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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다시 보니 도드라지는 여성주의적 시선들

아마도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미 그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어떻게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됐던 왕자가 본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고, 하다못해 그 유명한 OST의 강렬한 음률 정도는 기억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실사판이라고 해도 영화 <미녀와 야수>를 보러 가는 이들이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진출처:영화<미녀와 야수>

하지만 의외로 <미녀와 야수>는 봄꽃이 한창 피어나 콘텐츠들의 비수기로 불리는 현 시점에 11일 현재 460만 관객을 넘어섰다. 다 알고 있는 뻔한 얘기일 수도 있는 <미녀와 야수>의 그 무엇이 우리네 대중들의 발길까지 잡아끌었을까.

그 첫 번째는 아마도 뮤지컬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미녀와 야수>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라라랜드>의 대성공은 뮤지컬 영화가 갖고 있는 묘미 역시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면이 분명히 있다. 어찌 보면 대사 도중 노래를 하는 뮤지컬 영화의 특성은 관객들에게 그 장르적 특성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뮤지컬 영화의 음악이 어떻게 대사보다 더 감성적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가 하는 그 경험을 충분히 연습시켜주었다. 

<미녀와 야수>는 물론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그 유명한 OST를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음악이 중요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흘러나오는 OST와 뮤지컬 영화로서 전편에 걸쳐 음악적이 재해석이 들어간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영화적 특성과 뮤지컬적 특성을 잘 연결해 마을에서 숲으로 숲에서 야수의 성으로 스펙터클한 카메라의 이동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깔아 넣는 음악의 묘미는 뮤지컬 영화만이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관객이라도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런 뮤지컬 영화가 주는 새로움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 <미녀와 야수>의 힘이 되어주었다면, 다시 보게 됨으로써 이 스토리가 가진 여성주의적 관점을 다시금 찾아내는 건 생각을 자극하는 지적인 힘이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법에 빠진 왕자를 구해내는 공주의 이야기이고, 진정한 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도발적인 질문은 벨(엠마 왓슨)이라는 여자주인공의 면면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마법에 걸린 야수와 잘 생겼지만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사냥꾼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대비는 비뚤어진 남성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들어가 있다. 사냥꾼이 가진 폭력성은 심지어 사람까지 사지에 내버려두는 잔혹함을 드러내지만 야수는 단 한 차례도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늑대들의 공격으로부터 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수와 개스톤이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세워두고 영화는 누가 진짜 야수인가를 묻는다. 

여기에는 이성의 빛이 비이성의 어둠을 깨치고 나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계몽주의적 시각 또한 깔려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벨이 엄청난 야수의 서재에 들어가면서 그의 지적인 매력을 알게 되는 장면이 그렇고, 책과는 담을 쌓고 대신 사냥에만 몰두하는 개스톤이 모든 걸 힘으로 얻어내려는 모습이 그렇다. 

여러모로 <미녀와 야수>에는 그 뻔한 이야기 이상을 담아내는 새로운 재미들이 촘촘하다. 뮤지컬 영화 특유의 음악적 재해석에 귀를 기울이며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이 이야기가 이토록 혁신적인 생각들을 일찍이 담고 있었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과 비이성, 미와 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점들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생각할 지점을 준다는 것 역시.

Posted by 더키앙

<겨울왕국>, 디즈니왕국의 새로운 출사표

 

절치부심한 디즈니의 부활을 알리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순식간에 7백만 관객을 넘어서버렸다. 마치 얼어붙어 있던 대중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린 듯하다. 사실 동화의 충실한 재현과 여전히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는 듯 여겨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어딘지 유치하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겨울왕국>으로 여기 저기 울려퍼지는 주제곡 ‘let it go’는 따뜻한 눈처럼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사진출처:영화 <겨울왕국>

‘let it go’는 마치 그 동화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던 디즈니가 이제 내버려두라며 자신들이 본래 잘하던 것을 마음껏 펼쳐 보이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그래서 뭐든 얼어붙게 만드는 마법의 능력을 가진 엘사가 그 능력 때문에 동생 안나를 상처 입게 했다는 트라우마로 오랜 세월 문을 닫아버리고 지내는 이야기는 그래서 디즈니 자신들의 와신상담처럼 보인다. 동화 같다고? 유치하다고? 두려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바로 그 두려움이 오히려 불행과 실패를 만들어내던 원인이 아니던가. 그걸 깨치고 나와 그 얼어붙는 능력으로 얼음궁전을 세우는 엘사처럼, 디즈니는 공주 이야기를 만들던 그 능력으로 마음껏 <겨울왕국>을 만들었다.

