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페레그린>의 명불허전 팀 버튼식 상상력

 

역시 팀 버튼이다. 기괴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귀여운 상상력. 팀 버튼이 아니면 도무지 구현해내기 어려웠을 세계가 바로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하 미스 페레그린)>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 혹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현실 바깥에 이상한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모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 구조는 <미스 페레그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범을 거부하는 별종들과 그 별종들에 대한 팀 버튼식의 독특한 시각이 들어가 있다.

 

사진출처:영화<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가만히 있으면 몸이 붕 뜨기 때문에 납덩이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하는 소녀, 심장을 넣어 인형을 맘대로 조종하는 소년, 날카로운 이빨이 숨겨진 입이 머리 뒤쪽에 있는 아이, 식물들을 순식간에 키워내는 능력을 가진 아이 등등. 이 별종의 아이들은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의 보호 하에 같은 시간에 멈춰서 반복되는 하루를 계속 살아간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를 뒤쫓다 이 세계로 들어온 제이크는 이 별종의 아이들을 쫓는 괴물들 할로게스트의 위협과 맞서게 된다.

 

팀 버튼의 성향이지만 여기에도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부딪친다. 이 별종의 아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어른의 형상을 한 할로게스트들은 이들을 잡아먹음으로써 괴물이 된 자신들을 회복시키려 한다. 할로게스트였던 괴물들은 그래서 아이들의 눈알을 뽑아 먹어 조금씩 사람의 형체로 돌아오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이미 그들이 괴물이라는 걸 말해준다. 제이크는 평범한 세계에서 지극히 평범한 소년으로 자신을 여기며 살아왔지만 이 특별한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 역시 별종이라는 걸 알게 되고 이 괴물 같은 어른들과 맞서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다. 이 제이크라는 소년이 조금씩 이상한 세계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별종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 명씩 병렬적으로 소개를 통해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루함을 어떤 긴장감으로 끌고 가는 건 다소 팀 버튼식의 유머가 곁들여진 공포다. 아마도 이런 초반부의 느릿느릿한 행보는 팀 버튼에게 이 별종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깃들인 상상력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일 게다. 그 캐릭터들의 독특함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미스 페레그린이 이 할로게스트의 수장에게 잡혀가고 그저 별종으로만 보였던 아이들의 능력이 하나하나 모여져 이 괴물들과 맞서는 힘이 되어가는 영화 중반부터 몰입감은 상상 그 이상이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별종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낸다. 팀 버튼 자신도 그랬을 테지만 보통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는 존재들이었을 별종들이 사실은 조금 우리와 다를 뿐 이상한 존재들은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리고 이 별종에는 팀 버튼 같은 이상한 상상력을 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이 세계를 경험하는 제이크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만을 강요하는 그의 아빠는, 그래서 저 이상한 세계의 별종들을 잡아먹어 자신들의 목적(영생)을 달성하려는 할로게스트와 비슷하다. 결국 이야기는 아빠가 강요하는 보통의 세계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삶을 제이크가 조금씩 벗어나 별종이라고 불릴지라도 그 이상한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상상력의 자유를 주창한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이 영화에 빠져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만을 강요받던 우리에게 이들 캐릭터들은 우리 역시 어떤 때는 그런 별종들을 상상했었다는 걸 환기시켜준다. 몸이 저절로 허공으로 붕 뜨는 그런 상상력. 현실에 발 딛고 무겁게 살아가다 점점 잊어버리게 됐던 그 상상력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즐거움이라니. 역시 팀 버튼다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728x90

<싸우자 귀신아>, 인물의 매력 없이 이야기는 의미 없다

 

tvN <싸우자 귀신아>는 어째서 갈수록 힘이 빠질까. 이야기의 흥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귀신 보는 남자와 귀신의 썸이란 설정 또한 독특하다. 게다가 매 회 귀신과 육박전을 방불케 하는 액션도 볼거리다. 귀신 보는 남자와 귀신이 짝을 이뤄 귀신을 물리치고, 둘 사이에 밀고 당기는 청춘 멜로도 있으며, 또 귀신보다 더 소름끼치는 인물의 미스테리하고 공포스러운 행적이 깔려 있어 그와의 일전 또한 기대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데 <싸우자 귀신아>는 이상하게도 끌리지는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싸우자 귀신아(사진출처:tvN)'

첫 회 시청률 4.055%(닐슨 코리아)로 시작하며 잔뜩 기대감을 줬던 <싸우자 귀신아>는 지금 3.4%로 떨어졌다. 물론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싸우자 귀신아>의 경우 시청자들이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요소들이 그다지 잘 보이지 않는다. 전작이었던 <또 오해영>을 떠올려 보라. 평이해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였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남자 주인공의 설정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다음 회를 꼭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싸우자 귀신아>는 그 흐름이 너무 평이하다. 즉 매회 귀신이 출몰하고 퇴마를 하며 두 사람의 밀당이 반복된다. 박봉팔(옥택연)이 대학 선배인 임서연(백서이)을 짝사랑하고, 그런 박봉팔을 귀신 김현지(박소현)가 따라다니며 질투하며 그들 사이에 어딘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주혜성(권율)이 끼어 있는 멜로 구도는 그것이 귀신이 엮여있다는 점에서 참신하게 해석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멜로 구도 역시 평이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박봉팔이나 김현지에게서 그다지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박봉팔이란 인물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지 좀스러워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인물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아픔이 느껴지는 캐릭터도 아니고 타인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귀신을 보고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가진 캐릭터의 특징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끌 수가 없다.

