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민 CP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

 

“신미진 PD의 뛰어난 고집이 통했습니다. 제가 부탁한 건 딱 하나예요. 개그맨들이 뜨면 버라이어티에 한 번씩 넣어주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게 되면 개그맨들의 버라이어티 MC 따라 하기가 되요. 그래서 <개콘>이나 다른 버라이어티가 보이지 않았던 자연인 개그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죠. 근데 그게 잘 살았어요. 제가 이 프로그램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는 건... 사실 처음엔 맘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암말 안했다는 거(웃음). - 서수민 CP”

 

사진:전성환

<인간의 조건>의 서수민 CP는 요즘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인간의 조건>이 이렇게 잘 나오고 반응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개그맨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짜보라고 신미진 PD에게 숙제를 내주면서였다고 한다. 신미진 PD는 무려 10개의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결국 전부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수민 CP나 예능국 총괄 프로듀서인 박중민 EP 입장에서는 MC도 없이 개그맨들만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미진 PD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4부작 파일럿 얘기가 나오자 “하지 말란 얘기 아니냐”며 반 포기 상태였다고 한다. 그 때 가져온 기획안이 <인간의 조건>이었던 것. 그것도 그다지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서수민 CP는 박중민 EP에게 이번은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했다는 것이다. 후배 기를 살려주는 차원에서.

 

“그래서 박중민 EP와 농담으로 방송 나갈 때 첫 방이 괜찮으면 우리 이름을 넣고 아니면 빼자고도 했어요. 결국에는 이름 들어가는 게 자랑거리가 됐지만(웃음).”

 

막상 나온 프로그램이 너무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 프로그램의 불안 요소였던 MC가 없이 개그맨에 최적화시켰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콩트에 익숙한 개그맨들은 설정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들어가면 자꾸 설정을 하고 상황극을 하려다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은 거꾸로 갔다. 개그맨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하기보다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고 더 잘 될 수 있었던 것.

 

“박성호는 설정이 없으면 불안해해요. 갸루상 같은 분장을 해야 편안해지는 편이죠. 그래서 <인간의 조건> 들어갈 때도 너무 불안해 했어요. 그런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들어가더니 오히려 김준호와 케미(관계)를 만들어 내더라구요. <개콘> 이면에 이런 불편한 관계도 있구나 하는 걸 시청자분들도 흥미롭게 보아주셨죠.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진짜예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이 훨씬 진정성 있는 재미를 만들어내죠.”

 

서수민 CP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배운 게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후배가 뭐 한다고 할 때 말리기보다는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겠다는 것이다. 나름 본인도 예능에 있어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 나름의 경험과 기준으로 판단을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예능PD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게 있어요. 예능하면 꼭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1,2,3가 있는데 이것 없이 과연 제대로 나올까. 메인 엠씨가 없고 게임이 없고 오락성이 없는데 과연 될까. 그런데 되는 걸 보면서 시청자가 원하는 건 다른 거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건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와 <인간의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중들은 언젠가부터 예능의 양념들(서수민 CP가 말하듯 게임이나 메인 MC, 오락성 같은)에 질려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그 양념을 빼버림으로써 오히려 대중들이 원하는 담백한 예능의 맛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갈 수 있게 신미진 PD를 잡아준 건 나영석 PD였습니다. 사실 처음 휴대폰, TV, 인터넷 없이 살기 미션에 대해 저나 박중민 EP나 뭐 딱히 잡히는 게 없어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신미진 PD는 꽤 신랄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같이 회의를 했던 나영석 PD가 이거는 분명히 된다고 확신을 갖고 말하더라구요. 왜? 하고 물었더니 지금 국장님도 휴대폰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물어 봤을 때 아무런 그림이 안 떠오른다고 얘기하시지 않았냐고 하지 않았냐. 마찬가지다. 뭐가 될지 모르는 게 버라이어티의 시작이다. 게임이 있고 뭐가 있으면 뭐가 나올 지 다 예상이 되지 않냐. 그것보다는 뭔지 모르겠다는 궁금증이라도 생기고 그래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고 얘기하더라구요. 후에 몇 번 촬영장에 찾아갔는데 그 때마다 나영석 PD가 말하더군요. 이건 대박이야!”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사실 박중민 EP나 서수민 CP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능을 하면서 예능적인 핵심 코드들을 다 빼겠다는 건 큰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턱없는(?) 자신감이 <1박2일>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1박2일>은 결국 연출을 빼고 관찰을 통해 재미요소들을 발견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굳이 연출이나 기획하지 않아도 분량이 나오는 걸 늘 봐왔던 나영석 PD는 그래서 상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기존 멤버로 계속 갈 건지 아니면 조금씩 새로운 개그맨을 투입해서 바꿔나갈 건지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너무 같은 그림만 나오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그대로 가려구요. 중요한 건 이야기지 굳이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봐요. 지금 이대로도 박성호와 김준호처럼 그 멤버들 사이에 다양한 케미가 가능하거든요. 이 기본을 유지하고 중간 중간에 숙소를 자연스럽게 개그맨들이 찾아올 수는 있겠죠. <인간의 조건>이 좋은 게 이 프로그램으로 <개콘> 개그맨들도 자극이 된다는 거예요.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개그맨들이 생긴 거죠.”

