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 왜 자신이 방송에 필요한 지를 증명해야

 

인간적으로 개그맨 이혁재의 사연은 진정 동정이 간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은 때론 가혹하게도 여겨질 수 있는 일이다. 한 때의 폭행 사건 연루는 당시 최고 위치에 있던 이혁재를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재기하려 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고 개인적인 사업 실패는 수입까지 모두 압류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세바퀴(사진출처:MBC)'

<세바퀴>에 아내와 함께 출연해 사연을 얘기하며 펑펑 눈물을 흘리는 이혁재는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이혁재로서는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방송에 나와 뭐든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난달에 <세바퀴>에 출연해 <아빠 어디가>나 <진짜 사나이>에 들어가고 싶다는 조금은 과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을 게다. 하지만 그 급한 마음은 오히려 악수의 악수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의지의 표명은 오히려 대중들의 반감으로 이어졌고, 아내와 함께 출연해 사정을 얘기하며 읍소까지 했지만 그것 역시 동정심은 유발할 수 있었을 지 몰라도 반감을 호감으로 바꾸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충분히 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혁재의 사연을 듣고도 도대체 왜 대중들은 닫힌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최근 대중들이 프로그램과 연예인을 보는 달라진 시각이 들어가 있다.

 

최근 방송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연예인이 등장해 내밀한 이야기를 하면 대중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던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들은 기본적으로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자신이 왜 들어줘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즉 연예인이라도 대중들에게 어떤 정보를 주거나 아니면 특별한 재미를 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듣고 싶은 어떤 이야기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해주던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어떤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대중들은 그 이야기가 제 아무리 그 연예인에게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 자체에 의미가 없다면 최소한 그 연예인에 대한 개인적인 매력이나 호감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인간적으로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라도 대중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요는 왜 대중들이 이혁재의 개인적인 어려운 사정을 <세바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야 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으로 듣는다면 충분히 인간적으로 짠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중들은 왜 방송을 통해 그의 사정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니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어려움에 직면한 이혁재의 사정은 실로 딱하다. 하지만 그가 진정 재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읍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방송에 필요한가 하는 점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여러 면에서 이혁재는 더 이상 과거 최고의 위치에 있던 이혁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해야 대중들의 신뢰와 호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러모로 토크쇼는 이혁재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신뢰와 호감을 잃어버린 그에게 말은 할수록 그 진심이 호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말이 아니라 땀으로 만들어지는 진정성이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읍소함으로서 얻어내는 동정심이 아니라 작금의 달라진 예능 환경에서 자신이 예능인으로서 어떤 경쟁력과 차별점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혹독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이 인간적으로는 동정이 가는 이혁재가 방송인으로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인간의 조건>, 공감 너머 개념 예능이 뜬다

 

예능은 무조건 재미있으면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예능에서 재미는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남자의 자격>의 폐지와 그 이후에까지 여전히 여진이 멈추지 않는 혼수 방송 논란은 예능이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아마도 좀 더 비싼 혼수품을 걸고 하는 게임은 그만큼 더 자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으리라 믿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종의 상황극을 연출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 상황극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그대로 방영했다는 것은 대중들의 정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제작진의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예능에서 재미만큼 중요해진 것이 개념이 되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이 특별한 예능 프로그램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절대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세운 후에 비로소 그 위에 웃음을 얹는다. 즉 파일럿 프로그램의 미션에서는 휴대전화, 인터넷, TV 없이 일주일 간 살아보는 것으로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사실은 가리고 있었던 많은 인간적인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정규 프로그램이 되어 한 첫 번째 미션으로 시도된 쓰레기 없이 살기는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만 않을 뿐 결국은 우리 환경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미션은 자동차 없이 살기다. 자동차의 편리함 뒤로 사라져버린 인간적인 교류와 빠른 속도에 묻혀져 버린 삶에 느림의 행복을 되새기게 만드는 미션이 아닐 수 없다.

 

즉 <인간의 조건>은 그 미션 주제 자체가 개념이 있고 공감이 가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그만큼 쉽게 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재미가 얹어진다. 개그맨들만으로 출연진을 제한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제목만큼 무거울 수 있는 이 예능의 개념 주제와 미션들을 이들이 주는 가벼운 웃음으로 상쇄시켜보겠다는 의도였을 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의도가 상쇄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 출연한 개그맨들의 ‘개념’을 알게 된 바가 크다. 상승효과가 생긴 것이다.

 

양상국은 <개그콘서트>에서는 그저 촌놈이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그 촌놈의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개념 개그맨이 되었다. <인간의 조건>이 부여한 아날로그적 삶 속에서 드러나는 ‘씁쓸한’ 상황을 보여주는 김준호는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저 뚱뚱한 것으로 대중들을 포복절도시키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김준현은 기타를 치며 의외의 감성을 보여주었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정태호는 가족처럼 출연진들을 챙기는 엄마 같은 자상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잘생긴 개그맨 허경환의 인간적인 모습이나, 고참 개그맨 박성호의 부드러운 변화는 또 어떻고.

