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의 관찰카메라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

 

호통치고 면박주고 때론 낄낄 대던 이경규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SBS <아빠를 부탁해>의 이경규는 우리가 방송으로만 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검사와 시술을 받기 위해 병실에서 초조해하는 이경규는 그 나이의 보통 아빠들과 다를 바 없는 중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은 낯설기도 했지만 또한 쓸쓸한 공감대가 느껴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이경규의 민낯이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아빠를 부탁해>의 시선이 남다를 수 있는 건 그것이 딸의 관점 나아가 일반 대중들의 관점으로 거기 등장하는 아빠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딸 예림이가 보게 된 병상에 누운 아빠 이경규의 모습은 저 스튜디오에서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아빠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털털하기 그지없는 예림이가 하릴없는 농담을 괜스레 건네면서도 간간이 얼굴이 걱정으로 굳어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다.

 

거기에는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예림이의 아빠에 대한 마음이 어른거린다. 표현은 하지 않아도 걱정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그 감정이 얼굴에 묻어나고 때로는 그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괜스레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무뚝뚝하게 대했던 아빠의 진심을 다시 발견하게 됐을 때, 그런 아빠를 오해했던 딸의 마음은 한없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예림이가 아빠 이경규의 진심과 실제 모습을 발견하고 차츰 소통해가는 과정은 바로 <아빠를 부탁해>라는 관찰카메라가 가진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흔히들 관찰카메라라고 하면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악취미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아빠를 부탁해>의 관찰카메라는 서로 속내를 몰랐던 관계들의 실체를 찾고 발견해내는 새로운 시선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상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고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얼마나 오해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아빠를 부탁해>는 바로 이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다. 그래서 한 자리에 모인 아빠들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보며 때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웃찾사>를 보는 것 마냥 폭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그렇게 카메라에 담긴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 아빠들은 그래서 바로 그것을 계기로 딸과의 새로운 관계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딸도 마찬가지다. 그간 강하다고만 여겨져 왔던 아빠 이경규의 아픈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발견하는 딸은 아마도 아빠에 대한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딸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의 공감대가 시청자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변화다. 마치 이경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소통의 물꼬를 트는 딸 예림이의 시선처럼, 이 관찰카메라는 그간 발견하지 못한 이경규의 새로운 면모를 통해 대중들과의 소통의 길을 열어준다.

 

흔히들 이경규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날방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일면일 뿐이라는 걸 <아빠를 부탁해>는 보여준다. 방송 중에도 가슴을 툭툭 치며 힘겨움을 애써 숨기는 모습은 쉴 새 없이 달려온 나이든 베테랑 방송인의 남다른 고충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껏 방송에서의 어떤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이경규에게 <아빠를 부탁해>라는 카메라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거기에 방송인 이경규가 아닌 인간 이경규 아니 아빠 이경규의 모습이 담기기 때문이다. 예림이의 시선을 빌어 비로소 이경규의 또 다른 숨겨진 반쪽의 모습이 채워지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공감이 가능했던 까닭

 

이들이 만든 요리만 83가지란다. 그 중 80가지는 차승원이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화려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지금껏 요리를 내놓으면서 그 요리가 화려하게 느껴진 적은 별로 없다. 그저 친근하고 그 옆자리에 나도 앉아서 한 숟가락 들고 싶을 정도의 편안함. 그것이 <삼시세끼>의 밥상이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 이 기본 반찬(?)에 정우와 추성훈이라는 특별한 재료까지 얹어지니 <삼시세끼>의 인물 차림은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갖가지 예능에서 자신만의 지분을 확실히 갖고 있는 차승원이었고, 워낙 입담 좋기로 소문난 유해진이었다. 여기에 최근 예능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뜨고 있는 손호준까지. 하지만 이 화려한 캐스팅이 <삼시세끼>에서는 그리 도드라진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만재도라는 섬에 사는 보통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 정도.

