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경계 없는 침범이 주는 공포에 대하여

 

워낙 유명한 웹툰 원작을 갖고 있다는 건 장점이면서 단점이 된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가 그렇다. 이 드라마는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됐던 웹툰 원작을 가져왔지만, 원작과는 살짝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이 에덴고시원 자체가 주는 공포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이상함을 전면에 깔아놓았던 것과는 달리, 드라마는 훨씬 더 이 고시원에서 살인행각을 벌이는 살인마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사실 이렇게 조금 직설적으로 칼과 도끼, 망치 등을 일찍 꺼내놓는 방식이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타인은 지옥이다>가 하려는 에덴고시원이라는 지옥의 실감을 높여줄 수는 있을 게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원작이 주는 윤종우(임시완)가 겪는 분위기의 공포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그래도 <타인은 지옥이다>는 그 소름끼치는 에덴고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하려는 공포의 정체가 분명한 어떤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다. 도대체 이 에덴고시원이 주는 공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건 타인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우리네 사회가 주는 공포다. ‘이웃’이라고 불리지만, 상대방의 경계를 지켜주지 않고 훌쩍 침범해 들어오는데서 느껴지는 공포.

 

고시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렇다. 작은 판때기 같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옆방에서 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이 공간은 경계가 지켜지지 않는다. 좁은 복도는 지날 때 서로 피해주지 않으면 어깨가 부딪치지만 처음 이 곳에 들어온 윤종우와 맞닥뜨린 조폭 아저씨 안희중(현봉식)은 그의 어깨를 치고는 오히려 신경질을 낸다. 전화 받는 소리에 문을 두드려 “여기서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고시원이 얼마나 자신의 공간이 지켜지지 않는가가 드러난다.

 

그렇게 사생활 자체가 지켜지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일이지만, 그 곳에 함께 사는 이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건 그 불편함을 공포로 바꿔놓는다. 다리에 전자발찌를 찬 채 대놓고 윤종우를 쳐다보는 변태 홍남복(이중옥)이나, 말을 더듬으며 계속 웃는 변득종(박종환)과 그 쌍둥이, 이상한 가방을 들고 다니며 괴력을 가진 유기혁(이현욱), 심지어 삶은 계란을 자꾸 먹으라는 주인아주머니 엄복순(이정은)까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경계가 지켜지지 않는 건 고시원만이 아니다. 대학 선배 형인 신재호(차래형)는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켜줬다는 이유로 윤종우를 제 맘대로 부리려 한다. 함께 술을 마시며 제멋대로 윤종우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마구 해대고, 집에 가겠다는 윤종우를 위압적으로 불러세워 2차 가자고 종용한다. 그 회사 사람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사수가 된 박병민(김한종)은 열등감이 가득한 인물로 회사 동료들의 관심을 받는 윤종우에게 회사 대표랑 형 동생 사이라고 “나대지 말라”며 욕을 한다.

 

심지어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도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택시 기사다. 우리가 무시로 겪는 이런 일들이 사실은 무례이며 나아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걸 이 드라마는 은연 중에 드러낸다. 에덴고시원이라는 공간의 공포는 그래서 우리네 사회가 가진 불안감과 공포의 상징 그 자체로 보이는 면이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그래서 결코 기분 좋을 수 없는 공포를 그려낸다. 보면 볼수록 섬뜩하고, 끔찍하다. 하지만 그 공포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네 사회가 가진 불안감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우리가 길거리에서나 혹은 공공시설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볼 때 느끼는 그 불안은 결국 서로의 공간이 존중되지 못하는 삶의 환경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그 불안감은 분노로 바뀌어 누군가를 공격하게 되기도 한다. 윤종우가 보여주는 공포감과 분노가 그러하듯이.(사진:OCN)

‘사자’, 사제복 입은 슈퍼히어로 과한 건 득일까 실일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사자>는 개봉 첫 주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겨냥한 텐트폴 영화로서 그렇다고 많은 수치도 아니다. 같은 날 개봉한 <엑시트>는 벌써 290만 관객을 넘기고 300만 관객을 앞두고 있다.

 

<사자>가 <엑시트>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르적 색깔이 뒤로 갈수록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엑시트>도 재난에 가족드라마, 코미디가 뒤섞여 있지만 그 균형이 꽤 괜찮다. 하지만 <사자>는 오컬트 장르와 슈퍼히어로물을 섞어 높았지만 어딘지 과한 느낌이 있다.

 

아마도 <사자>를 보려는 관객들은 이 작품이 <검은사제들> 같은 오컬트 장르일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라는 캐릭터가 바티칸에서 온 구마사제 안신부(안성기)와 함께 구마의식을 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 영화는 순간 <아이언 피스트> 같은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실체를 드러낸다.