 

김현지 역시 마찬가지다. 상큼 발랄한 귀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은 좋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만큼 끌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로서 동 세대의 여성시청자들이 공감할만한 요소들이 그리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귀신이니 취업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그런 캐릭터도 아니다.

 

오히려 <싸우자 귀신아>에서 살아있는 캐릭터는 감초 역할을 하고 있는 어설픈 미스테리 동아리 회장 최천상(강기영)과 부회장인 김인랑(이다윗)이다. 이 두 사람은 선배지만 박봉팔 앞에서는 마치 후배처럼 소심해지고, 귀신을 추적하지만 막상 귀신 앞에서는 오금을 저리며, 어딘지 불쌍하지만 그래서 웃음이 나는 감초 콤비로 드라마에 톡톡한 매력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캐릭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연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옥택연이나 김소현은 무난하게 연기를 해내며 성장하는 연기자들인 건 맞지만 아직 둘 다 주연으로서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기에는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 주인공은 어쨌든 드라마의 끌림을 만들어내는 매력을 그 캐릭터의 면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위치다. 하지만 옥택연과 김소현의 연기는 그만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건 캐릭터 문제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는 스토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스토리보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의 매력이다. 스토리가 참신하지 못하다고 해도 캐릭터가 참신하면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아무리 기상천외해도 캐릭터가 참신하지 못하면 드라마가 힘을 받을 수가 없다. <싸우자 귀신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캐릭터의 매력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728x90

<부산행>이 좀비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우리 현실

 

영화 <부산행>의 주인공은 좀비들이다라는 말은 그저 하는 빈 말이 아니다. 이 영화는 확실히 그 어떤 좀비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역동적인 좀비들을 보여준다. 만일 약간의 유머 코드를 통해 읽어내는 관객이라면 이 좀비들을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를 연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부산행>의 좀비들은 엄청나게 다이내믹하다.

 

사진출처:영화<부산행>

물론 느릿느릿 걷던 좀비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한 건 이미 다른 좀비 영화들에서부터였다. 최근 좀비 영화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월드워Z>의 좀비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부산행>이 좀비들은, <월드워Z>의 좀비들이 더 스케일도 크고 숫자도 천문학적으로 많지만, 훨씬 무시무시하고 생생하다.

 

그건 아마도 CG에 너무 의지하기보다는 100여 명의 연기자들이 연습을 통해 직접 뛰어다니며 만든 좀비 연기의 결과일 것이다. <월드워Z>CG로 만들어진 좀비들이 어딘지 게임적인 느낌을 줘 오히려 공포감을 상당부분 덜어내 준다면, <부산행>의 좀비들은 직접 몸으로 뛰는 노동에 의해 만들어져서 어딘지 인간적인 느낌이 묻어나 더욱 공포스럽다.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좀비물이라는 점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노동으로 만들어진 좀비들은 그 자체로 <부산행>이라는 영화에 우리 식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재미있거나 의미를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는 많은 여지들을 담고 있다. 일단 부산까지 시속 3백킬로로 달려가는 KTX라는 이 영화의 공간이 그렇다. 그건 다름 아닌 속도로 대변되는 우리네 사회를 고스란히 표징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 발병자가 열차에 타고 그 후 물고 물리는 아비규환이 순식간에 벌어지면서 도저히 그 열차의 좁은 공간을 견뎌내기 힘들 정도라는 듯 앞으로 치고 나오는 좀비들의 양적 증가는 누가 봐도 이른바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의 속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어떤 집중이 생겨나면 군중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몰려들고 소비하는 그 모습을 <부산행>의 좀비들로부터 연상하는 건 그래서 어렵지 않다.

 

중간에 유머 코드로 들어가 있는 오 필승 코리아같은 월드컵 송과 그 노래에 맞춰 달려드는 좀비들의 장면에 관객이 웃음을 터트리는 건 그래서다. 또한 남자 주인공인 석우(공유)가 펀드매니저이고 그의 입으로 개미들을 언급하는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도 <부산생>이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틀을 가져와 전반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네 사회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관객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비들은 공포감을 주는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영화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하면 그들에 대한 공포감은 조금씩 사라진다. 대신 어떤 연민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공포를 만드는 존재들은 좀비가 아니라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이기적으로 돌변하는 사람들이다. 즉 속도와 엄청나게 불어나 한쪽으로 쏠리는 군중을 닮아있는 좀비들이 우리네 사회의 근원적인 불안감을 그려내지만 진짜 공포는 그 불안감 위에서 좀비보다 더 이기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에서 생겨난다.