 

만 가지 재물이 있다는 만재도. 그러니 잡을 물고기도 채취할 것도 넘치고 넘쳤다. 놀래미에 우럭, 게는 물론이고 여러 음식의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 주었던 홍합, 배말, 다시마, 미역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요리만 83가지를 했어도 유해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 차승원이 부러 차려준 콩자반을 얘기하듯, 또 차승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 제일 소박하고 가짓수도 적었던 눌은밥에 된장찌개 계란말이를 얘기하듯, <삼시세끼>의 밥상은 소박함이 묻어났다. 만재도 사람들이 일상에 먹을 법한 밥과 찬들.

 

그러니 이 소박하고 보통의 어촌 삶에서 뭍에 나갔다 온 차승원이 사온 돼지고기로 만든 제육볶음은 섬사람들 마음처럼 먹는 이를 뿌듯하게 만들 수 있었고, 하루 한 시간 반 장사한다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만재슈퍼 사장님 덕분에 가까스로 산 새우깡 맛동산 한 봉지가 그리 귀하게 다가올 수 없었다. 이렇게 지독히도 평범하고 보편적인 정서에 닿아 있는 세계. 화려하기보다는 일상적이었던 그 세계였기 때문에 <삼시세끼>는 그토록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 세 연기자가 술 한 잔을 놓고 하는 연기론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배우는 보통사람의 특별한 직업일 뿐이야. 내가 특별한 게 아니라 직업이 특별할 뿐이고 나는 보통사람인거고. 그래야지 접근할 수 있거든. 그래야지 보편적인 거에.. 왜냐하면 대중이 보고 대중이 공감해야 되니까. 나와 다른 별개의 사람을 보는 게 아니니까.” 유해진의 이 진술은 그들이 생각하는 연기의 세계와 바로 이 <삼시세끼>의 세계가 조응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그들은 만재도에서 연기를 한 게 아니지만 그들의 일상에 대한 자세는 이미 연기에 대한 그들의 생각 속에 녹아 있었다. 결국 특별한 것보다는 일상이 오히려 더 소중하고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근데 멋진 거는 되게 단편적이야. 우린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연기를 해야 사람들한테 울림을 줄 수 있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계속적으로 일상에 던지는 거지.” 톱배우지만 지극히 일상으로 내려와 차줌마가 된 차승원은 단편적인 멋진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았다.

 

제 자신을 연예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배우란 직업이 일반인들에 비해 약간 특수한 직업일 뿐이지.” 손호준이 예능에서 그리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의 진술 그대로다. 그는 연예인 같지 않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삼시세끼>의 힘은 바로 일상에서 나왔고, 보편적인 것에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제목이 왜 <삼시세끼>인가를 떠올려 보라. 제 아무리 특별한 사람도 삼시 세끼를 먹는다. 그 일상에 대한 긍정과 찬미. 그것이 바로 <삼시세끼>의 세계가 가진 특별함이다.

 

수목극 점령한 <착하지>의 세대적인 안배와 공감대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는 세 세대별로 각기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강순옥(김혜자)과 장모란(장미희)의 복잡 미묘한 심리전이다. 사라진 남편을 사이에 두고 본처와 내연녀인 두 사람의 관계는 앙숙인지 동지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면이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강순옥이 장모란의 가슴을 발로 차버린 것에서 드러나듯 거기에는 넘을 수 없는 앙금이 깔려 있지만, 그럼에도 시한부 인생인 장모란을 집으로 초대해 좋은 약과 밥을 챙겨 먹이는 강순옥에게서는 여성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의 정 혹은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아마도 강순옥과 장모란의 이런 관계는 그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공감가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이 나이대의 시청자들이 자주 봐왔던 불륜이라는 익숙한 소재가 들어와 있지만, 거기에 대한 접근방식은 새로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불륜 코드라고 하면 본처와 내연녀가 드잡이를 하는 설정이 하나의 클리셰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틀에 박힌 이야기에서 벗어나 있다. 남성을 중심으로 두고 보면 대결구도가 되지만 동시에 여성들만의 관점으로 보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점도 생긴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다른 관점이다.

