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순애보가 담긴다는 건

협상의 기술

망한 게임 택배왕을 만든 회사 차차게임즈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이 회사를 산인그룹 M&A 팀장 윤주노(이제훈)는 사려고 한다. 택배왕이라는 게임 때문이다. 워낙 게임의 차원을 넘어서는 디테일 때문에 그 시스템(지도나 물류 시스템 등)을 활용해 쉽게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유통과 물류를 해온 산인그룹은 이커머스에 일찍이 뛰어들지 않아 한계에 봉착했다. 차차게임즈를 사는 일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JTBC 토일드라마 <협상의 기술>은 이처럼 M&A라는 치열하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다. 지금껏 직장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협상의 기술>은 본격 기업극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디테일이 다르다. 실제로 이승영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무수한 사례들과 취재를 거쳐 실제 비즈니스의 리얼리티를 만들려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담긴 M&A 관련 에피소드들이나, 기업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 건설로 성장했지만 이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살아남게 된 회사 인물들의 고뇌 같은 것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M&A라는 비즈니스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걸 잘 말해주는 건 이 팀을 이끄는 윤주노라는 인물의 캐릭터에도 담겨있다. 위기에 처한 산인그룹을 회생시키기 위해 M&A 전쟁에 뛰어든 윤주노는 도통 표정이 없고 그래서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백사’라 불리는데, 머리를 하얘서 그렇게 불리는 줄 알았더니 실은 행동하기 전 ‘백번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만큼 신중하고, 협상에 있어서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협상의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건 그 치열한 경쟁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기계적인 차가움만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어디든 감정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협상의 기술>이 3,4회에 다룬 차차게임즈 인수 에피소드는 이를 잘 말해주는 소재다. 차차게임즈 차호진(장인섭) 대표가 오수연(박하랑)을 짝사랑해 자신이 만든 게임 택배왕과 하이스퀘어에 똑같은 이스터에그(개발자들이 자기 흔적을 숨겨두는 것)를 남기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차호진은 게임에 브금을 녹음했던 오수연을 짝사랑했지만, 공대생답게(?) 그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오수연의 집 앞 꺼진 가로등 대신 랜턴을 100일동안 걸어두고 가져오고 하는 일을 했던 차호진은 결국 오수연이 자신과 함께 게임 개발을 했던 선배 형 도한철(이시훈)과 사귀게 되자 그 회사를 나와버렸다. 도한철은 오수연도 빼앗고, 차호진이 개발했던 게임도 도둑질해 하이스퀘어라는 게임을 출시해 큰 성공까지 거둔다. 차호진은 억울해 도한철에게 절도로 소송을 걸었지만 회사는 망하기 직전까지 몰린다. 

 

게임 안에 심어 둔 이스터에그는 차호진이 오수연에게 계속 보내는 사랑의 고백이 됐다. 게임 안에서 꺼진 불을 밝히는 인물은 차호진의 분신이고, 그 불빛 저편에는 오수연의 분신인 캐릭터가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차호진 대표의 오수연에 대한 순애보는 이 차갑고 비정하기만 할 것 같은 비즈니스의 세계가 그것 역시 심장이 뜨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걸 드러낸다. 기업 극화이지만 멜로의 감성들이 피어나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협상의 기술>이 이스터에그 속 순애보를 통해 담은 건 그저 멜로 서사만이 아니다. 그 이스터에그는 도한철이 차호진의 개발물을 훔쳐갔다는 증거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택배왕의 이스터에그와 하이스퀘어의 이스터에그가 똑같이 어두운 밤길 불을 밝히는 것이라는 걸 알아낸 M&A팀은 이를 통해 도한철과 딜을 함으로써 그로부터 차차게임즈에 100억을 투자하게 만든다. DC의 지분 10%까지 얹어서. 그리고 이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오수연이 우연히 택배왕의 이스터에그에 담긴 비밀을 알고 놀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협상의 기술>은 이처럼 디테일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담으면서도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안판석 감독 특유의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연출력은 이 복잡해 보이는 서사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그래서 빠져서 보다보면 M&A라는 비정한 세계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인간적 감정들과 분노와 희열이 교차하는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좋은 대본에 베테랑 연출이 더해지고 그 위에서 배우들의 단단한 연기가 펼쳐지면서 생겨난 간만에 보는 흥미진진한 본격 기업극화가 아닐 수 없다. (사진:JTBC)

