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캠>에서 듣는 만재도 유해진의 신청곡이라니

 

지난 105일 저녁 7시 즈음,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는 특별한 노래신청(?)이 들어왔다. 라디오를 듣던 분들이라면 반색했을 노래신청. 바로 참바다 유해진이 보낸 노래신청이었다. 과거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언제든 노래신청을 하라 했던 배철수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유해진은 마돈나의 ‘La Isla Bonita’를 신청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그 노래를 신청한 곳이 흥미롭다. 다름 아닌 <삼시세끼> 어촌편2를 찍기 위해 떠난 만재도에서 신청한 노래라는 것. 배철수는 이 조금은 애잔하면서도 신나는 리듬의 마돈나 노래를 틀어주며 그 노래를 듣고 어깨 춤을 들썩일 유해진의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동 시간 그 사연과 노래를 들은 청중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1을 눈여겨봤던 시청자들이라면 유해진이 그 만재도 벽지의 집에서 찾아낸 조금은 낡은 라디오를 기억할 것이다. 구멍가게가 하나 뿐인 섬이다. 그것도 주인이 언제 문을 열어줄지 몰라 갈 때마다 헛걸음을 하게 하는 구멍가게. 그러니 문화생활이라고 별게 있겠는가. 그런 곳인지라 낡은 라디오의 직직 대며 나오는 노래가 남다른 감흥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월요일 저녁. 어딘지 일주일의 첫 날이 주는 피곤함을 달래주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뜻하지 않게 흘러나온 만재도 참바다 유해진의 음악신청은 잠시나마 도시의 바쁜 일상을 떠나 그 멀고도 먼 바다 한 가운데의 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도시에서 떨어진 만큼의 그 여유로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고, 거기에 유해진이라는 어딘지 유유자적하는 인물이 그것도 마돈나의 ‘La Isla Bonita’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일 상상은 생각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을 흐뭇하게 만든다.

 

1987년도에 마돈나가 발표한 ‘La Isla Bonita’란 노래의 뜻은 영어로 ‘The Beautiful Island’라고 한다. 그러니 그 출렁이는 듯한 음률에 더해진 이런 의미는 만재도라는 공간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이번 주부터 방영될 <삼시세끼> 어촌편2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건 당연지사다. 라디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삼시세끼>를 연결해주었고 그로써 도시와 섬을 연결해주었으며 나아가 도시인의 지친 마음과 저 섬의 유유자적을 연결해주었다.

 

유해진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노래를 신청하고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과정은 <삼시세끼> 어촌편이 갖고 있는 일상의 느낌을 잘 말해준다. 누구나 노래를 신청하는 라디오가 아닌가. 유해진은 이 노래신청을 통해 <삼시세끼>에서의 자신이 배우가 아닌 도시를 잠시 떠나 섬에 들어간 아주 보통 사람의 일상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러니 대중들이 그의 일상에 쉽게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일 게다. <삼시세끼>에서 유해진의 모습에는 과장됨이 거의 없다.

 

<삼시세끼> 정선편이 마무리되고 금요일 밤이 어딘가 헛헛함을 느꼈다면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해준 위안과 편안함이 적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갑자기 들리는 유해진의 만재도 소식에 반색했다면 잠시 멈춰 누리는 여유에 우리가 그만큼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낡은 라디오와 <배철수의 음악캠프><삼시세끼>. 달라도 닮은 구석으로 우리의 일상을 조금은 숨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 아닌가



차승원과는 사뭇 달랐던 이은우의 만재도

 

지금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PD는 깜짝 놀라 베니스 영화제까지 초청받아 갔다 오신 분이 아르바이트를 하냐며 되물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시급을 받는데 조금 올랐다며 웃었다. 그녀는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로 주목받았던 여배우 이은우다. <SBS스페셜> ‘여배우와 만재도 여자편에서 이은우는 우리에게 <삼시세끼>로 잘 알려진 그 섬, 만재도로 들어갔다. 돌아올 기약도 없이.

