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도 피해가지 않는 멜로의 족쇄

 

사랑해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강동주(유연석)가 윤서정(서현진)에게 불쑥 그렇게 말하자 윤서정은 오글거림을 못 참겠다는 듯 그러지 마라하고 정색한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윤서정. 그래서 병원사람들이 눈치를 챈 것 같다며 두 사람은 짐짓 대판 싸우는 모습을 가짜로 연출하기도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드라마 첫 회부터 강동주의 마음이 윤서정에게 있었다는 건 다소 급작스럽게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달달한 상황이 언젠가 시작될 거라는 건 시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달해진 <낭만닥터 김사부>에 남는 아쉬움은 뭘까.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사회성 같은 것들이 이 달달한 멜로에 의해 희석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듯이 김사부(한석규)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의사의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이 귀기울여야할 이야기들을 그 기획의 의도로 갖고 있다. 그간 김사부가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이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는 돌담병원이라는 현실의 축소판 같은 공간을 통해 기득권 세력들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고발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벌어진 위기 상황을 통해 제대로 된 콘트롤 타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답답한 시국에 이런 이야기들은 그 울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낭만닥터 김사부>도 역시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피해갈 수 없는가 보다. 그것이 이야기상 개연성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멜로보다는 좀 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건 왜일까. 사적인 멜로가 주는 달달함이 지독한 현실을 접하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동주와 윤서정의 달달한 멜로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느슨해졌다. 긴박하게 굴러가던 돌담병원의 응급실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강동주와 도인범(양세종)이 수술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보다 강동주와 윤서정의 멜로 상황과 그걸 눈치 채고는 눈을 찡긋 해주는 오명심(진경)이나 기묘한 눈빛을 던지는 장기태(임원희)의 다소 코믹스런 장면들이 더 많이 채워졌다.

 

이렇게 되면서 바로 드러나는 건 김사부의 분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김사부는 신회장(주현)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수술을 접으려고 하고 그러다 결국 신회장 스스로가 수술 강행을 결정함으로써 상황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강동주와 윤서정 멜로의 급 전개는 김사부를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다.

 

물론 이건 잠시 쉬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몰아치며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을 통해 통쾌한 김사부의 일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너무 느슨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멜로는 당연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이 드라마가 지향하려는 방향성을 매회 잊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조금은 쉬어가는 달달한 멜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낭만닥터>, 과잉도 설득 시킨 이철민의 연기

 

조폭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서현진) 목에 낫을 들이대고 수술실에 난입한 사내(이철민)는 김사부(한석규)가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자 그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범한 강간범이라고 말했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와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응급환자 사이, 김사부는 짐짓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사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늦게까지 택배 돌리는 사이에 우리 와이프랑 딸애가 있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그 때 우리 와이프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내 딸은 내 딸은 겨우 11살이었는데 저 새끼가... 근데 저 새끼 형량이 얼만 줄 알아? 겨우 3년이야 초범이라고. 심지어 2년 만에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초범에 모범수라고. 이게 말이 돼? 그 일로 우리 와이프는 유산을 했고 내 딸 아린이는 평생을 대변 줄을 옆에 차고 살아가야 되는데 근데 저 새끼는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사실 이전 회에서 이 사내는 조폭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응급실에서 영양제를 놔달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 깨끗이 처리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조폭이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그리고 수술실까지 들어와 낫을 들고 위협하며 수술을 멈추라고 하는 대목이나 이런 시골병원에서 총으로 중무장한 기동타격대가 들어오는 장면들은 너무 과한 느낌을 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과잉을 털어 내준 건 그 과잉된 스토리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전해지면서다.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는 사내에게 김사부에게 그래서 당신이 직접 벌을 주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사내는 울분을 토해낸다. “이 나라 법이 개떡 같은 걸 어떡해. 나라도 해야지. 내가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돈도 못 벌고 가난하고 힘도 없고 무능한 아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나라도 나서서 저 새끼 죗값을 받아내야 할 거 아냐? 나라도!”

 

여기서 이철민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겨우 10분 남짓의 시간만으로 과잉된 비현실적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핏발이 선 눈빛과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대는 모습은 물론이고 땀을 철철 흘리며 그 긴장된 상황을 연기하는 이철민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역이라고 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연기가 우리네 서민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과잉된 설정으로 인해 한 편의 우화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우화나 만화 같은 상황이 지향하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존재할 때다. 이철민이 연기한 부분은 분명 개연성으로만 보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전하려는 가난한 아빠의 울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잉을 덮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철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낭만닥터>에 탑승하게 된 게 행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낭만닥터> 제작진 측에서는 이철민을 캐스팅한 게 행운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한 아버지의 치료를 중지하라는 가난한 집안의 한 아들이 하는 토로 역시 마찬가지 느낌을 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윤서정의 말에 사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절망을 이야기 한다. “그건 있는 사람들 팔자 좋은 소리고 우린 돈이 없다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저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남은 가족은 평생 병원 치료비 갚다가 죽으란 소리야 뭐야. 어차피 깨어나지도 못할 거 저렇게 힘들 게 살아서 뭐하냐고?”