‘오징어 게임’, 456명과 456억 사이

오징어 게임

(본문 중 드라마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시청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어린 시절 공터에서는 흙바닥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놓고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당시에는 오징어 가이상이라 불렸다)을 하곤 했다. 맨몸으로 공수를 나눠 부딪치는 게임은 꽤 과격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선사했다. 밥 냄새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저녁 시간이 되어 엄마들이 아이 이름을 불러서야 겨우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으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이 어린 시절의 게임들을 모티브로 가져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주해낸다. 빚에 쪼들리면서도 경마 같은 도박을 통해 일확천금만을 꿈꾸는 기훈(이정재)은 이혼 당한 후 힘겹게 생업으로 버텨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딸 생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불쑥 게임을 제안한다. 딱지치기를 해서 이기면 10만원을 주고 지면 뺨 한 대를 10만원 값으로 때리겠다는 것.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두드려맞던 기훈은 결국 딱지를 뒤집고 돈을 번다. 그리고 오징어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받는다. 

 

<오징어 게임>의 이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세계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돈과 뺨 맞기의 등치는 앞으로 기훈이 그 낯선 곳으로 끌려가 하게 되는 오징어 게임의 핵심적인 룰이다. 456번을 달게 된 기훈은 자신이 그 게임에 참여한 마지막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곳에 모인 456명과 돈을 놓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게 된다. 각 한 사람의 목숨은 1억 원으로 매겨진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이들이 지내는 합숙장소의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투명 공 안으로 그만큼의 돈다발이 쏟아져 쌓여간다. 456명의 목숨 값은 그래서 456억이고 끝까지 살아남는 최종 1인은 그 456억을 가져가게 된다.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점에서 살벌하지만, 이들이 하는 게임은 너무나 상반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심 게임들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부터 ‘구슬치기’, ‘오징어게임’ 같은 게임들이다. 요즘이야 각종 돈 들어가는(심지어 현질을 해야 하는) 인터넷, 모바일 게임들이 넘쳐나지만 당시만 해도 맨몸으로 쪽수만 맞으면 동네 어디서든 할 수 있었던 게임들. 그것도 너무 재밌어서 밤에 잠 잘 때조차 다음 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던 바로 그 게임들이다. 설마 사람까지 죽이겠어 하는 의구심은 첫 게임에서 무차별 살상을 겪고 난 후부터 살벌한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동심 게임이 피가 튀고 죽고 죽이는 살육전으로 변화해가는 것. 

 

<오징어 게임>은 방영 전부터 표절 논란이 나왔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한 ‘서바이벌 게임’류 콘텐츠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일본 영화 <배틀로얄>이 그렇고, <신이 말하는 대로>,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 일본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마치 게임 속에 들어간 것처럼 제시되는 미션들을 해결해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류 콘텐츠들은 이제 계보를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이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 “2008년부터 구상한 작품”이라며 “유사포맷이라 언급되는 작품은 그보다 훨씬 이후에 공개됐다”고 했다. 우선권을 따지자면 이 작품이 원조라는 주장이다. 

 

표절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서 <오징어 게임>의 오리지널리티는 여기 등장하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게임들과 이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의 캐릭터와 스토리가 부여하는 한국적 정서가 아닐까 싶다. <오징어 게임>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가상의 게임 상황을 가져오지만, 이 가상을 통해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오히려 현실이다. 

