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의 꼼수가 '아빠 어디가'에 미친 영향

 

프로그램 편성 시간은 유동적일 수 있다. 만나자는 시도조차 듣지 못 했고, 만난다고 해도 프로그램 런닝타임을 협의할 생각은 없다. 좋은 콘텐츠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새로 만든 프로그램을 길게 보여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재방송을 편성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입장이다.” 한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KBS 박태호 예능국장의 말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지금 현재 일요일 저녁은 예능의 격전지가 되었다. 지상파 3사의 격차가 겨우 1,2% 차이로 1,2위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 문제는 KBS가 방송시간을 조금씩 늘림으로써 방송3사 간의 편성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KBS<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시작 시간대를 지난해 121일 편성 고지보다 13분 빠른 오후 442분에 방송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조금씩 점점 앞당겨 방송이 시작되더니 지난 1월부터는 아예 430분에 방송이 시작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MBCSBS가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방송을 먼저 시작한다는 것은 시청자들을 선점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시청률로 이어지고 광고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MBCSBS가 울며 겨자먹기로 방송 시간대를 앞당기기 시작했고 편성 과잉 경쟁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KBS는 아예 지난 달 30일부터 오후 420분으로, MBCSBS는 같은 달 23일과 16일부터 오후 430분으로 방송시간을 변경 고지했다.

 

사실 5시부터 시작해 8시에 끝나는 일요예능 3시간도 적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과열 경쟁된 편성 시간으로 인해 420분부터 방영된다면 거의 4시간 가까이 예능이 편성되는 셈이다. 제 아무리 집중도가 높은 시청자라도 이런 양적인 편성은 버텨낼 재간이 없게 된다.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10분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 3,40분 분량을 늘린다는 건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

 

결국 방송3사가 제살 깎아 먹기 하는 출혈경쟁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경우 방송분량을 늘리는 꼼수 편성이 경쟁적으로 이뤄지자 방송3사가 모여 어떤 나름의 규칙을 정하는 노력을 보여 왔다. 따라서 이번 문제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 방송3사가 모이려 했지만 KBS 측에서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KBS는 이런 꼼수편성을 앞세우고, 출혈경쟁을 하면서도 조정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꼼수편성으로 실제적인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만들어져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배치된 이후 <아빠 어디가>는 그 자체로 커다란 불이익을 맛봤다. KBS<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으로 한 일은 물론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방송사들의 윤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특히 공영방송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빠 어디가>가 작년 한 해 큰 인기를 끌자 생겨난 프로그램이다. 소재와 형식이 거의 같은데다 그것도 같은 시간대에 편성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아빠 어디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작년 새로운 출연자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아빠 어디가>가 난항을 겪었던 이유 중 하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유사 프로그램이 같은 시간대에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출연자들 입장에서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방송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 <아빠 어디가>의 침체는 근본적으로 이 캐스팅 문제와의 관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잘 된다 싶으면 우선 베끼고 보는 이런 식의 방송 제작 행태가 가져온 영향도 적지 않다. <아빠 어디가> 같은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내용 그 자체보다 어떤 아이가 등장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주목받게 된 것은 추사랑의 영향이 크다. 결국 내용이나 기획적인 노력보다 캐스팅 하나의 성공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성공이라면 제작 일선에서 일하는 PD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고생해서 만들어내면 뭐 하겠는가. 유사 프로그램이 아무런 윤리적인 고민 없이 버젓이 만들어져 같은 시간대에 세워짐으로써 그 노력이 순식간에 허사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창조 경제는 물 건너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간대 편성 자체도 꼼수로 보이지만, 그 시간대를 한없이 늘려 당장의 시청률과 시청자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다 같이 죽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청자들도 이렇게 한없이 늘어나는 편성시간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좋은 콘텐츠도 양적으로 늘리다 보면 긴장감 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제 아무리 재밌는 프로그램이라도 네 시간 가까이 되는 양이라면 시청자도 지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청자도 현장 PD도 원치 않는 일을 오로지 시청률을 위해 강행함으로써 방송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KBS라는 공영방송은 이토록 시청률에 목을 매는 것일까. 공영방송이라면 공영방송에 걸맞는 좋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방영해야 맞는 게 아닐까. 누군가 만들어놓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베끼다시피 가져온 것도 공영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꼼수 편성으로 늘려 효과를 보려는 심산은 더더욱 공영방송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수신료를 내는 대중들을 어떻게 공감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작은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KBS1TV <TV쇼 진품명품>은 그래도 7% 정도의 시청률을 내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핫(hot)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진품명품>에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해 대중들은 심지어 의아하게까지 여긴다. 무슨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사문제를 다루던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적으로 뜨거운 프로그램도 아닌, 어찌 보면 KBS에 가장 어울리는 스테디셀러형 프로그램에 왜 이런 무리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작은 프로그램에도 이런 정도의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민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오죽할까 하고 말이다.

