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한 질문자(?)를 내세운다. 과거에 붐은 바로 이 역할을 하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하면 수위가 좀 높은 질문도 질문자의 캐릭터로 인해 부드럽게 넘어가게 된다.

자신이 좀 오버했다 싶으면 김효진의 일침을 허용하고, 때로는 바른생활 청년 같은 이승기에게 자신을 내어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승기는 박상혁 PD의 말대로 “미소가 좋은 청년”이다. 그 기분 좋은 리액션 한 방이면 조금 썰렁해진 분위기도 금세 일소된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소리들의 조합은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으로서의 대본이 역할을 하게 마련이지만,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토크의 조화는 MC인 강호동이 만들어간다. 박상혁 PD는 “강호동의 진행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게스트의 토크 중간 중간에 카메라 밖에서 손짓 발짓으로 출연자들의 리액션을 요구하는 강호동의 진두지휘를 보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버라이어티 쇼가 집단 체제화 되면서 그 많은 인원들의 행동이나 말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역할은 이제 MC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강심장’에서는 연예인을 상대로 거기에 맞는 ‘리액션의 예능’을 선보이는 강호동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MC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그는 그 범주를 넓혀, 예능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강마에가 되어가고 있다. 그가 메인MC로 자리한 버라이어티 쇼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제2의 유재석, 강호동은 언제 나올까

연예대상에 올해도 역시 변화는 없었다. 강호동과 유재석의 아성은 굳건했다. 2005년 유재석이 KBS와 MBC의 연예대상을 거머쥐면서 유재석의 시대가 열렸고, 2007년 MBC 연예대상을 '무한도전' 팀원으로 유재석이, 그리고 SBS 연예대상을 강호동이 양분하면서 유재석-강호동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008년과 2009년은 아예 연예대상이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강호동, 유재석 둘 중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에 관심이 쏠릴 정도가 되었다.

사실이 그렇다. 현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강호동과 유재석만큼의 맨파워를 갖고 있는 인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상파 방송3사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이들의 마력적인 손아귀 안에 들어가 있다. MBC의 대표 버라이어티인 '무한도전'과 대표 토크쇼인 '황금어장'에 각각 유재석과 강호동이 포진해 있고, KBS의 대표 버라이어티인 '1박2일'과 대표 토크쇼인 '해피투게더'에 각각 강호동과 유재석이, 또 SBS의 대표 버라이어티인 '패밀리가 떴다'와 '스타킹'에 유재석과 강호동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이건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들이 대표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을 대표로 만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능 PD들이 밝히듯 유재석과 강호동은 예능 프로그램의 '희망이자 절망'이다. 그들이 있어야 예능이 빛을 발한다는 현실은 PD 입장에서는 희망이면서 절망인 셈이다. 이들의 맨파워는 방송3사의 주말 버라이어티 대전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는 '일밤'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성패가 모두 MC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이 양대산맥이 경쟁자로 있다는 것은 분명 넘기 어려운 산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스타일은 다르지만 모두 상대방의 끼와 재능을 끄집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리얼화되어가는 예능에 가장 필요한 존재들이다. 이들의 연예대상 독식이 시작된 시점이 리얼 예능이 막 태동하던 시점과 맞닿는다는 점은, 이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얼마나 부응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들은 때로는 경쟁구도로 때로는 친형제처럼 서로를 지지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철옹성 같은 굳건한 아성을 구축했다.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나?" 이런 강호동의 멘트에 "상은 방송국에서 주는데 왜 유재석씨에게 그걸 묻느냐"는 한 개그맨의 질문에는 묘한 뉘앙스가 깔려있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이미 서로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자신 아니면 상대방이 연예대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연말이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응당 그런 것인 양, 강호동과 유재석 둘 중 한 명이 선택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예능의 체질에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다. 한두 명에게만 집중되는 구조는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과도한 노동의 집중은 당사자들에게도 육체적, 정신적 소비를 빠르게 가져와 결국 예능인으로서의 수명 또한 단축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렇게 몇 년이 지속되다보면 새로운 예능인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적체되는 현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도 몇몇 예능인에 집중되는 구조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이것은 또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다양성을 제한한다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분명 유재석과 강호동은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발군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상을 모두 가져간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연말 방송3사 연예대상 시상식을 통해서 우리네 방송 환경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제2의 유재석, 제2의 강호동은 언제 나타날까. 2010년에는 좀 더 다양한 예능인들이 다양한 캐릭터로 군웅할거하는 시대가 되길...