 

구조조정을 당한 후 가게를 열었지만 실패한 기훈(이정재), 서울대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지만 횡령과 사문서 위조로 쫓기는 신세가 된 상우(박해수), 탈북자로서 동생을 보육원에 맡긴 채 어머니를 데려오려 브로커를 썼지만 도망쳐버려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새벽(정호연), 머리에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일남(오영수), 조직의 돈에 손을 댄 일로 쫓기는 조폭 덕수(허성태), 임금체불로 실랑이를 벌이다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간 사장의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갖고 도망친 외국인 근로자 알리(트리파티 아누팜) 등등.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이들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이 살벌한 게임 속으로 가져온다. 이들 모두의 현실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돈이지만 그 양상은 구조조정이나 학력사회, 탈북자 문제, 조폭, 외국인 근로자의 현실 등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건 오징어 게임의 룰이 공정, 평등 같은 가치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 결과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만, 적어도 이 게임은 현실에서의 스펙 따위 필요 없이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어느 누구도 위계를 갖지 않는 평등함이 엄격한 룰로 제시된다. 물론 그건 허위다. 공정과 평등을 내세우지만 뒤에서는 인간의 장기를 밀매하는 끔찍한 비리들이 자행된다. 결국 이 세계도 겉으로 내세우는 공정과 평등 같은 가치의 룰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죽고 죽이는 잔혹한 서바이벌의 룰을 따라간다. 그 가치 기준은 돈으로 귀결된다. 

 

가상의 게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배신하는 이들의 면면은 그래서 현실을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게임에서 지면 즉결처분되는 상황은 그래서 우리네 현실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그 곳은 지옥이지만, 그 곳 바깥도 똑같이 지옥이다. 그걸 만드는 건 이 시스템을 굴리는 자들이고, 그 동력은 돈이다. 자본화된 사회가 만들어내는 머니 게임, 즉 돈과 사람의 가치가 등치되는 그 게임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 

 

이야기는 빙 돌아서 다시, 아무 것도 없어도 맨 땅에 오징어 그림 하나 그려놓고 그토록 재밌게 놀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오징어 게임과, 이제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오징어 게임을 병치해놓는다. 누군가에겐 재미이지만, 욕망과 좌절이 덧대진 누군가에는 목숨을 걸고 하는 서바이벌이 되는 세상. 456명이 456억으로 등치되는 세상. <오징어 게임>은 그렇게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돌려놓는다. 매일 같이 생존을 위해 사회로 나가는 당신은 과연 어떤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느냐고. 그 어린 시절 순수한 재미와 몰입감을 줬던 삶의 게임인지, 아니면 그 순수함이 사라진 후 벼랑 끝에서 벌이는 욕망의 게임이지, 이 드라마는 묻고 있다.(사진:넷플릭스)

‘강철부대’가 끄집어낸 두 가지 키워드, ‘함께’, ‘끝까지’

 

<가짜사나이> 가학성 논란 이후 군대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선입견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피, 땀, 눈물의 진정성이 보기 불편해진 것. 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채널A, SKY <강철부대>는 다르다. 무엇이 선입견을 깨고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한 걸까.

'강철부대'

<강철부대>, 가학성 논란 없었던 까닭

채널A, SKY <강철부대>는 그다지 좋은 기대감을 갖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가 만들었던 엄청난 화제성과 동시에 쏟아진 가학성 논란들이 선입견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커진 스케일과 연예인까지 참여하는 출연진으로 돌아온 <가짜사나이> 시즌2는 혹독한 훈련 과정과 더불어 조교들의 조롱 섞인 말들까지 갖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조교들의 사생활 논란까지 끄집어내져 대중들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면서 방송은 중단되었다. 이러니 <강철부대>에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군대 리얼리티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첫 방송이 나가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콘셉트 자체가 달랐다. <가짜사나이>는 일반인들의 훈련이 콘셉트지만, <강철부대>는 특수부대를 전역한 이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명예를 걸고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였다. 이러니 ‘훈련 과정’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고 당연히 가학적인 장면들은 희석되었다. 물론 군 부대원들끼리의 대결 자체가 혹독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첫 날부터 살얼음이 언 흙탕물 속에서 맨 몸으로 부딪치는 참호격투를 하고, 곧이어 달리기, 포복, 40킬로 타이어 들고 뛰기 그리고 10미터 외줄타기를 연달아 하는 각개전투로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 그 날의 미션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난상황이 연출된 어두컴컴해진 밤바다를 수영해 더미를 구출해오는 미션까지 치러졌다. ‘강철체력’이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는 하루의 미션이었지만 출연자들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황충원 같은 괴력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박준우 같은 오랜 군 경력에서 나오는 놀라운 전략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 미션을 승리로 이끄는 인물도 있었다. 즉 미션은 <가짜사나이>처럼 혹독한 것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를 수행하는 이들이 모두 베테랑들이었기 때문에 가학적인 느낌은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소속됐던 특수부대를 대표한다는 명예는 이들의 미션 대결을 훨씬 더 자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박갈량, 황장군... 여성들도 환호하는 사기 캐릭터들의 향연