 

중요한 건 <겨울왕국>의 이야기가 통제되지 않아 자유롭지만 또한 무언가를 파괴할 수도 있는 엘사의 힘에만 내맡겨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겨울왕국>은 엘사보다는 동생 안나가 주인공에 가깝다. 행동하는 인물이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 파괴적인 힘을 즐거운 힘으로 전화시키는 인물이 바로 안나다. 엘사가 겨울의 분신이라면 안나는 그 추운 겨울에도 오히려 얼음을 지치고 눈사람을 만들며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아이의 영혼이다. 그러니 안나라는 균형자는 디즈니가 공주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원전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이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로 시대적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인물인 셈이다.

 

틀에 박힌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던 <겨울왕국>이 후반부에 이르러 그 방향을 자매애로 틀어버리는 건 그래서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미녀와 야수><인어공주>가 그러하듯이 왕자와 공주가 키스를 하면 마법이 벌어지고 그것이 실마리가 되면서 이야기가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겨울왕국>은 기분 좋게 뒤틀어 놓는다. 바로 이 점이 가능해진 건 다름 아닌 안나라는 조금은 보이시하게마저 느껴지는 신세대 캐릭터 덕분이다.

 

디즈니가 <인어공주>를 통해 그 힘을 확인시켰던 뮤지컬적인 연출과 요소들은 <겨울왕국>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지만, 그 파급양상은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익숙할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녹색마녀로 열연했던 이디나 멘젤이 부르는 ‘let it go’는 마치 <레미제라블>‘I Dreamed A Dream’만큼 강렬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게다가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짧게 편집된 ‘let it go’의 영상은 유튜브를 타고 마치 들불 번지듯 퍼져나간다. <레미제라블>이 그토록 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됐던 것처럼 <겨울왕국> 또한 무수한 패러디들이 양산되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먼저 대중들에게 <겨울왕국>을 알리는 건 이 짧은 뮤지컬의 레퍼토리처럼 들리는 ‘let it go’. 이 노래로 디즈니의 마법에 의해 얼어붙었던 마음이 한껏 풀어지고 녹아드는 것을 대중들은 느꼈을 것이다. 또한 이 뮤지컬적인 구성(노래가 중심이 되는 듯한)은 아직은 잘 통제되지 않는 힘을 가진 엘사처럼 조금은 툭툭 튀는 스토리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뮤지컬적인 요소가 있고 왕자와 공주가 존재하지만 <겨울왕국>은 그 한때는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디즈니적인 특징들을 때론 살짝 방향을 틀고 때론 서로 보완하면서 강점으로 바꾼 셈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을 스케이트를 지치고 눈사람을 만들며 놀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그 겨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겨울왕국>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디즈니의 달라진 생각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토록 자신들의 상황을 작품을 통해 정확히 짚어냈을까. <겨울왕국>은 그래서 디즈니왕국의 새로운 출사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Posted by 더키앙

스토리, 대사의 부재가 드라마를 상투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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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프린세스'(사진출처:MBC)