 

'TV쇼 진품명품(사진출처:KBS)'

문제는 사안 자체보다 그 사안이 진행되는 과정의 파행에서 발생하고 있다. 즉 이번 <진품명품> 사태는 멀쩡하게 잘 하고 있는 MC인 윤인구 아나운서를 김동우 아나운서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MC 교체야 개편에 즈음해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이 MC 교체가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였을 뿐이라며 윤인구 아나운서를 MC로 방송을 강행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려는 사측과 제작진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마찰이 있었고, 결국 예정된 녹화는 파행되기에 이르렀다.

 

즉 사전에 충분히 사측과 제작진이 협의를 통해 MC 교체를 논의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사안이다. 하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와 낙하산식 인사는 결국 제작진의 반발을 불러 올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던 사측의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 방송은 ‘감정위원이 선정한 최고의 명품’이란 특집 명목으로 급조된 편집본에 불과했다. 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작진 전원을 타부서로 발령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권 남용으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집단 반발을 일으켰다. 방송은 결국 어떠한 협의도 없이 김동우 아나운서를 MC로 세우는 것으로 결정됐다.

 

과정이 납득될만한 것이었다면 충분히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이 이제는 사안이 너무 커져버렸다. 사측과 제작진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청원경찰이 출동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심지어 제작진 전원을 타부서로 발령내는 역시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태는 이제 제작진들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사측에 의해 제작 자율성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제작진들에게는 결국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숨만 쉰다고 사는 건가.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는 건 제작진에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인사권의 남용은 KBS 같은 공영방송이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막아져야 될 대목이다. 만일 경영진에 의해 마구 인사권이 휘둘려진다면 제작의 자율성은 보장받기 어려워진다. 결국 경영진 몇 명에 의해 국민을 위한 방송은 정부를 위한 방송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은 시청료를 납부하고 있는 국민들을 소외시키는 일이다.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KBS측은 뭐 이게 그리 큰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그렇게 말한다면 이 사태는 더 위중한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진품명품> 사태는 작아보여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KBS측은 “차질 없는 방송”을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가게 되는 방송이 어찌 차질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것은 <진품명품>의 문제이면서 KBS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이 사태로 KBS의 진품성을 묻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왜 비정상이라 비난받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걸까. 공영방송이 이래도 되나 싶다. 여동생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오빠가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후 인터넷은 이 오빠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들끓었다. ‘정신병자’이니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부터 ‘스토커’라는 비난, 오빠가 여동생에게 툭하면 시키는 뽀뽀가 ‘성추행’이라는 얘기까지 나왔고, 심지어 ‘성적인 악플’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내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그도 그럴 것이 방송에 나간 이 여동생에 집착하는 오빠의 이야기는 실로 정상이라 볼 수가 없었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랬다고는 해도,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여동생을 매일 따라다니며 관찰하고, 여행을 갈 때도 꼭 따라가고 심지어 신혼여행까지 같이 가자는 오빠를 어찌 정상으로 보겠는가. 늘 손을 잡고 다니고 툭하면 뽀뽀를 요구하는 것에다 ‘사랑해’라는 말을 안 하고 전화를 끊으면 다시 건다는 건 도에 지나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결혼하기로 한 예비신랑과 이 오빠가 썼다는 계약서에는 동생은 평생 자기 것이며 같이 살 것이고 언제든 데리고 놀러 갈 수 있다는 식의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오빠가 아니라 부모도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동생은 울먹거리며 오빠가 자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자신의 미래를 꾸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오빠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관객의 투표에서 150명 중 132명이 ‘고민이다’를 눌러 우승자가 됐을 때 오빠의 표정은 심지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의 가족 일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내막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가타부타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미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이 사적인 이야기를 공론화하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오빠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들은 하등 잘못된 것이 없다. 정상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방송에서 보여진 인물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따라서 이것은 방송이 아예 내놓고 한 사람을 전 국민적인 비난 앞에 내놓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그 사람이 제 아무리 비정상적이고 잘못됐다 해도 그 어찌 보면 사적인 문제들을 온 국민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실로 방송이 할 짓이 아니다. 흔히 인터넷에서 누군가 찍은 동영상이 올라와 ‘○○녀’, ‘○○남’이라 불리며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일과 이것이 무에 다를 게 있을까.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다양성의 차원에서 보여주고,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들 사이에 어떤 화해와 소통의 물꼬를 터주자는 <안녕하세요> 애초의 기획의도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기획의도대로 하려면 좀 더 신중한 접근과 편집이 필요하다. <안녕하세요> 같은 특이한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자칫 자극적으로 경도되기 쉬운 위험에 대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안녕하세요>가 그나마 안전하다 여겨졌던 것은 가족이 출연해 가족애라는 틀 안으로 특이한 이들을 껴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때로는 비난받을 만한 이들도 뒤늦은 참회의 모습으로 오히려 소통의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동생에 집착하는 오빠의 이야기에는 그런 부분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소통은커녕 오히려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관객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오빠가 여동생에게 보여준 리액션의 전부였다. 그러니 이 편집된 방송에서 대중들의 비난여론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이 날 방영된 또 다른 사연 중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마치 하인처럼 시키는 부모 이야기 역시 자극적인 소재였지만 그나마 비난여론이 덜했던 것은 마지막에 엄마가 딸의 고충을 이해하고 울컥하는 모습을 통해 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소재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도무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불편한 내용들은 그대로 방영되면 당사자들을 공론의 질타 속에 던져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민을 들어준다는 빌미로 어쩌면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가져와 마구 풀어헤침으로써 결국 그 당사자들의 비난을 먹고 자라는 프로그램이라면 실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방송이 시청률을 위해 일반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좋은 기획의도는 자칫 잘못된 방송을 통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비난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제작진은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왕가네 식구들>, 비정상 캐릭터들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