 

<개콘>이 늘 아쉬웠던 부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성장한 개그맨들이 그 연장선 위에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 <개콘>의 개그맨들은 성장하면 이 프로그램을 나와 버라이어티에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은 다르다. <개콘>을 하면서 동시에 콩트 코미디 이상으로 개그맨이 성장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할 수 있다. 개그맨들로서는 확실한 발판이자 성장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개콘>을 잘 하면 또 다른 자기를 메이킹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개그맨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인간의 조건>은 그래서 <개콘>과 또 개그맨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능인 셈이죠.”

 

<인간의 조건>은 <개콘>의 이면 같은 느낌을 준다. <개콘>이 무대 위에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개그맨들을 보여준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분장을 지우고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온 맨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준다.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그래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개콘>의 짝패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양상국, 무엇이 이 개그맨을 주목하게 하나

 

<해피투게더> 약한 남자 특집에서 양상국은 같이 출연한 김태원, 이윤석, 김성규와 자신이 왜 함께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몸이 약한 남자들(?) 속에서 그는 마음이 약한 남자였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혹시나 사고가 날까 걱정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양상국은 눈물 많기로 소문난 ‘국민 울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마음만은 특별시다.”고 말함으로써 그 반전을 통해 웃음을 주지만 양상국은 뼛속까지 촌놈이다. 연예인 같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 개그할 때의 사투리 그대로가 평상시 말투인 그는 콩트 속의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간극이 별로 없다. 물론 콩트가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캐릭터의 성격이나 성향이 실제와 거의 같다는 얘기다.

 

이 일관성(?)은 양상국에게서 대중들이 어떤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을 하면서 유독 양상국이 재조명되고 재발견된 건 특히 진정성이 중요한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 그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양상국은 <인간의 조건>에서 늘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부지런한 모습과, 개그맨 선배 동료들을 기다리며 때로는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따뜻한 심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개그콘서트>가 콩트 코미디라는 조금은 과장된 영역을 갖고 있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가면을 벗고 일상인으로 돌아온 개그맨의 맨 얼굴을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이 양상국이 갖고 있는 촌놈 캐릭터는 그저 콩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제였다는 것. 양상국은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도 이 촌놈 캐릭터를 일관되게 가져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본래모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인간의 조건>이 무언가 하나를 빼냄으로써 얻게 되는 어떤 것을 그려내는 ‘아날로그형 예능’이라는 점에서도 양상국의 촌놈 캐릭터는 잘 어울린다. 첫 번째 미션으로 휴대전화와 TV, 인터넷이 없는 생활은 도시인들의 필수품을 제거함으로써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을 보여주는데, 양상국은 그 자체로 도시 속의 촌놈이라는 아날로그형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촌놈 캐릭터가 휴대전화와 TV와 인터넷이 없어 답답해하는 반전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웃음을 주었고, 그 다음에는 본래 촌놈으로서의 진짜 푸근한 모습이 보여짐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것.

