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 어떻게 공포가 감동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조명가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환자는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의지가 생기죠?” 흔히들 의식불명에 빠진 중환자의 가족들에게 의사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의식이 없던 중환자가 죽음의 문턱에서 사경을 헤매다 살아돌아온 건 어떤 의지 때문이었을까. 강풀 원작의 디즈니+ 드라마 ‘조명가게’가 그리고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세계관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했을 게다. 그들의 의지는 어쩌면 환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의지가 더해진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력으로부터. 

 

퇴근 길 버스정류장에 매일 같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자, 그 여자가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걸어다니는 어두운 동네, 불빛이 하나도 없어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며 그 무서운 골목길을 매일 지나가는 학생, 싼 맛에 이사를 왔지만 누군가와 함께 사는 듯한 소름끼치는 집에 갇혀버린 여자... ‘조명가게’가 4회에 걸쳐 펼쳐놓은 세계는 독특한 공포의 공간이다. 어째서 이런 오싹한 일들이 이 동네에서 벌어지고,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이 등장하는지 드라마는 좀체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오싹하고 음사한 동네에 유일하게 따뜻하고 밝은 공간이 존재하는데, 그 곳이 바로 조명가게다. 물론 이 가게 역시 일상적이지는 않다. 야간에 문을 열어 손님이 올 때까지 영업을 하고, 주인 원영(주지훈)은 조명에 눈을 버렸다는 이유로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 가게에는 한밤중이지만 찾는 이들이 많다. 매일 엄마가 사오라고 시켰다며 백열전구를 사가는 고등학생 현주(신은수)에게 원영은 말한다. 그런 낯선 이들을 만나면 모른 척 하라고. 그리고 도망치라고. 

 

공포물의 색깔이 선명히 묻어나지만 여기 등장하는 낯선 사람들은 어딘가 오싹하긴 해도 연민의 감정 같은 것들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를 해코지할 것 같지가 않다. 다만 어떤 비극적 상황 속에 놓여진 이들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오싹함에는 어떤 애틋함 같은 따뜻한 감정이 뒤섞인다. 어둠 속을 헤매는 그들 앞에 환하게 불을 켜놓고 찾는 이들을 기다리는 조명가게가 주는 따뜻함이 더더욱 커지는 것도 그래서다. 

 

오싹한 어둠과 따뜻한 빛의 극단적인 대비. ‘조명가게’의 세계관은 이처럼 이질적인 양극단을 한 작품 안에 펼쳐놓는다. 인간과 낯선 존재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같들이 겹쳐지면서 공포는 도무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감동으로도 이어진다. 파편적으로 보이던 사건들이 하나로 묶여지는 건 영지(박보영)가 일하는 병원 중환자실을 통해서다. 대형 사고로 인해 의식을 잃은 환자들로 가득한 그 곳. ‘조명가게’가 그리고 있는 게 바로 그들의 의식 속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삶과 죽음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그들은 의식불명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주변환경이나 주변사람들에 영향을 받는다. 같은 중환자실에서 섬망 증세를 보이며 괴성을 지르는 알코올 중독 환자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영지 같은 간호사가 해주는 따뜻한 말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 듣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큰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을 겪다 깨어난 경험이 있는 영지 또한 의식이 없는 중환자가 어떻게 의지를 갖고 깨어날 수 있는 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게 됐다. 매일매일 자신을 위해 기도했던 엄마가 불어넣어준 그 의지가 어쩌면 자신을 살게 해주지 않았을까 하고. “저희 엄마는 그저 매일매일 기도했대요. 저한테 의지를 불어넣고 싶으셨대요. 그래서 생각해요. 어쩌면 나 혼자만의 의지는 아니지 않았을까.” 

