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3’, 지금 백종원에게 필요한 건 일반인과의 소통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 LA특집에서 백종원이 한 요리 중 가장 빛난 건 아마도 한 교민의 가정집에서 한 짠지냉국이 아니었을까. 사실 가장 쉽게 만든 요리가 바로 짠지냉국이었다. 짠지를 그저 잘게 자른 후 물을 붓고 고명으로 파를 얹은 것이 요리의 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냉국을 먹어본 교민은 이내 먹먹해졌다. 오랜 타지에서의 생활로 잊고 있던 고향의 맛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것은 ‘군내’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맛이지만, 나이든 세대에게는 어릴 적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맛이었다. 결코 자극적이지도 또 화려하지도 않은 맛이지만 먹다보면 조금씩 찾게 되는 맛. 느릿느릿 시간을 두고 묵혀져 은근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그런 맛. 짠지냉국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한 요리는 그래서 LA특집의 가장 큰 수확물로 남았다. 

그런데 만일 이 짠지냉국을 평소에 <집밥 백선생>이 하던 대로 스튜디오에서 제자들과 만들어 먹었다면 어땠을까. 거기에서 어떤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이 짠지냉국이 어떤 감동을 주는 맛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건, 바로 거기 그 맛이 고향의 맛으로 다가오는 교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맛이란 이처럼 일반화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맛이고 누군가에게는 심지어 싫어하는 군내에 불과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는 것. 그것이 맛의 실체다. 

그리고 이것은 <집밥 백선생>이 시즌3까지 이어오며 해왔던 쿡방 전도사로서의 ‘일반화된 맛’이 또한 갖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양념이 과하다는 비판이 가끔 등장하기도 하고, 그래서 양념은 각자 입맛에 맞게 그 양을 조절하라고 굳이 백종원이 얘기를 했던 건 바로 맛의 일반화가 갖는 오류를 넘어서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만능간장’으로 대변되는 백종원 쿡방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어느 정도의 맛’을 내는 ‘일반적인 맛의 공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 백선생>에 남는 아쉬움은 그 공식이라는 것이 갖는 한계로 인해 비판의 소지 또한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LA특집은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의외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맛의 체감을 인정하고, 다양한 일반인들과 어우러지는 일이다. 교민이 참여했던 것처럼 일반인들이 가진 맛의 기억과 어우러지는 쿡방. 그래서 백종원이 일반적인 맛을 제안하면서도 그 특수성을 찾아 어떤 맛의 공감대를 추구하는 그런 방식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걸 이번 LA특집이 말해주고 있었다.

쿡방이 범람하고 레시피 또한 넘쳐나는 시대에 백종원의 신 생존법으로 제시되는 건 그래서 일반인과의 소통이다. 지금껏 스튜디오 안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일반인들이 사는 현장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더 다양한 맛의 세계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맛으로 녹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밥상 앞에선 <12> PD도 온순해진다

 

과거 <12>에서 이승기가 나영석 PD를 흉내 내 안 됩니다!” “을 외칠 때 그 복불복 결과에 대한 냉정함과 단호함은 이 프로그램의 색깔을 분명히 해주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너네 집으로특집에서만큼은 이런 단호함은 예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준호의 고향집을 찾아간 <12>에서 그의 어머니가 차려놓은 어마어마한 한 상 앞에, 제아무리 복불복 게임에서 진 그라도 어찌 굶게 만들 것인가.

 


'1박2일(사진출처:KBS)'