 

결국 여기 출연한 개그맨들이 모두 이전 <개그콘서트>의 이미지에서 좀 더 인간적이고 훈훈한 이미지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조건>이 미션 그 자체에서 깔아놓은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개념’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이 끝났지만 여전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양상국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진심어린 웃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개념어린 행동과 미션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까지 변화하게 만든다. 예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최근 공감을 넘어 이른바 개념 예능이 뜨는 이유다.

 

이렇게 된 것은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예능을 이제 더 이상 그저 웃고 즐기면 그만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이 가끔씩 보여주었던 사회 공적인 기능들, <개그콘서트>가 담았던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등은 예능에 개념을 요구하게 되었던 어떤 전조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와 펀(fun)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는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이제 그 재미에 개념이 탑재되기 시작했다. 공감할 수 있는 개념 자체가 재미일 수 있다는 것. 놀라운 일이 아닌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축의 이동은 이런 변화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련의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물던 토크쇼들의 추락은 무언가 의미 있는 토크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에서 비롯된 바가 크고, 한 때는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남자의 자격>이나 <1박2일>이 최근 폐지되거나 변화를 모색하는 이유도 너무 반복되다 보니 희석되어버린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능의 관건은 재미만큼 개념이 되었다.

<남격> 폐지 논의, 과연 소재고갈 탓일까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이 4년여 만에 폐지 논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전투기 조종에서부터 마라톤, 그리고 하모니 같은 초창기 <남격>이 보여주었던 참신한 기획들과 호평을 떠올려보면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는가가 의아할 정도다. 항간에는 소재 고갈과 시청률 저조가 그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폐지 논의의 원인일까.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지난 주 있었던 윤형빈 혼수 논란은 어찌 보면 현재 <남격>이 이런 상황에 몰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실 멤버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동료들이 선물을 하는 것은 그다지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사적인 일이 공적인 방송을 통해 나가게 될 때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무한도전>이 하하의 결혼에 즈음해 했던 축의금 콘셉트의 특집에서 막판에 기부라는 선택을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한 공적 기능이 없다면 왜 시청자들이 그들만의 사적인 일들을 굳이 봐야한단 말인가. 게다가 혼수 물품으로 몇 백만 원 운운하는 것은 예능의 주요 시청자라고 할 수 있는 서민들의 감정을 건드린 것과 다르지 않다. 윤형빈 혼수 논란은 그래서 그것을 방송 소재로 하겠다고 결정한 제작진의 실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남격>이 대중들과의 공감대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남격>이 초창기 그토록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이 중년의 아저씨들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되는 몸이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의 춤을 배우려 했고, 술 담배와 스트레스에 찌들어 관리하지 못했던 몸을 관리하려 했으며, 젊은 시절 갖고 있었으나 어느새 현실 때문에 지워버린 꿈에 다시 도전해보기도 했다. 그들의 도전은 중년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도 공감대를 주었다. 심지어 귀여운 아저씨들의 이미지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저씨 예능의 가장 큰 도전은 그 아저씨 이미지에 대해 대중들이 갖기 마련인 호불호에서 생겨난다. 즉 아저씨가 진짜 아저씨처럼 보일 때, 매력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초창기 <남격>은 무언가 아저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도전들을 통해 이 위험성을 상쇄시켰지만, 차츰 언젠가부터 이 도전의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아저씨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아저씨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남격> 합창단을 무려 3년에 걸쳐 했던 것은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첫 번째 합창단 이야기에 물론 엄청난 관심을 받았지만 그것을 매년 반복하는 것은 어딘지 <남격>의 매너리즘처럼 보였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남격>의 부제를 떠올려 보면 합창단 콘셉트가 이렇게 반복할 만큼 어울리는 소재인가 의구심이 생겨난다. 결국 ‘죽기 전에 해야 할’이라는 절박감을 똑같은 아이템을 반복함으로써 날려버린 결과가 생긴 셈이다.

 

무언가 굵직한 아이템들이 시도되지 않고 그저 소소한 아이템에 머물게 될 때 <남격>의 아저씨들은 그래도 여전히 아이 같고 순수하며 열정만은 청춘인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이렇게 없냐’는 네티즌의 비판적인 시선은 그래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하나의 배수진처럼 치고 마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하는 비장함이 살아있을 때 <남격>은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남격>의 폐지 논의는 그간의 흐름들을 볼 때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래도 남는 아쉬움은 있다. 즉 <남격>이 포착해 놓은 중년 아저씨들이라는 훌륭한 세대적 포인트가 못내 아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혹시 진짜 초심으로 돌아가 자격 있는 아저씨들의 때론 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고 때론 여전히 귀엽게까지 다가오는 그 매력을 볼 수 있는 <남격>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일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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