흥미로운 건 이 군대 서바이벌에 환호하는 이들 중에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된다. 하나는 여기 출연하는 인물들이 박갈량, 황장군으로 불릴 정도로 분명한 저마다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박갈량으로 불리게 된 박준우(박군)는 거구에 괴력을 가진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지만, 매 미션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략이 주효함으로써 승리로 이끌어내는 인물이었다. 박준우라는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트로트 가수 박군으로 활동하며 남다른 삶의 질곡이 잘 알려져 이미 여성 팬덤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전략을 쓰는 그의 존재는 군 경험이 없는 여성들 또한 몰입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 결과 <강철부대>는 비드라마 부문 TV화제성 1위를 차지했고, 박준우는 출연자 화제성 1위를 기록했다. 

 

남다른 피지컬로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해머로 내려쳐야 겨우 열리는 문을, 혼자 한 방에 열어버리는 진풍경을 만든 황충원은 ‘황장군’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미션마다 엄청난 근성을 보여주지만 마치 아이돌 같은 준수한 외모로 등장부터 화제가 됐던 육준서도 이미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젊은 팀원들로 구성된 SDT 팀의 날쌘돌이 강준이나, 참호에서 벌어진 타이어 격투에서 박준우와의 명대결을 펼친 UDT 팀의 이종격투기 선수 김상욱 등등 <강철부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매 미션마다 쏟아냈다.

 

흥미로운 건 이 캐릭터들이 벌이는 ‘대테러 침투작전’이나 ‘야간연합작전’은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레인보우식스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일인칭 슈팅 게임(FPS)을 해본 게임 유저라면 마치 그 ‘실사판’을 보는 것 같은 것. 이런 게임적 요소들은 <강철부대>의 팬층이 훨씬 폭넓어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함께 끝까지 간다’는 메시지에 담긴 울림

<강철부대>가 특히 큰 울림을 남긴 미션들은 ‘탈락팀’이 결정되는 데스매치에서였다. 250킬로 타이어를 네 사람이 계속 뒤집어가며 300미터를 이동하는 첫 번째 데스매치는 그 어느 팀도 해내지 못할 거라 여겨졌지만, 놀랍게도 모든 팀이 완주를 했다. 물론 이미 탈락팀으로 결정되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해병대 수색대팀은 중도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는 모습에 다른 경쟁 팀들마저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데스매치로 치러진 40킬로 산악행군 미션은 한편의 영화 같은 울림을 줘 스튜디오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연거푸 데스매치를 두 번씩이나 치르게 된 SDT 팀이 그 영화 같은 미션의 주인공이었다. 시작 전부터 정상적인 몸 상태와 체력이 아니었던 한 대원을 다른 팀원들이 끝까지 함께 도와주고 밀어주면서 완주하는 광경은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 데스매치들이 큰 감동을 선사한 건 거기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함께’ 그리고 ‘끝까지’ 한다는 그 메시지는 무한 경쟁의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주는 울림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승리만이 목적이 아니라, 더뎌도 다함께 함으로써 끝까지 가는 것. 그래서 패배해도 모두의 박수를 받는 광경은 마치 한 편의 우화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군대 소재 프로그램은 어딘지 불편하다? <강철부대>는 같은 소재라고 해도 어떻게 접근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좋은 예가 되었다.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미션과 대결을 벌여도 결국 중요한 건 납득될만한 이유가 담겨져야 한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글:시사저널, 사진:채널A)

