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속도에서 걷는 속도로

응답하라 1988

급한 일이 없는 날이면 약속장소에 늘 30분 정도 일찍 나간다. 서촌이나 북촌, 인사동, 종로에서 주로 약속을 잡는데 그곳 골목길들을 걷는 게 재미있어서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골목길들을 슬슬 걸어 다니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져 말 그대로 인파가 몰리는 익선동 골목도 7,8년 전만 해도 한옥의 처마를 그늘 삼아 슬슬 걷기 딱 좋은 길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들고 그 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순간 도시 한 복판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골목길에 '거북슈퍼' 하나가 달랑 있었는데, 비 오는 날 그 가맥집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빗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물론 거북슈퍼가 있던 자리에 세련된 음식점들이 잔뜩 들어선 지금은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그때의 정취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다. 대신 요즘은경복궁역 뒤편 서촌 쪽에 약속을 하고 그 골목길들을 쏘다닌다. 그곳 골목길은미로처럼 뻗어있어 일단 들어서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길이 어디에 닿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어쩌다 길을 따라 수성동계곡까지 올라가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다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비로소 보이고 발견되는 별천지.

 

그때는 가치를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다. 집에 놓여있던 유선전화기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과, 마음을 글 몇 줄에 담아 적어보던 편지들 그리고 한쪽 귀로 나누어 듣던 워크맨 노래들 같은 게 그것이다. 골목길도 그랬다.그저 좁기만 했던 골목은 더럽게만 느껴졌고, 그 골목 한편에 놓인 평상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인사를 하고 참견을 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은 불편하게만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왁자하게 떠들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골목이 싹 밀어진 자리에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이제 알게 되었다. 그것이 꽤 그립고 따뜻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봉황당 골목 풍경으로 시작한다. 택이네 집에서 함께 ‘영웅본색’을 보던 친구들이 6시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엄마들의 소리에 집으로 돌아간다. 변진섭의 ‘새들처럼’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훑어 보여주는 골목길 정경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익숙한 철제문들과 현관 위에 놓인 화분들, 포스터들이 잔뜩 붙였다 떨어진 흔적이 가득한 담벼락, 위로 넣고 앞으로 빼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날 쓰레기통과 그 옆에 놓인 연탄재들, 버려진 의자들, 대야들. 도둑이 넘어올 수 없게 깨진 사이다병과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 놓은 담장, ‘사글세 있습니다’, ‘잠잘 방 있습니다’ 같은 전단이 붙어 있는 전봇대, ‘양담배 있습니다’라 적힌 담뱃가게, ‘금은보석 고급시계’라 적힌 촌스럽기 이를 데 없이 화려한 봉황당이라는 간판... 그 풍경들 위로 훗날 이때를 회고하는 덕선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 난 이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시간들을 우린 대체 뭘 하면서 보냈을까?”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건드린 정서적 뇌관은 지금은 찾기 힘든 그 골목길 풍경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 1988년의 쌍문동 골목길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제 보니 그 골목길은 사람과 사람을 얇디얇은 벽으로 막아놓은 아파트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이 길로 연결된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고 부모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웃인지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정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 골목길은 지금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의 풍경에 결핍된 어떤 것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풍경을 보고 지금 도시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골목길로 자꾸만 마음이 이끌리는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응답하라 1988