예능 속에서 보이는 달라진 시대의 화법

1인 토크쇼의 부활을 알리며 화려한 게스트로 기대를 모았던 ‘박중훈쇼’는 기대만큼 쉽게 허물어져 버렸다. 1인 토크쇼가 일종의 복고주의 토크쇼라면, 그저 과거의 토크쇼를 답습하는 형태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중훈쇼’는 전형적인 1인 토크쇼의 예상 가능한 ‘친절한 질문들’과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짜여진 핑퐁식 대화로 장동건, 정우성, 김태희 같은 초특급 게스트를 모셔놓고도 지루한 시간만을 연출했다.

박중훈의 ‘친절한 질문들’에 게스트들도 정답에 가까운 얘기만을 반복했다. 그나마 정우성은 그 틀을 깨려고 꽤나 노력한 면이 있지만 다른 게스트들의 답변은 거의 예상 가능한 것들뿐이었다. 그 게스트들이 ‘박중훈쇼’에 출연한다는 것이 화제가 된 것은 바로 그들이 자의든 타의든 갖고 있는 신비주의의 속살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쇼는 평범한 그들의 모습을 비춰주려고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그 담화는 아침 토크쇼의 수준을 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그 신비주의를 더욱 공고하게 했다.

‘박중훈쇼’의 초특급 게스트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갑자기 언급된 프로그램이 있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 도사’다. ‘무릎팍 도사’가 그토록 섭외하려고 했으나 끝내 고사한 장동건이 ‘박중훈쇼’에 등장했다는 것이 그 표면적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이유는 이 초특급 게스트들이 ‘박중훈쇼’보다는 차라리 ‘무릎팍 도사’에 나와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깔려 있다.

가정이지만 만일 이들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다면 상황은 꽤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강호동의 탐문식 질문들 속에서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도 꽤 버거워하는 그 신비주의의 틀을 일부 깨뜨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중훈쇼’에 출연한 이들은 모두 하나 같이 자신들도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신비주의의 껍질은 그런 강변 하나로 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좀더 본질적인 상황이나 그런 상황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조금씩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1박2일’에 출연해 강호동의 리드 하에 신비주의의 탈출에 성공한 박찬호의 경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박2일’박찬호 특집은 ‘무릎팍 도사’의 버라이어티쇼 버전과 같다. 강호동은 스포츠 선수로서의 선후배를 들먹이면서 조금씩 분위기를 잡아나갔고, 게임을 통해 때론 박찬호를 자극했다. 거기에 화답하듯 박찬호는 강호동을 업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서슴없이 옷을 벗고 차가운 계곡 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이 둘이 함께 계곡 물 속에서 자존심 대결을 하는 장면은 강호동과 박찬호의 성공적인 만남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박찬호는 ‘1박2일’을 만나 동네형 같은 이미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강호동 속에 꿈틀대는 ‘무릎팍 도사’의 근성이었다.

‘박중훈쇼’의 화법과 장동건 같은 게스트들의 화답에 대한 대중들의 냉담함은 거꾸로 ‘1박2일’과 ‘무릎팍 도사’의 강호동의 화법과 박찬호 같은 게스트들의 화답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과 정확히 대조된다. 말로 아무리 자신이 보통사람임을 얘기한다고 해서 대중들이 갖고 있는 그에 대한 이미지는 좀체 깨지지 않는다.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어떤 틈입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보여졌을 때 깨지는 것이다. 늘 그렇게 의외성을 갖고 있는 강호동의 화법이 왜 지금 시대에 통하는 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장동건-박중훈식의 토크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강호동-박찬호식의 토크시대다.