'마이 프린세스'의 공주 이설(김태희)은 결국 공주가 되고 왕자님 박해영(송승헌)과 사랑을 이루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진행과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드라마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거의 혼자 무너지고 망가지며 극을 이끌어간 김태희라는 연기자의 재발견은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임팩트 있는 여운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드라마 전체 스토리의 구조다. '마이 프린세스'는 초반 4부까지 거의 모든 스토리를 쏟아 부었지만, 그 후부터는 지지부진한 진행이 이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남녀 인물 간의 심리변화 등을 통해 유발됐어야 할 긴장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된 것은 초반에 일찌감치 공주 대우(?)로 급상승한 이설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공주라는 설정을 가져왔지만, '마이 프린세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국민투표에 의해 진짜 공주가 되는 과정을 멋진 두 왕자님, 즉 박해영과 남정우(류수영)가 도와주는 스토리. 신데렐라 이야기가 힘을 갖게 되는 건 신분상승 가능성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끊임없이 상기되고 벌어져 있을 때다. 하지만 초반부에 이미 공주 대우가 된 이설에서 이런 긴장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상승구조를 가져야 힘을 발휘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달리, '마이 프린세스'는 이미 정점에 신데렐라를 세워두고 거꾸로 끊임없이 이 신데렐라를 본래 평범한 인물로 떨어뜨리려는 오윤주(박예진)를 통해 긴장감이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오윤주가 가진 힘보다 두 왕자님인 외교관 박해영과 교수 남정우가 가진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설은 여전히 공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공주병을 앓는 그저 예쁘고 귀여운 여인에 머물게 되자, 드라마의 역학구조는 공주를 위협하는 악역과 그것을 막아주는 왕자님 스토리로 퇴행했다.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 신데렐라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기 때문이다. 즉 왕자에게 보호받는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자립하고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성장형 신데렐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스스로 성장하는 신데렐라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사다. 아무리 스토리 구조가 평이하다고 해도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시크릿 가든'이나 '신데렐라 언니'에서 느껴지는 감성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대사의 부재는 드라마를 상투적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장 클라이맥스가 되는 프로포즈의 순간에도 그저 수다스럽게만 느껴지는 대사는 드라마를 지나치게 상식적으로 떨어뜨렸다.

스토리와 캐릭터에서 '마이 프린세스'는 많은 허점을 가진 드라마로 남았다. 이미 공주가 되었지만 공주로서 역할을 하려 하지 않고 신데렐라가 되려는 여주인공, 왜 그렇게 악독한지 이해하기 어려운 악역, 그저 여주인공을 무한 보호하고 사랑하는 남주인공들의 긴장감 없는 행보, 무엇보다 지나치게 상식적인 대사들은 '마이 프린세스'를 상투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로 만든 이유들이다. 오히려 이런 허점들을 채워준 건 김태희, 송승헌, 류수영, 박예진의 연기다. 상식적인 상황에서도 어떤 설렘을 끌어낸 건 이들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마프'의 공주 이야기, 현대인과 공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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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사진출처:MBC)

이 시대에 공주 이야기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는 물론 여전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왕자님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왕자님에 의해 구원받는 그런 공주는 어딘지 공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다. 현대여성들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봐도, '라푼젤'이나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이제 전통적인 공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에 공주를 달고 나온 '마이 프린세스'는 어떨까. 초반부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려낼 공주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장차 공주가 될 이설(김태희)이란 캐릭터가 한없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모습이 그랬다. 게다가 공주병까지 있는 공주라니. 얼마나 절묘한 캐릭터인가. 이 공주님 앞에 선 왕자님인 박해영(송승헌) 역시 기대감을 높였다. 초기에 이 왕자님은 어딘지 허당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태희의 망가지는 모습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이고, 김태희의 연기자로서의 기대감도 높였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무너진 건, 이설이 공주임이 밝혀지고 궁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즉 공주 되기의 어려움, 공주가 되는 걸 방해하는 오윤주(박예진), 이설을 보호해주려는 남정우(류수영) 교수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해영과의 로미오와 줄리엣 식 로맨스. 이런 스토리는 전형적인 공주 스토리로 드라마를 회귀시켰다.