내게도 그런 골목길들이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들이 대부분이었던 70년대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의 골목길들에는 여지없이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치며 달려가곤 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십자 가이상’, ‘팔자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접시 가이상’ 같은 놀이들을 하곤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때 했던 ‘오징어 가이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놀이터도 별로 없던 시절, 우리의 골목길은 땅만 있으면 뭐든 놀 수 있던 놀이 공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 놓고 그 골목길로 나가면 항상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골목길 집집마다 밥 냄새가 피어올랐고,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새마을 운동의 물결이 그 시골 마을에도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땅에 금 긋고 놀던 놀이들은 학교 운동장으로 밀려났다. 비가 오면 푹푹 들어가던 흙길은 널찍한 신작로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시멘트가 덮여 트럭 같은 차들이 달리기 좋은 길로 바뀌었다. 우리들은 금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았고, 방과 후 집으로(사실은 골목길로) 가던 발길은 이제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가끔 소나기라도 내리면 시멘트로 포장된 신작로 위로 먼지들이 몽글몽글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 풍기던 텁텁한 냄새는 지금도 갑자기 소나기를 맞아 처마 끝에 비를 피할 때면 속절없이 코끝을 스치는 기억이 됐다. 빼앗긴 자의 아련함이랄까. 마음껏 금을 그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곤 했던 우리들의 골목길이 시멘트로 덮이고 그 위로 신난다는 듯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빨라진 세상의 변화 속에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에세이의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라는 글을 통해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고 했다. 길이란 사람의 ‘행함’에 맞게 나는 것이고 그래서 논두렁길의 구부러짐은 농사꾼의 몸의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길들이 어느 날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바뀌었다. 구불구불 넘어야 했던 산길 대신, 터널을 뚫어 낸 길로 차들이 쌩쌩 달려가면서 그 고갯길들의 ‘존엄’은 사라지게 됐다. 나의 기억 속에 구불구불 미로처럼 펼쳐져 있고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들을 오목하게 파이게 했던 그 골목길 대신,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각진 길들 과 빗물이 스미지 못해 하수도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시멘트길로의 변화는 그래서 사람의 길에서 자동차의 길로 바뀌며 생겨난 삶과 생각의 변화처럼 다가온다.

 

골목길의 땅은 빈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아무 표식도 기능도 강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빈 도화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에 우리들은 매일 오징어도 그리고 접시도 그리고 팔자도 그려가며 놀았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고는 돌을 세 번 튕겨 만들어지는 공간만큼을 내 땅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들의 놀이가 끝나고 나면 슥슥 다른 친구들의 발길에 지워진 후 그들의 도화지가 되었다.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공간. 하지만 그 공간 위로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덮이고 금이 그어졌다. 차도와 인도가 나뉘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사람은 왼쪽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도 생겼다.

 

그 규칙을 가진 길은 ‘생산성’이라는 척도로 채워졌다. 느긋이 걷곤 하던 길을 이제 사람들은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렸고, 때론 사람과 사람이, 때론 차와 차가, 때론 사람과 차가 부딪쳐 사고를 냈다. 경쟁사회의 시작이었다. 땅에 금을 몇 개 긋고 하던 놀이의 ‘오징어 게임’은 이제 선을 넘으면 진짜 죽는 살벌한 경쟁의 ‘오징어 게임’이 됐다. 저녁이 되면 풍겨오던 밥 냄새와 “밥 먹어라” 외치던 엄마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징어 게임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울로 전학을 온 나는 한동안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차의 속도로 쌩쌩 달려가던 그 변화 앞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의 속도에 적응하며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던80년대를 거치며 도시는 급속도로 변했다. 땅은 포장되었고,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밀어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세워졌다. 외국인들의 시선에 특히 민감한 한국인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개발 위에 다시 개발을 얻는 재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30여 년 간 자잘한 도시의 골목길들이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건 웬일일까.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길, 망원동 망리단길... 최근 몇 년 간 도심을 중심으로 골목길들이 곳곳에서 생겨나 증식하고 있다. 거기에는 저 '응답하라 1988'이 상기시켰던 잃어버린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추억 그리고 나아가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물론 개발과 재개발 속에서도 골목길들은 늘 존재했다. 70년대의 종로와 명동, 무교동거리가 상업화의 물결을 탄 도시의 활기였다면, 80년대 야타족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시경제의 상징이었고, IMF의 그늘 속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커져온 홍대거리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생겨난 가로수길부터 망리단길에 이르는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는 도대체 뭘까. 압축성장과 개발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버린 길들에 대한 회한이자 그리움 같은 게 아닐까.