 

여기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건 세월호 참사 같은 것들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두려움에 떨 동안 혼자 살아남은 어른들이 주는 섬뜩한 공포. <부산행>의 석우가 오로지 가족만을 챙기고 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물이라는 건 이 영화가 세우고 있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낸다. 그는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부산행>의 주인공은 공유지만 영화에서 관객들이 마동석을 지지하고 그가 마치 진짜 숨겨진 주인공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 펀드 매니저라는 그럴싸해 보이는 직업을 가진 석우보다 더 사람들을 챙기고 구하려 온몸을 던지는 상화(마동석)가 서민들의 영웅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괜히 머리 쓰지 않고 몸과 몸으로 부딪치는 그 모습은 관객들을 웃고 울고 통쾌하며 비통하게 만든다.

 

좀비물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징일 수 있지만 <부산행>은 유독 우리네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적인 면면들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다. 영화는 좀비물의 장르적 재미(그것도 우리식의 해석이 주는 재미들)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이런 영화 곳곳에 숨겨진 풍자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이토록 빛날 수 있었던 것도 그 안에 숨겨진 풍자와 그의 캐릭터가 기막히게 조우하는 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728x90

<싸우자 귀신아>, 멜로-공포-액션에서 길을 잃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는 도대체 장르의 정체가 뭘까. 귀신과 인간 사이의 멜로? 공포? 퇴마 액션? 그것도 아니면 코미디? 물론 요즘처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복합장르의 시대에 이런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로와 공포와 액션 그리고 코미디가 엮어지는 복합장르라면 그 모든 장르적 요소들이 살아나야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싸우자 귀신아>는 그런 복합적인 장르들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을까.

 

'싸우자 귀신아(사진출처:tvN)'

이질적인 요소들로 보여도 공포는 멜로와도 또 코미디나 액션과도 잘 어울리는 장르다. <스위니 토드> 같은 작품은 대표적이다. 공포가 주는 긴장감은 남녀 주인공 사이의 사랑이야기를 더 절절하고 쫄깃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론 <무한도전> 귀곡성 특집이 보여주듯 공포에 절절 매는 모습만으로 폭소를 유발해내기도 한다. 물론 <퇴마록> 이후 많은 퇴마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액션과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싸우자 귀신아>는 어딘지 이야기가 겉도는 느낌이다. 박봉팔(옥택연)과 김현지(김소현)의 멜로는 그리 강렬하지 않고, 또한 둘 사이에서 이뤄지는 코미디적 요소도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CG를 통한 공포와 액션에 상당히 공을 들인 면이 잇는데 이렇게 드라마적인 요소 없이 강화된 공포와 액션이란 사실 볼거리에 치중되기 마련이다. 결국 남녀 주인공 간의 케미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는 <싸우자 귀신아>는 눈요기는 돼도 감정이입은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옥택연이 연기하고 있는 박봉팔이라는 캐릭터다. 웹툰이 그리고 있는 박봉팔은 드라마와는 달리 찌질함과 외로움 같은 요소들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어딘지 귀신 소녀 김현지 앞에서 조금은 어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점은 공포와 멜로, 코미디에서 모두 괜찮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즉 그 찌질함과 외로움이 하나의 장애요소가 되어 상황과 관계들을 더 흥미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박봉팔은 이미 퇴마 능력을 갖춘 근육질의 잘 생긴 남자다. 사실 귀신과 싸우거나 남녀 간의 멜로에 있어서 그다지 어려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첫 회 박봉팔과 귀신 소녀 김현지가 만나는 장면은 그래서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했고 대신 무협을 보는 듯한 액션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악플에 상처받아 자살한 원귀와 싸우는 대목에서도 박봉팔은 귀신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완력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캐릭터와 그 심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멜로와 코미디에서 확실한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싸우자 귀신아>는 공포 액션물처럼 보여지는 면이 있다. 이것은 많은 시청자들이 <싸우자 귀신아>에서 보기 원하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전작이었던 <또 오해영>이 거둔 성과를 생각한다면, 그 차기작으로서 그 편성시간대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을까.

 

첫 회 시청률이 4.055%(닐슨 코리아)나 나왔다는 건 여러 모로 <또 오해영>이 만들어낸 tvN 월화드라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불안했던 시청률은 3회 만에 3%대로 떨어진 것은 기대만큼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볼거리가 아니라 좀 더 심리적인 요소들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싸우자 귀신아>의 원작 웹툰 팬들도 또 <또 오해영>으로 tvN 월화드라마를 기대하는 팬들도 다시 끌어 모을 수 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