'일로' 이효리에게 한 수 배운 유재석, 이 기묘한 힐링의 실체

 

마치 유재석이 이효리에게 한 수 배우는 느낌이다.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은 그간 방송에서 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른바 스타 MC로서 끝없이 ‘토크’에 ‘토크’를 이어가고, 틈만 나면 웃음을 주기 위해 갖가지 게임을 진행하던 유재석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습관은 하루 종일 녹차 밭에서 일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도 여전하지만, 이효리는 그런 그의 진행병을 잔가지 치듯 툭툭 잘라내며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그대로인 일에 집중하려는 상반된 모습으로 의외의 케미를 만들었다.

 

제주도의 녹차밭에서 이효리와 그녀의 남편 이상순과 함께 하루 동안 일하게 된 유재석은, 7년 동안 방치되어 키 높이 이상으로 자란 녹차밭의 잡초와 넝쿨 그리고 풀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토크를 이어가려는 유재석과, 그런 그를 지적하며 일에 집중하라는 이효리. 하지만 단 10분 정도 일하고도 허리가 아파오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노동 속에서 유재석이 나누는 대화는 ‘근황 토크’나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라 일 자체의 고단함과 가끔 느껴지는 즐거움 같은 것들로 채워졌다.

 

역시 늘 예능프로그램 첫 번째 게스트를 전담한다는 이효리는 유재석마저 당황스럽게 만드는 만만찮은 센 기운의 출연자였다. 과거 SBS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티격태격하는 오누이 케미를 선보인 바 있던 두 사람은 여기서도 깨알 같은 관계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일로 만난 사이>의 재미는 이효리와 유재석의 그런 케미 만큼 그 일에 몰입하는 것과 그 일터 자체가 주는 기묘한 힐링이 적지 않았다.

 

제주의 오름이 보이는 푸르른 녹차 밭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줬고, 그 풀숲에서 그들이 힘겨운 노동을 하는 그 모습은 ‘단순 반복 작업’의 연속이 주는 몰입감이 있었다. 녹색을 계속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풀을 먹는 말이 내는 ASMR이 주는 단순함이 만들어내는 몰입감. 도시의 삶이 주는 그 복잡함이 그 단순하지만 눈과 귀를 열어주는 영상과 소리 속에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장면 자체가 주는 자극적인 재미가 아니라, 멍하게 자연과 단순한 노동을 바라볼 때 얻어지는 편안한 즐거움이 거기에 있었다.

 

그 힘겨운 녹차 밭에 길을 내는 작업을 하며 괜스레 ‘살아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힘들게 단순 작업만 반복한 것 같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훤하게 나있는 길을 보며 기분 좋아지는 시간. 그건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주로 일을 하면서 종종 잊고 있었던 육체노동이 주는 단순한 몰입감과 성취감 그리고 힐링 같은 것들이 되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 단순해 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을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유재석과 이효리, 이상순 같은 그 인물들만으로도 주목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나와 보여준 건 사뭇 다른 것이었다. 특히 유재석과 이효리가 과거 <패밀리가 떴다> 시절에는 이런 녹차 밭에 와서 일이 아닌 게임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를 실감하게 했다. 이제는 게임 같은 설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진짜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더 원하게 됐다.

 

유재석과 그 시대를 함께 풍미했지만 이효리는 <효리네 민박>이나 <캠핑클럽> 등을 통해 지금의 달라진 예능 프로그램에 더 최적화된 자신을 발견해낸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일로 만난 사이>의 첫 게스트로 나온 이효리는 유재석에게 마치 한 수 가르쳐주는 느낌을 줬다. 그리고 그것이 진행과 게임을 내려놓고 일에만 좀 더 몰두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했다.

 

예능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만 하던 예능의 시대가 지나갔다. 대신 뭘 해도 보다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하는 걸 보여주는 데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는 예능의 시대가 왔다. 노동 자체가 주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며 나아가 촉각적이기까지 한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일로 만난 사이>. 특히 유재석이 이런 새로운 예능의 시대에 맞는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가는 걸 보는 건 실로 반가운 일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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