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저씨>, 복수극 아닌 공감의 방식을 택한 까닭

 

만일 웃음을 걷어냈다면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얼마나 슬픈 드라마가 됐을까. 뼈 빠지게 회사에서 온 몸을 바쳐 일하다 덜컥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그것 역시 자살로 덮어버리려는 현실. 돌연사니 과로사니 하는 사인들이 분명하지만 그 노고를 인정해주기는커녕 부정하고, 그 노고의 과실 또한 가로채는 현실. 무엇보다 모두의 기억 속에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남겨버리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다.

 


'돌아와요 아저씨(사진출처:SBS)'

또한 이러한 가장의 죽음은 그 가족의 슬픔이자 비극이기도 하다. 김영수(김인권) 과장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들은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 그의 아내 다혜(이민정)는 발도 딛기 싫을 남편이 죽은 그 백화점에서 일한다. 무엇보다 자살로 알려진 사인은 가족을 충격 속에 빠뜨린다. 가장의 자살이라면 그 가족에게 남을 깊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너무나 큰 비극이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이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 비극은 슬프고 나아가 당사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코미디의 형태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과장되어 있고, 상황은 판타지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는 여기에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이들을 되살려 놓는다.

 

죽음 앞에 그 사람의 존재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심지어 생명보다 더 큰 가치인 양 내세워지는 돈보다 더 큰 가치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당장의 삶과 나아가 큰 돈의 유혹은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하니까.

 

이해준(정지훈)의 몸으로 역송된 김영수가 결국 그것이 자살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밝혀내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차재국(최원영)은 거액의 돈으로 이를 덮어버리려 한다. 그 돈이면 다혜네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다혜는 이를 거부한다. 그것이 마치 남편의 죽음을 돈으로 가치 매기는 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최근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진 자들의 갑질을 담은 무수한 복수극과 소재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 최근 많아진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우리가 공분하는 건 가진 자들이 생명조차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다. 어찌 보면 자본화된 세상의 극단에 대한 비판이 최근의 무수한 범죄 스릴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의 소재라고 해도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시선이 사뭇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복수가 주는 판타지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돌아온 자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금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다. 적어도 그들은 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판타지를 담은 코미디 장르로 변환되면서 역송된 이들은 한 가지 지켜야할 약속을 갖게 된다. 그것은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설정을 집어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겨진다. 복수를 통한 해결이 아니라 이 드라마는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커져가는 사회적 분노와 그것을 반영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흔한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른 이 드라마만의 가치다. 어쩌면 자본 세상에 고군분투하다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지만 기사 한 줄 없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그들의 입장을 다시금 공감해보는 일.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잠시나마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코미디의 가벼운 웃음을 주는 이 드라마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취지, 의미 좋은 <미래일기>, 읏음보다 눈물이 앞선다

 

MBC의 새 파일럿 프로그램 <미래일기>는 그 기획이 참신하다. 이른바 타임리프 설정은 드라마나 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예능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의 하루를 담담하게 체험하는 그 과정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미래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미래일기(사진출처:MBC)'

예측한대로 <미래일기>는 그 노화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먹해지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39년 뒤 80세가 된 자신의 주름 진 얼굴을 본 안정환은 자꾸만 자기 얼굴을 되돌아보며 짠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현재 엄마의 나이인 58세가 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제시는 이건 아니다라며 부정했다. 77세 동갑내기 부부인 강성연과 김가온은 서로의 나이든 얼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한때 그토록 젊고 절대 늙지 않을 것처럼 자신감 넘치던 그 모습이 세월의 더깨가 얹어진 주름살로 뒤덮인 자신을 본다는 건 우울함을 넘어 숙연함까지 느껴질 일이다. 게다가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나이든 엄마와 남편을 바라본다는 건 더더욱 그렇다. 제시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막상 더 나이 든 얼굴을 한 엄마를 만나게 되자 솟아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엄마를 그대로 체험하고 이해하게 되는데서 오는 먹먹함일 것이다.

 

함께 나이 들어버린 서로의 얼굴을 매만지며 한편으로는 그 낯선 얼굴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 서로에 대한 아련함이 더 커지는 강성연과 김가온 부부의 모습은 또 어떤가. 함께 늙어온 노부부의 삶의 순간들이 마치 기적 같은 일들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 미래의 모습을 미리 확인한 순간, 이 부부의 현재의 삶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독거노인 콘셉트로 미래를 바라본 안정환이 쓸쓸히 앉아 어묵을 먹다가 문득 젊었을 때 아무리 인기가 많고 날고 기어도 소용없다. 잊혀지는 게 가장 무섭다.”고 말하는 대목은 <미래일기>가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진짜 80세가 됐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짜 생각해 둬야겠다.”고 결심할 때 시청자들 역시 그 말에 공감하게 됐을 것이다.