 

서수민 PD는 양상국이 <인간의 조건>을 만들고 있는 신미진 PD의 기획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개그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래 <인간의 조건>은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원시인처럼 살아가기’라는 콘셉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의도된 일이라기보다는 양상국의 본래 모습이 그저 잘 맞아떨어진 것일 게다.

 

“멋있는 거 못하는 것도 있고요. 서민에다 바보 이런 걸 많이 했죠.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낮은 캐릭터에 더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개그맨이지만 개그맨 같지 않은 수수함과 심지어 쑥스러움을 보여주는 양상국. 그를 보면서 아날로그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이 세련됨과 첨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오히려 주목되는가를 잘 말해준다. 촌놈 양상국에 대한 주목은 그래서 문명을 다 털어내고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진정한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 풍자를 존대로 하란 말인가

 

뭐 대놓고 욕을 한 것도 아니다. 정책을 잘 지키란 얘기였고 그간 정치인들이 해왔던 웃지못할 코미디 같은 짓은 하지 말아달라는 뼈있는 <개그콘서트>식의 덕담이었던 셈이다. 정치와 코미디의 유사점에 대한 농담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 방송 내용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바람직한 정치풍자로 보기 어렵다며 행정지도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치풍자’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참으로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닐 수 없지만, 적어도 방통심의위측의 말을 잘 새겨보면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풍자’가 무엇인가를 가늠할 수 있겠다. 방통심의위는 “정치풍자라 함은 정치권의 부조리나 과오 등을 빗대어 폭로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국정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대상으로 ‘훈계조’로 발언한 것을 두고 바람직한 정치풍자라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묘한 엇나감이 있다. 즉 개그맨 정태호가 한 발언은 박근혜 당선자에 대한 당부이지 잘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다. 비판의 대상은 박근혜 당선인이 아니라, 그간 웃지못할 코미디를 대중들에게 제공(?)했던 정치인들이었던 것. 더 이상 그들처럼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의 개그식 표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방통심의위의 말에는 그 비판을 마치 박근혜 당선인에게 직접적으로 던져진 것처럼 받아들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아마도 그 대상이 대통령 당선인이 아니라 한 정치인이었거나 아니면 그저 일반인이었다면 이런 발언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이나 그저 일반인에게는 해도 되는 훈계조의 풍자가 왜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안 되는 걸까. 늘 정치인들이 대선 때만 되면 얘기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말은 대선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지워지는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그 권한은 국민에 의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 어느 누가라도 당부는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통심의위가 말하는 대통령 당선인에게 “잘 들어”, “지키길 바란다”, “절대 하지 마라” 같은 반말이나 ‘훈계조’의 표현이 잘못됐던 걸까. 이 말 역시 특별히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해서 풍자를 하는데 있어 반말이나 훈계조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하고 앞서간 생각이다. 이것은 풍자의 사전적 의미는 알아도 그 진짜 의미는 잘 모르며, 또 그 효과적인 풍자의 방법도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한 생각이다.

 

풍자란 결국 권위의 해체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그러니 풍자에 존댓말을 쓰는 것은 실로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아냥이 아니라면 말이다(만일 비아냥이 담긴 존댓말이라면 그것이 또 문제로 지목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풍자가 들어가는 개그코드들은 심지어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에게도 반말을 쓰고 훈계를 던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것이 풍자의 진면목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풍자를 하지 말라고 하든지, 다 해도 좋으니 높으신 분들을 대상으로는 하지 말라고 했다면 좀 솔직했을 게다. 하지만 같은 풍자를 놓고서 ‘바람직한 풍자’와 ‘바람직하지 않은 풍자’를 나눠놓는 식으로 애매모호한 논리를 만들어 행정지도 조치를 내리는 것은 자칫 정치 풍자 같은 개그의 소재 표현을 위축되게 만들 수 있다.