응답하라 1988

압축성장과 개발시대의 길이란 속도를 의미하는 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점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저 빨리 지나치게 만드는 차들의 길이 생겨나면서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골목길들이 차들을 밀어내고 대신 ‘걷는 사람들’을 애써 채워 넣고 있는 건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신사동 가로수길은 그 골목골목까지 도시에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부암동길은 도시적인 풍경 속에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됐으며, 삼청동길은 역사가 보이는 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국적인 풍경을 걷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 그냥 있는 것이 당연한 길이 아니라 굳이 무슨무슨 길이라고 지칭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에게 골목길 같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낯선 공간이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서울 구석구석에 골목길이 생겨나는 건 도시에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나는 골목길을 보다 보면 그곳 역시 자본화의 고속도로가 깔림으로 해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할 수 없다.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지기 전, 고즈넉한 한옥의 처마를 내주던 익선동 골목길이 그립다. 그곳 거북슈퍼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병맥주 한 잔을 홀짝이던 그 한적한 온기가 자본의 열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나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골목길을 찾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없던 길도 만들어질 거라고 믿으며.

2024.11.4

<나의 독재자>, 개발시대와 아버지 노릇

 

개발시대를 지내온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때때로 자식을 살뜰히 챙기는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집보다는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아버지. 무엇이 그리 절박한 지 미친 듯 일에만 빠져 살아오다 어느 날 보니 훌쩍 굽어진 허리에 뒷모습이 쓸쓸하게만 다가오는 그런 아버지. 그것이 개발시대를 살아오신 아버지의 통상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사진출처:영화<나의 독재자>

<나의 독재자>는 벌써 제목부터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많은 뉘앙스를 담고 있는 영화다. 그것은 어찌 어찌 하다 김일성 역할을 평생의 연기로 삼게된 연극을 하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개발시대의 분위기를 살짝 드러내는 제목이기도 하다. 또한 거기에는 나의라는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라는 애정 또한 묻어난다. 영화는 이 제목이 가진 느낌들을 모두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사실 개발시대의 아버지란 막연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그리기 마련이지만 <나의 독재자>가 그리는 아버지는 이와는 다르다. 그가 왜 그렇게 김일성 연기에 집착하고 결국에는 연기와 현실을 혼동하게 되었는가는 일과 삶을 동일시한 당대의 아버지들을 연상시킨다. 일과 삶의 혼동은 결국 그를 파괴시키고 그의 주변 가족들마저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시대의 아픔이다.

 

세뇌와 고문은 그래서 개발시대가 가진 독재적 노동의 면면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우리네 아버지들은 혼신의 연기를 하며 살았다. 이른바 아버지 노릇이라는 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당대 아버지들의 역할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아버지들이 원한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태식 앞에서 왕관을 쓴 존재이고 싶었던 아버지 성근(설경구)은 그렇게 시대의 질곡 속에서 자신의 삶을 엉뚱하게 소진시킨다.

 

하지만 과연 이 시대의 질곡은 개발시대가 지나면서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근의 바톤을 이어 아버지 역할의 무대에 오른 이는 바로 그 아들인 태식(박해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집은 재개발로 포크레인 앞에 무너질 위기에 있고, 태식은 빚쟁이로 몰려 사채업자들에게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런 그에게 자식이란 자신이 겪어온 대로 그리 탐탁한 존재는 아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도 성근이 평생을 해온 아버지 역할을 목도하게 되면서 자신도 그 역할을 짊어질 것을 각오한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아버지 역할은 그렇게 자식으로 이어진다. 다만 그 아버지라는 역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다. <나의 독재자>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개발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아버지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하면서도 그것을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아버지를 연극배우로 설정해 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로 그려낸 점은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이다. 설경구라는 배우가 왜 그리 대단한가를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개발시대를 지내온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바라던 일일 것이다.

 

대사만으로 현대사를 관통하는 문제작, <황금의 제국>

 

“시멘트 가루 맛보던 혓바닥이 돈 맛을 보고 나니까 세상천지가 다 돈으로 보여. 회사도 공장도 사람도 저놈 저거 얼마짜리다. 저건 얼마짜리다. 한성제철이 네 손에 들어가 있으면 서윤이하고 싸우겠지. 너도 서윤이도 시멘트가루 맛은 본 적이 없고 돈 맛만 아니까. 10년 20년 결국 너도 내 나이가 될 거다. 민재야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 너 안 느끼게 하고 싶어. 애비 마음이 그래.”