이설도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오윤주의 방해와 모략에 늘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이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박해영이나 남정우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씩씩했던 캐릭터가 그저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는 캐릭터로 변하자, 박해영도 왕자 캐릭터로 회귀했다. 발랄함과 풋풋함이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과거 전형적 공주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드라마는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존재로서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늘 당당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신데렐라. 길라임(하지원)은 늘 도도함과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김주원(현빈)과 늘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길라임이나 김주원 모두 확실한 자기 직업, 즉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자기 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설은 공주이고, 박해영은 외교관이지만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전문직 드라마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이 가진 일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하다. 당당함과 능동성 그리고 자존감이 그 일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이 사라진 멜로드라마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사랑타령으로만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이 프린세스'가 초반부의 기대감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자기 세계를 빨리 되찾았어야 했다. 이설은 조금은 엉뚱해도 보다 적극적인 공주로서의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었고, 박해영 역시 이설 바라기로서만의 캐릭터에서 벗어났어야 한다. 그리고 본래 그리려 했던 이설의 성장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멜로드라마는 물론 사랑을 그리지만, 요즘처럼 자기 성장에 주목하는 시대에는 사랑에만 목매는 드라마는 매력이 없다. 자기 성장으로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사랑이 더 주목되는 시대다. '마이 프린세스'는 왜 처음의 기대감처럼 좀 다른 공주 이야기를 펼쳐나가지 못했을까.

Posted by 더키앙

‘검사 프린세스’가 일과 사랑을 다루는 방식

"나처럼 예쁘고 젊고 날씬한 여자가 좋다는데 왜 그렇게 튕겨요. 기분 나쁘게. 아니. 진짜로 진짜로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마혜리(김소연)는 순수하지만 개념이 조금 없다. 자식 딸린 홀아비인 윤세준(한정수)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한다. 거기에 대고 윤세준이 한 마디 쏘아댄다. "한번 자고 싶단 생각은 들어. 그런 생각 들라고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늘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니는 마혜리를 에프엠 검사 윤세준이 이해할리 만무다. 거기에 대해 마혜리는 말한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내 몸이,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아니까요. 남이 뭐라든 남이 어떻게 보든 그따위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요."

1백 킬로에 육박하는 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그 참혹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피나는 노력으로 살을 뺀 자신의 몸이, 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그래서였을까. 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 마혜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은 조직도 아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 피해자도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첫 출근에 진정선(최송현) 검사가 시정을 요구하자, "시정했어요. 어제 입었던 치마보다 1센티 길어요."하고 답하고, 6시면 칼퇴근 하는 마혜리를 윤세준 검사가 나무라자, "제가 왜 야근을 해야 돼요? 저 공무원이구요. 공무원 법정근무 시간 있구, 야근한다고 월급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하고 당당히 무개념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또라이'도 아니고 '능력 없는 사람'도 아닌 셈이다.

그녀는 검사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여전히 공주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윤세준의 말대로 그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여성으로서 자신을 예쁘게 가꾸겠다는 것이 왜 나쁜가. 물론 그녀의 과한 자기애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조직생활이 처음이고 상황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윤세준 검사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자신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공주로서의 삶과 검사로서의 삶은 부딪치기 시작하고, 그녀는 공주로서의 즐거움만큼 검사로서의 보람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검사 프린세스'는 공주가 검사가 되는 성장 과정을 다루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주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윤세준 검사가 따라주는 와인을 함께 마시는 달콤한 꿈을 꾼다. 하지만 윤세준 검사는 3년 전 상처(喪妻)한 후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에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는 어쩌면 마혜리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지도 모른다. 그가 과거의 뚱뚱했던 마혜리가 겪었던 일과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피를 깎는 다이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을 아끼고 노력하고 이뤄내는' 마혜리를 진정으로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를 놔줘야 그 자리에 미래가 오는 거야." 윤세준 검사는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 "윤세준 니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고 되묻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과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검사 프린세스'는 따라서 마혜리가 공주에서 검사가 되는 그 성장과정만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또한 과거의 고통 때문에 검사로서 만의 삶을 살아가는 윤세준이 다시 사랑을 해나가는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혜리의 성장드라마와 윤세준의 성장드라마가 겹쳐지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꿈꾸는 세상이 검사와 공주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검사와 공주. 이 두 존재는 여성의 입장으로 보면 일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이 두 가치가 사실은 상충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충되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일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키고, 사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강요는, 마치 직장 내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처럼 떠다닌다. 또한 당당한 여성성으로서의 승부라기보다는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성화되어버리는 여성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판타지로서 과장된 면이 있지만, 검사와 공주 둘 다를 희구하는 마혜리의 고군분투가 의미 있어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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