 


'SBS스페셜(사진출처:SBS)'

그녀는 왜 목포에서도 뱃길로 다섯 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그 외딴 섬으로 들어갔을까. 아니 <SBS스페셜>은 왜 만재도에 굳이 여배우를 대동하고 들어갔을까. 그것은 만재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그 삶을 그저 보여주기보다는 제대로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은우라는 낯선 이방인이 들어서자 몇 안 되는 마을 주민들은 그녀를 신기하게 바라봤고 하다못해 마을의 개도 이방인을 향해 짖어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점점 섬사람들을 닮아갔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신산한 삶을 들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술 때문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부녀회장님과 소주 한 잔을 하며 역시 술 때문에 아버지를 먼저 보낸 이은우는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비오는 날 비를 피하기는커녕 때맞춰 해야 할 밭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난 그녀는 할머니의 흙투성이 장화를 씻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물고기 맛을 들이면서 통발로 물고기를 잡고 그걸 척척 회를 떠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섬 여자처럼 보였다. 섬 여자들이 하는 주낙 작업을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밥을 먹고 살갑게 딸처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는 낯선 섬에 동화되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섬에서 수십 년을 끝없는 노동 속에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낸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그녀는 깊은 공감을 했다. 비바람에 파도가 몰아치고 때로는 바다가, 술이 남자들을 먼저 떠나보내도 그녀들은 거기 굳건히 서 있는 만재도처럼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여배우 이은우에게 그녀들의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10년 동안 해온 여배우로서의 삶. 열심히 해왔지만 아직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삶 속에서 이걸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그녀.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까지 받았지만 제대로 상영도 되지 않은 영화. 그 복잡한 심사는 그 섬 마을에 사는 여자들의 삶 앞에서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 거센 파도 속에서도 물질을 하는 그분들을 통해 어떤 용기를 갖지 않았을까.

 

<삼시세끼>에서 차승원이 밟았던 만재도가 하나의 놀이터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SBS스페셜>이 이은우를 통해 들여다본 만재도의 삶은 거세고 억센 파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힘겨운 삶 앞에서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여자들의 강인한 얼굴과, 오히려 힘겹기 때문에 더 피어나는 미소들은 그래서 이은우에게는 더 포근한 엄마의 품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섬을 빠져나오는 날, 이은우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면서 동시에 힘겨운 자신의 삶에 대해 더 힘겨운 삶을 살고 계신 만재도 여자들이 전하는 위로이자 격려였을 것이다. 바리바리 챙겨주는 만재도 엄마들의 정은 이은우에 한껏 빙의될 수밖에 없었던 도시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섬에 들어갔다 나오는 이은우는 마치 작품에 들어갔다 나오는 여배우를 닮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지만 이은우에게서 꽤 괜찮은 여배우의 느낌을 갖게 된 건 그 섬 여자들과의 교감에서 어떤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일 게다



백종원도 하는 일을 왜 정부는 못하나

 

때로는 각각 떨어진 사안들이 하나의 문화적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요즘 들어 연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회자되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백종원, 다른 하나는 메르스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이 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그 사이에 소통이라는 단어 하나를 집어넣으면 그 연결고리를 쉬 알아차릴 수 있다. 메르스 사태는 갈수록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초동대처가 좀 더 빨랐다면, 또 감염 병원에 대한 정보가 빨리 공개됐더라면 지금처럼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한석규)의 한글 유포를 막으려는 이유로 정기준(윤제문)은 미개한 백성들에게 한글은 혼동을 주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든다.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 논리를 저 나치의 괴벨스에게서 가져왔다고 말한 바 있다. 정기준은 한글 같은 파괴력 있는 정보체계를 마치 전염병처럼 본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은밀히 저들끼리 해결하려다 오히려 세계 제1의 감염자를 낸 병원을 보면 여전히 정보의 소통에 대한 시대착오적 판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이 시기에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소통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저 쿡방 열풍에 기댄 셰프의 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가 하고 있는 쿡방은 그래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한 상징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 개인방송들의 대결은 콘텐츠 대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그건 콘텐츠가 아니라 소통의 대결이었다.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보여주거나 밀고 나가면 시청자들을 우수수 빠져나간다. 결국 소통에 실패한 프로그램들은 폐쇄되고 만다.