 

거기 누워 있는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고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가 바로 아들이라는 점은 이 비극적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분명히 해준다. 결국은 돈이다. 생명보다 우선하는 돈. “네 아버지 평생 니들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셨어. 근데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것도 못해드려? 네 아버지 그 정도 대우도 받을 자격 없는 거야 니들한테? 그래 돈 없지. 그 원수 놈의 돈.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래도 네 아버지 눈이라도 한번 뜨게 해드리고 싶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과장된 상황들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마치 게임적인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이런 비현실을 채워주는 건 갖가지 사연들을 갖고 들어오는 서민들이 전하는 현실적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관건은 결국 이 과장된 상황과 현실적 공감대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양다리 사이에서 <질투>는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삼각관계의 관점이 독특한 드라마였다. 즉 보통의 삼각관계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주인공이고 제3의 인물이 그 사이를 방해하는 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꾸로 사랑하는 남녀를 옆에서 바라보며 아파하고 질투하는 제3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화신(조정석)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3년 간 자신을 따라 다닐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화신이 표나리(공효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가 그녀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서다. 자꾸만 그들이 눈에 밟히고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대고 아파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이화신은 홀로 먼발치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화신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가슴이 아파 아이처럼 투덜대고 지질하게 구는 그에게 연민과 동시에 귀여운 매력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속내를 표나리와 고정원에게 들킨 후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친구와 주먹다짐까지 하다가 셋이 함께 사는 기묘한 동거까지 하게 되면서 표나리의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고정원에게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하던 그녀가 이화신이 혜원(서지혜)과 키스를 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이화신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뒤집어진다. 이제 이화신을 향해 표나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고, 표나리는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를 떠난다. 이화신과 표나리가 밀고 당기며 서로의 애정전선을 확인하고 있는 달달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고정원에게 다시 기울어진다.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혼자 버림받은 그가 못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패자의 입장에서 어떤 연민의 대상이 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었던 이화신이지만 이제 그 입장은 고정원이 갖게 됐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이 아쉬워지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 삼각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복잡하게 됐다. 물론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 이미 적시되어 있듯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화신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독특한 사랑(질투하며 사랑하는)의 주인공은 고정원쪽으로 옮겨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의 전개가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이제 고정원과 이화신 모두가 꽤 괜찮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결코 쉽게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해피엔딩이면 다른 한쪽은 새드엔딩이 되니까.

 

이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딜레마지만 동시에 그건 이 독특한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을 담아낸 사랑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이 동시에 투영된 사랑. 그래서 균형 잡기가 어렵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얽힌 관계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봐왔던 무수한 해피엔딩 뒤에도 숨겨진 새드엔딩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드라마라니

<판타스틱>, 주상욱 판타지가 통하는 까닭

 

나 우주대스타 류해성 유서를 남긴다. 이소혜와의 지난 100년은 행복했다. 12명의 자식들과 50여명의 손주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너희들과 함께 한 시간 즐거웠다. 100편이 넘는 훌륭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기뻤고 특히 시작과 끝을 갓소혜 작가의 작품으로 할 수 있어서 우주 최고로 행복했다. 30여개의 남우주연상 감사합니다. 특히 오스카는 기억에 남네요. 아 칸느와 베니스 영화제도 좋았습니다... 제니퍼 로렌스, 스칼렛 요한슨을 비롯한 할리우드 여배우들 이제 나 좀 그만 미워해. 나한테 이소혜 뿐인 걸 어떡해.’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유서라고 하면 어딘지 침울해질 것 같지만 이 남자 유서로도 웃긴다.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의 류해성(주상욱)은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소혜가 쓴 유서를 보고는 자신도 유서를 남긴다. 그런데 그 유서 내용이 엉뚱하다. 그건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유서를 빙자해 앞으로 올 미래를 마음껏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서를 통해 현재를 정리하기보다는 미래를 계획한다. 향후 100년은 이소혜와 행복하게 살 것이고, 우주대스타라는 칭호에 걸맞게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고.

 

물론 그건 꿈같은 이야기고 현재의 발연기를 살짝 넘어서 그나마 손연기정도를 하고 있는 류해성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한 바탕 마음껏 상상해보는 건 자유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읽어본 사랑하는 사람이 유서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류해성의 말도 안 되는 유서는 그래서 말이 된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비장함을 한결 덜어내는 일이 유서를 미리 써보고, 관 체험을 하는 이른바 웰다잉의 전제조건이니.

 

<판타스틱>이 암 선고를 받은 이소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어두워지고 무거워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가 쓰러지고 상태가 안 좋아지만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여기 류해성이라는 발연기 자칭 우주대스타라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긍정적이고 밝은 데다 심지어 자기애가 우주적이라 함께 있는 사람들을 결코 비장함이나 진지함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마음 아파하고 힘겨워 할 수 있는 상황들을 그는 애써 밝게 만들어낸다.

 

이소혜의 무거움을 류해성의 가벼움으로 중화시키는 <판타스틱>의 균형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이 깨지게 되면 지나치게 무거움 속으로 가라앉거나, 혹은 너무나 가벼워 들여다볼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류해성을 발연기 액션 배우로 세운 점은 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가 만약에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정극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한없이 죽음이라는 무거움 속으로 침잠하지 않았을까.

 

만일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고 우리가 거기 주인공들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진지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일일 수도 있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진지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상황에서는 발연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무거움을 깨는 류해성의 발연기는 그 어떤 정극의 그것보다 더 유쾌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판타스틱>의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류해성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죽음으로 상정되어 있지만 그 같은 절박하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해성처럼 웃음을 주는 존재는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다. 힘겨워 유서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유서조차 미래에 대한 황당하지만 낙관적인 계획들로 채워주는 인물. 류해성이 가볍고 발연기를 하는 캐릭터라도 판타지로 다가오는 이유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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