 

<검은사제들>의 구마의식이 액션이 아니라 오컬트 장르가 주는 오싹한 악령들과의 영적인 대결이었던 걸 떠올려보면, <사자>는 오히려 액션이 전면에 등장한다. 실제로 이 영화의 장르 구분을 보면 미스터리, 액션, 판타지, 공포가 혼재되어 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영화가 어느 순간 톤을 넘어 과한 판타지로 넘어가는 지점이 되면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생겨난다.

 

용후가 점점 자신의 특별한 힘을 알아가고 키워가는 동안, 안신부가 잡으려 하는 악을 퍼뜨리는 검은 주교 지신(우도환)의 힘도 덩달아 커져간다. 그래서 결국은 이 거대한 두 힘이 맞붙게 되는데, 그 장면은 영락없는 ‘철권’ 같은 액션으로 채워진다. 인간의 모습을 뛰어넘는 괴물로 변신한 지신과 완벽한 슈퍼히어로의 한 판 액션.

 

영화의 과한 설정을 그나마 누그러뜨리고 끝까지 이어가는 힘은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김주환 감독의 전작에서도 함께 했던 박서준은 그 바르고 조금은 둔감한 모습으로 이 영화가 오컬트의 공포로 빠져드는 걸 막아준다. 보기에도 섬뜩한 악령들의 모습 앞에서도 “그게 뭐?”라고 할 법한 무감한 반응은 관객을 충분히 안심시켜주는 면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오컬트에서 액션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건 전적으로 박서준의 안정적인 그 표정연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너무 과해 현실성을 넘어서는 상황과 설정들을 끝내 끌어당겨 땅바닥에 붙여 놓는 안성기의 안정적인 연기가 더해졌다. 실로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툭툭 농담을 던지는 생활연기(?)를 선보이는 안성기의 존재는 <사자>가 가진 약점들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린 중요한 요인이 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퇴마사와 격투기 선수를 붙인 캐릭터는 흥미로울 수 있었지만, 어째서 반전이 있는 이야기에 공을 들이기보다 액션 볼거리로 나갔을까. <사자>는 엔딩에 사제로 돌아올 용후의 이야기가 또 이어질 거라는 여운을 남겨 놨다. 혹여나 후편으로 올 것이라면 좀 더 이야기를 치밀하게 꾸려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화려한 볼거리는 물론 여름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것이긴 하지만.(사진:영화'사자')

‘호텔 델루나’, 여름 시즌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한 건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신세대 <전설의 고향>이 아닐까. 무더운 여름 밤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만들고 때론 그 귀신들의 사연에 눈물짓게 했던 전설의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그 시대적 배경으로 현대로 잡았을 뿐, 그 이야기 소재들은 사뭇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영혼결혼식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는 단적인 사례다. 억울하게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하는 영혼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전설의 고향>에서 ‘귀녀’라는 제목으로 다뤄진 바 있다.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죽은 처녀총각의 한을 달래기 위해 이승을 떠난 짝을 찾아 영혼결혼식을 치러주던 풍습을 다룬 이야기.

 

이 이야기가 <호텔 델루나>에서는 신세대 호러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영혼결혼식을 치르게 하려 죽은 여인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 주머니에 담아 풍등으로 날려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그 주머니를 발견한 사람이 그 귀신과 결혼을 해야 하는 으스스한 사건으로 전개됐다.

 

델루나 호텔의 유일한 인간인 구찬성(여진구)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장만월(이지은)이 자신과 함께 지내는 형 산체스(조현철)로 하여금 그 주머니를 발견하게 만들자 스스로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그 죽은 여인과 영혼결혼식을 치르려 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장만월이 그 여인이 사랑했던 진짜 남자를 찾아내 구찬성 대신 그 결혼식을 치르게 만든다.

 

<전설의 고향>에서 자주 다뤄졌던 영혼결혼식의 에피소드는 그래서 공포와 더불어 스릴러적 요소를 더하게 됐고 여기에 구찬성을 생각하는 장만월이나, 죽은 여인의 애틋한 사연까지 더해진 멜로적 요소도 추가되었다. 게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반전 이야기도 더해졌다. 알고 보니 영혼결혼식을 하게 했던 부모가 죽은 여인의 부모가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남자의 부모였다는 것. 죽은 여인 때문에 같이 생사를 오고가는 위치에 놓이게 된 남자를 살리기 위해 부모가 다른 이와의 영혼결혼식까지 치르게 하려 했던 것이었다.

