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가 소개한 김동우 사진작가가 보여준 역사란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접고 2년 간 전 세계를 돌면서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이야기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8.15 광복절을 기념해 특집으로 기획한 '남겨진 이들의 역사'편에서 그는 그간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거기 담겨진 숨은 역사의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외의 독립운동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역사들이 어째서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사실 김동우 사진가가 이 일에 뛰어든 것 역시 바로 이런 안타까움을 충격적으로 접하고 나서였다고 한다. 인도 델리의 레드포트라는 곳을 찾아갔다가 그 곳에서 1943년 아홉 명의 광복군들이 파견되어 영국군들과 같이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데 놀랐다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요청에 보내진 그들은 적은 숫자지만 훈련 후 실제 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어 일본군에 대항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들이 참전한 데는 전후 연합군 참전국 지위를 얻어 독립을 주장하기 위함이라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그 사실을 접한 김동우 사진가는 너무 놀랐고 자신은 이런 역사를 "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다큐멘터리로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멕시코 살리나 크루즈 해변에서 수평선 저편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찍은 사진은 1905년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한인들의 아프지만 숭고한 역사가 담겨 있었다. 우리에게는 '애니깽'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 역사. 마침 경술국치로 돌아갈 고국이 사라진 이들은 그 곳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그가 어스름 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찍은 에네켄(애니깽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옴)이라는 선인장 사진은 새벽 5시면 나와 일을 했던 당시 선조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났다. 그분들은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숭무학교라는 독립군 양성학교를 만들었고,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모금 운동도 해나갔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만나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 사진들 속에는 인물을 흐릿하게 지워지는 형상으로 담겨 있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교과서에 담겨있는 역사들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기록에조차 남겨져 있는 역사라면 어떨까.

 

만주 왕칭현의 동굴 벽에 그려진 태극기 사진도 그렇게 기록하지 않으면 지워질 지도 모르는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첩첩산중을 힘겹게 오르고 올라야 마주하는 그 동굴 벽에서 김동우 사진가는 그 태극기 벽화와 대한독립군이라는 지칭 아래 적힌 이름들을 마주하곤 목이 메었다고 한다. "나라가 뭐하고 이렇게 하셨을까 싶은데 그분들 덕에 지금이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교과서를 통해서만 접하던 당대의 역사는 만주와 상해만을 독립운동이 벌어졌던 곳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김동우 사진가가 사진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하와이 같은 곳에서 벌어졌던 우리네 최초의 공군을 시도했던 현장들에는 푯말 하나 남아있지 않아 그 역사 자체가 지워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김동우 사진가의 사진은 그래서 우리가 봐온 역사가 얼마나 반쪽짜리였던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런 기록과 이를 통한 기억이야말로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이런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인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김동우 사진가의 사진에 담긴 그 노력의 가치 앞에 유재석도 조세호도 깊은 공감을 하게 된 이유다.(사진:tvN)

'녹두꽃', 아베정권에게 전봉준 사진의 의미를 전해주고 싶다

 

“모두 고개를 드시오! 고개를 들고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시오. 그대들 눈에 눈물 대신 우리를 담으란 말이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란 말이외다. 우리를 기억하는 한 두 번 지진 않을 것이요!”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최무성)은 슬퍼하는 민초들에게 그렇게 외쳤다. 이제 죽어야할 길을 걸어가는 그는 끝까지 의연했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는 그 말은 어쩌면 <녹두꽃>이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였을 게다. 이미 역사 속에서 실패한 혁명으로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굳이 드라마로 재연하려 했던 뜻이 그것이었다. 그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전봉준은 우금티 전투에서의 참패에 대해서도 “실패했지만 틀리진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미 문명이라는 화려한 가면을 쓴 야만의 실체를 가진 일제를 꿰뚫어보고 있었고, 끝까지 자신을 회유하려던 매국노 백이현(윤시윤)에게 오히려 “넌 속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제의 행보를 ‘개항’이라 생각했던 백이현에게 다케다(이기찬)는 “왜 그리 순진하냐”며 그것이 결국은 영토 확장이었다는 걸 털어놓았다.

 

또한 전봉준이 백이강(조정석)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나 백이강 나아가 동학군들 모두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켰다. “장군헌티 녹두꽃이 만개한 시상을 보여드려야 허는디...”라는 백이강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전봉준은 이렇게 말했다. “녹두꽃은 내 이미 숱하게 보았다”고. 고부서부터 우금티까지 함께 했던 민초들이 이미 활짝 피어났던 녹두꽃이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녹두꽃>으로 다뤄지기 전까지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우리네 드라마들은 그다지 깊게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사책에 살짝 언급되어 있었지만 그 몇 줄의 기록이 어떤 의미들인지를 실감하게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동학농민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건 역사책에 담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결박되어 끌려가면서 찍은 사진.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보이던 그 의연하고 결연한 전봉준의 모습.

 

<녹두꽃>은 그 사진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사형 판결을 받고 돌아가는 전봉준의 모습을 송자인(한예인)이 사진 한 장으로 남기는 대목을 통해서였다. “전주에서 그러셨지요.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고요. 이제 모두가 장군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것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것은 백성이고 후손으로 태어날 자들이다.” 그 사진 한 장은 그래서 슬픔의 역사를 기록을 통해 기억하게 하는 역사로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아베정권의 행태는 이런 포장된 야만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걸 말해준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전봉준의 말과 사진 한 장의 의미가 더 남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이유다. 물론 근대로 회귀하려는 듯한 시대착오적 야만의 행태들은 역사가 말해주듯이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스스로의 목을 죄게 될 것이지만.(사진:SBS)

방탄소년단의 연이은 빌보드 1위가 말해주는 것

심상찮더라니 결국은 또 일을 냈다. 방탄소년단 이야기다. 지난 달 24일 발매된 ‘러브 유어셀프 결-앤서’ 앨범이 빌보드200 차트 1위에 오른 것. 이 기록은 지난 앨범인 ‘러브 유어셀프 전-티어’가 같은 차트 1위에 오른 후 연달아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새롭다.