 

'황금의 제국(사진출처:SBS)'

성진그룹을 형 최동성 회장(박근형)과 함께 일궈낸 최동진(정한용)이 아들 최민재(손현주)에게 던지는 이 대사는 <황금의 제국>이라는 드라마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본론>으로 얘기하면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로 바뀌는 지점에서부터 생겨나고 폭주하는 자본의 생리를 최동진은 몇 마디 대사로 툭 던져놓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네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80평짜리 시멘트 공장으로 시작했다. 시멘트가 한 포대 나올 때마다 거 신기하고 내가 만들었다 생각하니까 자식 같고 어떤 날은 찍어서 시멘트 가루 맛도 봤어. 근데 아파트가 무너지고 어쩌다가 청마건설을 인수했어.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성진시멘트보다 몇 배나 더 큰 회사가 우리 손에 들어왔지. 그 때부터 돈으로 회사를 샀고 형님하고 싸우고 내 인생의 반 토막은 드러내고 싶어.”

 

개발시대를 거쳐 90년대 IMF 겪으며 돈이 돈을 먹는 자본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을 <황금의 제국>은 당대의 인물을 표상하는 캐릭터들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온전히 최동성 회장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로 상징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형제들 간의 암투와 대결이 우리네 현대사를 관통하듯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래서 마치 왕조사극의 현대판을 보는 듯하다. 왕조사극이 왕과 신하들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구도를 통해서 당대의 역사적인 변화를 포착해내듯이, <황금의 제국>은 최동성 회장이라는 제국의 가족사를 통해 당대의 경제사를 그려낸다. “저는 왕건이 될 겁니다.”라며 궁예(최동성 회장을 빗대어)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선언하는 최민재의 말은 이 드라마가 상당 부분 왕조사극의 구성을 끌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놀라운 건 그래서 이 드라마는 거의 야외촬영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최동성 회장의 집안에서 인물들끼리 이합집산하며 부딪치는 장면들이고, 가끔 성진그룹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서윤(이요원)의 모습과 장태주(고수)가 이끄는 에덴에서 윤설희(장신영)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최동성 회장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할 것인가 가족장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가족이 대결을 벌이는 9회는 거의 70%를 최동성 회장의 집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정적인 느낌을 주기보다는 긴박감 넘치는 역동감을 선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집안에 있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욕망이 확실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황금의 제국>의 전제는 이 집안이 최동성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저녁 식사 시간에 말 한 마디로 계열사의 주인이 바뀌기도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수 조 원이 움직이는(그래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업이 이 가족 구성원들의 말 한 마디,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했는가 하는 결과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이 보다 흥미진진한 게임이 있을까.

 

하지만 이 드라마가 더욱 가치 있게 여겨지는 건 이것이 단순히 가족 내 서바이벌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네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거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동성 회장의 죽음에 이어 벌어진 가족 내의 대결은 그래서 이 모든 욕망들이 허망하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그가 죽자 그의 아내가 본색을 드러냈고 자식들은 고인을 애도하기보다는 일제히 자기 몫을 챙기려 안간힘을 쓴다. 고인의 영정 앞에 모여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은 그래서 섬뜩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워낙 국민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추적자>와 비교해 <황금의 제국>은 그 성취가 낮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추적자>가 우리 사회의 정의의 문제를 끄집어내기 위해 한 개인의 고군분투를 다뤘다면, <황금의 제국>은 그 개인의 고통이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시대를 거쳐 그 시스템이 완성된 뿌리에서부터 들춰보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 것인가. <황금의 제국>의 도발은 그래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김미경, 힐링과 자기계발 열풍의 양면성

 

한 달에 무려 40여회의 강연을 나가고, 가는 곳마다 부흥회에 가까운 반응을 얻고 있는 김미경. 최근에는 자기 이름을 내건 김미경쇼를 선보였고, <무릎팍도사>에 나와서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강호동마저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녀. 이제 국민 강사라고까지 불리던 김미경은 왜 잇따른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김미경쇼(사진출처:tvN)'

인문학 비하 논란에 이어 생긴 논문 표절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논란이 훨씬 더 크게 번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사건의 경중 그 자체보다 일종의 대중정서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김미경쇼에서 했던 발언이 뒤늦게 논란으로 이어진 이른바 인문학 비하 발언은 편집된 장면이 가져온 착시현상에 가깝다.