맛있게 음식을 먹는 승자들의 밥상을 보며 입맛만 다시는 아들을 위해 유호진 PD에게 한 그릇 허락을 얻어낸 김준호의 어머니는 대접을 가져와 밑에서부터 밥과 갖가지 반찬들을 탑처럼 쌓아올린 한 그릇을 아들과 진 팀에게 챙겨주었다. 음식이 가득한 밥상보다 채워진 음식들이 더 많아 보이는 그 한 그릇은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따뜻한 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자식과 출연자들만을 위한 한 상이 아니었다. 함께 하고 있는 PD와 작가 그리고 스텝들까지 모두 배불리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챙겨놓은 어머니. 어머니가 굳이 유호진 PD에게 장어 한 점을 입에 넣어주는 모습에서는 모두가 자식 같은 마음이 묻어났다. 왜 그렇지 않을까. 자기 자식이 귀한 만큼 함께 하는 동료들도 모두 자식처럼 여겨질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아버님은 말씀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지만 그 반가운 마음을 아이고..”라는 한 마디 속에 담아 전해주었다. 김준호가 아버지를 닮은 듯, 그 얼굴에 가득한 장난기는 부자가 마찬가지였다. 봉투에 두둑하게 챙겨온 용돈을 아버지에게 건네자 슬쩍 그걸 빼앗으려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는 안 된다며 돈을 챙겨 넣으셨다. 부모를 둔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훈훈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말을 제대로 내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힘겹게 “1!”을 외치는 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맞춰 “2!”을 외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부모 자식 간의 정을 에둘러 보여줬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이 장면이 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12>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선점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이 고향의 정서. 제 아무리 세련된 삶의 스타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해도 우리네 마음 속에 늘 남아 있는 곳. 그래서 항상 힘겨울 때 찾아가면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저 차려주는 밥 한 끼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고향이 아닌가.

 

엄마의 밥상은 그래서 <12>에는 공기와도 같다. 그래서 시골 어느 마을에 들어가도 느껴지는 그 정감과 훈훈함은 그 엄마의 밥상이 주는 정서를 그대로 깔아놓는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왁자지껄한 자식들의 복불복과 놀이가 어르신들에게는 흐뭇한 미소를 자식들에게는 따뜻한 편안함을 주는 이유다.

 

이번 <12> ‘너네 집으로특집은 그 마지막에 며칠 전 별세하신 김주혁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추억을 두 아들을 사랑으로 길러내신 주혁의 어머니 김의숙 여사를 기억하며라는 자막과 빛바랜 사진 한 장에 담아 전해주었다. 엄마들이 주는 그 따뜻함과 그리움. 그것이 <12>을 보며 느껴지곤 하던 고향 같은 훈훈함의 정체가 아닐까



시골에 등을 내준 <12>, 뭉클했던 까닭

 

아녀 아녀 아녀할머니는 아녀를 입에 달고 다니셨다. “못해”, “싫어”, “나는 안해라는 말들은 습관처럼 나왔다. 김준호가 업히세유하고 등을 내밀자 여지없이 돌아오는 건 아녀”. 하지만 기듯이 등을 들이미는 김준호 때문에 할 수 없는 듯 업히신 할머니는 내 생전 처음이여라며 한없이 행복해 하셨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 짧은 장면 속에는 김제 신덕마을에서 <12>이 보여준 감동의 실체가 들어 있다. ‘아녀 할머니(?)’는 마치 이 힘겨운 농사일에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농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호의를 보여주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모습은 그간 그런 경험이 거의 없으셨다는 걸 말해준다.

 

아무도 그리 큰 관심을 주지 않아 작은 호의조차 어색해하시는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찾아준 <12>을 출연자나 스텝 할 것 없이 자식들처럼 대하시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찡하게 만들었다. 찌개 하나 끓여내면 된다고 하고선 떡하니 한상을 내와 어여 먹으라는 할머니에게서 우리가 떠올리는 건 고향의 어머니다.

 

이 할머니들을 고스란히 닮아버린 동네는 그래서 <12>이 와서 벌인 작은 마을잔치에 한껏 흐뭇한 정경을 보여주었다. 저녁을 놓고 구촌마을과 신기촌마을이 한판 벌인 복불복 게임에 기꺼이 참여한 마을 사람들 역시 할머니들처럼 수줍지만 정이 넘쳤다. 실물 끝말잇기에 등장하신 터프가이아저씨는 애매하다는 유호진PD의 말에 이거 웃통이라도 벗어야 되는겨라며 짐짓 터프한 모습을 보여 PD를 기죽게 만들었고, ‘자를 잇기 위해 늠름한면장님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실 시골살이에서 걸레를 맨손으로 짜는 일이 무에 자랑거리가 될까. 하지만 <12> 복불복 게임으로 치러진 부녀자 팔씨름 대회에서 승자가 된 한 아주머니는 그 힘이 걸레를 짜는 데서 생겼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고 밭을 일구고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리는, 그간 농촌에서 살아온 그 신산한 생활의 면면들이 하나의 자랑거리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12>이 마을잔치처럼 치러진 복불복 게임의 실체다.