 

방송이 나가고 쏟아진 반응들은 감동 일색이다. 좋은 취지에 의미까지 잘 담아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파일럿이 아닌 정규프로그램이 되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감 가는 얘기다. 하지만 정규가 되기 위해서 <미래일기>는 보완해야 할 몇 가지 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먹먹한 감동만큼의 유쾌한 웃음의 포인트들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년의 삶을 체험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일이지만, 자칫 프로그램의 정서가 너무 어두워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번 파일럿에서는 그나마 제시의 엄마와 할머니의 등장이나, 안정환이 꼬마 아이들과 축구내기를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있어 지나치게 우울하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너무 의미를 강조하다 보면 교훈조로 흘러갈 위험성도 있다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반드시 가벼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르치려 드는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거부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너무 자막을 통한 교훈적인 설명이 많이 들어가는 것보다 어떤 객관성과 거리감을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를 내버려두고 관찰하게 하는 게 낫다.

 

물론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 일회성에 그치는 거라면 지금의 <미래일기>만한 취지나 의미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규 프로그램으로 가려면 의미만이 아닌 매회 기대감을 만들어주고 또 감동만큼 기분 좋은 유쾌함을 선사할 수 있는 재미요소들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 <미래일기>는 오랜만에 본 예능프로그램의 좋은 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취지가 계속해서 살아날 수 있게 충분히 보완하고 정규화되길 기대한다

한 물 간 줄 알았던 멜로, 어떻게 대세가 됐나

 

멜로의 부활이 심상찮다. 최근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치즈 인 더 트랩>은 케이블 채널로서는 이례적으로 매회 시청률이 상승해 겨우 4회만에 6%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 새로 시작한 KBS <무림학교>보다도 높은 시청률 수치다. <무림학교>는 무협과 학원물을 퓨전한 장르물로서 애초에 기대가 높았지만 완성도의 부실을 드러내며 첫 회에 5.1%(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더니 자신 있다던 2회에서는 아예 4%로 내려앉았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멜로는 한 물 갔다? 최근 몇 년 간 멜로라는 단일 장르로서는 그리 선전한 작품이 많지 않다. 물론 지상파 드라마에서 멜로가 빠진 드라마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장르와 결합된 형태였기 때문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사정은 확실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작년 말 MBC <그녀는 예뻤다>가 보인 기록은 실로 놀라웠다. 첫 회 4.8%로 시작했던 이 드라마는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더니 최고 1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올해 초 KBS <오 마이 비너스>가 보인 기록도 놀라운 일이었다. 너무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서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이 드라마는 줄곧 8,9%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괜찮은 성적을 냈다. 물론 이야기가 좀 더 신선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지만 소지섭과 신민아가 보여주는 달달한 멜로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쏙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제 <치즈 인 더 트랩>으로 이어지고 있다. 4회에 이 정도의 기록을 내고 있으니 잘 하면 두 자릿수까지 넘볼만하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럴만한 것이 스토리면 스토리, 연출이면 연출 게다가 원작 싱크로율의 논란까지 잠재워버린 박해진과 김고은의 연기까지 더해져 벌써부터 월요병을 치유해준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온전한 멜로드라마의 부활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드라마들이 과거의 멜로드라마와 달리 현실적인 사안들을 더 리얼하게 끌어안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즉 신데렐라 여주인공에 왕자님 남주인공이 나오던 그저 그런 성장 멜로는 더 이상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한다. 그것이 지금 보기에 너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마당에, 게다가 재벌2세들은 왕자님이 아니라 부정적인 갑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지금 이런 구도는 비현실을 넘어서 정서적으로도 공감 받지 못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녀는 예뻤다>는 물론이고 <치즈 인 더 트랩>의 멜로 구도는 확실히 다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그저 신데렐라가 아니라 더 치열하게 현실에서 뛰는 미생에 가깝다.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황정음)이 그렇고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김고은)이 그렇다. 그들은 연애라는 것 자체가 배부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도 반납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한다.