 

김미경이 해명한 것처럼 그녀는 인문학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다만 자기계발서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말인 “시건방을 떨고...” 같은 다소 강한 표현이 논란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녀는 해당 논란이 된 방송에서, 자기계발서가 인문학을 치열하게 읽고 남은 지혜가 한 사람의 책으로 쓰여지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 서적이 내 머리로 들어오고 몸으로 들어와서 내 몸과 그 지식이 치열하게 소통하는 거야. 치열하게 소통하고 나면 한 방울 지혜로 남아. 인문학은 지혜 만들기 위해서 읽는 거라구. 근데 그 사람의 지혜가 삼백 페이지 책으로 쓰여지면 그가 자기계발을 해온 거고, 그게 자기계발서적이야. 근데 안 읽는다고? 웃기고 있어. 시건방 떨고... 나는요. 책은 아무 문제없어요. 사람도 아무 문제없고. 읽는 사람이 문제예요.”

 

인문학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하에 자못 감정적인 논조를 섞어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들어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녀가 그토록 강연을 통해 설파했던 것들이 바로 그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하는 자신에 대한 비하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김미경이 얘기하는 것처럼 자기계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오히려 문제는 읽는 사람이 문제일까. 이 부분에서는 김미경이 갖고 있는 계몽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생길만 하다. 즉 세상과 사회의 잘못과 부조리가 아니라 문제는 바로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 사회 시스템이 갖고 온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시각은 듣는 이에게는 마치 고해성사 같은 카타르시스를 줄 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사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권력이 대중들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과거에 권력은 총과 칼로 대중들을 통제해 왔지만 근대 이후에서는 이른바 푸코가 얘기하는 파놉티콘처럼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는 기술들을 만들어왔다. 왜 우리는 굳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고, 왜 우리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강박적으로 해야 하며, 왜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무수한 처세들을 따라야 할까. 또 굳이 왜 그렇게 꿈을 강박적으로 가져야만 할까. 꿈이 있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것에 강박을 갖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도르노가 이미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명저를 통해 얘기했듯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자연을 통제해왔지만, 그 자연의 일부가 인간 자신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또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고 조직화되는 비인간화를 꼬집었던 것이다. 과연 김미경은 이러한 자기계발서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김미경이 하는 이야기는 속 시원하면서도 달콤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걸 여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논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왔던 개발시대의 사회와 작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는 다르다. 지금의 달라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해서 김미경은 과거의 해법을 들고 나오는 셈이다. 일종의 복고와 보수주의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지금 네가 안 되는 것은 네가 죽어라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여전히 얘기하고 있다. 과연 그 말이 이 시대에도 맞을까.

 

갑작스럽게 나온 김미경의 논문 표절 논란은 그 사안 자체만 보면 뜬금없어 보인다.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석사 학위 논문, 그것도 직장인들을 위한 석사 과정에서의 학위가 얼마나 아카데믹할 수 있는지를. 박사 학위도 아니고 석사 학위에서 타인의 논문을 인용하는 것은 늘 있던 일이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가진 학위에 대한 강박과 이제는 심지어 상술이 되어버린 학교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어쨌든 이런 엄밀한 잣대로 논문을 들여다보면 아마도 표절 아닌 것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즉 김미경의 논문 표절 논란은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놓여진 그녀에 대한 대중정서가 폭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 강사라는 명성을 가졌으니 그만한 실력에 대한 일종의 검증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김미경은 분명 스피치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피치는 말하는 기술이다. 정작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 아닌가.

 

김미경 신드롬과 논란 속에는 그래서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기계발과 힐링 열풍의 뒤안길을 보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예 들어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 세상 앞에 청춘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미경의 꿈은 달콤하다. 적어도 몇 십분 동안 ‘나도 할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연을 듣고 나선 현실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라져야 할까. 그것은 또 다른 보수적인 순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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