 

백종원이 주목받게 된 것은 그가 애플보이라고 불리게 된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그의 쿡방을 보며 별의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트집을 잡아 사과하라고 한다. 이를테면 그냥 초장에 찍어먹는 건 정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고 초장에 사과하세요라는 댓글이 붙고, “믹서기가 영 시원찮다는 말에 믹서기 비하 발언이라고 사과하란다. 또 카메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고추를 꽂았다는 표현을 해 ‘19금 발언이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과 요구에도 그는 선선히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플보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닉네임이다.

 

이건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사과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갖고 있는가를 가늠해보면 백종원에 대한 그 무수한 사과 요구, 그럼에도 소통을 끊지 않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주고받음이 대중들에게 주었을 훈훈한 미소를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있었나. 남 탓하기 바빴던 것은 아닌가.

 

백종원은 방송에서 종종 카메라를 향해 은근한 미소를 날리며 구수한 멘트로 직접 시청자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괜찮쥬?”하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살짝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짜 소통을 위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지금 백종원이 셰프 그 이상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소통에 실패하면 모든 걸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은 저 일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국가와 국민의 소통이랴. 국민들은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들어주고 반응해주며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모습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건 백종원도 하는 일이다.

 

황석정이 보여준 <나 혼자 산다>의 진가

 

황석정은 드라마 <미생>의 반전뒤태 재무부장으로 대중들의 마음속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제 중년에 혼자 살아가는 그녀는 MBC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최적일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소유나 효린, 엠버처럼 간간히 여성 출연자들이 출연하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에 부려진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자칫 엿보기 악취미로 그려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일상이 주는 헛헛함이 어찌 남성들만의 것이랴.

 

그런 점에서 보면 황석정만큼 그 리얼함의 끝을 보여준 인물도 없을 것이다.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민낯은 기본이고 목욕탕에 쪼그리고 앉아 긴 머리를 벅벅 감는 모습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같이 사는 반려견 대박이와의 스킨십은 마치 오래된 지인같은 편안함이 묻어나고, 도시락으로 김밥을 마는 솜씨에서는 그녀의 능숙함이 묻어난다.

 

사실 황석정이 등장해서 보여주는 특별함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일상일 뿐이다. 차 한 잔을 들고 나와 베란다에 앉아 마시는 장면이나, 거기에 그녀가 키워놓은 꽃과 야채를 살짝 보여주는 것, 그리고 소파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처럼 보이는 대박이를 바라보는 건 남다를 것 없는 보통사람들의 삶 그대로다.

 

이제 대중들이 TV를 통해 보려고 하는 건 셀러브리티들의 특별한 삶에 대한 선망이 아니게 되었다. 관찰카메라의 시대는 보다 일상 가까이에서의 공감을 요구한다. 따라서 황석정이 보여주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소소함이란 다름 아닌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진가다. 이 프로그램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은 그 특별함을 거둬내고 일상의 자잘함들에 시선을 돌릴 때 생겨난다.

 

민화를 배우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황정음이나 김광규 같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같은 나이로 혼자 살아가는 대학동기들과 만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이젠 달콤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 나이대에 가질 수밖에 없는 솔직한 소회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텅 빈 집으로 홀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누구나 그 삶의 뒤태를 보면 느껴질 수 있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병원 검사비 때문에 한껏 딸을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괜찮다고 재차 말하는 황석정의 무덤덤한 표정 속에는 그래서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긴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그렇게 하루를 들여다보면 드디어 보이는 그 반짝거림의 실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일상으로 흘러가지만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지게 만든다는 것.

 

이것은 <나 혼자 산다>가 빛나는 이유다. 이 카메라가 헌사하는 일상에 대한 시선들 속에는 그렇게 무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이 묻어난다. 황석정의 그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들에서 느껴지는 보통의 특별함’. 그것이 <나 혼자 산다>의 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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