 

그 어두운 동네에 밤새도록 불을 환하게 밝히고 찾아오는 손님을 끝까지 기다리는 원영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건 사경을 헤매는 이들에게 끝까지 누군가 보내는 삶에 대한 의지이자 응원인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조명가게’의 서사는 이 오싹한 공포의 세계를 통과해 뭉클한 휴먼드라마의 감동으로 변모한다. 영지 같은 환자를 위해 진심으로 간호하고 기도하는 어떤 존재들이 꺼져가는 불빛을 계속 지켜내려 애쓰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이 파편적이고 모호한 사건들의 연속을 거의 4회 분량으로 앞 부분에 배치한다는 건 모험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4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중도 이탈하는 시청자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풀의 뚝심이 엿보이는 이 4회 분량의 전반부는 바로 그 파편적인 사건들을 펼쳐놓음으로써 4회 마지막 부분에서의 반전에 더 큰 감동과 임팩트를 선사한다. 첫 공개에 4부까지 모두 공개한 뜻이 여기에 있다. 일단 4회까지 챙겨본다면 ‘조명가게’라는 독특하고 신박하며 오싹하지만 가슴 뭉클한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사진:디즈니+)

‘동조자’, 동서와 이념의 대결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비극인가!

동조자

역시 박찬욱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독점 공개하는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이야기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유머가 느껴지는 영상 미학은 물론이고 ‘동조자’라는 제목에 걸맞게 양측에 걸쳐 있어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놓아 보는 이들을 쿡쿡 웃게 만드는 박찬욱표 농담의 맛까지 가득하다. 시리즈지만 단 한 편을 봐도 웃음에서부터 깊이까지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랄까.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타인 응우옌이 써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을 원작으로 가져와, 우리에게도 영화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나 시리즈 ’성난 사람들‘로 이민자 정서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만든 제작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A24가 제작했고,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극본을 쓰고 감독을 했다. 그 제작 자체에 ’동조자‘가 갖고 있는 ’반반‘ 정서가 풀풀 풍겨난다. 

 

주인공인 대위는 70년대 베트남이 치열한 남과 북의 전쟁을 치른 후, 남베트남이 패망하게 되자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남베트남에서 비밀경찰이자 장군의 부하로 활동하지만 CIA와 남베트남의 정보를 북베트남으로 빼돌리는 스파이다. 이처럼 국가나 언어, 심지어 이념의 중간에 걸쳐 스스로 ‘반반’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에 선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대의 풍경은 웃음이 터질 정도로 기괴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비극적 정조를 담고 있다. 

 

그 희비극은 시리즈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박찬욱 감독의 유머 가득한 연출로 빛을 발한다. 찰슨 브론슨 주연의 ‘데스 위시(죽음의 갈망)’ 간판이 걸린 극장에서 펼쳐지는 고문 장면이 그것이다. 영화 대신 무대에서는 한 여성이 의자에 앉혀져 고문당하고 심문을 받는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그걸 CIA요원 클로드와 대위 그리고 장군이 마치 실존주의 연극 혹은 영화라도 보듯이 관람(?)한다. 

 

“그래 관객이 오셨다고. 네 공연을 보러. 똑바로 앉아! 네 대사를 궁금해하신다.” 심문을 주도하는 만두라 불리는 인물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마치 자신도 관객이나 된 듯이 콜라를 따서 마신다. 이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비극적이다. 그 여성은 대위가 장군의 책상에서 확보한 비밀경찰 명부를 가져가려다 체포되었다. 그러니 대위가 스파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말 그대로 죽음을 갈망하듯이 자신을 고문하는 자들 앞에 침과 독설을 뱉는다. 그 광경을 속내를 숨긴 채 바라보는 대위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광경은 우스꽝스러운 농담과 풍자로 가득하다. 이념 대결로 동족끼리 죽고 죽이고 속고 속는 그 광경이 마치 한편의 실존주의 연극 같다는 은유다. 이들은 이념으로 편을 나누어 연기를 하는 중이고, 다만 누군가는 당하고 누군가는 그걸 영화를 보듯 콜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관람하는 중이다. 어느 ‘뒷구녕’에서 빼낸 정보냐고 묻는 대사는 실제로 이 여성이 정보를 숨기기 위해 그 필름을 꿀꺽 삼키자 용변을 보게 해 꺼낸 정보라는 점에서 웃음을 주고, 심문 중 만두가 두리안을 먹는 걸 두고 똥내가 극장 가득 찼다고 소리치는 장군의 모습에서는 이 광경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에 대한 풍자로 다가온다. 