개인 브랜드화 되어가는 예능인들, 그 숙제

올해 방송3사의 연예대상은 강호동 유재석 투맨쇼의 연속이었다. 비록 강호동은 KBS와 MBC, 두 방송사에서 대상을 받았고, 유재석은 SBS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이 두 인물은 방송3사 연예대상에서 늘 중심에 앉아 있었다. 시상식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마지막 대상 시상을 할 때면 누가 상을 타게 되든 서로 박수를 쳐주고 상대방이 상을 타는 것을 진정으로 기뻐해 주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경쟁자이면서 진정한 동료였고, 친구이자 스스로 말하듯 스승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올해 연예대상을 거머쥔 강호동, 유재석의 투맨쇼는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이제 예능의 트렌드에 있어서 방송사가 가지던 변별력을 이제는 한 개그맨에 의해 나눠질 수도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매년 각 방송사마다 흔히 말해 미는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올해도 다르지 않다. 방송3사가 강호동과 유재석을 연예대상에 앉힌 것은 각 방송사들의 미는 프로그램을 이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MBC의 ‘황금어장’, KBS의 ‘1박2일’,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그것.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과연 강호동과 유재석 없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다. ‘무릎팍 도사’는 면전에서도 상대방의 곤란한 질문을 천연덕스레 던질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강호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그램이었고, ‘1박2일’ 역시 강호동의 강한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패밀리가 떴다’는 모든 제작진들이 인정하듯이 늘 든든한 유재석이라는 개그맨이 있어 비로소 빛을 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황은 이제 거꾸로 되었다. 한 개그맨의 능력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고 때론 한 방송사의 예능을 웃기고 울리기도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유재석과 강호동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방송3사의 연예대상을 통해 볼 수 있었듯이 이제 한 방송사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예능인들은 바로 다른 방송사 시상식에서도 상을 받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개인기량이 뛰어난 예능인들, 예를 들면 유재석, 강호동을 비롯한 김구라, 신정환, 윤종신, 박미선, 신봉선 등등은 방송사를 넘나들며 활약을 했다. 예능인 개개인들의 브랜드가 방송사의 차원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이든 이들이 투여되면 모두 성공을 장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연예대상을 탄 ‘1박2일’, ‘무릎팍 도사’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는 모두 형식실험이 가지는 파격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프로그램들이다. ‘1박2일’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여행이라는 코드를 가져와 야생 버라이어티로 거듭나게 한 프로그램이며, ‘무릎팍 도사’는 리얼 토크쇼로서 게스트의 지평을 넓혔으며, ‘패밀리가 떴다’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여행이라는 코드에 판타지 설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캐릭터쇼를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실험적인 형식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전적으로 유재석, 강호동 같은 스스로를 브랜드화 시킬 정도의 능력을 가진 예능인들의 기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 프로그램들은 점점 캐릭터쇼와 리얼리티쇼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캐릭터를 프로그램마다 바꾸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고정된 캐릭터 속에서 조금씩의 변주가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예능인 개개인의 브랜드는 그만큼 중요해졌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방송사의 차원을 넘어서 올 한 해 예능의 트렌드이자, 지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함께 한 인물들을 새로운 브랜드가 되게 끌어준 것은 더 중요한 공로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 걸출한 두 예능 영웅들의 연예대상 수상은 반갑고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로 한 예능인의 기량이 한 프로그램, 나아가 한 방송사의 예능을 살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연예대상을 통해 보여준 이들의 수상은 하나의 숙제를 던져준다.

유재석과 강호동만큼 그 뒤를 이어줄 새 예능인들의 발굴이 그것이다. 당장의 유재석과 강호동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언젠가는 이경규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브랜드화된 예능인들의 방송사를 넘나드는 활약은 그만큼 캐릭터 소비를 빠르게 만든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 이 최정상에 섰을 때가 오히려 위기가 될 위험성도 있다. 새로운 모습을 늘 준비해야 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올해를 빛내주었던 가수들이나 배우들 같은 새로운 예능인들을 끄집어내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순간에 이 같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이들의 롱런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드는 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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