미국 닐슨뮤직 집계에 따르면 이 앨범은 현지에서 6일 동안 실물로만 14만 1천 장이 나갔다고 한다. 올해 발매된 앨범 중 저스틴 팀버레이크, 숀 멘데스에 이어 세 번째 기록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기록은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그건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덤이 그만큼 공고하고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음원시장으로 거의 대치되다시피 한 현 상황 속에서 음반 매출은 팬덤의 크기와 거의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음악만을 듣기 위해 산다기보다는 팬으로서 인증의 의미를 갖는 구매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번 앨범은 팝의 본고장인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도 올라갔다. 타이틀곡인 ‘IDOL’이 한국 그룹으로서는 최고 기록인 21위를 차지한 것. 싱글차트 톱40에 우리네 그룹의 곡이 올라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도 방탄소년단의 저력이 점점 힘을 발휘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방탄소년단의 무엇이 이런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그저 단순히 SNS의 힘을 거론하지만, 거기에는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관련된 더 많은 함의들이 깔려 있다. 단지 플랫폼의 힘이 아니라, 방탄소년단 음악이 가진 ‘탈경계성’이 SNS의 특성과 잘 어우러진 비결이라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글로벌과 로컬, 언어의 장벽, 디지털과 아날로그, 힙합과 아이돌,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적인 면과 공적인 면,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와 시공간의 거리 같은 경계들을 해체시키는 음악적 성취를 보여왔다. 이런 경계의 해체는 그들의 군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집단으로 딱딱 맞추는 군무가 아니라, 때론 흩어졌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하나로 뭉쳐지는 군무는 개인과 집단의 경계를 허물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런 군무의 흐름은 방탄소년단 팬덤의 특징이기도 하다. 각자 저마다의 나라와 언어로 존재하면서도 어느 순간 한 지점으로 뭉쳐 폭발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가능한 건 SNS의 네트워크적 특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중심과 변방이 나뉘지 않는 상태로 놓여 있지만, 어떤 이슈가 한 지점으로 집중되면 거대한 흐름이 뭉쳐지는 그런 특성이 바로 SNS가 가진 힘이 아닌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IDOL’은 이런 경계 해체적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낸 방탄소년단의 곡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의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결론에 이르러 ‘아이돌’이든 ‘아티스트’는 상관 않는다며 그 안에 아프리카 비트에 북청사자 놀음과 EDM에 ‘얼쑤’를 곁들이며 ‘경계 해체의 축제’를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로 분명히 한 것. 방탄소년단의 연이은 빌보드 1위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러한 탈경계적인 그들의 음악에 이제 전 세계가 함께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시카고 타자기’, 전생과 현생으로 그려낸 역사의 기억, 기록

과연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이야기의 관심은 온통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단체의 수장 휘영(유아인)과 그의 절친 신율(고경표) 그리고 그 신율에 의해 저격수로 키워진 수현(임수정)은 알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묶여져 있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수현은 휘영을 그리고 신율은 수현을 사랑했지만 무슨 일인지 수현이 휘영과 신율 중 누군가에 총을 쏘았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이 전생의 인연은 현생으로 이어져 수현은 전설(임수정)이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 세주(유아인)와 다시 사랑으로 얽히고 갑자기 유령이 되어 나타난 신율(현생에서는 유진오, 고경표)은 세주와 함께 그 전생의 기억들을 소설로 써나간다. 한세주와 유진오가 소설로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면, 전설은 그 소설을 읽으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실 전생과 현생을 잇는 사랑이야기를 할 것이었다면 <시카고 타자기>가 굳이 일제강점기까지 시간을 되돌려 그 때를 전생의 시점으로 삼을 이유는 별로 없었을 게다. 그리고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비극적인 어떤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을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어떤 식으로든 <시카고 타자기>의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점과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시간의 장벽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전생의 부분들이 떠오르지만 그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유령인 유진오 역시 그들 인연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장벽. 그래서 이들은 그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행을 소설이라는 방법의 틀을 통해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시카고 타자기>의 초반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를 중심으로 그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가족인 줄 알았던 백태민(곽시양) 가족으로부터의 배신 같은 개인사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이 깃든 시카고 타자기와 그가 얽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전생과 연관된 현생의 이야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것이 이 본격적인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카고 타자기>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전생과 현생,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지점을 끌어온 것일까. 이런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건, 이 드라마가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는가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전생처럼 지워져버린 일제강점기의 기억들. 그래서 사료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교과서에 박제된 것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로 채워져 있는 기록들. <시카고 타자기>는 그것을 소설 혹은 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생생한 살아있는 역사로 담아내려는 노력 자체를 이야기의 모티브로 쓰고 있다. 

그것은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얽혀진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기억을 유예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역사적인 시간들이었으면 전생처럼 지워버린 기억으로나 남게 되었을까. 게다가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대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는 아픈 현실은 당대의 역사가 우리 손으로 왜곡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전설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그녀의 어머니는 20년 만에 그녀 앞에 나타나 세주와 엮여 전생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전설은 자신은 “어머니처럼 전생이 두려워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것을 직시하고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세주와 유진오가 기억을 되새겨 다시 쓰는 일제강점기의 기록과 그것을 읽으며 전생의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전설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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