 

이건 ‘동조자’가 앞으로 그려나갈 빵빵 터지면서도 눈물나고 씁쓸한 희비극의 전조를 보여준다. 이념과 국가, 동서 같은 걸로 구분지어진 세계에서 그 중간에 걸쳐진 삶을 살아가는 대위의 시선은 모든 걸 낯설게 만든다. 북베트남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장군 옆에 붙어 끝까지 스파이 일을 하게 된 대위가 미국으로 와 겪게되는 일들 또한 마찬가지다. 2회에 등장하는 교수는 동양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인물로서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식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교수는 동서양이 반반씩 겹쳐진 대위에게 자신이 가진 동양적인 면과 서양적인 면을 나누어 알려달라는 과제를 내주는데, 대위가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서양적인 면은 모순을 극복대상으로 삼지만 동양적인 면은 함께 갈 대상으로 보고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인 면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걸 겁내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자 교수는 말을 끊어 버린다. 자신이 보는 대로의 오리엔탈리즘적 식견에서 벗어나는 답변이라 그렇다. 교수의 그런 모습을 대위는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삶은 계란 같다며 농담한다.  

 

이처럼 ‘동조자’는 베트남 혼혈 대위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넘어가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 중간에 걸쳐져 있는 경계인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이지만 우스꽝스런 현실들을 꺼내놓는다. 제목인 ‘동조자’란 ‘어떤 의견에 대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일 수 있지만, 이 시리즈에서 중간에 걸쳐진 동조자인 대위는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이념이나 동서 갈등 속에서 스파이로 취급되어 고통받는 인물이 된다. 

 

70년대 베트남과 미국을 배경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것이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우리도 비슷한 경험들을 했고 지금도 그 형태의 정쟁들이 우리네 현실 깊숙이 상흔처럼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지역으로 나뉘고 이념으로 진영을 갈라 내편과 적이 되어 어떤 각각의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의견들조차 스파이처럼 매도되는 현실이 아닌가. ‘동조자’를 보며 때론 낄낄 웃다가 때론 씁쓸해지는 감정들을 의외로 깊게 ‘동조’하게 되는 건 그래서일게다. (사진:쿠팡플레이)

'낮과 밤', 남궁민의 연기에 깃든 드라마의 메시지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은 시청자들을 그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28년 전 하얀밤 마을에서 벌어진 집단 사망 사건이 그 미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면, 28년 후 발생하는 연쇄 예고 살인은 그 미궁이 갈수록 깊어진다는 예고였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아무런 단서 없이 툭 던져진 미궁 속에서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그 28년의 간극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사건들을 연결시켜준 건 특수팀 팀장 도정우(남궁민)다.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지만 냉소적인 말투에 어딘지 허무 가득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 도 팀장은 죽은 자들에게서 아무런 망설임이나 공포의 징후가 발견되지 않은 연쇄 예고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되고, 그것이 자각몽을 이용한 것이란 게 밝혀진다. 

 

이 과정에서 범죄심리학박사로 미국 FBI에서 파견된 제이미(이청아)가 도정우와 함께 28년 전 하얀밤 마을에서 생존해 탈출한 인물이라는 게 밝혀지고, 그가 우연히 만난 문재웅(윤선우) 또한 그 때 생존자 중 한 명이라는 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 생체실험으로 죽어나간 아이들 속에서 살아남아 남다른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또한 밝혀진다. 