 

사실 이 정도 풍자는 당사자라도 허허 웃으며 넘어갔을 일이다. 하지만 더 좋지 않은 건 당사자도 가만있는데 알아서 앞서가는 과잉된 행동들이다.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적어도 풍자의 영역만큼의 숨통은 마음껏 열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내버려둘 순 없는 걸까. 풍자는 본질적으로 대상의 고저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권위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말이나 훈계조의 표현 정도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치풍자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너무 많은 사건들, 김대희표 체념의 공감

 

작년 대선에서 5060세대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그 투표의 힘을 보여줬을 때, 2030세대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멘붕”이었다. 그토록 많은 SNS 상에서의 결집된 젊은 목소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온 정반대의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 SNS 상에서 떠도는 농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개그콘서트>의 ‘어르신’ 코너에 등장하는 일명 ‘소고기 할아버지’ 김대희의 목소리를 딴 것이었다. “○○○가 당선되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제...”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사실 이 ‘소고기 할아버지’가 그토록 임팩트 있는 개그라고 처음부터 생각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비슷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며 “소고기 사먹겠제-”를 연발하는 것으로 얼마나 그 개그가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김대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대중들을 빨아들였다. 이미 한 생을 거의 다 살아서 이제 큰 기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소고기 할아버지의 체념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대체 이 기이한 힘은 어디서 온 걸까.

 

대선 이후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나머지 48%의 멘붕에 이어, 마치 상징적인 사건처럼 ‘웃음 전도사’였던 황수관 박사가 별세했다. 그리고 2013년이 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연초가 되자마자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논란이 쏟아져 나왔다. 김태희와 비의 열애설은 비의 군복무가 불성실했던 것이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졌고 그건 또 연예사병이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찬반논란으로도 번졌다.

 

오연서와 이장우의 열애설이 터지면서 엉뚱하게도 프로그램에 불똥이 튀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중, 또 놀라운 비보가 전해졌다.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이었던 조성민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최진실, 최진영 그리고 조성민까지 이어진 이 불행의 가족사는 남아있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013년이지만 너무 많은 사건들이 쏟아진 느낌이다.

 

‘소고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들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시끄럽고 슬프고 아픈 현실의 소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와 관련이 있을 게다. 인생을 달관한 자의 체념의 목소리. 마치 당장 죽을 것처럼 힘겨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냐는 듯한 그 ‘소고기 타령’은 의외로 우리를 허허롭게 웃게 만든다. 늘 긴장상태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생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소고기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리의 그 긴장상태를 관조적으로 비웃음으로써 우리를 이완시켜준다.

 

사실 ‘어르신’이라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는 작년 국민드라마로 추앙받았던 <추적자>의 박근형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다. 그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로 “욕봐래이-”하고 말하던 박근형의 그 노회함을 김원효가 뒤틀어서 웃음으로 만들어냈던 것. 그 노회함을 비트는 이 개그에서 김대희가 만들어낸 ‘소고기 할아버지’의 달관은 의외의 수확이 되었다.

 

참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니 거의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정신없는 현실들 속에서 때론 화가 나고 때론 슬퍼하고 또 때론 지나치게 행복해 했다면 가끔 저 ‘소고기 할아버지’의 ‘소고기 타령’을 떠올려 보시라. 자칫 염세적으로 되거나 체념을 넘어 비관에 이르면 곤란하겠지만, 잠시 동안의 ‘소고기 타령’ 생각은 마치 가끔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숨처럼 우리를 위안해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세상, 바로 그것이 소고기 할아버지에 점점 공감하게 되는 이유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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