 

드라마를 보면서도 공분이 생긴다? <왕가네 식구들>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늘 그러하듯이 <왕가네 식구들>에도 여지없이 찌질함의 극치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울화통 캐릭터가 등장한다. 딸 차별하는 엄마 앙금(김해숙)과 정신병자에 가까운 사치와 과시욕으로 살아가는 첫째 딸 수박(오현경)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이 세트로 거의 정신병에 가까운 막장 짓을 해대니 다른 가족이 정상적일 수가 없다. 이앙금의 차별로 둘째 딸 호박은 늘 구박당하는 자신에 익숙할 만큼 피해의식에 절어 있다. 먹을 거 안 사먹고 지독하게 돈을 모아 집을 샀지만 엄마와 언니는 축하해주기는커녕 비난만 한 가득이다. 마침 수박네가 사업에 망해 힘겨워하는데 혼자만 살 궁리한다는 것. 이름이 벌써 수박과 호박이니 이건 아예 작가가 대놓고 차별하겠다 선언한 캐릭터들이나 마찬가지다. 호박에 줄 간다고 수박이 안 된다는 얘기.

 

수박의 남편 민중(조성하)은 사업에 실패해 택배 사업에 뛰어들어 돈 몇 만 원 벌려고 달동네를 허리가 부러지도록 뛰어다니지만, 아내 수박은 이런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채를 빌려 3백만 원이나 하는 유모차를 사고 초라한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모텔에서 지낸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무엇이든 하라고 장인 왕봉(장용)이 말하자 민중은 운동장에 드러누워 오열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수박 때문에 남편도 정신병자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이런 민중에게 장모라는 사람은 보듬어주기는커녕 차라리 헤어지라는 막말을 해댄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여자를 아내로 둔 왕봉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게다가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감선생님이다.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이런 가족을 보며 막막한 생각밖에 더 들겠는가. 그나마 이 가족의 버팀목으로 서있는 자신이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고민은 아무에게도 토로하지 못한다. 그 역시 언제 쓰러질 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인물이기는 마찬가지.

 

한편 허세만 가득한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장모의 차별대우를 똑같이 받아오면서 아내가 집을 사자 기고만장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진 않았지만 이 캐릭터는 장차 조강지처 호박을 놔두고 바람이 날 모양이다. 호텔 상속녀 은미란(김윤경)이 대놓고 들이대기 때문인데, 왜 그녀가 허세달에게 그러는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결국 호박의 뒤통수를 치는 불륜 행각으로 대국민 울화통을 터트리려는 캐릭터라고 밖에.

 

<왕가네 식구들>은 정상이 아니다. 엄마가 정상이 아니니 자식들이 정상일 리 없고, 그들과 가족으로 얽힌 인물들이 제 아무리 정상적으로 살아보려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것. 실로 한 가족에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가진 이가 있을 때 그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그 관계가 타인까지 비정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어떨까. 시청자들에게 일일드라마가 주말드라마 같은 가족드라마들은 일종의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집에서 온가족이 둘러 앉아 이들 가족드라마를 보면서 때론 공감하고 때론 혀를 차는 건 그 때문이다. 물론 갈등 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것도 어느 정도다. 정신병에 가까운 인물들이 끊임없이 울화통을 터트리는 행동들을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정신병적인 양태를 극단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주말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시간에 왜 KBS 같은 공영방송이 이런 비정상적인 가족의 행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물론 훈훈한 가족이야기만을 그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대중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가족의 문제도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차츰 진행되면서 어떤 갈등의 해결이나 화합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정상적이라고 해도 과정 대부분이 비정상적이라면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다.

 

물론 백분 양보해서 이런 가족들도 분명 실제로 있을 것이다(아니 어쩌면 많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에 연어족, 갱거루족, 처월드, 편애, 학벌지상주의 등을 예로 들며 이것이 2013년 현실적인 가족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게 진짜 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획의도에 적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현실에 지치고 피곤한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통쾌한 웃음과 진한 감동’을 주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 혹 이것은 명분일 뿐 시청률이 진짜 목표는 아닌지. 살기도 힘겨워 죽겠는데 공영방송의 드라마마저 심지어 공분의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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