 

결국 이야기는 우리 식 <전설의 고향>의 마음 착한 귀신들(?)의 에피소드로 끝을 맺었다. 죽은 여인이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밀어내 그를 살리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이별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결론은 향후 장만월과 구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결국 죽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장만월을 보내주려 나타난 존재가 바로 구찬성이라는 것이다.

 

고목으로 존재하던 나무에 잎이 피어난 건 그 운명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잘 들여다보고 돌보다가 잘 보내봐”라는 장만월의 이야기에 저 영혼결혼식을 포기하고 떠나는 여인과 같은 쓸쓸함이 묻어나는 건 그래서다.

 

<호텔 델루나>는 그래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마치 <전설의 고향>처럼 저마다의 사연들을 담아내며 공포와 웃음과 먹먹함을 전해주면서도, 지금의 로맨틱 코미디나 판타지 장르로 재해석된 느낌을 준다. 세련된 장르적 포장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이, 여름철이면 우리를 오싹한 공포와 감동으로 몰입시켰던 과거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우울한 현실 위로하는 '호텔 델루나'의 독특한 판타지

 

과연 구찬성(여진구)은 장만월(이지은)을 구원할 것인가.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은 삶과 죽음을 벗어나 있는 존재다. 그는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묶여버린 채, 천년 넘게 죽지 못하고 살아왔다. 물론 살아있다고 해도 그것을 삶이라 부르기 어렵다. 오래 전 그가 사랑했던 고청명(이도현)이 오기를 그는 기다린다. 한 자리에 붙박여 고목이 되어 잎 하나 내놓지 못하는 나무는 그래서 장만월 자신이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세워진 호텔 델루나 역시 장만월의 모습 그대로다. 그 곳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찾는 곳이다. 장만월은 그들을 ‘힐링’시키고 그렇게 이승의 원을 지워준 후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 곳은 실제 구청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걸쳐져 있는 곳.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죽어 있지만 살아있는 건, 고목이나 호텔 델루나나 장만월이나 마찬가지다.

 

그 곳에 구찬성이 들어온다.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장만월이 그에게 일종의 저주를 내린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끔찍하게 죽은 귀신들의 형상은 가뜩이나 마음 약한 구찬성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호텔 델루나나 그 곳을 그대로 닮은 장만월, 그리고 어두운 곳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고목 또한 구찬성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구찬성은 그 평범한 인간이 가진 착한 심성으로 그 공포를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은 이 곳을 찾는 원귀들의 무섭게 일그러진 형상 그 너머에 담겨진 저마다의 사연들을 듣기 시작하면서다. 두 눈이 없는 원귀는 그래서 공포로 다가오지만 그가 살아생전에는 차츰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는 연민의 존재로 바뀐다.

 

그리고 그 눈이 없는 원귀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손길을 기억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자 구찬성은 자신의 손을 빌려 그 손길을 준 사람을 찾아준다. 하지만 장만월은 그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귀가 그렇게 믿고 싶은 기억일 뿐, 실상은 살려 달라 내민 손을 뿌리친 뺑소니범의 손길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원귀가 그 뺑소니범을 해코지하려 할 때 구찬성은 자신을 던져 그걸 막아준다. 그런 복수가 결국 원귀를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뺑소니범을 뒤늦게 경찰에 넘기고 구찬성이 하는 이야기다. 원귀가 그 뺑소니범이 뿌리친 손길을 애써 ‘따뜻한 손길’로 기억하려 했던 건 바로 그 원귀 자신의 따뜻한 심성 때문이었다는 것. 현실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존재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그 억울함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구찬성 같은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호텔 델루나>는 죽은 공간에 피어나는 잎과 꽃을 이야기한다. 그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원망과 아픔만을 떠안은 죽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판타지란 결국 현실의 결핍 위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판타지적 존재로 서있는 건 그래서 장만월이 아니라 구찬성이다. 구찬성은 그 죽음 같은 현실 위에 따뜻한 온기를 하나씩 던져 넣는다.

 

고목에 잎이 피어나고, 장만월의 사막 같은 마음에 조금씩 촉촉함이 생겨나며, 호텔 델루나가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공간에서 밝은 삶의 에너지가 더해지는 과정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기묘한 힐링 포인트다. 처음에는 공포의 존재로 귀신을 보며 화들짝 놀라기만 했던 구찬성이 이제 그 귀신들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깨지고 망가진 형상을 가진 귀신들은 그래서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대신 현실에서 어떤 억울한 사연들을 갖고 찾아온 아픈 존재들이다. 아마도 우울한 현실에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운 대중들이라면 그 아픈 존재들에 이입할 수 있을 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공간에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그 존재들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구찬성이 구원의 존재처럼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