 

애초 도정우라는 인물은 그래서 28년 전 하얀밤 마을과 현재 발생한 연쇄 예고 살인을 연결하는 존재로서 등장해, 과거에 벌어졌던 생체실험이 현재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가는 인물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백야 재단과 자신의 방식으로 맞서는 인물이 된다. 처음에는 특수팀 팀장이었다가, 연쇄 예고 살인의 용의자가 됐던 도정우는 이제 과거 생체실험으로 갖게 된 능력으로 자신을 그렇게 만들고 또 다른 아이들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거대 권력 집단인 백야 재단과 맞서는 다크 히어로로 변신한다. 그 미로 같은 이야기에서도 시청자들이 길을 잃지 않은 건 바로 이 인물 덕분이다. 

 

그런데 도정우는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그려내려 하는 '모호한 경계'라는 메시지를 캐릭터적으로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생체실험을 통해 보통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지만, 그 부작용으로서 뇌에 이상을 갖게 된 시한부이기도 하다. 그는 초능력자이지만 그 능력의 대가로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 낮인 듯 보이지만 밤이 겹쳐져 있는 그런 인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미스터리한 스릴러가 그 복잡한 미궁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낮과 밤>에는 우리가 분명하다 믿고 있던 어떤 것들이 사실은 모호한 경계에 서 있어 그것이 낮인지 밤인지를 알 수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해줘야 할 보육원은 생체실험을 위해 아이들을 수급하는(?) 일을 하고 있고, 공혜원(김설현)에게는 그저 일만 아는 평범한 아버지인 줄 알았던 공일도(김창완)가 바로 그 실험을 28년 간이나 하며 이를 숨겨왔던 인물이다. 

 

진범을 잡고 진실을 추구해야 할 경찰 조직은 하얀밤 마을의 그 집단 사망 사건의 증거들을 은폐하고, 심지어 이 엄청난 범죄를 자행한 백야 재단에는 오정환(김태우) 같은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개입되어 있다. 게다가 이 실험에서 나온 공식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 백 살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하얀밤 마을의 집단 사망 사건이나 연쇄 자살 사건을 일으킨 것도 이른바 '자각몽'을 이용한 범죄로서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이용한 사건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하얀밤 마을에서 비공식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셋 중 하나인 문재웅(윤선우)은 이 낮과 밤을 해리성 인격장애를 통해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함께 하얀밤 마을에서 탈출한 장용식(장혁진)에 학대당하며 포털 MODU를 통해 여론 조작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살인자의 또 다른 얼굴이 등장하며 장용식을 오히려 지배하는 존재로 변신한다. 이러한 해리성 인격장애는 제이미 또한 겪던 일이라는 점에서 하얀밤 마을의 생체실험이 야기하는 뇌 이상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런 경계가 모호한 상황, 사건, 인물들을 통해 <낮과 밤>은 우리가 명징하다 여겼던 세계가 사실은 무수히 그 범주를 넘나드는 경계 위에 존재한다는 걸 드러낸다.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세상도 없고, 심지어 사람도 없다. 그래서 도정우라는 인물은 주인공이면서도 시청자들조차 이 인물의 실체를 의심하게 되는 놀라운 캐릭터다. 그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영웅인가. 그는 피해자인가 아니면 가해자인가. 그는 초능력자인가 아니면 죽을 날을 앞둔 시한부인가. 

 

남궁민은 이 '낮과 밤'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동시에 가진 도정우라는 인물을 놀랍도록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낸다. 그의 섬세한 연기는 항상 입에 물고 다니는 막대사탕 하나만으로도 그의 이중성을 드러낼 정도다. 달콤해 보이는 사탕이지만, 그것은 먹지 않으면 뇌가 터져버릴 수도 있는 약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처럼 이리저리 입안에서 굴리며 막대사탕을 빨지만, 거기서 도정우라는 인물의 현실적인 고통이 느껴진다.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표정을 잔뜩 짓고 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허무함이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인물. 남궁민이 아니었다면 이 복잡한 감정을 시청자들이 따라갈 수 있었을까 싶다. 그의 연기는 실로 이 미궁에서의 실타래가 되어주고 있다.(사진:tvN)