 

따라서 게임은 진지했지만 결과는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었다. 진 팀은 굶어야 한다는 PD의 말에 누가 됐든 굶어선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은 넉넉하진 않아도 나눠 먹는 시골 인심을 보게 만든다. “다 공평하게 나누면 지금껏 한 게 의미가 없다PD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적게 먹겠다고 말해 결국 PD마저 두 손 들게 만들었다. 또 잠자리 복불복에서도 게임에서 져 야외에서 자게 된 <12> 아들들에게 할머니들은 미안하다며 이불을 갖다 주고 챙기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전북 김제에서 벌어진 <12> 전원일기 특집은 이 프로그램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국을 여행하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는 것이 <12>이 해온 일이지만,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따뜻한 정과 훈훈한 인심을 나누며 여전히 그 작은 시골마을들을 지키고 살아가는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분들의 소박한 삶이 있어 우리 같은 도시인들이 살 수 있고 또 가끔씩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아녀하며 업히는 걸 극구 거부하던 할머니를 업어주는 김준호의 모습은 그래서 마치 이 소박하고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 잠시 업어주듯 흥겨운 하루를 보내준 <12>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꺼이 시골에 등을 내주는 <12>의 모습은 아마도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걸어가야 할 길이 될 것이다. 바로 거기에 <12>만의 저력이 있으니 말이다.

 

2회 만에 30% <참 좋은 시절>이 말해주는 것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새로 시작한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과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짜증 가득한 불쾌함을 종영까지 보여주었던 반면, <참 좋은 시절>은 이제 단 2회 밖에 안했지만 벌써부터 가슴 가득 따뜻함을 선사하고 있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경주의 작은 마을로 15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검사 강동석(이서진). 그가 15년 만에 귀향하게 된 것은 경주로 발령이 나면서다. 어린 시절 식모살이하던 엄마와,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세 지능에 멈춰버린 쌍둥이 누나 강동옥(김지호), 강동석의 배다른 동생으로 엇나가버린 남동생 강동희(택연)... 강동석에게 고향이란 잊고 싶은 아픈 과거로 남은 곳이다.

 

<참 좋은 시절>은 고향으로 돌아온 대쪽 같은 성격의 검사 강동석이 그간 없는 듯 치부하며 살아왔던 가족을 찾아와 그 온기와 정을 다시 찾아가는 드라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강동석이 집을 찾아와 마음에 앙금과 죄송함이 함께 남아있는 어머니 장소심(윤여정)을 만나는 장면이나, 손자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를 만나는 장면만으로도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강동석 앞에 놓여진 가족들의 수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 헤쳐지고 갈등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교 시절 서로 좋아했지만 집주인과 식모의 자식이라는 다른 배경 때문에 힘겨움을 겪었던 해원(김희선)과의 재회를 통해 다시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공식과는 약간 다른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드라마의 시작이란 문제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미니시리즈의 구성처럼 강동석이 경주로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주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강동석과 해원의 사랑이야기는 차라리 멜로드라마의 밀도가 느껴진다.

 

이런 구성이나 이야기는 같은 시간대의 전작이었던 <왕가네 식구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처럼 단순히 자극을 위한 자극을 반복하는 클리쉐 구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단 2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참 좋은 시절>은 완성도 면에서나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나 여러 모로 완성도 높은 착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드라마라는 것이 밋밋하고 심심한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극성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내고 개연성 있는 인물에 공감시켜 풀어내느냐가 그 차이인 셈이다.

 

심지어 막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왕가네 식구들>이 줄곧 내세웠던 것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좋으니 좋은 드라마라고 했던 것. 하지만 어디 그럴까. 시청률은 막장을 거둬낼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2회 만에 참 좋은느낌을 선사하면서도 30% 시청률을 가져갈 수 있는 <참 좋은 시절>은 그래서 이 주말드라마 시간대의 시청률이 가진 허상을 거꾸로 말해준다.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시청률을 잣대로 내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을 통해 얻어내는 30%의 시청률과 온갖 짜증과 분노를 자극해 얻어내는 30% 시청률이 같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참 좋은 시절>이 거둬가는 30% 시청률은 그래서 <왕가네 식구들>이 그토록 내세웠던 시청률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완성도 높고 좋은 드라마도 얼마든지 소위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국민드라마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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