 

강순옥의 딸 김현숙(채시라)은 중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성취와 회한 같은 것들이 관전 포인트다. 레이프 가렛의 열혈 팬이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고등학교 퇴학을 당하게 된 그녀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세운 편견 덩어리 선생님 나현애(서이숙)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자신의 굴곡진 인생의 시작점이 거기서부터 비뚤어졌다는 걸 알고는 분노하게 된 것.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식교육에 집착하는 김현숙이라는 중년의 캐릭터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어떤 상실감을 가진 여성들의 그 답답함을 대리해주는 인물이다. 그녀를 끝까지 지지해주는 친구 안종미(김혜은)와의 끈끈한 우정이나, 전시회에서 그녀를 모욕하던 나현애의 머리채를 잡고 사과하라고 하는 장모란과의 부모 자식 관계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인간적인 관계는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여기에 남편 정구민(박혁권)과의 은근한 멜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포인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청춘들의 멜로가 빠질 수는 없다. 김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의 이루오(송재림)와 이두진(김지석) 사이에 벌어지는 화학작용은 젊은 시청자들이 흐뭇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검도 도장을 하는 이루오에게 배경음악을 잘못 보내줘 엉뚱하게도 자신의 호감을 드러내게 된 정마리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든다. 또 엄마와 그렇게 각을 세우고 있는 나현애가 이두진의 모친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복잡미묘하게 만든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MBC <킬미힐미>를 제치고 또 SBS <하이드 지킬 나>를 따돌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이런 김혜자, 채시라, 이하나로 대변되는 각기 다른 세대를 그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공감시키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자가 어르신들의 공감대를 끌어간다면, 채시라는 중년이 겪는 상실감과 성취 욕구를 그리고 이하나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세대적인 안배와 다층적인 공감대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생> 신드롬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이제 <미생>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끝날 때가 다 됐지만 정작 주인공인 장그래(임시완)의 위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물론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겨우겨우 계약직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에게 아직 정규직 소식은 없다. 오히려 그 정규직을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위험성 있는 사업을 덜컥 하려는 오차장(이성민)과 그 사실을 알고는 퇴사를 고민하는 장그래가 갈등을 일으키는 중이다.

 

'미생(사진출처:tvN)'

그나마 만년 과장이었던 오과장이 오차장이 된 게 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성취다. 물론 풋내기 신입사원이었던 장그래나 안영이(강소라), 장백기(강하늘), 한석률(변요한) 같은 인물들이 이제 제법 회사에 적응해 척척 자기 몫을 해내는 건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미생들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성취나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 <미생>이 왜 그토록 신드롬을 만들었는가를 의아해 한다. 하지만 <미생> 신드롬은 바로 그 커다란 성취나 판타지를 말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실 직장생활이라는 현실 속에서 커다란 성공이나 성취를 말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그들은 그저 그 힘겨운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섣부른 판타지는 헛웃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 <미생>은 그런 점에서 보면 헛된 희망을 얘기하지 않은 드라마다. 거기에는 그 흔한 멜로적 성취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사회현실 속에서의 성취가 불가능하다면 멜로 같은 사적인 성취라도 취하는 것이 기존 드라마들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미생은 그런 곁가지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사원과 대리, 팀장 사이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냄으로써 그 미생으로서의 삶에 자그마한 숨통을 만들었을 뿐이다.

 

멜로도 없고 가족도 그렇게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 일중독자들의 세상이 그토록 우리를 잡아끌었던 건 거기에 직장인들의 디테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직장인이란 유리지갑월급쟁이과로과음으로 점철된 어떤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일 속에 푹 빠져 살아가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미생>은 달랐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뻔하게 치부해 왔던 직장인들의 면면을 깊숙이 들어가 자세한 디테일로 그려냈다. 거기에 특별한 판타지는 없었지만, 바로 이 디테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안과 위로를 주는 힘을 발휘한다. 누구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았던 삶을 조명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미생의 삶에 나름의 가치 부여를 한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왜 직장인들에게 그토록 큰 공감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미생>의 인물들은 그 드라마의 시작과 끝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변함없음을 보여주지만, 이런 헛된 판타지보다 이 드라마가 선택한 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직장인들의 삶이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오차장의 이 말에서 방점은 우린 아직 다라는 단어에 찍힌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 그것이 <미생>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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