‘타인은 지옥이다’, 경계 없는 침범이 주는 공포에 대하여

 

워낙 유명한 웹툰 원작을 갖고 있다는 건 장점이면서 단점이 된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가 그렇다. 이 드라마는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됐던 웹툰 원작을 가져왔지만, 원작과는 살짝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이 에덴고시원 자체가 주는 공포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이상함을 전면에 깔아놓았던 것과는 달리, 드라마는 훨씬 더 이 고시원에서 살인행각을 벌이는 살인마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사실 이렇게 조금 직설적으로 칼과 도끼, 망치 등을 일찍 꺼내놓는 방식이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타인은 지옥이다>가 하려는 에덴고시원이라는 지옥의 실감을 높여줄 수는 있을 게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원작이 주는 윤종우(임시완)가 겪는 분위기의 공포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그래도 <타인은 지옥이다>는 그 소름끼치는 에덴고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하려는 공포의 정체가 분명한 어떤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다. 도대체 이 에덴고시원이 주는 공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건 타인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우리네 사회가 주는 공포다. ‘이웃’이라고 불리지만, 상대방의 경계를 지켜주지 않고 훌쩍 침범해 들어오는데서 느껴지는 공포.

 

고시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렇다. 작은 판때기 같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옆방에서 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이 공간은 경계가 지켜지지 않는다. 좁은 복도는 지날 때 서로 피해주지 않으면 어깨가 부딪치지만 처음 이 곳에 들어온 윤종우와 맞닥뜨린 조폭 아저씨 안희중(현봉식)은 그의 어깨를 치고는 오히려 신경질을 낸다. 전화 받는 소리에 문을 두드려 “여기서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고시원이 얼마나 자신의 공간이 지켜지지 않는가가 드러난다.

 

그렇게 사생활 자체가 지켜지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일이지만, 그 곳에 함께 사는 이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건 그 불편함을 공포로 바꿔놓는다. 다리에 전자발찌를 찬 채 대놓고 윤종우를 쳐다보는 변태 홍남복(이중옥)이나, 말을 더듬으며 계속 웃는 변득종(박종환)과 그 쌍둥이, 이상한 가방을 들고 다니며 괴력을 가진 유기혁(이현욱), 심지어 삶은 계란을 자꾸 먹으라는 주인아주머니 엄복순(이정은)까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경계가 지켜지지 않는 건 고시원만이 아니다. 대학 선배 형인 신재호(차래형)는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켜줬다는 이유로 윤종우를 제 맘대로 부리려 한다. 함께 술을 마시며 제멋대로 윤종우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마구 해대고, 집에 가겠다는 윤종우를 위압적으로 불러세워 2차 가자고 종용한다. 그 회사 사람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사수가 된 박병민(김한종)은 열등감이 가득한 인물로 회사 동료들의 관심을 받는 윤종우에게 회사 대표랑 형 동생 사이라고 “나대지 말라”며 욕을 한다.

 

심지어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도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택시 기사다. 우리가 무시로 겪는 이런 일들이 사실은 무례이며 나아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걸 이 드라마는 은연 중에 드러낸다. 에덴고시원이라는 공간의 공포는 그래서 우리네 사회가 가진 불안감과 공포의 상징 그 자체로 보이는 면이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그래서 결코 기분 좋을 수 없는 공포를 그려낸다. 보면 볼수록 섬뜩하고, 끔찍하다. 하지만 그 공포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네 사회가 가진 불안감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우리가 길거리에서나 혹은 공공시설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볼 때 느끼는 그 불안은 결국 서로의 공간이 존중되지 못하는 삶의 환경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그 불안감은 분노로 바뀌어 누군가를 공격하게 되기도 한다. 윤종우가 보여주는 공포감과 분노가 그러하듯이.(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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