 

이러한 공감 가는 현실 바탕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위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물론 남자 주인공들도 과거의 왕자님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녀는 예뻤다>의 지성준(박서준)은 본인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그들의 멜로에는 빈부 차이가 만들어내는(특히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백화점에 데려가 옷을 사주는 시퀀스로 자주 나오는) 갖는 막연한 판타지가 없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유정(박해진)은 집안, 외모, 학벌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인물이지만 그 조건이 그의 판타지를 만드는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그 미스테리한 모습이 그의 진짜 판타지다. 결국 최근의 멜로드라마가 추구하는 건 막연한 판타지라기보다는 여주인공의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라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멜로드라마가 추락했던 건 그 장르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비슷한 공식과 캐릭터들을 버무려 냈던 그 매너리즘이 한계였을 뿐. 새로운 공감 가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처한 공감 가는 현실이 멜로와 엮어질 때 그것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걸 작금의 멜로드라마들은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치인트>, 그 어떤 멜로보다 공감 큰 까닭

 

저것은 치즈일까 트랩일까. 아마도 사랑이든 현실이든 첫 발을 내딛는 청춘들에게는 그것이 치즈처럼도 보이고 트랩처럼도 보이기 마련이 아닐까. tvN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은 이 청춘들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의 두 가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홍설(김고은)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선배 유정(박해진)이나, 가난한 형편에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하는 학업,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는 갖가지 아르바이트가 모두 말 그대로 덫 속에 놓인 치즈로 보일 테니.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꿀 알바로 알려진 대학원 조교실 일자리는 그녀의 생각과는 영 다르다. 일찍 출근해도 또 조금 늦게 출근해도 뭐라고 하고, 커피를 타와도 안타와도 뭐라 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조교는 쉬워 보여 치즈 같던 이 일자리 속에 놓여진 트랩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까지 바래다 주던 유정이 사귀자고 한 그 말은 그녀에게 달콤한 치즈처럼 그녀를 설레게 하지만, 그 후로 어쩐 일인지 연락을 하지 않는 그의 냉담한 모습은 그녀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를 믿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녀가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그냥 무시했다는 주연(차주영)의 거짓말은 유정이 혹시 덫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강교수(황석정)가 낸 팀 과제에서 팀원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혼자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모두 한 홍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팀원들 때문에 공동책임으로 D를 맞게 되자 혼란스러워진다. 강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만, 그녀는 사회생활에서는 힘들어도 팀과 함께 해나가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예외는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만일 학교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온전한 교육의 장이라면 강교수의 예외 없는 교육방식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홍설에게 학교생활은 학점을 잘 받아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현실로 다가온다. 교육적 효과를 위해 잘못한 일도 없이 낮은 학점을 받고 그렇게 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러니라니.

 

<치즈 인 더 트랩>은 우리가 봐왔던 청춘 멜로의 전형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다뤄지는 이야기의 질감이 그리 가벼운 건 아니다. 거기에는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깔려 있고, 그 기반 위에 달콤한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가 얹어져 있다. 사랑은 치즈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겐 덫처럼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막상 홍설이 유정과 사귀기로 하고 첫 데이트를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과 와인을 척척 시켜먹는 유정이 그녀는 낯설다. 심지어 차로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내려서 차문을 열어주는 유정의 모습 앞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한다. 늘 덫 같은 현실 속에서 함부로 대해져왔던 그녀는 당황한다. 그녀에게 유정은 그래서 그 현실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토록 차갑게 느껴지고, 심지어 두렵게까지 여겨지던 유정이 아닌가. 그런 그가 자신 앞에서 달콤한 미소를 보낸다니.

 

멜로와 현실의 세계는 종종 병치된다. 예를 들어 멜로 속 백마 탄 왕자님은 넘을 수 없는 빈부 격차의 현실을 판타지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하지만 유정이란 백마 탄 왕자님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멜로드라마 속의 그 판타지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 멜로 속 왕자님들이 잘 살아도 사실은 착한 존재로 판타지화되었다면, 유정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때론 달콤해서 설레게 만들지만 냉랭한 이성으로 돌아가면 두려울 정도의 차가움을 보여준다.

 

유정이란 존재는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행복한 판타지와 냉정한 현실을 동시에 품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표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사랑도 학업도 일도 현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 시대에 청춘들은 그것들이 모두 치즈처럼도 보이지만 동시에 트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비슷해져버린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그 감정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해한다.

 

실로 사랑과 현실을 이렇게 제대로 엮어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는 결코 흔치 않다.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김고은이나 박해진 같은 단지 멋진 배우들의 호연과 이윤정 PD 같은 베테랑 연출자의 감성적인 연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이 드라마가 사랑에 있어서도 현실에 있어서도 지금의 청춘들(아마도 중년들까지)에게 주는 공감은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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